제 126화
126화 – 성좌의 힘
#1
머나먼 옛날.
악마와 천사의 대립이 있던 시절.
군단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한 사내와 맞선 여인이 있었다.
사내에게 패배한 여인은 새로운 생명을 받아, 언제나 전장의 선봉에 섰다.
기나긴 전투가 끝났을 때, 그녀는 한 차원의 심장과도 같은 부분을 지키도록 명받았다.
“오싹오싹하군요.”
파직-.
검은 뇌전이 무섭게 몰아쳤다.
스치기만 해도 살이 거멓게 죽어 나갈 것이다.
흑뢰를 다루는 베드모아젤은 수많은 적들을 도륙한 투신이었으니까.
“어디, 마음 놓고 공격해 보도록.”
그녀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그 누구도 드레젠의 진짜 실력을 알고 보인 적 없는 미소였다.
놀라움, 경이로움, 혹은 존경심과 질투, 공포…….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들의 편린만 보다가, 오늘 처음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자를 봤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하이 부스터 스트렝스.
마나 분리.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는 마나 포식.
드레젠의 트레이드마크가 모조리 세상에 드러났다.
“제법……. 하지만.”
베드모아젤은 검은 뇌전의 출력을 아주 조금 높인 뒤, 달려오는 드레젠의 공격을 받아 냈다.
검에는 충만한 혼돈의 힘이, 두 발에는 뇌전의 힘이 담겼다.
가장 중요한 머리, 그리고 몸통은 신성력이 빈틈없이 보호했다.
“그게 최선이라면 아직 갈 길이 멀구나.”
베드모아젤은 한 손으로 검을 받아 냈다.
드레젠이 튕겨 나가기까지 했으니, 그 위력은 어마어마한 셈.
시청자들이 입을 떡 벌렸다.
-이거 실화야?
-와 이게 성좌구만
-클라스가 다르누
-진짜 오진다
그 드레젠이 쪽도 못 쓰고 튕겨 나갈 정도라니.
여태까지 드레젠의 압도적인 모습만 보다 새로운 광경을 접하니, 사람들은 새로운 벽을 느꼈다.
성좌는 시스템상 최고 단계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었다.
거기까지 도달하는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할까.
[‘K-SS’ 님 10,000코인 후원!]
[프로들도 저렇게 못하는데……. 갈 길이 머네요.]
이미 드레젠의 방송은 프로 게이머들도 챙겨 본다는 말이 있었다.
그 말을 증명하듯, 현 프로인 김승수가 후원을 보내왔다.
당연히 ‘찐’이 나타났다면 채팅 창이 한바탕 뒤집어졌다.
“기초는 단단하게 다져 놨군. 그거면 가능성은 충분하지.”
베드모아젤은 이따금 보이는 페베스 검법, 사라미스 검법을 덤덤히 받아 내며 웃었다.
저 검법들에는 자신과 함께 싸웠던 이들의 정수가 담겨 있었으니까.
콰지직-!
그녀가 대검을 휘두르자, 거대한 전격의 참격이 드레젠을 덮쳤다.
“흐읍-!”
굉음, 번쩍거리는 이펙트.
눈이 아릴 정도로 눈부신 섬광과 마나의 충돌이 난무했다.
드레젠은 베드모아젤의 검술과 부딪치며, 몸소 그녀의 검술을 배우는 중이었다.
그 순간, 하나의 메시지가 떴다.
[세계의 대격변이 시작됩니다.]
[본격적으로 성좌가 개입합니다.]
[마족들이 창궐합니다! 앞으로의 생존은 더욱 힘들어질 겁니다.]
[모든 서버에 일관적으로 적용됩니다.]
[실시간 업데이트가 진행됩니다.]
-?!
-이거 무얔ㅋㅋㅋ
-게임이…… 진화한다고?!
-이건 대체 뭔 게임이옄ㅋㅋㅋㅋ
-지렸다;; 오늘도 레게노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눈을 즐겁게 해 주는 싸움, 지속적이고 빠른 업데이트.
그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업데이트라니.
사랑받는 요소를 모두 끌어다 모은 게임이지 않은가.
“후우…… 오늘 방송은 하루 종일 여기 있어야겠군요.”
-으아니
-수련 방송이라니ㅜㅜ
-실시간으로 강해질 수 있어서 좋긴 한데
-조금 지루하긴 할 듯ㅋㅋㅋ
-그래도 본다!
“잠시 다른 곳 보고 오셔도 되겠는데요.”
드레젠은 굳이 재미없는 방송을 보라고 강요하는 편이 아니었다.
다른 방송을 보거나 개인적인 볼일을 처리하다 보면 재밌는 부분이 또 올 테니까.
몇몇 사람들이 빠져나갔지만, 의외로 많은 이들이 남아, 계속해서 방송을 시청했다.
블록버스터 효과랄까, 이미 드레젠의 화려하고 거침없는 플레이에 빠진 사람들은 다른 방송을 보지 못했다.
-다른 방송 너무 답답하무ㅜ
-진짜 게임 좀 한다는 사람들도 피지컬이 딸려서 안 댐
-엌ㅋㅋㅋ그건 맞지
-스트리머님 이게 좀 이상한데수웅!
-??? : 너 밴
뭐 빠지게 수련하고 있는 드레젠과 달리, 채팅 창은 그야말로 축제 판이었다.
가끔 매니저가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자르는 것 빼곤, 평안하게 흘러갔다.
드레젠은?
아직도 한 손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는 베드모아젤에게 덤벼드는 중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2
[사흘 동안 수련 방송 하는 스트리머가 있다?]
-성좌랑 수련으로 사흘이나 틀어박혀 있는 스트리머! 그 이름은 드레젠! 근데 문제는 사람들이 재밌다고 본다 ㄷㄷㄷ;; 사실 나도 자기 전에 틀어 놓고 잔다 ㅜㅜ
아니 서로 주야장천 싸우기만 하는 게 뭐 그리 재밌냐고 물어본다면…… 다른 스트리머들 보다가 드레젠 방송 보면 알 수 있을 거임ㅋㅋㅋㅋ
그 밑으로 달린 수많은 댓글.
대부분 동의하는 내용이었으며, 슬슬 지겹다는 댓글도 있었다.
그러다가 많은 사람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댓글이 하나 있었으니.
-어차피 다른 사람도 저기 가면 훨씬 오래 걸릴 거 같은데? 미리 봐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음ㅋㅋㅋ
┗ 이거지ㅋㅋㅋㅋ
┗ 엌ㅋㅋㅋ 생각해 보니까 맞네
┗ 드레젠 루트 따라가는 사람은 다 이럴 거 아녘ㅋㅋㅋ
댓글들은 그 이후로 일변도를 달렸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절차를 밟는다면, 언젠가 그림자 기사단의 시련을 통과해야 할 테니까.
그나마 드레젠이라 실력이 쭉쭉 느는 것이 보이는 것이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훨씬 답답했으리라.
오늘로써 나흘째.
게임 시간으로는 장장 20일이 넘는 시간 동안, 드레젠은 수련을 반복했다.
“……너무 안 나오는 것 같지 않습니까?”
“결국 죽은 건가.”
한편, 20일이 넘는 시간 동안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림자 기사단원들.
수많은 사람들이 저 게이트에 먹혔다.
살아 나오는 이들은 평균 일주일 정도면 그림자 기사단의 자격을 얻었다.
“벌써 한 달이 다 돼 가는데, 안 나온다는 건 틀린 거 아닌가? 아그네스?”
“……조금 더 기다려 보시지요. 안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이미 희망은 없는 것 같은데- 우리 막내가 얼마 만에 나왔지?”
“정확히 6일 하고 다섯 시간 만이었지요.”
아그네스는 저도 모르게 손톱을 입술로 물었다.
20일.
세상이 변하기엔 충분한 시간.
아직 별일이야 없었지만, 혹시 몰랐다.
그동안 무의 추종자들이 무슨 계획을 세워도 이상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을 겪고 계신가요.’
그녀는 다크몬드를 빠르게 규합하고 있는 위도우 그레인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한번 찾아왔는데…… 아직도 안 나왔을 줄은 몰랐다.
‘파베론 산맥에서 드래곤이 깨어날 조짐이 보인다는 거…… 알려 드리려고 왔는데 말이에요.’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고 몸을 돌렸다.
선배들은 낄낄거리며 보는 눈이 틀렸다고 했지만, 그녀는 믿었다.
드레젠은 그녀가 보아 왔던 그 어떤 사람 중에서도 뛰어났으니까.
“……저는 다시 일터로 가 보겠습니다.”
“너무 상심 말아라.”
눈티아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슬쩍 고개를 숙였다.
짧게 끊어지는 날숨이 기분을 증명하고 있었다.
“소식 전해 주마.”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멀어져 가는 막내, 아그네스를 바라보며 눈티아가 작게 안도했다.
생각한 것보다 별거 아니었던 인물이었을까.
아니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불안한 생각은 배제하는 것이 좋겠지.’
드레젠은 강하다.
전 인류를 통틀어 손에 꼽힐 정도.
거기서 더욱 강해진다면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돌아오겠지.
그는 고개를 저었다.
드레젠이 진짜 시련에서 죽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때가 머지않았다.]
“……알고 있소.”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드레젠이라는 방해물이 없어진 지금이, 계획을 앞당기기에 가장 좋은 시기였다.
“자, 그럼 각자 위치로 향하지. 나는 집무실로 올라가겠네.”
“괜히 기대했네.”
“머저리 같은 놈. 잘난 체하더니.”
선배 기사단원들은 저마다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들이 장막에 드리워져 사라졌다.
눈티아 역시 쯧, 하고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며칠이 더 흘렀다.
#3
“이 정도면 만족하십니까?”
파직-.
그의 검에서 검은 뇌전이 흘렀다.
베드모아젤이 사용하는 힘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뇌전.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훌륭하다. 내 의도를 제대로 알아차렸구나.”
“힘들었습니다. ‘힘’을 상쇄하는 힘이라니.”
“그래서 특별한 것이지. 그래서 선봉대장인 것이고, 무언가를 지킬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말.
이 힘은 베드모아젤이라는 성좌, 그 자체였다.
그녀의 정체성, 그리고 여태까지 이어 왔던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힘.
드레젠은 당당히 베드모아젤의 후계자로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좋은데 잘 쓰겠습니다.”
“그 힘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군.”
미소를 진하게 지은 베드모아젤이 검을 휘둘렀다.
쩌억-!
공간이 갈라지며 밖으로 나가는 문이 열렸다.
드레젠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 그리고 선물을 주지.”
그녀가 손을 휘젓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던 수호자들의 잔해가 떠올랐다.
지금 드레젠의 갑옷, 그리고 검은 사용할 수 없는 수준까지 변했다.
걸레짝도 그가 착용하고 있는 무구보단 쓸모가 있어 보였다.
-얼마나 싸웠으면;;
-ㅋㅋㅋㅋㅋ엌ㅋㅋ 새로운 힘 지렸다;;
-와 성좌의 힘 실화야?
-이건 클립 각이야아아아아아!
-클립 ON!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는 장소.
이것은 정말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그림자 기사단이 있는 곳은 이제 수많은 유저들이 몰리겠지.
철커덕- 하는 소리가 드레젠의 몸에서 울렸다.
수호자들의 몸으로 만들어 낸 갑옷이었다.
“검도 하나 만들어 주지.”
콰드드득-!
이번에도 쓸 만한 성능의 검이 만들어졌다.
드레젠이 생전 사용하던 검의 모양과 똑같이 만들어져 있었다.
“기억을 살려 봤다.”
“과분한 선물을 받았군요.”
손에 착 감기는 것이,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는 알림 창을 확인했다.
기술 포인트는 물론이요, 숙련 포인트까지 두둑이 쌓였다.
게다가-.
[성좌의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흑뢰(Dark – Lighting) : 번개 속성 + 마나 번]
[마나 번 : 마나를 기반으로 하는 모든 힘을 상쇄합니다.]
<마나 적응력이 사용자보다 높거나, 다른 상쇄 스킬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겐 효과가 반감됩니다.>
[현재 동기화율 : 33%]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능력.
성좌의 힘이라는 것이 새삼 실감 났다.
비장의 한 수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호자의 의지]
[방어력 +330]
[항마력 –30%]
<항마력 : 마나로 이뤄진 모든 공격에 대한 면역력입니다, 마나로 이뤄진 모든 공격에 대한 저항이 증가합니다.>
[속성 : ??? 획득]
[해당 갑옷은 시간이 지나면 수복됩니다.]
[관문 군주의 후계자]
[공격력 +150]
[마나 증폭 +30%]
<마나 증폭 : 마나를 이용한 모든 공격력을 증폭합니다,>
[직업 : ??? 획득]
말도 안 나오는 옵션들.
베드모아젤의 시련을 극복한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최고급 무구.
아이템과 스킬에 환장한 유저들이 노릴 만한 스폿이었다.
“그럼, 보상도 얻었으니 다시 달려 보죠.”
-가즈아아아아!
-진짜 빨리 도전하러 간다ㅜㅜ
-클립을 수출해라!
-수출 각을 세워라아아아!
시청자들이 다시 열광할 재료들이 모였다.
그들이 뿌린 클립은 수많은 스트리머들, 그리고 유저들의 도전의식을 불태웠다.
훗날 ‘성좌 챌린지’라고 불리는 콘텐츠가 생성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