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4화
124화 - 혼돈의 탑
#1
혼돈 에너지.
젤다르가 처음 선보인 에너지이며,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게 하는 능력이었다.
일반 마나와는 조금 다른 에너지이지만, 원리는 똑같았다.
혼돈의 힘은 젤다르가 특별히 보여 준 힘.
이 세상의 균형을 잡기 위해 내려 준 힘이었다.
‘벌써 혼돈을 다룬다고?’
혼돈을 깨치기 위해서는 숭고한 의식을 치러야만 했다.
그림자 기사단이 되는 의식이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모험.
방금 도착한 드레젠은, 혼돈의 힘을 아무렇지도 않게 썼다.
눈티아의 상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허어…… 이거 너무 의외로군.”
은퇴한 그림자 기사단.
몇몇 기억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전승자인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훨씬 놀라웠다.
‘그들 중에서는 혼돈의 힘을 다루는 자는 없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거, 의외로군요.]
[그래도 시험은 해 봐야겠죠?]
그래.
왜 저자가 혼돈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자신의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눈티아는 조용히 1층, 가장 넓은 로비에서 탑을 올려다보고 있는 드레젠을 향해 걸어갔다.
“그 힘은 보통 힘이 아니네. 어디서 얻었는가?”
“……스승님에게 배웠습니다. 저 위에 계신.”
드레젠은 손가락으로 탑 꼭대기를 가리켰다.
그 장면을 본 눈티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어…… 설마.”
“절 부른 이유가 뭡니까?”
드레젠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했다.
게임 캐릭터가 가진 마나로는 아직 부담스러운 퍼포먼스를 많이 했기 때문에,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벌써부터 머리가 핑 돌았다.
-마나 뭉텅이로 나가는 거 봐;;
-와 지금 드레젠 님이 최고 렙 아닌가?
-ㅇㅇ 맞음
-노가다 못해서 렙 올리기 겁나 빡심ㅋㅋㅋ
그런 드레젠이 쩔쩔맬 정도로 마나 소모가 극심한 공간이었다.
눈티아는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며 말했다.
“다소 무리했나 보군. 그 나이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우리가 자네를 부른 이유는 간단하네. 이제 우리도 새로운 피를 수혈해야 하기 때문이야.”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마나는 빠른 속도로 차오르는 중이었다.
젊은 피라…….
그가 알고 있는 그림자 기사단 중에 가장 젊은이는 50세가 넘었다.
지금이야 아그네스가 그림자 기사단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수정되었지만.
“아그네스에겐 얘기 들었습니다. 설마 다크몬드가 그림자 기사단의 것일 줄은 몰랐네요.”
“우리라고 만능은 아니라네. 자네가 시원하게 터뜨리는 바람에 다시 조직을 세워야겠구먼. 허허.”
“그건 미안하게 됐습니다.”
모르고 한 일이니 무어라 말하기도 뭐했다.
눈티아는 그저 흐뭇한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처음 자네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땐 다소 의아했네. 어디서 또 은퇴한 놈이 제자랍시고 내보냈겠거니 했거든.”
“은퇴는 모든 기술을 빼앗은 다음 용인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맞네. 하지만 그 이론까지 모르는 것은 아니야. 자신의 목숨을 바쳐 우리의 기술을 전수해 주는 자들이 있지.”
그림자 기사단을 은퇴할 땐 계약을 하고 나와야 한다.
모든 진실을 은폐할 것.
조용히 살아갈 것.
하지만 천재, 혹은 그 비슷한 자들을 만난다면 욕심이 생기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겠지.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제자를 키웠고, 그림자 기사단은 그들을 추적하여 시험했다.
“여태까지 그런 자들 중에 통과한 이들이 있습니까?”
“아그네스 한 명뿐이네. 덕분에 그녀는 최연소로 그림자 기사단이 되어 연락책을 수행해 왔었고.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다니…… 정말 신비하지 않나?”
드레젠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 눈앞에 있는 사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네는 큰 그릇이 되겠군. 허허!-
-그림자 기사단이라는 명예가 자네를 언제나 지켜 줄 것이네.-
‘그런 자가 왜 그랬을까.’
드레젠은 당장 따져 묻고 싶었다.
마족.
그리고 인류를 증오하는 자들과 무슨 관계가 있냐고.
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기에 인류를 배신했느냐고.
하지만 지금은 그저 입을 다물고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자네의 의사를 물어야겠군. 그림자 기사단이 아닌데도 그림자 기사단 행세를 하고 다닌 것은 분명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지만?”
“그게 성좌의 뜻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눈티아는 그렇게 묻고 있었다.
그림자 기사단에 충성을 다할 것인지, 아니면 심판을 받을 것인지.
언제나 그렇듯 예외는 있었다.
성좌의 뜻으로 움직이는 거라면 주도권은 무조건 드레젠에게.
그의 선택이 곧 성좌의 선택이었으니까.
“성좌라…… 그분이 제게 지식을 준 건 맞지만 독학이라서요. 딱히 제가 그림자 기사단이라고 떠벌리고 다닌 것도 아니고 말이죠.”
“흐음…….”
“그나저나 다른 분들 얼굴도 좀 뵙고 싶은데, 안 보여 주실 겁니까?”
당돌한 드레젠의 말에, 주변 공기가 일렁였다.
사람들이 등장했다.
보이지 않는 망토가 거둬지고, 가공할 정도로 정순한 기운이 넘쳐 났다.
평소 마나를 숨기고 암살을 다니는 작전과 달리, 이곳에선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애송이, 제법 보는 눈이 있군.”
“누구한테 배웠는지 몰라도 잘 배웠어.”
“진짜 독학한 건가?”
“우리 그림자 기사단은 실력자를 환영한다. 진짜 실력이 있을 경우에만.”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농밀한 마나가 드레젠을 짓눌렀다.
끈적한 뻘에 빠진 것 같은 느낌.
일반 사람들이라면 느끼는 것만으로 쇼크사할 정도로 압도적인 힘이었다.
“환영 인사 감사합니다. 시험은 언제 치르실 건지?”
“……호.”
드레젠은 아무렇지도 않게 환영 인사를 받아 냈다.
일종의 신고식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그림자 기사단이 되기 위해 찾아왔지만, 이 환영 인사를 견딘 것은 극히 소수였다.
그마저도 시험에 이르러서는 모조리 죽어 나갔고.
“그래도 제법 강단은 있는 녀석이었네.”
“아그네스 이후로 처음이군.”
“재밌겠어.”
“흐흐, 얼마나 고통받으며 시련을 받을지 궁금하네.”
하나같이 악취미적인 사람들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드레젠을 싫어하는 이들은 없었다.
낙하산이든 뭐든, 시련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림자 기사단으로서의 자격은 없으니까.
그 시련이라는 것도 아무나 통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련에 대한 것도 알고 있나?”
“제가 지식은 조금 많은 편이라서.”
씨익 웃는 모습이 건방지게만 보였다.
하지만 그 속에는 확실한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재미있어, 아주 재미있어.”
눈티아는 껄껄 웃었다.
성좌의 개입이 없다는 것은 확인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바로 시련을 시작하도록 하지.”
“시험을 통과하면 그림자 기사단이 되는 겁니까?”
“그렇다네. 시련을 통과해도 가입할지 말지는 자유야. 몇 가지 제약이 따르겠지만, 아무 해도 가하지 않을 것이네.”
드레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의 비밀을 철저하게 캘 때까지 떠날 생각은 없었다.
그깟 감투, 얼마든지 써 줄 수 있었다.
“그림자 기사단. 개인적으로 명예로운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가시죠.”
-이거 거의 만렙 콘텐츠 아니누
-만렙 돼도 힘들 듯
-진짜 여기 있는 사람들 세계관 끝판왕 아녀?
-성좌 다음으로 셀 듯;;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이 대륙 최강자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자들이었다.
아마 정면으로 붙는다면 상당히 고전하거나 패배하겠지.
그것도 1 대 1로 붙었을 때의 이야기였다.
“시련의 내용은 말해 줄 수 없네. 합격 기준은 간단하지. 살아서 돌아오는 것. 그게 그림자 기사단이 될 수 있는 방법이라네.”
“알겠습니다.”
눈티아는 드레젠을 지하로 데려갔다.
탑은 기묘한 에너지로 휩싸여 있어, 마나가 계속 이리저리 튀었다.
하지만 드레젠은 그것마저 능숙하게 처리했다.
마나를 다루는 일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곳이네.”
고오오-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게이트.
마치 소설에 많이 나오는 ‘게이트’처럼 생긴 웜홀이었다.
회색으로 빛나고 있는 게이트가 묘한 기분을 자아냈다.
“간단해. 들어가서, 나오면 된다.”
“정말 간단하군요.”
“생환을 기원하지.”
툭툭 쳐 주는 손길이 어색하지 않았다.
언제나 전장으로 나갈 때면, 그가 이렇게 해 주곤 했었으니까.
‘추억인지 악몽인지 모를 기억이군.’
그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버티고 버텼던 대들보가 와르르 무너진 기분이었다.
왜 그랬는지, 눈티아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드레젠은 걸음을 옮겼다.
[히든 던전 : ‘그림자 기사단의 시련’에 입장합니다.]
[입장 제한 : 1회]
[히든 던전은 계정당 1회에 한해서 입장이 가능합니다. 세이브를 해 주세요.]
“잠깐 저장하고-.”
-가즈아아아아!
-여기서 밋션이 빠지면 섭하지!
-미션 가즈아아아!
[‘용성’ 님 100,000코인 후원!]
[오늘도 공략비 냅니다.]
[‘미션맨’ 님 10,000코인 후원!]
[노다이 클리어는 10만 원입니다 행님]
[‘ST텔레콤’ 님 100,000코인 후원!]
[자세한 공략 알려 주시면 100만 원 드리겠습니다.]
[‘하이츠 전자’ 님 250,000코인 후원!]
[오늘도 잘 배워 갑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그의 전투 방식을 배우려 하고 있었다.
드레젠은 이미 최고의 스승이자, 정보상이었다.
마땅히 돈을 주고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는 날로 갈수록 높아지는 중이었다.
“갑니다.”
뭉클한 감각이 기분 나쁘게 전신을 물들였다.
모든 시청자들이 그의 방송을 주목하고 있었다.
공략 방송은 철저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림자 기사단의 시험을 시작합니다.]
[1교시, 살아남으십쇼.]
쉬익-!
불의의 일격이라는 표현이 정확했다.
정수리 쪽으로 강력한 참격이 날아왔다.
드레젠은 한 발자국을 움직이며 공격을 피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엄청나게 많은 공격이 드레젠을 노렸다.
“어둠 속에서 감만으로 공격을 잡아내야 합니다.”
터엉-!
검을 뽑아 날아오는 검격을 쳐 냈다.
여기서 힘을 낭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갇혀, 드레젠은 맹렬히, 그리고 가볍게 움직였다.
-저게 뭐여
-;;;난 포기
-ㅋㅋㅋㅋ프로들도 이거 할 수 있을까?
-진짜 혼자 영화 찍는 거 실화냐곸ㅋㅋㅋ
-매일매일이 레전드다;;
어느새 눈까지 감고 있는 드레젠은, 연신 그 공격들을 피하거나 막아 냈다.
익숙한 느낌에 오히려 웃음까지 나왔다.
처음 이 시련을 받을 때는 정말 죽고만 싶었지.
“피하기만 하면 재미없으니까-.”
쩌엉-!
드레젠의 검이 빛났다.
정면에서 찔러 오는 공격을 받아쳐, 불똥을 일부러 만들어 냈다.
아주 잠깐이지만 주변의 풍경이 드러났다.
드레젠의 악마 같은 미소도 언뜻 보였다.
그는 검을 바짝 잡아당기며-.
“공격하는 것들을 모조리 때려 부수고 끝내겠습니다.”
이 시험을 박살 내겠노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