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3화
123화 - 사라미스 지대
#1
“혼자 잘하겠죠?”
-ㅇㅇ 그러겠지
-성안에 있는 건 너무 지루함ㅋㅋㅋ
-오늘도 거의 끝나 간다ㅜㅜ
드레젠은 와이렉스의 등에 타고 사라미스 사막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아그네스는 조금 더 있다가 출발한다며 쪽지를 남겼다.
사라미스 사막.
혹은 사라미스 지대라고 부르는 넓은 광야엔, 수많은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투 양상이 필요합니다. 제가 맨 처음에 보여 줬던 사라미스 검술 있죠? 이곳에서 잘 통합니다.”
-그때 쩔었지
-아직도 1일 1영상 보고 잡니다
-오크랑 싸우는데 그렇게 박진감 넘칠 줄이얔ㅋㅋ
-빨리 그림자 기사단 만나고 싶다!
그림자 기사단을 만나는 일도 일이지만, 그 안에서 확인해야 할 일도 있었다.
과거 왜 그가 그림자 기사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는지, 그리고 그 공백은 왜 생겼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리고 잠재적인 위협도 제거해야 하고.’
그림자 기사단이 마족과 결탁하면 어떻게 변하는지 아주 잘 보여 줬던 인물이 있었다.
그자와는 끝까지 결판을 짓지 못한 채 지구로 넘어왔었지.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던 것이 흠이었다.
‘날 가르쳐 주었던 인간이 그렇게 배신할 줄은 몰랐지만.’
지금 그가 쓰고 있는 그림자 기사단의 기술들은 모두 ‘그’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그가 배신했을 때, 대륙 전체가 절망에 휩싸였었다.
그림자 기사단의 암세포.
“이번 콘텐츠는, 그림자 기사단 암살하기입니다.”
-?!
-???
-갑자기?!
-엌ㅋㅋㅋ재밌겠누
-재밌긴 하겠넼ㅋㅋㅋ
드레젠은 덤덤히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풀었다.
그림자 기사단에 대한 것들과, 그들이 어떻게 타락해 갔는지.
“본래 그림자 기사단은 ‘젤다르’라는 성좌들의 하수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세상의 부조리를 치우거나, 너무 강력한 몬스터가 나타나면 토벌하곤 했죠.”
하지만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수호하기보단 군림하려 했다.
다크몬드가 사실 그림자 기사단의 산하 시설이었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림자 기사단은 어떤 이득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
이미 공공연하게 그것을 어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누가 지시했는지는 안 봐도 뻔하지.’
“은둔하면서 살아갔지만, 세상의 이치는 모두 알고 있었죠. 게다가 브레이시스의 황제마저 암살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공포의 대상이 되어 갔습니다.”
-나 같으면 토벌할 텐디
-그러게 황제가 가만히 있었을까?
-아마 토벌하려다 실패한 듯?
“맞습니다. 수 세기 전에 그림자 기사단과 제국 간에 마찰이 있었죠. 하지만 결국 제국군은 그림자 기사단에게 농락만 당하고 패배했습니다.”
백 명도 안 되는 인원에게 패배한 수만의 제국군.
그들은 그 이후 공포의 화신이 되어 불가침의 대상이 되었다.
그 후, 그들은 재앙이 나타날 때마다 홀연히 나타나 세상을 구했다.
동시에 폭군, 혹은 과도하게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에게 엄벌을 내리곤 했다.
시간이 쌓아 만든 전설.
“그렇게 그들은 전설이 되었죠. 지금은 뭐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드레젠에게는 기억이 없는 시절이었다.
이 시기에 그림자 기사단이 어떤 조사를 했는지, 어떻게 정보를 모았는지에 대한 자료 수집이 필요했다.
게다가 이 시기에 그가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었는지도.
“개중엔 타락한 자들도 있었습니다만, 그건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일이니까 지켜보시죠.”
이제부터 그 비밀을 파헤치러 가야 한다.
때마침 불러 줘서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브레이시스 제국의 국경을 넘자, 곧바로 황량한 평지가 펼쳐졌다.
“이곳부터 사라미스 지대라고 부릅니다. 이 사막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는 땅’이 나옵니다.”
그림자 기사단은 바로 그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사막은 광활했다.
오늘은 바로 사라미스 부족이 머무는 땅 근처에서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사라미스 부족이 살아가는 대지가 유일하게 광야에서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자, 천천히 가도록 합시다.”
그는 느긋하게 사라미스의 광야를 캠으로 찍으며 대륙의 끝으로 향했다.
#2
“호오, 드디어 그가 온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단장.]
“그렇단 말이지……. 이거 시련을 준비해야겠군. 허허.”
[그의 출신은 명확하지 않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수정구 앞에서 통신을 하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에게 있어 꼭 필요한 인재라면, 출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철저하게 개조될 테니까.
이쪽이 원하는 인재로 말이지.
“상관없다. 커리큘럼을 돌리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만만한 자가 아니던데요.]
“나를 못 믿는 것이냐?”
남자의 언성이 조금 낮아졌다.
불편함을 표시하는 말투에, 수정구 안에서 작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호호, 그럴 리가 있습니까.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조금 늦을 것 같거든요.]
“……그놈들의 뒤를 쫓는다 했지.”
[예. 이곳 파베론 산맥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더군요. 지금도 조짐이 좋지 않습니다. 추종자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아내겠습니다.]
“그래. 그리하거라. 그러면 나는 손님맞이 준비를 해야겠구나.”
[그럼 저는 이만…….]
“아 잠깐.”
남자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꽤 중요한 사안이었다.
지금까지 얻었던 정보들이 뚝 끊겼으니, 궁금해할 수밖에.
“다크몬드는 어쩔 셈이냐?”
[일단 제가 다시 접촉할 겁니다. 정보는 지금까지의 방법대로 보낼 테니 너무 걱정 마시길.]
“믿고 있으마.”
남자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통신은 그것으로 끝.
수정구의 불이 꺼지자마자, 남자는 뒤를 돌아 방을 빠져나갔다.
걸음을 옮기며, 그는 허공에 대고 말했다.
“슬슬 준비하거라.”
“그리하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주변에 일렁거리고 있던 기척이 모두 사라지자, 그가 조심스럽게 마나를 운용했다.
[이젠 어쩔 셈입니까. 군단장.]
[그자를 철저하게 세뇌해라. 실패하면 안 된다.]
“……그 분야는 제 전문이니 걱정 마시길.”
펄럭-.
남자의 손끝에서 투명한 장막이 펼쳐졌다.
탑.
아무것도 없는 곳처럼 보였지만, 이곳은 이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자들이 있는 곳이었다.
신입으로 받아들일 녀석이 오고 있었다.
준비는 철저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기대하고 있거라. 애송이.”
조용히 웃는 그의 모습에서, 왜인지 모를 섬뜩함이 느껴졌다.
#3
“저쪽이 탑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만 끊어야겠네요.”
-아아아아아!
-진짜 드라마 같은 전개 무냐고ㅜㅜ
-진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넼ㅋㅋㅋ
-오늘 하루도 알찼다^^7
“자, 그럼 2부에서 뵙겠습니다.”
드레젠은 적당한 선에서 1부 방송을 종료했다.
궁금한 점이 생겼기 때문에, 하이디엔에게 전화를 걸 생각이었다.
캡슐에서 나와 몸을 푼 강일이 핸드폰을 들었다.
“하이디엔, 너…… 눈티아 알지.”
“네. 당연하죠. 그놈이 영웅들 셋을 잡아먹은 장본인이거든요.”
과연.
강일은 자신이 떠나고 난 뒤의 행보를 물었다.
눈티아는 마족의 지휘자와 맞먹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 거대한 산과도 같은 마족의 지휘자와 비슷한 스펙이 압축되어 있는, 대륙 최고의 재앙.
“……그랬군. 그렇다면 지금 그걸 알아봐야겠어.”
“어째, 점점 용사처럼 변해 가시네요.”
“이걸로 밥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데, 내 세션의 평화 정도는 지켜야지.”
과거의 미련한 짓을 되풀이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의 목표는 지구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었으니까.
이제 정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슬슬 집도 알아봐야겠지.
“어쨌든, 알겠어. 그랬단 말이지.”
역시 강일의 추측이 맞았다.
그는 기지개를 켜며 하이디엔에게 지나가듯 말했다.
“이제 슬슬 기계들이랑 신나게 싸우겠네.”
“아마도…… 그렇게 되겠죠.”
“아직은 게임일 뿐이니까, 너무 마음 쓰진 말고 있어.”
돌아오는 하이디엔의 대답은 영 석연치 않았다.
강일은 통화를 종료하고 다시 캡슐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용병왕이 되어 갈 시간이었다.
#4
다음 날.
회백빛의 세상에서 보이는 탑은 멸망 이후의 세계를 보는 것만 같았다.
드레젠은 멍하니 ‘아무것도 없는 땅’에 발을 들였다.
이곳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땅이었다.
-와
-배경;;
-신기하다
-게임 진짜 잘 만들었넼ㅋㅋㅋ
발 디딜 곳 외에는 공기도, 몬스터도, 물도 없는 곳.
드레젠은 마나를 둘러 몸을 보호했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는 숨조차 쉴 수 없었으니까.
“들어가겠습니다. 여긴 최소 만렙 찍고 오세요.”
마나가 뭉텅뭉텅 깎여 나갔다.
없는 공기를 만들어 내야 하고, 없던 압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그림자 기사단이 무차별적으로 강한 이유는 바로 이곳에 있었다.
그들에겐 생활 자체가 수련이었으니까.
“벌써 손님맞이 준비가 끝났군요.”
“허허, 보면 볼수록 신기한 청년이로군. 마치 옛날의 나를 보는 것 같으이.”
“처음 뵙겠습니다.”
탑의 앞에는 회색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아저씨가 서 있었다.
그저 풍채가 좋은 동네 아저씨처럼 보이는 인상.
평범하게 서 있는 저자가 바로 그림자 기사단의 수장이자 대륙 최고의 암살자인 ‘눈티아 트라굴라’였다.
“어서 들어오게. 자격은 충분한 것 같으니.”
드레젠은 말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림자 기사단.
추억이 넘쳤지만, 그만큼 잔혹한 수련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했다.
예전, 수많은 사람들이 그림자 기사단이 되기 위해 험난한 사막과 광야를 건넜다.
하지만 그들은 탑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좌절했다.
“이곳에 들어갈 수만 있어도 마나 적응력과 컨트롤에 있어선 증명받은 셈이죠.”
-입구부터 빡시네
-입구 컷이 강남 클럽보다 빡세;;
-목숨 걸고 들가야 하누
-일단 여기를 목표로 하면 된다 이거지?
적어도 마나에 대한 것은 그림자 기사단만큼 잘 다루는 집단이 없었다.
마법을 다루는 이들은 논외로 친다면, 단순 육체 능력 중에서는 두말할 것 없이 최고의 집단이었다.
드레젠은 걸음을 옮기며 탑의 정경을 찍었다.
‘혼돈의 탑.’
온통 회색으로 물들어 있는 탑이었다.
그그그-.
거대한 철문이 조금 열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여는 그 문의 무게는 자그마치 아이언 골렘 하나 정도.
“첫 번째 시련일세. 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된다네.”
그그긍-.
문 뒤에 서서 씨익 웃고는 다시 닫아 버리는 눈티아.
드레젠은 피식 웃었다.
새삼 저자의 기본적인 힘이 어느 정도인지 깨달았기 때문.
‘아마 여태 만났던 이들 중에 가장 강력한 상대겠지.’
그는 마나를 활성화한 채 문에 손을 댔다.
여기서 그냥 여는 것은 조금 재미가 없으니까, 색다른 인상을 심어 주기로 했다.
혹시 더 배울 것이 있을지도 몰랐으니, 겸사겸사.
마나를 집중해, 혼돈의 힘을 깨웠다.
-젤다르의 힘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 주지. 혼돈의 힘은 물질이 복원하는 것을 막는 힘이 있다네.-
-그것은 물체에도 통용되는 이야기지. 기계든, 성벽이든, 한번 망가진 것은 수복할 수 없어.-
눈티아가 했던 말을 상기하며, 그는 있는 힘껏 문을 때렸다.
콰아아앙-!
귀가 먹먹할 정도의 폭음과 함께 문짝 하나가 완전히 너덜너덜해졌다.
“이거, 손님에 대한 예의가 영 아니군요.”
“…….”
눈티아는 얼굴을 찌푸린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드레젠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 눈티아.
문득. 그는 들려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아 잠시 뒤를 돌아봤다.
“허…….”
본래라면 수복되고 있어야 할 마법의 문.
일렁이는 힘과 함께 험하게 찌그러져 있는 문을 보고, 그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