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2화
122화 -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지만,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
#1
이졸데가 가진 단 하나의 문제.
그것은 골렘의 핵의 본질을 변형시키는 마법이었다.
정확히 말해서는 연금술.
핵을 어떻게 제조하느냐에 따라 골렘의 성질이 달라진다는 것은 정말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골렘의 핵.”
“핵이 왜요?”
“그 핵을 다르게 만드는 것이 네 이론의 방점이야.”
핵을 다르게 만든다?
이졸데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왜 핵은 통일되어 있을까?
핵은 엔진과도 같았다.
“용도에 따라 핵을 만드는 것. 그것이 골렘 제조의 핵심이지.”
“아…… 아!”
이졸데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던 마지막 단서가 손에 들어왔다.
답은 핵이었다.
“다, 당장 실험해 봐야겠어요!”
“나는 재료 좀 공수해 올게.”
“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의 피로는 싹 다 잊은 듯, 열정적으로 뛰쳐나가는 이졸데.
드레젠은 피식 웃고 작업할 사람들과 재료들을 공수하러 떠났다.
#2
“……진짜 뒤집어엎을 생각은 없습니까?”
“이걸 그냥 갖다 바치느니……. 어휴.”
그 무렵.
하시스 성 정문엔 한 무리의 상단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을 이끄는 것은 드레젠에겐 퍽 반가운 얼굴이었다.
굳은 얼굴로 말 위에서 하시스 성을 바라보는 자.
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내 어쩌다…….’
홀로 유유자적 수련을 하고, 멋진 곳에서 화류계 생활을 하며 살아갈 운명인 줄만 알았다.
순간의 선택이 이렇게 인생을 꼬이게 만들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정지! 신분을 밝히십시오!”
“할레단 후작가에서 나온 상단이다.”
그가 엠블럼을 보여 주었다.
경비가 하는 일 중엔 각 가문이나 상단, 혹은 중요 단체의 엠블럼을 외우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할레단 후작가는 황족의 머나먼 친척이 세운 가문.
모르면 당장 불려 가서 맞아도 할 말이 없는 엠블럼이었다.
“확인했습니다. 하시스 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성주는 어디 있지?”
“성주님께선 내성에 계실 겁니다. 안내인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할레단 후작가에 대한 경계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경비는 저 멀리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딱딱하게 굳어 있는 리더의 표정을 보고 질문을 꿀꺽 삼켰다.
“아니, 이게 누구야. 모나르잖아?”
“……이바르데? 어째서 네가…….”
“나 여기 취직해서 잘 먹고 잘살고 있지. 아직도 어깨에 힘주고 다니냐?”
피식 웃고 있는 남자.
그는 다름 아닌 이바르데 스테틱이었다.
과거, 아주 어렸을 때 아카데미에 함께 다녔던 두 사람이었다.
꽤 붙어 다녔다가, 이바르데가 자퇴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긴 사이였다.
모나르의 기억 속의 이바르데는 선배나 선생님들에게서 잘 벗어나게 해 준 고마운 존재였다.
“와, 이거 골드야? 뭐 사러 왔나 봐? 소문이 벌써 퍼졌나?”
“……아직 소식 못 들었나?”
“응? 뭐가? 영광의 전당에서 깨진 건 알고 있는데.”
그 후의 이야기는 아직 모르는 모양.
이바르데는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확실히, 그 자리에는 드레젠과 모나르, 그리고 몇몇 가신들밖에 없었으니까.
‘입단속은 철저히 시키긴 했다만.’
소문에 밝은 이바르데까지 아직 전해 듣지 못할 정도라면, 성과는 있었나 보다.
그는 잡다한 생각을 지우고 이바르데에게 말했다.
“괜찮으면 성주가 있는 곳까지 안내 좀 부탁해도 될까.”
“그래, 뭐. 나도 마침 가려던 참이었는데.”
여전히 가벼운 녀석.
그는 피식 웃으며 터덜터덜 걸어가는 친우의 뒤를 쫓았다.
설마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이야.
‘위안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지…….’
그는 뒤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골드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성좌의 명예를 걸고 한 게임, 그리고 그림자 기사단이라는 파급력은 할레단 후작가를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젠장.’
그는 하릴없이 내성으로 향했다.
복수는 꿈도 꾸지 못한 채로.
#3
“성주님! 여기 계셨군요!”
“무슨 볼일이야?”
“오랜만에 제 친구가 찾아와서요. 걔가 성주님께 볼일이 있다는데요?”
한창 인력 사무소를 찾아가고 있었던 드레젠에게 당도한 이바르데.
드레젠은 이바르데에게 친구가 있었나? 하고 생각했다.
미래에 그와는 별로 접점도 없었을뿐더러, 친우 얘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까.
“너한테도 친구가 있었구나.”
“……절 아주 국제적 왕따로 아시는 모양인데, 가문이 무너지기 전엔 저도 한가락 했습니다. 예?”
-ㅋㅋㅋㅋㅋㅋ
-얘 좀 인싸력이 충만하긴 함ㅋㅋㅋ
-귀여운 면도 있누
-격식 없이 말하는 거 취저넼ㅋㅋ
-잘생기기도 했지 흠흠
반들반들한 얼굴을 보니,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구태여 덧붙이자면 아주 불량 학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친구가 누군데?”
“아, 성주님도 아실 겁니다. 얼마 전에 한판 하셨잖아요. 할레단 후작가의 장남인데.”
“아. 선물이 도착했군. 쿨레드랑 이졸데도 불러와라.”
“네? 그러죠 뭐.”
그는 털레털레 걸음을 옮겼다.
드레젠은 이바르데의 뒷모습을 잠시 보다가 내성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주 휘황찬란한 선물이 도착해 있을 테니까.
#4
“와…… 이거 진짜 우리가 쓰는 겁니까?”
“이걸로 숨통이 트이겠군요.”
1만 골드.
황금의 작은 동산을 보고 있는 간부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자존심이 상한 듯,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나르.
드레젠이 그에게 물었다.
“통수칠 줄 알았는데, 용케 모아 왔네?”
“할레단 후작가를 만만히 본 것 같군. 조금 무리하긴 했지만, 1만 골드 정도는 공수가 가능했다.”
과연.
명문가라고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오오
-후작가는 후작가인 듯
-공작가는 얼마나 대단한 거지;;
-세계관마다 다르니 뭐…….
-진짜 부자인가 봄.
1만 골드.
현금으로 따지자면 10억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당장 날름해서 팔아도 되겠지만, 드레젠은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1만 골드는 소국의 반년 정도를 먹여 살릴 정도의 예산이었으나, 그뿐이었다.
이곳저곳 들어가다 보면 돈은 결국 없어지게 되어 있었다.
“첫 번째 명령을 잘 이행해 줘서 고맙다.”
“……네놈 때문에 그날 아버지에게 깨진 것만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그러니까 왜 잘못을 해 가지고……. 쯧쯧.”
모나르는 작은 한숨을 쉬고 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꼴에 후작가의 장남이라고 남아 있는 자존심이 귀엽게만 느껴졌다.
1만 골드는 정말 큰돈이었다.
“이 정도 금액을 턱 내놓는 것 보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나 봐?”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호감을 사라고 했지만, 내 생각은 반대다.”
-뭐래
-저거 불효자식이네 저거
-ㅋㅋㅋ패륜아;;
-하여튼 엄마 아빠 말 안 듣지;;
-어휴ㅋㅋㅋ
[‘죽빵짱’ 님 5,000코인 후원!]
[저거 그냥 때리면 안 돼요?]
드레젠은 피식 웃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러려고 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그럼 뭐, 다음엔 5만 골드 콜?”
“…….”
움찔 떠는 모습이 처량하기까지 했다.
100만 골드라도 바치라면 바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계약으로 묶여 있는 사이였으니까.
드레젠은 상큼하게 그의 어깨를 다독여 주며 말했다.
“자존심 좀 그만 세워라. 멍청아. 난 시간 없어서 가니까, 알아서 있어. 여기서 소란 피우면 큰일 난다, 너.”
하시스 성은 생각보다 강한 전력들이 뭉쳐 있는 곳이었다.
당장 경비대장인 아이젠하트만 해도 오러를 수준급으로 다룰 수 있는 자였고, 기사 : 얼터는 그보다 훨씬 실력이 뛰어났다.
그뿐 아니라 샤페론은 조금 있으면 마스터의 경지에 발끝이라도 걸쳐 볼 수 있을 정도의 강자였다.
게다가-.
‘진짜 그림자 기사단원이 여기 있거든.’
지금은 열심히 수색하는 중이겠지만.
침묵하는 모나르를 뒤로하고, 그는 이졸데를 향해 말했다.
“내일 아침에 나한테 자료 받으러 와. 1만 골드나 얻었으니, 밥값은 했지?”
쿨레드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성주의 위신을 톡톡히 세우셨군요.”
“더한 것도 뜯어낼 수 있으니까, 말만 하라고.”
“오랜만에 재미있게 일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1할은 이졸데 씨를 후원하겠습니다.”
이졸데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를 지었다.
1천 골드!
스톤 골렘뿐만 아니라 아이언 골렘도 만들 수 있는 돈이었다.
그녀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새끼들 다 뒈졌어!”
씩씩거리며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모나르가 이바르데에게 말했다.
정곡을 찌르는 단어의 조합으로.
“저 여인, 네 동생이냐?”
“……어.”
“비슷하구나. 하는 행동이.”
“……그러게.”
뭐, 대충 그런 분위기였다.
할레단 후작가와의 작은 볼일은 이걸로 끝.
드레젠은 1만 골드라는 거금을 성공적으로 뜯어냈다.
#5
다음 날.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내성에서 유독 발 빠른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드레젠이 머물고 있는 집무실로 향한 이졸데였다.
아침에 오라는 말을 듣고, 동이 트자마자 집무실로 향한 그녀는, 입구에서 의외의 인물을 마주했다.
“샤페론 경?”
“좋은 아침입니다. 이졸데 님. 지난밤에 성주님께서 자료를 전달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졸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성주는?
“성주님께서는 볼일이 있다 하시고 사라미스 지대로 향하셨습니다. 충분한 인력을 붙여 두었으니 감독만 잘하면 될 거라고 하시더군요.”
“아…… 알겠어요. 결국 성주님께선 또 훌쩍 떠나셨네요.”
“그림자 기사단에 관한 일이라……. 조금 복잡한 사정이라고 합니다.”
이졸데 역시 그림자 기사단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아직도 전설적인 존재로 각인된 그들.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집단.
‘성주님은 확실히 대단하시구나.’
그런 드레젠이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샤페론은 그녀에게 자료집을 건네주었다.
작은 쪽지가 자료집 앞에 붙어 있었다.
-네 감을 믿고 가라. 돌아와서 보자.-
괜스레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끼며, 이졸데가 자료집을 천천히 넘겨보았다.
그녀의 두 눈이 점점 커졌다.
자리에 못 박힌 듯, 멀뚱히 서서 완성된 이론을 바라봤다.
-이 이론은 네 거다.
그렇게 말했던 드레젠이 떠올랐다.
정말, 이 엄청난 지식이 자신의 것이라고?
시간이 조금 지났다면 알아낼 수 있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감이 잡혔다.
“저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고생하십시오.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시고.”
이졸데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달려갔다.
가슴이 뛰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가 꿈꾸던 최고의 골렘.
그 정수가 바로 이 자료집에 모두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