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1화
121화 - 골렘학 개론
#1
연구소.
이졸데는 한숨을 쉬며 새로 영입한 이들과 마주 보고 있었다.
어젯밤 성주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녀는 어제도, 오늘도 철야였다.
“소장님. 진짜 이건 무모한 생각입니다. 스톤 골렘은 절대 전투용으로 쓸 수가 없어요.”
“저희도 연구를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소장님.”
이졸데는 아직도 드레젠과의 첫 만남을 기억했다.
네가 맞다.
그러니 마음대로 해 봐라.
그 말에 혹해서 들어왔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아른거렸다.
‘근데 이게 뭐냐고.’
성주는 툭하면 밖으로 나돌아 다녔고, 붙여 준 연구원들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왜냐고?
그들은 이졸데의 연구를 필요 없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연구원들은 쿨레드가 뽑아 놓은 엘리트들이었다.
그들이 고작 마탑에서 허드렛일이나 했던 이졸데를 고깝게 보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소장님. 아무래도 소장님의 연구는 아직 불완전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소장의 권한으로 진행해도 협조할 수 없습니다. 이건 세금 낭비라고요.”
회의장에서 짹짹대는 저들 때문에 연구가 진척되지 않았다.
밤새 연구하고 고민한 끝에 결과를 내놓으면 뭐 하나.
자신 밑에 있는 자들이 저렇게 바락바락 대들고 있는데.
마음 같아서는 성주에게 일러바치고 싶지만, 쿨레드에게 들은 소리가 발걸음을 잡았다.
-지금 자금 상황이 조금 빠듯해서. 아마 이시스의 눈물을 거래하고 나서야 숨통이 트일 것 같습니다.
재정에서는 그의 말을 따라야 했다.
안 그래도 신경 써서 배치해 준 인력들이었다.
무시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으니…… 어떻게든 이끌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연구를 진행해 보고 작업에 들어가죠. 저는 성주님께 한번 가 봐야겠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소장님은 열심히 하시니까, 금방 결론을 내실 겁니다. 하하!”
그녀는 쓴웃음을 짓고 자료집을 챙겨 밖으로 향했다.
서글서글했던 연구원들의 눈빛이 변한 것은, 그녀가 문을 닫고 나간 뒤였다.
“후…… 언제까지 저런 의미 없는 연구를 붙들고 있을 건지.”
“그러게. 진짜 스톤 골렘을 쓸 수 있다는 건가?”
스톤 골렘.
가장 가성비가 좋은 골렘이자, 노동, 작업용 골렘으로 익히 알려져 있는 골렘이었다.
전략적 병기인 아이언 골렘은 어마어마한 양의 철이 들어가기 때문에, 대도시급 자금이 아니면 얼마 생산하지도 못했다.
그 위에 있는 골렘은 거의 전설로만 내려오는 병기였고.
“스톤 골렘의 전략화라……. 하! 웃기는군. 저런 머리로 어떻게 마탑에 들어갔는지 원…….”
“그러게. 어휴, 이 지긋지긋한 싸움이 언제 끝날까?”
“그냥 얌전히 작업해서 다른 병기나 좀 만들지.”
그들의 의문과 불평은 당연했다.
이미 수 세기 동안 편하게 써먹고 있었던 것을 바꾸려고 하는 시도였다.
이따금 그런 자들이 등장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게다가 실패하면?
“우리 월급도 깎일 거 아니야?”
“어휴…… 무능력한 소장 때문에 이게 뭔 짓인지…….”
연구는 기본적으로 수많은 실패를 전제에 깔고 들어가는 것.
시간과 비용은 비례했다.
즉, 성과가 없을수록 비용은 어마어마하게 불어난다는 뜻이었다.
“우리 월급이라도 잘 챙겨야지. 이런 하찮은 곳에서.”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래. 오늘은 맛있는 식당 좀 찾아봐!”
현대의 여느 회사와 다름없는 분위기.
그들은 이졸데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그것을 십분 이용해서 놀고먹는 중이었다.
엘리트인 자신들이 왜 마탑 말단의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가!
그런 생각을 가지며, 연구원들은 이졸데가 마법으로 복사해 나눠 준 자료집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자리를 박찼다.
“가자 가자!”
그들은 우르르 몰려 나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떠나갔다.
연구원들이 떠나가고 약 5분 뒤.
이졸데가 무언가 깜빡한 것이 있어 헐레벌떡 뛰어왔다.
“어…….”
하지만 사무실에 있는 것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자료집과 연구원들이 남기고 간 온기뿐이었다.
심지어 땅에 떨어진 채 밟힌 자료집도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땅에 떨어진 자료집을 주워 들었다.
“후…… 기분이나 풀 겸 한턱내려고 했는데.”
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그녀는 고개를 치켜들어 뿌옇게 변한 시야를 원래대로 복구했다.
마탑에서는 이것보다 훨씬 심한 취급도 받아 봤으니까.
“야.”
“네엑?”
“너 우냐?”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란 이졸데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돌아섰다.
익숙하지만 또 낯선 느낌의 목소리.
자신의 꿈을 이뤄 보라며 마탑에서 꺼내 주었던 성주의 목소리였다.
“울어?”
“아, 아닙니다!”
“격납고에 갔다가 진전이 없는 것 같아서 와 봤더니…… 여기서 질질 짜고 있었네. 자료집은 또 왜 이 모양이고?”
드레젠은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료집 하나를 들어 살펴봤다.
전형적인 골렘학 개론.
스톤 골렘의 전략화를 위한 세세하고 자세한 분석이었다.
“흠…… 이거 완전히 골렘학 개론을 써 놨네.”
“네?”
“이야, 이거 책으로 팔면 우리 성 재정도 문제는 아니겠다. 완전 스타 작가 되겠는데?”
조금 전까지 나락으로 처박혀 있던 기분이 둥둥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의심마저 들었다.
진짜 이것이 맞는 걸까?
어쩌면 단순히 자신을 꺼내 오기 위해서 만든 헛소리가 아닐까?
그렇게 입을 달싹이려고 했을 때, 드레젠의 스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졸데.”
“네, 네?”
“가서 연구원들 다 끌고 와.”
“지, 지금요?”
그녀는 망설였다.
그들이 자신을 얼마나 원망할지 눈에 보였기에.
하지만 드레젠은 단호했다.
“이 새끼들이 비싼 월급 주면서 도우라고 했더니…… 무시를 하고 앉아 있었네.”
상황은 안 봐도 뻔했다.
열심히 집필한 자료집이 이따위로 나뒹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증거였다.
그녀의 지시에 잘 따랐으면 적어도 골렘 한두 기는 만들고 있어야 할 상황이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면서 걸고넘어졌겠지.
-ㄹㅇ 짜증 나넼ㅋㅋㅋ
-회사인 입장으로서 이건 진짜 뒤집어엎어도 킹정합니다
-엌ㅋㅋㅋㅋ사장이 직접 나선닼ㅋㅋㅋ
-으디서 하늘 같은 선배한테;;
-착한 갑질 인정합니다!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청자들 말대로, 갑질을 할 땐 제대로 해야 하는 상황.
한두 번 겪어 본 일도 아니었으며, 실제로 이졸데는 묵묵히 홀로 골렘을 만들었다.
전문 인력이 달라붙으면 한 달 정도 걸리는 작업을, 홀로 2년이나 걸려서.
‘그 골렘이 세상을 바꿔 놓았지.’
돌의 종류는 많다.
다이아몬드 역시 돌의 일종이었으니까.
세상엔 다양한 마법이 발달했지만, 물질의 성질을 바꾸는 것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
왜냐고?
그냥 구하면 되니까.
“얼른 가서 불러와. 아니면 내가 가고.”
“아, 아니에요!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기다리고 있으마.”
드레젠은 가장 상석에 앉으며 말했다.
이젠 사람들을 기다릴 일만 남았다.
“조금 쉴 겸 자동 진행 켜 두고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잠깐 쉬는 시간
-우리도 나갔다 오자!
-으어 동기화 풀자아아ㅏㅏㅏ
지동 진행이 켜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똥 씹은 표정으로 들어오는 연구원들.
드레젠은 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2
한창 낮술을 하고 있던 와중인지, 사무실에 알싸한 술 냄새가 돌았다.
왜 저들은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을까.
드레젠은 입을 열었다.
“내가 연구원분들의 식사를 방해했나?”
“아, 아닙니다.”
“흐음…… 그러면 용건을 말해도 되겠지. 이 월급 루팡들아.”
그의 말투가 스산하게 변했다.
비꼬는 것도 아닌, 명백하게 화났다고 주장하는 말투.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기세가 그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드레젠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이졸데를 도우라고 했더니…… 루팡 짓이나 하고 있었다 이거지. 내가 이래서 쓸데없는 자존심 싸움을 하는 놈들을 싫어해.”
그들은 생각했어야만 했다.
연구원들이 어떤 생활을 해 왔든, 관계없었다.
중요한 건, 그들이 지금 하시스 성의 소속이었으며 이곳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지녔다는 것.
드레젠이 화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참…… 누가 소장의 자료집을 아무렇게나 던지나 했더니, 그게 엘리트라고 뽑아 놓은 연놈들이었네.”
“…….”
그들은 억울한 마음을 꾹꾹 숨기고 고개를 숙였다.
왜 자신들이 혼나야 한다는 말인가?
누가 봐도 이 연구는 시간 낭비였다.
마탑주가 와서 봐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 믿었다.
“이 자료집은, 골렘학 개론이다. 꽉 막힌 지금 연구자들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쓰인 논문이지.”
“……성주님도 골렘에 대해 연구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대놓고 말하긴 그러니 돌려 말하는 거지만, 드레젠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고수가 하수를 보며 드는 생각을 표정에 드러내고 있을 뿐.
골렘에 관한 책은 수도 없이 읽어 봤고, 직접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뿐이랴, 재료를 구한다고 온 대륙을 뒤진 적도 있었다.
“적어도 늬들이 알고 있는 것보단 훨씬.”
“…….”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이졸데랑 둘이서 골렘 한 기를 만들게. 그게 전략 병기로서의 가치가 없으면 너희들이 승리. 연봉 100배.”
“그, 그게……!”
화들짝 놀라는 이들의 말을 끊고, 드레젠이 뒷말을 이었다.
이제부터가 본론이었으니까.
“대신, 우리가 그걸 성공하면 너희들은 앞으로 100년 동안 무급으로 일해야 한다. 어때, 콜?”
드레젠은 가만히 연구원들을 응시했다.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신들을 응시하는 연구원들.
그중에서 용기 있는 자가 당당히 선언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신 계약서는 써 주십시오.”
“……그래.”
바라던 바였다.
드레젠은 악마도 울고 갈 미소를 지었다.
채팅 창에서는 이미 그들의 뒷일을 생각하며 애도하는 물결이 이어지고 있었다.
-X
-XX
-XXXX
-ㅋㅋㅋㅋㅋXXXXX
-저런…… 불쌍한 영혼들ㅠㅠ
[‘asd1123’ 님 1,000코인 후원!]
[우리 선생님은…… 지는 내기에 사인하지 않는다 이 마리야~.]
드레젠은 속으로 정답을 외치며 계약서를 꺼냈다.
절대 거역할 수 없는 황금색 계약서가 나풀거렸다.
#3
“저…… 성주님.”
“응? 왜?”
드레젠은 이졸데와 함께 연구실로 내려왔다.
중간에 내려오며 피로를 풀어 주는 방법까지 선사해 주었다.
덕분에 턱까지 내려오려던 다크서클이 말끔히 사라졌다.
피부도 보송보송해져, 원래의 앳된 얼굴을 되찾았다.
“정말 제가 하고 있는 것들이 맞을까요?”
“당연하지. 내가 돈이 어디 있어서 연봉 100배를 불렀겠어.”
“하지만…….”
드레젠은 축 처져 있는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지금 이졸데는 단 하나의 문제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제의 열쇠는 드레젠이 알고 있었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는 모조리 네 지식이다. 알겠지?”
출처는 밝혔다.
이젠 해답만이 남아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