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7화
117화 - 제국의 수호자들
#1
수도 콘스텔라에서 들르면 안 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곤히 잠을 자던 이들 모두가 깰 정도로 커다란 포효 소리였다.
감지 능력이 뛰어난 실력자들은 이미 잠에서 깨, 밖으로 나오는 중이었다.
“감히 성스러운 도시에서 몬스터의 포효가 울려?!”
황궁.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가장 넓은 부지를 지닌 거대한 건축물.
황제를 비롯한 제국의 지배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도 했으며 브레이시스 제국의 위상을 기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자 성역, 금지 등으로 취급받는 장소에 때아닌 소란이 일었다.
“대체 오밤중에 무슨 소란인가.”
잠귀가 밝아 극도로 예민한 남자가 물었다.
그의 곁에서 나신으로 잠들어 있던 여인이 상체를 일으켰다.
기감을 곤두세우자, 난폭하지만 정제되어 있는 정수가 느껴졌다.
“제가 가 보겠습니다.”
“되었다. 그대가 움직여야 할 정도라면 잠도 못 잤을 텐데.”
“호호, 그건 그렇지요. 그럼…….”
남자는 소리를 높여 말했다.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였다.
“게 있는가.”
“예. 폐하.”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오라. 심각한 사항이 아니라면 선조치 후 내일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폐하를 지칭하는 인물은 단 한 명이었다.
브레이시스 제국의 주인.
수많은 백성들의 아버지이자, 절대 군주.
바로 황제였다.
“보호 마법은 이상 없습니다. 주변에 있는 기척도 다들 괜찮아요.”
“그럼 자야겠군. 부탁하지.”
두 사람은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그의 침소는 수많은 보호 마법에 의해 보호되고 있었다.
초대 마탑주이자 마법의 창시자라고 알려진 아르간달이 와도 애먹을 것이라 믿었다.
“드래곤이라 하더라도 이곳을 단번에 뚫을 수는 없습니다. 안심하고 주무시옵소서.”
“그러지.”
그녀가 손을 휘저어 새로운 마법을 뿌렸다.
주변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고요해졌다.
두 사람은 그대로 잠을 청했다.
이내 새근새근 숨을 고르는 소리만이 들렸다.
#2
“폐하께서?”
“그렇습니다. 기사단을 이끌고 나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러지.”
황궁에는 당직을 서는 인물들이 있었다.
현대 군인이 서는 당직과는 달리, 브레이시스 제국에선 어마어마한 실력자들이 당직을 섰다.
마스터에 근접한, 혹은 마스터들이 밤새 황궁을 철통같이 지키는 것.
오늘은 황궁 소속 기사단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기사단이 황궁을 지키는 날이었다.
“1, 2중대는 지키고, 3중대는 출동 준비를 한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기사단 한 개 중대가 움직이는 것은 나름 큰일이었다.
단순 기사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말, 무구, 서포트해 주는 견습 기사와 시종, 병사들까지 행동해야 한다는 뜻.
기사단 한 개 중대는 곧 국지전을 할 수 있는 대규모 병력이 움직인다는 것과 같았다.
“말을 가져오라.”
거기다 세 명의 중대장을 이끄는 기사단장은, 일개 중대 전력과 맞먹는 무력을 가졌다.
시종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전파는 순식간에 이뤄졌고, 순찰을 돌고 있던 기사단원이 빠르게 모였다.
“너희들도 들었지?”
“그래~ 감히 간덩이가 배 밖으로 튀어나왔지. 그리폰 기사단은 뭐 하고 있는 거야?”
“낸들 아나? 어쨌든, 우리 하운드가 물어뜯어야 한다는 거 아니겠냐?”
기사단원들도 사람이었다.
전장에 서기 전엔 그들도 평범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잡담을 하며 빠르게 모였다.
인간을 초월한 육체는 피로 따윈 모르게 해 주었다.
심야였지만 아무도 피로한 기색은 없었다.
“마탑으로 간다. 달갑지 않은 손님이 온 것 같더군. 우리의 목적은 조사다.”
“전투가 아닙니까?”
“필요하다면. 무장을 꼼꼼히 챙겨라! 미지의 적이니 긴장하도록!”
쿵!
기사단원들의 군례가 동시에 울렸다.
뭇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릴 정도로 살벌했다.
평범한, 혹은 서글서글했던 눈빛이 변했다.
하운드 기사단.
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사단 중 하나가 출격했다.
#3
[크어아아아아-!]
크고 강한 와이렉스가 울부짖었다.
와이렉스 정도 되는 몬스터는 정수의 힘이 포효에도 담겼다.
사람들이 흔히 ‘피어’라고 부르는 포효.
진득한 살기가 두 번째 탑을 감쌌다.
“으아아악! 이게 뭐야!”
“피해라! 피해!”
“대피해! 당장!”
허허.
드레젠은 희게 웃었다.
즐거운 웃음이라기보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웃음이었다.
-웃음벨ㅋㅋㅋㅋㅋ
-오늘은 이거다!
-수도 한복판에서 깽판 치는 유저가 있다?
-ㅋㅋㅋㅋㅋ수출을 하자 수출을 해!
해탈한 표정의 드레젠은 충분한 놀림거리였다.
더 신기한 것은, 팔짱을 끼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주제에 와이번의 곡예비행을 견디고 있다는 것.
이미 물아일체의 경지가 되어 버린 증거였다.
“자아, 그럼 저도 밑으로 진입하겠습니다. 렉스. 너는 그리폰들이랑 조금 놀고 있어.”
[알았다. 오랜만에 몸 좀 풀겠군.]
드레젠은 피식 웃고 훌쩍 뛰어내렸다.
이미 ‘적당히’라는 범주는 아득히 넘어갔지만, 적당히 주의를 끌기로 했다.
벌써부터 지하에서 올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탐색 마법을 쓰니 붉은 점들이 빽빽하게 보였다.
“으랏차아-!”
쿠와아앙-!
히어로 랜딩도 아니고, 무식하게 내리꽂혔다.
그 여파로 땅이 흔들리고 지하에 깔려 있는 시설들이 드러났다.
“웬 놈이냐! 정체를 밝혀라!”
“여기 밑에 볼일이 있어 온 사람이다!”
지금 마주한 경비대는 무고한 이들이었다.
드레젠은 순수 격투술로만 그들을 제압했다.
예전, 다영에게 보여 준 실력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경비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크악!”
“막아! 막아라!”
“아 글쎄, 너희들에겐 볼일 없다니까?”
간결한 몸동작들이 빠르게 이어지니 화려하게 보였다.
단순히 막고, 피하고 지를 뿐인 동작이었지만, 속도와 타격감은 예술이었다.
현실에서 주먹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
프로라 불리는 이들 역시 이렇게 체술을 구사하기란 힘들었다.
-무슨 격투기 선수보다 멋있누
-현피 뜨면 질 자신 있다!
-엌ㅋㅋ 스파링 마렵다
-이분 매미가 극찬하신 분임;;
몰려드는 경비들을 제압한 드레젠.
전투 중 간간이 날아온 암기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대놓고 이곳이 다크몬드의 본거지라는 것을 알려 줬다.
“안쪽으로 가 보겠습니다. 하…… 원래 이렇게 할 예정이 아니었는데.”
-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은 빨간불에도 멈추지 않아 boy~!
-ㅋㅋ뤀ㅋㅋ 절.대.깽.판.쳐!
[크어아아아아-!]
살짝 고개를 들어 보니 몰려온 그리폰들과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 와이렉스가 보였다.
어지간해서 잘 나서지 않는 황제였지만…… 이번에는 감이 좋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드레젠 본인에게 관심을 표했던 황제였다.
이 사태를 보고받으면……. 생각하기도 싫었다.
“……일단 들어가겠습니다.”
다크몬드는 꽤 악질적인 일도 서슴지 않았다.
전대 황제가 금지한 노예 매매와 장기 밀매도 심심찮게 일어났으며, 불법으로 가져온 장물들을 팔곤 했다.
그 모든 행위가 이곳, 두 번째 탑의 지하에서 이뤄졌다.
[다크몬드의 본거지를 발견하셨습니다.]
[토벌전 : ‘검은 달 떨어뜨리기’가 진행됩니다.]
[만월을 처치하거나 회유하십시오.]
[추천 인원 : 12명]
간단한 안내 창이 떴다.
역시, 이곳도 던전으로 분류가 되는구나.
드레젠은 안쪽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갔다.
추천 인원은 분명 12인.
-12인?
-근데 저길 혼자?
-드좌라면 가능하다
-무수한 악수의 요청이 올 영상이다!
-암궁 딱 대!
절반 이상의 유저들이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사는 브락시아의 세계.
드레젠의 공략이 퍼져 나가면 또 다른 화제를 모아 오겠지.
[‘편집잡니다.’ 님 10,000코인 후원!]
[월급에서 깝니다! 영상 준비 ON!]
-엌ㅋㅋㅋㅋ
-여기서 편집자 등판!
-월급에서 까서 도네하게 만드는 사장님은 대체……. ;;
토벌전.
보이지 않는 자들과의 전투가 기다리고 있었다.
드레젠은 숏 소드를 바라봤다.
[달빛이 선택한 자]
[공격력 +45]
[공격 속도 +5%]
[탐색 마법에 감지되지 않을 확률 +10%]
꽤 쓸 만한 숏 소드였다.
펄럭-.
그는 장막을 펼쳐 안쪽으로 들어갔다.
자체적으로 발광하는 돌멩이들이 바닥에, 그리고 천장에 깔려 있었다.
그 덕분에 아주 조금이지만 그림자가 생성되는 중이었다.
“길이나 조금 뚫어 놓도록 하죠.”
마지막은 위도우가 장식할 것이다.
드레젠 본인은 지쳐 있을 위도우를 위해서 조금 편한 길을 마련하고자 했다.
암궁이란 자는 전력으로 부딪쳐도 이길까 말까 한 상대였다.
‘레플리카를 건네준 것이 조금 미안하니까.’
성좌의 눈물이 담긴 초크를 한번 매만지고, 걸음을 빠르게 했다.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매복해 있는 자들이 있었다.
단숨에 치고 나간다.
생각과 행동은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여러분들도 잘 외워 두세요. 공략 시작합니다.”
서걱-.
후두둑.
소리가 울리게 설계해 놓은 복도 안이라 들리는 소리가 유독 컸다.
소름 끼치는 것은, 한 번에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가는데도 비명 하나 들리지 않는다는 점.
검이 휘둘러지는 소리, 몸이 움직이며 나는 소리, 시체가 되어 바닥에 나뒹구는 소리만 들렸다.
“기억하셨죠?”
-대체 뭘ㅋㅋㅋㅋ
-진짜 기만이야 기만;;
-뇌: 봤지? 이대로 해라.
-몸: ㅗㅗㅗ
-안 보이는 매력으로 보는 방송!
지하 1층이 순식간에 정리됐다.
모든 위치를 콕콕 집어 남김없이 사살한 드레젠은 유유히 2층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생각난 것이 있어 중얼거렸다.
“아, 근데 좀 남겨 놔야 부하들이 남아 있지 않을까요?”
-그건…… 맞지
-ㅋㅋㅋㅋㅋㅋㅋ아닠ㅋㅋㅋ
-이러면 접수하게 해 줘도 무슨 소용이냐곸ㅋㅋㅋ
잠시 고민하던 드레젠이 빙글 웃으며 한마디를 툭 뱉었다.
“나비보벳따우.”
-야!!!
-ㅋㅋㅋㅋㅋ앜ㅋㅋㅋ
-보보벳띠;;
-하 진짴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떻게든 되겠지.
위도우는 다 쓰러져 가는 다크몬드를 일으켜 세운 장본인이었다.
200명이 넘어가는 암살자가 죽어 나갔지만, 대륙 전역에 남아 있는 암살자는 아직 많았다.
그들이 큰다면 다시 다크몬드의 주역으로 활약하겠지.
“다크몬드는 외부에 나가 있는 인물이 많아서 그렇지, 만만찮은 집단입니다. 계승 방식이 쉬워서 요행이 가능한 거죠.”
조직의 힘을 하나로 모아 드레젠을 친다면, 아마 연 단위로 전투만 해야 할지도 몰랐다.
드레젠은 파죽지세로 던전을 돌파했다.
여전히 비명은 들리지 않았고, 간헐적으로 나는 소리가 심리적 압박감을 더해 주었다.
그렇게 도달한 보스 방.
“……한 번쯤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어서 오세요.”
가정집 같은 분위기의 방에 앉아 있는 여인.
식사 중이었는지, 스테이크 한 점을 썰어 우물우물 씹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드레젠은 가만히 그녀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왜 당신이 여기 있는 겁니까?”
캠이 잡고 있는 그의 얼굴은 다소 충격적인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