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4화
114화 - 주인장 나오라고 해!
#1
다크몬드.
대륙 전역에 퍼져 있는 그들의 영향력은 한낱 길드에서 일어난 조촐한 만남을 모르지 않았다.
많은 소설에서, 혹은 영화에서 거대 집단이 허무하게 망가지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조직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곳이 아니었다.
“드레젠이라는 놈이 그렇게 강한가?”
“여기 깔려 있는 놈들만 150명인데…… 잡을 수 있겠지.”
암살자들을 상대하는 것은 꽤 고달픈 일이었다.
전사, 기사와 암살자들은 전투 방식부터가 달랐으니까.
그림자 기사단은 무식한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도구가 오히려 불편했다.
하지만 다크몬드의 일반 암살자들은 아니었다.
“도구들은 준비됐지?”
“주변에 함정도 쫙 깔아 놨다고.”
“그래. 그럼 대기한다.”
엄청난 숫자의 암살자들이었다.
도망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마스터도 잡아낼 수 있는 전력이었다.
물론 암살자들도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겠지만.
게다가 이곳은 산속이었다.
“……그런데.”
“응?”
아직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옆에 있던 조원과 수다를 떠는 암살자가 문득 말했다.
분명 조사 결과는 이러했다.
[위험 등급 : 특]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술을 사용한다.]
[※할레단 후작가와의 전투에서 보여 준 은신술은 1등급 이상.]
[※그림자 기사단이라는 추측이 있음.]
지금 여기 모인 자들 중 대부분은 이 보고를 갱신받지 못했다.
전부 다른 곳에서 작전을 수행하다 이곳으로 발령이 난 인원이었다.
급하게 달려오느라 정보는커녕 소통도 제대로 못하고 온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어…… 그러니까-.”
서걱-.
그의 말은 더 이상 전해지지 않았다.
사고의 흐름이 끊겼고, 곧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황금색 폴리곤 덩어리가 흩날렸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의식이 끊겼다.
“어?”
서걱-!
옆에 있던 동료도 똑같은 꼴을 당했다.
아무런 기척도 읽을 수 없었고,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사신이 손을 잡아끄는 대로 무력하게 따라갈 뿐.
“아직도 안 나왔어?”
“트랩은 다 설치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변에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작은 소리였지만 사신의 귀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서걱-.
사신이 낫을 휘두를 때마다 소리 소문 없이 목숨이 꺼졌다.
-진짴ㅋㅋㅋㅋ
-아이템 효과 실화야?
-진짜 사신이누;;
-1 대 150의 전설ㅋㅋㅋㅋ
그림자 장막.
사신 대행이라고 불리는 그림자 기사단의 전매특허.
암살자들의 암살자라고 불리는 그림자 기사단은 다크몬드의 천적이었다.
그 유명한 실버 문보다 훨씬 더 악명이 높았다.
“진짜 안 나온 거 맞아?”
“한번 가 봐.”
멀찍이 떨어져 습격을 준비하고 있었던 자들이 궁금증을 표했다.
드레젠은 기본적으로 전사였다.
근접전으로 붙어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 멀리서 그의 힘을 빼놓자는 것이 작전의 핵심이었다.
드레젠 본인이 들었으면 코웃음을 쳤을 작전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아직 입구 대기조도 멀쩡하게 살아 있잖아.”
그렇다고 아예 습격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소수의 인원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중에는 반월급 암살자도 한 명 껴 있었다.
“진짜 어떻게 된 거 아니겠지?”
“……확인해 보지.”
암살자 한 명이 은신술을 펼친 채 무덤 입구 쪽으로 향했다.
촘촘하게 짜인 그물처럼 포위망이 형성되어 있었다.
들키지 않고 빠져나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런 믿음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 채, 암살자는 작전의 실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숨겨진 통로가 있는지 샅샅이 뒤졌지만 전혀 찾지 못했다.
통로는 한 곳.
나온 흔적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아직인가?
“…….”
근처에 있던 동료들의 눈이 그를 향했다.
순간, 암살자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리멍덩한 초점과 회색으로 물들어 있는 눈동자.
도저히 이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런 씨-!”
서걱-!
순간적으로 피하지 않았다면 목이 베였을 것이다.
쎄한 느낌이 들자마자 몸을 움직여서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삐이이익-!
전투를 알리는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젠장, 대체 드레젠이라는 놈이 뭔데!’
어째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가.
그의 정체는 진짜 뭐란 말인가.
머릿속이 어지럽게 엉켰다.
하지만 그런 거 따위를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크윽.”
그간 훈련받은 것이 제대로 힘을 쓰고 있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말 것.
그것이 설사 동료의 배신이더라도.
‘대체-.’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원들 사이에서도 전투음이 퍼져 나왔다.
암살자끼리 전투를 한다고?
상황이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크몬드의 암살자들은 곧 한데 뒤엉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2
“자, 원하는 대로 했습니다.”
[‘난천재야’ 님 100,000코인 후원!]
[진짜 이게 되네;;]
[‘바보’ 님 10,000코인 후원!]
[아;; 킹정 자산인 줄 알았는데ㅜㅜ]
[‘CMC!’ 님 50,000코인 후원!]
[닷시는 깝치지 않겠읍니다ㅠㅠ]
[‘크리드’ 님 1,000,000코인 후원!]
[잘 보고 갑니다.]
근처에 있는 나무에서 아비규환을 지켜보고 있는 드레젠.
그가 한 일은 간단했다.
도주로 가까이에 있는 이들은 죽였고, 나머지는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었다.
빠져나오는 것은 간단했다.
아주 작은 틈을 만든 후, 그림자밟기로 빠져나오는 것.
“후원 다들 감사합니다. 그림자밟기는 일종의 공간 전이술입니다. 일정 거리 안에서는 물리 법칙을 무시하고 이동할 수 있는 기술이죠.”
파훼하는 법도 있긴 했지만 잘 쓰이진 않았다.
비전이 괜히 비전이 아니고, 그림자 기사단은 몇십억이 넘는 대륙의 인구 중에서도 아주 드물었으니까.
-진짜 레게노;;
-도랏넼ㅋㅋㅋㅋ
-지들끼리 싸우는 거 개꿀딱ㅋㅋㅋㅋ
-이제 어떡할 거임?
-내가 대장이었으면 이미 위도운가 메이컨가 하는 애도 가만 안 뒀음ㅋㅋㅋ
“일단 위도우를 찾으러 가야 하는데…… 그 전에 거래를 할 사람을 좀 찾아가야겠습니다.”
다크몬드와 실버 문은 철천지원수였다.
그리고 실버 문의 수장 하이디엔은 다크몬드에게 갚아야 할 빚이 남아 있었다.
그 내용을 상기한 드레젠은 다시 장막 안으로 몸을 감췄다.
마침 근처에 익숙한 마나가 느껴졌으니까.
#3
작은 시골 마을에서 모시고 있는 성소의 뒤편엔 끝없는 수해가 펼쳐져 있었다.
미지의 힘이라도 담겨 있는 것인지, 몬스터들은 성소에 접근하지 않았다.
그 성소를 어지럽히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었다.
“……저게 진짜 가능한 일이야?”
“생각보다 더 조심해야겠어.”
하이디엔은 아직도 그때의 감각이 남아 있는 것 같은 손을 바라봤다.
전투로 인해 무력함을 느낀 것은 어렸을 때 이외엔 처음이었다.
본격적으로 재능이 개화하면서 한 번도 무력감은 느껴 보지 못했다.
다만 언젠가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만 보였었지.
‘한 번 더 만난다면, 지지 않겠어.’
“뭘 그렇게 심각하게 앉아 있나?”
“허어어억-?!”
원거리 지원을 담당하는 엘프, 엘르엘라 옆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그러나 절대 들려선 안 되는 목소리.
하이디엔과 활동하던 실버 문의 일원들이 화들짝 놀라며 마나를 피워 냈다.
“뭐야! 어, 언제?!”
“……그림자 장막?”
“알아보는 이가 있군. 오래 살았으니 경험도 풍부하겠지.”
드레젠은 자신을 겨누고 있는 무기들을 바라보면서도 태연하게 답했다.
하이디엔은 창끝에 마나를 모으며 말했다.
“무슨 용건이냐, 인간.”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면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공격했을 것.
하이디엔은 그가 대화를 원한다고 생각했다.
경계를 풀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도했다.
“너희 다크몬드에게 받아 내야 할 빚이 있지 않았던가?”
“그걸 어떻게?”
대답은 하이디엔이 아닌 엘르엘라에게서 나왔다.
하이디엔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어째서 그것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엘프의 정보는 인간들이 취급할 수 없을 텐데.”
“엘프가 쓰는 언어 정도는 다 알고 있어. 이번엔 동업을 하려고 찾아왔다.”
“동업?! 동어어어업?!”
자꾸 끼어드는 엘르엘라가 거슬린 하이디엔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뒤에서는 아직도 전투가 한창이었다.
대화할 시간은 충분했다.
“내가 인간을 어떻게 믿고?”
“왜, 뒤통수라도 칠까 봐? 그 인간처럼?”
“……너.”
무시무시한 살기가 피어났다.
그녀는 옛날, 정체를 감추고 인간들과 함께 활동했던 적이 있었다.
인간들을 공부하라고 하는 장로들의 말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이상하고 기묘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야야야, 그 얘기는 금기야! 아니 그보다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응?”
“시끄럽다. 엘르엘라. 네가 껴들 자리가 아니야.”
“윽…… 알겠어. 저~쪽에 가서 있을게.”
한 소리 들어도 쾌활함을 잃지 않는 엘르엘라는 전투가 벌어질 상황이 아님을 직감했다.
팀의 분위기 메이커인 그녀가 다른 엘프들을 이끌고 거리를 벌렸다.
수상한 분위기가 감지되면 바로 공격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치졸하게 사는 타입이 아니라서. 그 점은 걱정하지 말라고.”
“인간은 믿을 수 없다. 그것이 내 지론이다.”
드레젠은 피식 웃었다.
현실에서 알고 있는 하이디엔과의 갭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비웃음으로 보였는지, 하이디엔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뭐, 그럼 인간으로 생각하지 말든가. 일단 들어는 보지 그래. 나쁜 제안은 아닐 텐데.”
“……당장 꺼져라.”
“다크몬드의 전복. 그리고 네 동료의 복수. 더불어 언니의 복수도 도와주지.”
“…….”
하이디엔의 눈망울이 떨렸다.
드레젠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껍질 안에는 말랑말랑하고 순수한 마음이 들어 있다는 걸.
전쟁 중에도 살뜰히 엘프들을 챙겼던 로드였다.
“그러니 믿어라. 내가 도움을 줄 테니.”
“너는, 너는 비스트 마스터의 후예다. 어째서 엘프인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 거지?”
“나? 난 비스트 마스터의 후예가 아닌데.”
드레젠의 말에, 하이디엔은 더 충격을 받은 표정이 되었다.
비스트 마스터의 후예가 아니라면, 그 와이번은? 그리고 이 강대한 기운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녀가 놀라든 말든 드레젠은 제 할 말을 했다.
“난 나야. 비스트 마스터의 후예가 아니라, 그냥 나 드레젠.”
“…….”
그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엘프들은 여러 가문이 모여 사는 사회였다.
그의 말을 들으니 조금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ㅋㅋㅋ맞지
-크으 명언ㅋㅋㅋㅋ
-근데 진짜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뎈ㅋㅋㅋ
-대표님 아님?
-엌ㅋㅋㅋ
-맞아!
[‘나는엘프다’ 님 100,000코인 후원!]
[누구 닮았는지 정말 풋풋하고 예쁘네요.]
드레젠은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하이디엔은 여유로운 드레젠의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이 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그녀의 입이 달싹였다.
드레젠도 마저 웃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