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3화
113화 - 당신을 초대합니다
#1
드레젠의 팀이 결정된 당일 오후.
연락처를 주고받은 후에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아마존 TV에서 쪽지가 하나 도착했다.
쪽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귀하를 ‘세이브 더 브락시아’ - ‘영광의 전당 팀 파이트’ 프로 리그 개막식에 초대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아마존 TV입니다. 즐거운 연말 보내길 기원합니다.
…….
진부한 안부 인사와 함께 본격적인 프로 리그가 개최된다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드레젠을 귀빈의 자격으로 초대한다는 내용까지 있었다.
그는 옆자리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운전하고 있는 하이디엔에게 물었다.
“이거 브락시아 쪽에서 보낸 거야?”
“아? 초대장요? 그럼요~ 제가 다 조치했죠.”
“그러냐. 고맙네.”
VVIP로 초대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큰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는 만큼 자신의 입지가 탄탄해짐을 느꼈다.
브락시아는 또 하나의 현실이라는 말이 나왔다.
“뭘요. 드레젠이라는 이름값은 제가 만든 게 아닌데요. 강일 님이 전부 다 했죠.”
“그것도 그렇지. 어쨌든 조 지명식이랑 개막식이라…… 재밌겠네.”
프로 리그는 옛날, 스타 리그처럼 이뤄졌다.
경기는 개인전과 단체전으로 나뉘어 진행했다.
본래 단체전만 있었다가 새롭게 추가했다고 한다.
“개인전도 따로 만들었구나. 이건 좀 재밌겠다.”
“그렇죠? 개인 리그처럼 용병을 써서 하는 방식도 도입할 생각이에요.”
“좋은 생각이야. 선수 개인의 기량도 시험할 수 있겠지.”
하이디엔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아무런 말 없이 운전을 계속했다.
강일은 인터넷으로 기사를 찾아보다 말을 툭 던졌다.
“일반인이 용사가 되는 일은 정말 오래 걸릴 수 있어.”
“……저도 알고 있어요.”
“알아서 잘하리라 믿는다.”
드레젠.
강일은 어디까지나 육성에 도움을 줄 뿐, 직접적인 관여는 하지 않았다.
사실 그 지옥으로 타인을 보내는 것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냥 여기서 평화롭게 눌러살면 좋으련만.’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오랜 꿈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결국 강일은 시트에 몸을 묻으며 생각했다.
‘알아서 잘하겠지.’
“다 왔네요.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앞으로는 몸 관리도 하시면서 방송하세요.”
“그래. 그럴 수 있겠네.”
이젠 온전히 방송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아르바이트도 그만뒀고, 제대로 된 팀을 꾸렸다.
오직 브락시아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데.”
“예전요?”
“그래. 그때도 이렇게 서포트해 주는 집단이 있었거든.”
정말 성심성의껏 해 줬었지.
하지만 그것도 겉모습일 뿐, 모두 영웅들의 수족들이었다.
시시콜콜한 것 하나까지 감시당하는 기분은 썩 좋지 못했었다.
강일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하이디엔, 너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길 바란다.”
“알고 있어요. 강일 님의 고통도…… 저희의 문제도.”
“조심해서 가.”
강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퀴퀴한 반지하로 들어갔다.
왜인지 모르게 점점 커다랗게 보이는 그의 뒷모습.
하이디엔은 강일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2
-ㄷㅎ!
-ㄷㅎ!
-드하!
-오늘도 달리즈아!
-진짜 이 시간에 동기화하는 놈들 뭐냐곸ㅋㅋㅋ
아직 직장인들이 퇴근할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드레젠이 방송을 시작하자 5만 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몰려들었다.
물론 순수 한국 시청자는 아니었지만.
“오늘은 외국 분들도 많이 오셨군요. 일단 대답은 영어로 통일하겠습니다.”
아마존 TV의 시상식 이후, 외국인 유입이 점점 늘어 갔다.
이미 모든 언어를 이용해 소통할 수 있는 마법은 이미 패시브로 걸려 있었다.
-아니 영어 발음 무엇;;
-영어 발음 실화야?
-현실에서도 뭐든지 다 아는 사람이야?
-오빠 넘모 섹시해!
드레젠은 피식 웃으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다.
시청자들은 반길 만한 일들이었다.
“자, 오늘은 잠시 회사에 다녀와서 매니저와 편집자를 뽑았습니다. 다들 말 잘 들어야 합니다.”
-와!
-드디어 매니저가!
-권력자가 생겼닼ㅋㅋㅋ
-싹둑이 편해지겠누
-싹둑이 그래도 일 잘했짘ㅋㅋ
세상이 발전한 만큼 AI도 발전했다.
매니저가 없던 시절에는 자동적으로 걸러 주는 AI가 채팅 수위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중이었다.
드레젠이 채팅 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매니저로 활동하시는 분들은 일단 두 분입니다. 저의 첫 시청자이자 계속해서 관심을 주시고 열혈까지 달아 주신 ‘뉴비환영해!’ 님께서 매니저 역할을 수행할 겁니다.”
-오옼ㅋㅋㅋ
-성덕이다 성덕!
-뉴비님은 킹정이짘ㅋㅋ
-조아요 히히
[‘뉴비환영해!’ 님 10,000코인 후원!]
[잘 부탁드립니다. (ง •̀_•́)ง]
-저건 어떻게 읽누
-ㅋㅋㅋㅋ전자 소녀 멘붕ㅋㅋㅋㅋㅋ
“나머지 한 분은 음지에서 여러분들을 관리하실 겁니다. 언제 어디서 밴을 먹을지 모르니까, 오늘도 매너 채팅 부탁드립니다.”
-우리고 곰보겜이야
-히익
-언행 조심하라 이 말이야
-클린한 채팅 창이 되겠누
“자, 그럼 오늘도 시작해 보겠습니다.”
기준은 명확했다.
어그로, 분쟁이 될 만한 글, 특정 성향을 지칭하는 말이나 오해를 살 수 있는 말, 혐오성 발언.
타 스트리머를 과하게 언급하거나 게임에 관계없는 내용을 과도하게 말하는 것.
욕설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으며 시청자들 사이에서 훈수를 두지 말라는 내용이 나오는 시청자.
“채팅 규칙도 업데이트했으니 꼼꼼하게 읽어 보세요. 저는 밴 안 풀어 드립니다.”
규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
예외는 없었으며 매니저들부터 모범을 보이기로 했다.
방송에 대한 얘기를 풀어 나간 후, 오늘은 게임에 접속하기 전 경매장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슬슬 유저들의 실력이 초보를 막 벗어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아이템이 뭐라도 올라왔을 것이다.
“오늘은 경매장 좀 둘러보고 갈까요?”
-엌ㅋㅋㅋ
-경매장 좋지
-디아블X3 생각나누
-똥3?
-똥이라니! 수면제라고 해 줘ㅜㅜ
눈보라 회사가 야심 차게 준비했던 게임.
수면제 소리를 들었지만 3인칭 핵앤슬래시 장르에선 손꼽히는 수작이었다.
해당 게임도 경매장 시스템이 있어, 한때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아마 시스템은 비슷할 겁니다. 올릴 수 있는 물건이 한정되어 있긴 할 테지만.”
경매장에 들어가 보니, 잡다한 물품들부터 생활에 필요한 물품, 각종 자재나 무구 등이 올라와 있었다.
가격은 천차만별.
현금술을 쓸 수 있는 자들은 이곳에서 장비를 맞춰 가면 좋겠다는 평가를 내렸다.
“골드 시세는 1골드당 10만 원이군요. 적당하네요.”
아직 10골드 이상 올린 유저는 없었다.
브락시아에서의 골드는 정말로 가치가 높은 편이었다.
물론 드레젠의 방송을 보는 자들에겐 와닿지 않는 금액이긴 했지만.
-뭔가 여긴 거지 세계 같네
-엌ㅋㅋㅋㅋㅋ
-그러게 좀…….
-그냥 도떼기시장 같음ㅋㅋㅋㅋ
“흠…… 이번에 1만 골드를 얻으면 한 1천 골드만 풀어 볼까요?”
1천 골드.
1,000X100,000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탄생했다.
전부 다 팔리면 한화로 무려 1억이라는 금액이었다.
-??
-1억 아님?
-미친ㅋㅋㅋㅋㅋ
-이미 갑부였잖앜ㅋㅋㅋㅋ
-도랏네 진짴ㅋㅋㅋㅋ
-그럼 이번에 후작가에서 10억 뜯어낸 거임?
10억.
누군가에게는 평생 보지 못할 돈이었다.
얼마 전의 드레젠도 마찬가지였고.
“이 건은 천천히 생각해 보죠. 별거 없으니 일단 게임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경매장은 아직 처참한 수준이었다.
골드도 10골드 이상 올라온 것도 없었고.
이상하게도 브락시아는 캐시 아이템은 일절 판매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모든 것은 게임 안에서 다 이뤄질 것이다.>
그래서 500만 원이라는, 높은 단가를 주고 판매하는 것이기도 했다.
회백색의 세계로 들어가며 드레젠은 생각했다.
‘전반적인 유저들의 수준을 높여야겠군.’
그들이 어떤 식으로 성장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 하이디엔의 눈빛을 본 드레젠은 조금 더 계획을 앞당기기로 했다.
이왕 계약을 이행하는 거, 조금 더 빨리하고 치워 버리자는 판단이었다.
“자, 그럼 오늘은 루시퍼의 눈물을 가져다주고 반역을 준비해야겠네요.”
-크리스 마려워요 ㅜㅜ
-우리 크리스 뭐 하고 있을까ㅠㅠ
-이 언니들 또 시작이넼ㅋㅋㅋㅋ
-근데 크리스 귀여운 거 ㅇㅈ? ㅇㅇㅈ
-킹정;; 넘모 귀엽고 ㅜ
크리스는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그 정도의 천재라면 검술의 기본은 모두 머릿속에 있을 터.
이전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거친 그의 모습이 기대되었다.
어쩌면 단순한 용사보다 크리스가 그 일을 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뭐…….’
하물며 자신이 이 시뮬레이션을 성공시킨다 해도, 다시 갈 생각은 없었다.
차라리 혀 깨물고 죽는 게 편하리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회백색의 세계가 전진하기 시작했다.
#3
신비한 경험을 한 그 자리에 서 있는 드레젠.
자,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다크몬드와의 전쟁을 해야 할 차례였다.
사실 만월이 되는 방법은 간단했다.
“만월. 다크몬드는 주상을 그렇게 부릅니다. 그 밑으로 반월이 있고, 초승달, 그믐달, 그리고 일반 암살대원으로 나뉘죠.”
뜬금없는 이야기였지만 드레젠의 세계관 이야기는 재밌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가 내뱉은 말만 편집해도 스토리 영상이 차곡차곡 만들어질 정도였으니.
“만월이 되는 방법은 그 만월을 죽이면 됩니다. 암살로써.”
그렇기에 루시퍼의 눈물이 필요했다.
제국력 63년.
위도우 그레인은 홀로 만월의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제국력 72년.
수많은 학자들을 동원해 루시퍼의 눈물을 찾아, 마족들에게 큰 위협을 안겨 주었다.
“지금 위도우는 그만한 실력이 되지 않으니 루시퍼의 눈물이 필요한 겁니다.”
-당연히 레플리카죠?
-레플리카 안 주면 폭동이다!
-폭
-동
-폭
-동!
“진정들 하세요. 당연히 레플리카를 줘야죠. 이 좋은 걸 남에게 왜 줍니까.”
처음과 많이 말이 바뀌었지만, 이득은 최대한 챙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많이 유해졌다고 해도 과거의 습관은 남아 있었다.
무덤을 나가기 위해 발을 옮기는 순간, 기묘한 느낌이 그의 감각을 찔렀다.
“아무래도 그쪽에서 알아차린 것 같네요.”
드레젠의 눈빛이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레이더처럼 꿀렁꿀렁 퍼져 나간 마나의 파장이 모든 이들의 기척을 잡아냈다.
남들 기준에선 음습하고 무서운 암살자겠지만, 드레젠의 입장에선 어설프기만 했다.
-ㅋㅋㅋ루시퍼의 눈물 가즈아아아
-바로 시험 가즈아!
-이건 각이다!
-절.대.시.험.해!
-죽여라 죽여!
드레젠은 피식 웃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오랜만에 판을 좀 키워 보고 싶긴 했다.
“혹시 미션 거실 분 없습니까?”
-여기서?
-이제 각도 잘 잡으시네 ㅋㅋㅋ
-투자하실 분 없음?
그때, 꽤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 들어왔다.
드레젠은 후원 내용을 보고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