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2화
112화 - 팀 드레젠
#1
오늘도 하이디엔이 강일을 데리러 왔다.
항상 정성을 쏟는 그녀의 태도는 강일의 마음을 조금씩 부드럽게 해 주었다.
붉은색 슈퍼카는 언제 봐도 매끄러운 곡선을 자랑했다.
“준비되셨나요?”
“맨날 데리러 오는 건 안 귀찮아?”
“얼굴 일찍 볼 수 있어서 좋죠. 헤헤.”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 하이디엔.
그녀가 진짜 엘프들의 로드였는지 의심이 될 만한 표정들이 드러났다.
오직 강일 앞에서만 짓는 표정이었다.
“나도 얼른 차 사야겠다.”
“아뇨!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저도 드라이브하고 좋은데!”
“……마음대로 해라. 그래도 편하게 움직일 수단은 있어야지.”
차는 필요하긴 했다.
앞으로 어머니까지 모시게 된다면 더더욱.
“이사는 어디로 갈 생각이에요?”
“아무래도 외곽 쪽이나…… 아니면 아예 강남으로 가고 싶기도 한데.”
“강남은 아직 좀 비싸요. 제대로 된 아파트를 구하시려면 기본 20억이니까.”
그것도 그랬다.
조용한 외곽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경기도 끝자락만 가도 강남에서 집 한 채 살 수 있는 돈이면 으리으리한 궁전 같은 집을 가질 수 있었으니.
‘운동 공간도 확보하고……. 그편이 나으려나.’
딱히 친구도 없었고 자주 만나는 지인도 없었다.
홀로 방송이나 하며 몸 관리 하는 것이 강일의 삶이었다.
그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기도 했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것은 이제 지쳤다.
“매니저는 엘프야? 아니면 그냥 사람?”
“편집자는 엘프고 매니저는 인간입니다. 총 세 명을 뽑아 놨어요. 다 고르셔도 되고 마음에 드시는 사람만 선택하셔도 돼요.”
“그래. 일단 한번 보자.”
하이디엔은 강남 한복판으로 진입했다.
놀랍게도 그녀의 차를 알아보고는 슬슬 길을 비켜 주는 차들이 많았다.
낮은 시야가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쾌적한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괜히 운전하면서 불쾌한 일에 휘말리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다 왔네요.”
“다른 사람들은 위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가시죠.”
본사에 도착해,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그녀는 강일에게 카드 한 장을 주었다.
“뭐야?”
“본사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카드예요. 이걸 지니고 계시면 본사에서 터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일단 받아 둘게.”
자신이 쓸지는 몰랐지만 언젠가 필요할지도 몰랐다.
기다릴 필요가 없는 두 엘리베이터라는 것은 정말 편리했다.
문이 열리고, 회사 내에 있는 휴게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표님.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대표님!”
엘프 말고도 평범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라, 하이디엔은 로드가 아닌 대표님이라고 불렸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옆에 있는 훤칠한 사내, 강일에게 눈이 갔다.
하지만 대표의 지인, 혹은 손님에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은 없었다.
“대표님 혹시 남자 친구……?”
그 무례를 실제로 저지르는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하이디엔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례를 저지르지 마세요.”
“아…… 죄, 죄송합니다!”
“이름이 뭐죠?”
“그, 그게…….”
하이디엔은 사원증을 바라봤다.
감히 강일에게 무례를 저지른 사람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김례연 씨. 이따가 호출하겠습니다.”
“…….”
하이디엔은 그 말만 던져 놓고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강일 역시 어깨를 으쓱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무의식적으로 헛소리를 지껄였던 사원은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이 되었다.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주)브락시아였다.
‘잘리기라도 하면…… 난 죽는다.’
불쌍한 사원이 좌절하는 것은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자업자득이었으니까.
강일은 세 사람이 대기하고 있는 회의실에 도착했다.
드디어 협상의 시간이었다.
#2
세 사람.
편집자가 될 한 명과 매니저가 될 두 명은 긴장한 채 두 사람을 기다렸다.
구독자 200만 명이 넘어가는 대기업 브튜버.
평균 시청자 수 10만 명의 스트리머.
‘후우…… 잘할 수 있겠지?’
얼마 전 공고가 올라왔을 때, 무려 1,000 : 1이라는 경쟁률이 발생했다.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최종 면접에 뽑혔다.
절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드레젠의 방송의 임원이라니.
절대로 합격할 생각이었다.
‘절이라도 하라면 해야지.’
요즘 유행하는 그랜절을 하면서 인사를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두 사람이 들어왔다.
모델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완벽한 핏.
요즘 모델들도 한 수 접고 들어간다는 하이디엔과 그 옆에서도 전혀 꿀리지 않는 남자.
“안녕하세요. 드레젠이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자, 다들 편하게 앉으세요. 일단 소개부터 해야겠네요.”
하이디엔이 직접 자리를 진행했다.
바짝 얼어 있는 세 사람에게 소개를 부탁하는 것으로 최종 면접이 시작되었다.
두 명의 시선을 먼저 받은 여자 한 명이 먼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브락시아 소속 편집자인 엘리스라고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반갑습니다. 브락시아에서 뽑았으니 믿을 만하겠죠. 영상 하난 준비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오면서 했던 얘기였다.
엘리스.
본명은 엘리스 엘프리데.
브락시아 내에서도 관찰, 기록엔 따라올 자가 없던 인물이었다.
-용사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싶습니다!
그녀가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며 했던 말이었다.
전쟁 당시 정보부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엘리스는 하이디엔이 아끼는 부하이기도 했다.
평소엔 해킹 툴을 이용, 전체적인 서버 관리와 로그 기록 등을 맡고 있는 인물.
그녀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제게 용…… 아니 드레젠 님의 영상 편집을 할 영광을 주시면 그랜절이라도 하겠습니다!”
“……아 네. 그래요. 대표님의 추천이니까 믿고 써야겠죠.”
“여기! 계약서도 미리 준비해 놨습니다! 저는 무급으로 일해도 상관없습니다! 드레젠 님의 팬……. 읍읍!”
하이디엔이 얼른 가서 입을 막아 버렸다.
평소에 조용하던 애가 왜 이렇게 떠드는 걸까.
눈으로 심한 말을 잔뜩 내뱉어, 엘리스를 침묵시킨 하이디엔이 멋쩍게 웃었다.
“아무래도 조금 말이 많아서 부득이하게 끊었습니다. 다음 소개해 볼까요?”
“아, 아 넵. 저는 이미예라고 합니다. 어…… 작은 아이돌 그룹 팬 카페의 회장이었어요.”
“오…….”
아이돌 펜 카페의 회장.
매니저를 하기 위한 경력으로는 충분했다.
하이디엔의 설명이 이어졌다.
“미예 씨가 운영하던 카페는 정치, 혐오, 분탕, 어그로성 글이 하나도 없던 카페로 유명했습니다. 게다가 내조 역시 완벽했다고 하더군요.”
“좋은 소식이군요.”
“아, 그리고…… 하나 고백할 게 있는데…….”
이미예가 쭈뼛쭈뼛 얘기했다.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우물쭈물했다.
심각한 비밀인 듯싶었지만, 하이디엔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말씀해 보세요.”
“어…… 그게…….”
“심각한 얘기면 둘만 잠시 얘기할까요?”
강일이 말했다.
이런 부분에서는 기본적인 배려가 이미지를 만드는 법.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디엔이야 상관없었지만, 다른 이들은 조금 걸렸으니까.
“네, 죄송합니다.”
“하이디엔, 여기 근처에 따로 얘기할 만한 공간 있어?”
“안내해 드릴게요. 따라오세요.”
그렇게 그녀의 안내를 받아 온 작은 휴게실.
직원들끼리 따로 미팅을 할 때 가지는 룸이라고 하며 하이디엔은 자리를 떴다.
강일은 주변을 둘러보며 마법을 스캔해 보았다.
다행히 마법은 탐지되지 않았고, 평범한 회사의 내부라는 점을 확인했다.
“하실 말씀이 뭔가요?”
“어…… 제, 제가 그러니까…….”
벌게진 양쪽 볼과 귀가 강일을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이미예에 대한 걱정보단 이런 자가 매니저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었다.
강일이 부드럽게 얘기했다.
이런 자들을 각성시키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으니까.
“회장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회원에게 공지하는 것처럼 말씀해 보세요.”
“아…… 네. 음…….”
표정 관리를 한 그녀의 얼굴은 하이디엔만큼이나 냉정하게 변했다.
강일은 순간 미소를 머금을 뻔했다.
이런 분위기의 사람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저는 용성의 회장 손녀입니다. 그리고 드레젠 님의 방송에서는 ‘뉴비환영해!’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고,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용성? 아니, 잠깐만.”
이번엔 강일이 당황할 차례였다.
게다가 ‘뉴비환영해!’라고?
그 사람이 여자였단 말이야?!
강일은 역시 인터넷에서의 사람은 모르는 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지, 진짜요?”
“네에……. 제, 제가 좀 낯을 많이 가려서……. 하하.”
곧바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이미예.
강일은 허허 웃었다.
평범해 보이는 여자의 정체가 다름 아닌 대한민국 대기업 회장의 손녀였다니.
지금 자신은 꿈도 꾸지 못할 기업이지 않은가.
“신경 쓰실까 봐 얘기를 안 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투명하게 밝히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뒤늦게 밝혀지면 자길 가지고 놀았다는 사람들도 있어서…….”
“충분히 이해 가는 부분입니다만. 어쨌든 전 그런 거로 차별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잘 부탁드리고 감사해요.”
강일은 진정으로 웃을 수 있었다.
‘뉴비환영해!’는 자신의 첫 시청자였으니까.
가끔 상식을 초월한 후원 금액을 보고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얘기하니 더 감사할 따름이었다.
“아, 아니에요. 저는 그러니까…… 드레젠 님의 팬이기도 하고…… 어…… 첫 시청자이기도 하니까요..”
“앞으로도 쭉 함께하시죠.”
“아, 알겠습니다.”
강일이 손을 뻗었고, 이미예가 마주 잡았다.
계약서는 쓰지 않았지만 계약이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강일은 현실에서도 좋은 조력자를 만난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다.
#3
“그렇게 해서, 오늘부터 팀 드레젠이 개설될 겁니다.”
“오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사장님!”
두 번째 매니저, 한창원이 씩씩하게 말했다.
아직은 조촐한 팀이었다.
하지만 인력의 가치로만 따지자면 웬만한 작은 회사보다 낫다고 할 수 있었다.
지구보다 훨씬 큰 대륙에서 치른 전쟁의 정보를 다루던 이.
재벌 3세에 (구) 아이돌 팬 카페 회장.
“창원 씨는 어…… 해킹 대회에서 몇 번 우승도 했었네요?”
“네! 그렇습니다! 악플 다는 놈이 있으면 전부 찾아내서 혼내 줄 수 있습니다.”
재능을 이런 곳에 써도 되나? 할 정도로 대단한 스펙의 해커 출신의 매니저 한 명.
거기다 하이디엔까지.
어지간한 중소기업도 찜 쪄 먹을 수 있는 스펙의 팀이 완성되었다.
“오늘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월급은 제가 망하지 않는 이상 꼬박꼬박 챙겨 드리겠습니다.”
“다, 다들 잘 부탁합니다.”
“이제 친하게 지내요. 하하.”
“저는 드레젠 님의 영상만 있으면 무급으로 일해도 괜찮습니다!”
각자 개성이 강한 팀이 제대로 완성되었다.
앞으로 규모가 조금 더 커지면 인원을 충당할 테고, 이들은 초기 구성원으로서 팀을 지배하겠지.
드레젠은 자신의 앞에서 쾌활하게 이야기하는 팀원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