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1화
111화 - 1+1 행사입니다
#1
드레젠은 멍하니 여인을 바라봤다.
대놓고 존재감을 뿜어 대고 있었기에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떨리는 목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상테…… 마트리나.”
-??
-죽었다며
-?!
-뭐야 이겈ㅋㅋㅋ
-짜잔~ 절대라는 건 없군요!
“……조금 기다리라고 한 이유가 당신 때문이었군요.”
감미로운 목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허스키하고 걸걸한 편에 속했다.
새카만 천 한 장으로 몸을 가리고 있는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의 새로운 주인이자 온 성좌의 주인께서 그대에게 전할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갑자기?”
-ㅗㅜㅑ;;
-누나 나 주거어어ㅓㅓ
-매니저가 시급하다!
-매니저! 쳐 내!
드레젠은 채팅 창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온 성좌의 주인이라니.
순식간에 누군지 파악할 때, 마트리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당이 신들린 모습처럼 완벽하게 변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아, 잘 들리나?”
“들립니다만.”
“그간 고생했다.”
[잠시 버퍼를 걸어 두었다. 보는 눈은 없을 것이야.]
“후…… 왜 제 앞에 갑자기 나타나신 겁니까?”
“궁금하기도 했고, 부탁하고 싶은 일도 있고.”
평범한 동네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드레젠은 조용히 채팅 창을 바라봤다.
-뭐야 버퍼;;
-렉;;;
-방송 터졌어!
-사고다 사고!
-아 왜 이때 터지냐고ㅜㅜㅜ
-!(%)@$% 궁금하다 궁금해!
쉴 새 없이 올라가는 채팅을 뒤로하고, 다시 눈을 돌렸다.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상대는 그 엄청난 성녀인 데다가, 그 안에 깃든 자는 창조주나 마찬가지인 인물이었다.
경각심으로 겨우 충동적인 행동을 막았다.
“부탁? 부탁요? 갑자기 나타나서는 무슨 부탁입니까?”
“고생한 건 나도 알고 있다. 몇 년 동안 겨를이 없어 내 소환수들을 보냈는데, 그래서 신경을 써 주지 못했어. 사과하지.”
“…….”
드레젠은 입을 꾹 다물었다.
세계관 꼭대기에 있는 자들의 사과란, 천금보다 가치가 있는 것이었으니까.
고작 인간인 주제에 사과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마땅한 보상?
그런 건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다.
“어쨌든, 힘은 계속 키워 두도록 해. 그쪽에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게…… 무슨…….”
“최대한 막아 보곤 있다. 하지만 대비는 하라는 거야. 99% 확률로 내가 이기겠지만.”
마트리나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모습이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하던 대로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맞아. 저번에 토르가 왔었지? 생각보다 더 잘해 주고 있어서 고맙다는 말 하려고. 작은 선물도 줘야겠다.”
친한 형을 대하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성좌들과 달리 압도적인 기운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마트리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손뼉을 쳤다.
“간섭할 수는 있겠군. 여길 이벤트 장소로 만들어서 시스템을 조금 바꾸면…….”
“자, 잠깐.”
“응? 왜?”
“설마…… 여기가 게임이라는 걸 알고 계신 겁니까?”
마트리나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드레젠은 소름이 돋았다.
분명 다른 세계였을 터다.
차원도 다를 것이 분명했는데, 간섭을 할 수 있다고?
저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돼. 간섭할 생각도 없으니까. 나도…… 고향 생각이 나거든.”
“지구는…… 평화로운 곳으로 남겨 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드레젠은 고개를 숙였다.
그의 고향, 평화로운 세계.
정치적 분쟁이나 보이지 않는 다툼이 있지만, 그래도 살기 좋은 곳.
지구까지 브락시아처럼 된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마트리나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으니까. 멸망은 나도 겪어 봤거든. 아주 잠깐이지만.”
성좌와의 대화는 짧았다.
하지만 영겁의 시간 속에서 대화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직접 성좌의 왕이 대화하러 오다니.
신선한 경험이었다.
더불어 일말의 불안감이 형성되었다.
‘아직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하이디엔, 세이브 더 브락시아, 현실에서 마나를 갈구하는 자신의 육체, 그리고 성좌까지.
그날 모든 것을 잊고 탈출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자신은 아직도 브락시아의 그늘에서 살고 있었다.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원하는 대로 해. 그늘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면 더 성장하면 될 일이지.”
“조언 감사합니다.”
“그래. 재미없는 대화는 이만하자고. 이곳은 이벤트 장소로 꾸며 볼 테니까, 이제 방송을 다시 시작해 볼까?”
5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시청자들은 여전히 패닉이었다.
심지어 후원까지 쏘면서 어떻게든 해 달라는 소리가 들렸다.
약 1만 명 정도의 시청자가 우르르 빠져나간 상황.
마트리나가 박수를 두 번 치자, 다시 영상이 송출됐다.
-버퍼 무엇;;
-와 살았다!
-와씨 돌아왔다!
-일부러 기다링교?
드레젠은 캠을 보고 윙크를 한번 날려 준 후, 마트리나를 쳐다봤다.
마트리나가 두 손을 뻗으며 말했다.
“내 아이의 넋을 기려 주어서 고맙구나. 너에게 주는 선물이노라.”
장엄한 목소리였다.
조금 전까지 편하게 대화했던 성좌라곤 생각되지 않을 만큼 경건했다.
드레젠은 무릎을 꿇고 손을 위로 올렸다.
성좌에게 보내는 경의와 존경의 표시였다.
[성좌 : ???의 축복이 깃듭니다.]
[모든 스킬 레벨 +2]
[마나 적응력 +3]
[체력, 마나 +500]
[탐지, 추적의 범위가 30% 넓어집니다.]
억 소리 나는 버프.
그것도 영구적인 효과였다.
시청자들은 당연히 난리가 났고, 클립을 무진장 따내기 시작했다.
선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루시퍼의 눈물]
[은신 시 발각되지 않을 확률 증가]
[은신 공격 시 첫 대미지 +40%]
[은신 계열 마나 소비량 -30%]
[은신 공격 시 혼돈 효과 25% 확률로 부여]
[루시퍼의 눈물 - 레플리카]
[은신 시 발각되지 않을 확률 증가]
[은신 공격 시 첫 대미지 +20%]
[은신 계열 마나 소비량 -20%]
[은신 공격 시 혼돈 효과 10% 확률로 부여]
“미쳤…….”
-도랏넼ㅋㅋㅋㅋ
-이거 벨붕 아니야?
-ㅋㅋㅋ이런 던전이 있다고?
-좌표! 좌표 찍어 주세요! 얼른!
-수출을 해라~~
[‘학생’ 님 1,000코인 후원!]
[선생니무ㅜㅜ 감동입니다ㅜㅜ]
[‘킹정맨’ 님 5,000코인 후원!]
[이건 킹정이지!]
[‘뉴비환영해!’ 님 100,000코인 후원!]
[그는 갓갓갓이다.]
세션이 다르지만 이벤트는 동일했다.
이곳은 아무도 건들지 않았고, 현재 흘러가는 역사와 전혀 관계가 없는 곳이었다.
은신 계열 캐릭터를 키운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될 것이다.
“그럼 계속 고생하거라.”
마트리나는 눈을 감았고, 빛에 휩싸여 모습을 감췄다.
드레젠은 손안에서 느껴지는 감촉을 확인하기 위해 손바닥을 폈다.
검은 보석 안에 보이는 투명한 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을 때의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레플리카와 진품이라……. 역시 좋은 건 제가 가져야겠죠?”
-그거 맞지
-진짜 이 던전은 성지가 될 거다
-탐험하는 놈들도 나올 듯
-엌ㅋㅋㅋㅋ이스터 에그 가즈아
-진짜 갬동 ㅜㅜ
루시퍼의 눈물은 목걸이보단 초크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었다.
가볍게 목에 걸자, 스르륵 하고 투명하게 사라지는 루시퍼의 눈물.
가볍게 장막을 펼쳐 보았다.
“오, 확실히 편하군요.”
-키야
-안 그래도 안 들키는데 이건 뭐;;
-진짜 살자 중에 살자다
-찐살잨ㅋㅋㅋ
드레젠은 장막을 해제하며 밖으로 향했다.
이제 오늘 분량이 끝나 가고 있었다.
적당히 커트하고 2부에서 다시 달릴 생각이었다.
“오늘은 1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영상 하나 올릴 것만 보고 2부 가겠습니다.”
-시사회!
-오늘은 무슨 영상인가효?
-1 대 8의 전설은 오늘이니까 아직 안 올라왔을 텐데.
-핫 클립인가!
“오늘 영상은 하이라이트로 꾸며 봤습니다. 이제 슬슬 편집자도 구할 생각이라 영상이 많이 올라갈 거예요.”
-크으
-이제 슬슬 구해야지
-머기업인데 당연하지
-여기 시청자들 사실 선 되게 잘 지키고 있는 거임ㅋㅋㅋ
다른 방송이었다면 진즉 분탕질에 어그로까지 터져 나갔을 인원이었지만 유독 드레젠의 방송은 달랐다.
아무래도 ‘공식 채널’이라는 타이틀이 무겁긴 한 모양.
드레젠은 세이브 더 브락시아를 종료한 뒤 짬짬이 편집했던 동영상을 재생했다.
#2
“후-.”
잠시 캡슐 밖으로 나와서 몸을 푸는 강일.
머리가 터져 나갈 것 같았지만 방향은 딱히 바뀌지 않았다.
이 사실을 하이디엔도 알고 있을까?
양반은 못 되는 모양인지, 그녀에게서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지, 진짜 성좌랑 대화하신 거예요?”
“어, 그렇던데?”
“하…… 저희는 잠시 모니터링이 안 돼서 큰일 날 뻔했어요.”
진짜 성좌가 개입한 것이 맞았는지, 본사도 난리가 났던 모양.
강일은 하이디엔에게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하이디엔은 희망에 가득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역시 성좌님들은 저희를 포기하지 않았군요. 정말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러게. 아무튼, 힘은 계속 키워 둬야 할 것 같아.”
1%의 확률.
적다고 할 수 있었지만, 아예 없는 확률은 아니었다.
최악의 상황을 언제라도 대비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제는 지구라고 안전을 보장할 수도 없어졌으니.
“제가 원천에 있는 마나를 정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슬슬 어머님도 깨우셔야 하지 않겠어요?”
“맞아. 일을 진행해야겠어.”
10분이 조금 넘는 동영상이 끝나 갈 무렵까지 통화가 이어졌다.
하이디엔과 강일은 꽤 많은 내용을 상담했다.
앞으로의 계획, 눈앞에 닥치는 일 등등.
제일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은 편집자, 매니저를 구하는 일이었다.
“내일 보자.”
“알겠습니다. 선별해 둔 인원은 있으니까, 소개해 드릴게요.”
“그래.”
이제 2부 방송을 해야 할 차례였다.
최강의 용병이 되기 위해서 여덟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사실 스트레스를 푸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방송이기도 했다.
“자, 그럼 2부 시작하겠습니다.”
-달리즈아아아
-슨생님 몸 생각도 하세오
-맞아 우리야 좋지만!
-꼭 휴방 날짜도 정해 주세요!
아마 조만간 휴방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브튜브 정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첫 휴방일은 그날로 정해 두었다.
“조만간 휴방할 일이 한번 있긴 합니다. 그 전까진 꾸준히 달려 보도록 하죠.”
-ㅗㅜㅑ
-여윽시 올 타임 레전드
-크으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클라슼ㅋㅋ
-노가 아니라 원잠을 타고 나가는 수준임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ㅋ
“그럼, 오늘도 신나는 퀘스트를 하러 갑시다.”
2부 방송이 시작되었다.
주된 콘텐츠는 용병 의뢰를 처리하면서 만나게 되는 몬스터나 강도들에 대한 강의였다.
시청자들과 웃고 떠들고 해결을 해 나가니 여덟 시간은 금방이었다.
#3
다음 날.
강일은 하이디엔이 주문해 준 옷 중 몇 가지를 골라 입고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오늘은 매니저와 편집자를 만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