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107화 (108/279)

제 107화

107화 - 1 대 8의 전설

#1

“오늘이더냐?”

“그렇습니다.”

할레단 후작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며칠 전, 영광의 전당에 불이 들어왔다.

사람들이 모였고, 후작가는 난데없는 호황을 맞이했다.

하지만 후작가의 가신들은 결코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없었다.

“후작 각하. 마탑주가 도착했습니다.”

“각하! 3황자께서 도착하셨다는 소식이옵니다!”

할레단 후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3태자.

다섯 명의 황자 중에서도 조금은 특별한 존재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무예에 관심이 많았다.

15살이 되던 해, 고리타분한 정치와는 맞지 않다는 걸 깨달은 황자는, 홀연히 수호 기사와 함께 북동쪽으로 향했다.

“황자께서? 거인들을 막아야 할 분께서 왜?”

“모르겠습니다. 지금 황자께서 이끌고 계신 기사단 전체가 수도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할레단 후작가는 일이 커짐을 느꼈다.

영광의 전당.

그 빛은 대륙 전체에서 볼 수 있었으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으득, 이를 갈며 걸음을 빨리했다.

기사단과 황자라니.

공정함을 미덕으로 알고 있는 황자가 이곳을 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미 명예는 버렸다. 오직 생존만 신경 쓴다.’

영광의 전당에서 발생한 일은 황제라고 해도 관여할 수 없었다.

성좌의 뜻을 어긴 황제 중에 말년이 좋은 황제는 없었으니까.

팀 파이트는 말만 신성한 결투가 아니었다.

“그래도 손은 써 놨겠지?”

“그렇습니다. 녀석은 동료들을 구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혹시 몰라 매복조도 보내 놨지만 와이번을 타고 다니는 이를 상대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역시 오늘은 선수로서 참가해야 하는 바.

빠르게 갑옷을 입고 결투장으로 향했다.

“선수들에게 그걸 투약하라.”

“알겠습니다.”

후작은 붉은 액체가 든 주사기를 바라봤다.

오우거의 혈액을 정제해 만들어 낸 도핑제.

체내에 있는 마나를 들끓게 만들어 몇 배의 효율을 보이게 하는 물약이었다.

이름은 ‘오우거 파워 포션’.

어디선가 들어 봤지만 그 효능은 전혀 달랐다.

“준비하라! 우리는 오늘 승리할 것이다!”

도핑은 불법.

하지만 한 번도 걸린 적은 없었다.

황제에게 걸린다면 아마 명예는 물론이고 가문이 취하고 있던 이익 대부분도 없어지겠지.

할레단 후작은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시종이 입혀 주는 갑옷을 착용했다.

“드레젠. 그가 뭐가 되었든, 우리는 승리한다. 그림자 기사단도 영광의 전당 앞에서는 10초일 뿐이니까.”

그는 짧은 지팡이를 들고 이두근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었다.

들끓는 피가 마나와 결합하기 시작했다.

후우-, 하고 심호흡을 한 후작이 경기장으로 향했다.

못난 아들 녀석 때문에 잠시 위기가 찾아왔지만, 후작은 마스터급 실력자였다.

‘오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긴다.’

희미하게 붉어진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2

영광의 전당.

관계자들이 속속 모이고 있었다.

이미 관중석은 만원에 가까웠다.

오랜만에 돌아온 축제였다.

사람들은 새벽부터 줄을 서,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위대하고 공정하신 3황자님이 행차하십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황자.

제국의 꼭대기에 있는 자 중 하나였다.

브레이시스 제국을 상징하는 깃발이 휘날렸다.

당당하게 검을 들고 있는 기사의 모양.

인간의 삶을 온전하게 영위하기 위해서 세워진 단 하나의 제국이었다.

[모두- 무릎을 조아려라! 황자님의 행차시다!]

지엄한 목소리가 들렸다.

검정색 갑옷을 입은 자들이 나타났다.

단단한 갑주로 무장한 말 위에서 세상을 오시하는 자들.

서리족이 정원으로부터 대륙을 지켰다면, 황자를 비롯한 그의 기사단은 거인으로부터 제국을 지키는 자들이었다.

“모두 무릎을 꿇어라!”

시민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3황자는 시민들 사이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황가의 핏줄 중에서도 직접 몸으로 제국을 지켜 주고 있는 사람이지 않은가.

시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기엔 충분했다.

“여긴 평화롭군.”

“설산과는 다르지요. 오랜만에 몸을 풀고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제일 선두에 있는 두 필의 말에서 두런두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답답했던 바이저가 없으니 상쾌한 공기가 기분까지 맑게 해 주었다.

3황자.

정식 이름은 그레이 장 보레아스 브레이시스.

보레아스 영주의 딸이 후궁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영토의 이름을 붙였다.

“후작에게 인사를 하러 가야겠다. 오늘 경기에 직접 참여하나?”

“소식으론 그렇습니다. 데스 나이트를 토벌한 드레젠에게 암살자를 보냈다더군요.”

“아무런 접점도 없었을 텐데.”

“장남이 그랬다고 합니다.”

기사들은 오지에 있었지만, 소식에는 밝았다.

무려 황자를 보필하는 자들이었다.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면 신변에 큰 지장이 생길지도 몰랐다.

거인과 싸움을 하면서도 정보에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책임이었다.

“할레단 후작이 황자님을 뵙습니다.”

“황자님을 뵙습니다.”

경기장 입구.

미리 나와 있었던 할레단 후작과 측근들이 공손하게 황자를 맞이했다.

그레이 황자는 말에서 내려, 후작을 바라봤다.

“오랜만입니다. 후작.”

“3년 전, 연회 때 보고 처음이지요. 한층 더 당당해지셨습니다.”

“오늘 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군요. 이유도 대충 들었는데……. 재밌게 구경하다 가겠습니다.”

후작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여느 황자들과는 달리 각 영주와 귀족들에게 존칭을 써 주는 그레이 황자.

25세에 불과했지만, 이런 점 때문에 오히려 귀족들이 더욱 어려워했다.

“가시지요.”

“기사단원들과 정리하고 오도록. 자리를 맡아 놓고 있을 테니.”

기사단장은 고개를 숙이고 단원들을 이끌었다.

황자는 최소한의 호위만을 데리고 자리로 향했다.

할레단 후작이 헐레벌떡 그를 따라왔다.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나보단 저들을 챙겨 주세요.”

“알겠습니다.”

할레단 후작은 오랜만에 본 황자의 모습에 경외감을 느꼈다.

마스터에 근접한 마나를 품고 있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일찍이 정계에는 관심이 없다고 못을 박아 놨으니 변경에서 권세를 떨칠 대공이 되겠지만, 그 누구도 그를 얕볼 수 없었다.

“기사단이 경기장에 입장할 수 있도록 빠른 조치를 해 주도록. 시간이 별로 없다.”

“알겠습니다. 각하.”

아직 드레젠은 도착하지 않았다.

경기 시작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기권패 처리가 되었다.

후작은 혹시 몰라 준비를 얼른 끝내고 경기를 진행할 생각이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딱히 물어 온 정보도 없습니다.”

후작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준비를 서둘러라. 선수들도 바로 무대 위로 올라갈 준비 하고.”

선수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늘을 위해 특별히 엄선된 인물들.

그중에는 모나르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참가자들은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마탑에서 나온 장로, 아이덴이라고 합니다.]

마탑의 관계자까지 등장했다.

경기 시작까지 10분.

아직 드레젠은 보이지 않았다.

#3

황자, 그레이는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의 주변에는 온통 기사단뿐이었다.

시민들의 자리와는 전혀 동떨어져 있는 자리였다.

“드레젠이라는 자, 아바마마께서 관심을 보이시던 그자가 맞나?”

“그렇습니다. 카이렌 공자를 단숨에 죽였다는 소식은 꽤 유명하죠.”

옆에 있던 기사단원들이 드레젠에 대한 정보를 주르륵 읊었다.

“비스트 마스터의 후예라고도 합니다. 와이렉스를 테이밍했다고 하는데, 그것 때문에 이 사달이 났죠.”

황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재미있는 스토리였다.

인간이 언데드가 되면 기본적인 전투력이 올라간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기사가 데스 나이트가 되는 건, 그 상승폭이 어마어마했다.

“마스터를 이겼다니, 오늘 제대로 볼 수 있겠네.”

“그러고 보니, 비슷한 또래시군요.”

“나중에 자리를 한번 만들어 보시죠. 좋은 라이벌이 될 것 같습니다.”

황자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기사들과는 함께 전장에서 구르다 보니 터울이 없어졌지만, 드레젠과 자신은 메울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자신은 친우로 여길지언정 그는 어떤 감정을 가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됐고, 경기에나 집중하지. 그 실력이라는 게 진짜인지 보고 싶으니까.”

황자는 몸을 슬며시 앞으로 숙였다.

앞으로 있을 경기가 기대된다는 듯이.

“한데 아직도 도착을 안 하고 있습니다. 제때 도착할지 모르겠습니다.”

“기다려 보자고.”

황자는 팔짱을 끼고 관망했다.

일말의 기대감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 줄 것인가.

드레젠이라는 사람을 꼭 보고 싶었다.

#4

경기 시작 1분 전.

아직도 드레젠은 등장하지 않았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지쳐 갈 때쯤, 할레단 후작은 마탑 장로에게 다가갔다.

“이쯤 되면 승부할 생각이 없는 것 아닌가?”

“아직 1분 남았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 보시지요.”

“흠…….”

불만스러웠지만 규정은 규정이었다.

마법으로 작동하는 시계가 조금씩 움직였다.

후우웅-!

세찬 바람이 불었다.

경기장 위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와이번이다!”

시민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탑 사람들이 빠르게 대처했다.

마탑에 등록되어 있는 와이렉스의 모습은 뇌리에 깊게 박혀 있었다.

[당황하지 말고 자리에 앉으시오! 저건 공인된 테이밍 몬스터입니다!]

“저, 저게?”

“세상에…… 와이번을 테이밍했다고?”

“소문이 진짜였어.”

보지 못했던 자들이 경악하는 가운데, 드레젠이 등장했다.

환호가 해일처럼 몰려왔다.

드레젠은 마탑 장로를 바라보며 물었다.

“안 늦었죠?”

“아슬아슬했소이다. 그럼, 경기를 시작하죠.”

경기 진행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각 진영의 선수들이 경기장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두 명의 기사와 여섯 명의 마법사로 이뤄진 할레단 후작가의 진영.

“어?”

“저게 말이 돼?”

사람들은 드레젠을 바라보며 경악했다.

홀로 상대편 진영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는 드레젠.

든든한 동료 하나도 없이 경기장에 서 있는 모습은 자신감을 넘어서 오만해 보였다.

“무례한 것. 네놈이 후작가를 단단히 얕보고 있구나.”

“딱히 그런 건 아닌데…… 걸린 게 있거든.”

그는 씩 웃으며 검을 뽑았다.

후작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드레젠은 이 상황을 의도했다.

-ㅋㅋㅋㅋㅋ당황하셨어요?

-표정 봐랔ㅋㅋㅋ

-진짜 이길 수 있겠음?

-이번에야말로 죽어 보자!

-우리의 소원은 드레젠 님이 죽는 것^^7

“어허, 저는 지면 안 됩니다.”

질 이유는 없다.

지게 만드는 이유도 없었다.

이길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만족했다.

“지, 진짜 그대로 속행하실 겁니까?”

“네. 진행하셔도 됩니다.”

마탑의 장로가 걱정스럽게 드레젠을 쳐다봤다.

오만하다.

이건 그의 명예에 관한 문제이기도 했다.

상대방을 얕보는 것은 신성한 결투와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성좌가 속성과 직업을 내립니다.]

[경기를 준비하십시오.]

경기장에 환한 빛이 일었다.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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