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5화
105화 - 서리족의 평화
#1
[건방진 것들.]
머리가 웅웅 울렸다.
기계가 발산하는 저주파와 마법으로 인한 텔레파시가 섞여 불쾌한 기분을 만들어 냈다.
여왕은 정말 미래적인 모습과 판타지적인 모습이 섞여 있었다.
-오우야;;
-저, 저건 불가능;;
-가능충 없냐!
-선생님 저건 좀;;
-와 진짜 기계 여왕이넼ㅋㅋㅋ
SF에서나 나올 법한 구불구불한 선들이 드레스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 위로 두꺼운 얼음 갑옷들이 전선들을 보호하듯 둘러쌌다.
단단하고 아름다운 얼음 갑주.
그 밑에는 흉측한 로봇이 자리하고 있었다.
“각자 위치로 이동해. 저 녀석의 공격은 내가 맡는다. 쿠우쿠. 혼자 할 수 있겠지?”
“맡겨만 주십쇼, 귀인.”
쿠우쿠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공포심을 누르기 위해 대답을 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10미터는 넘어갈 것 같은 압도적인 몸체.
나선형으로 되어 있는 얼음 계단과 난간.
사이사이에 뚫려 있는 굴에서 붉은 안광이 속속 보이기 시작했다.
“덤벼라, 여왕.”
[하등한 것. 너희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 내 귀여운 아가들을 죽이고, 그것들을 잉태하는 곳까지 불태웠다!]
-그러네.
-드레젠 : 방화범(?)
-ㅋㅋㅋㅋㅋ엌ㅋㅋㅋ
-아니 진지한 대사를 드립으로 받아치는 거 뭐냐고
-우리는 드립의 민족이니까요^^7
덕분에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서리족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클리어 타임이 결정될 것이다.
오늘, 드레젠은 또 하나의 비법을 세상에 공개할 참이었다.
‘버프가 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서리 종족은 버프 마법이 전무했다.
혼자의 힘으로 싸워야 할 판이었다.
네자렉의 목걸이에 마나를 불어 넣으니, 성좌의 힘이 생겨났다.
오늘은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의 날.
성좌 중에서도 최고의 성좌 중 한 명인 칼루스의 힘이 깃드는 날이었다.
“후아아-.”
언뜻 들으면 야릇할 수도 있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충만하게 차오르는 황금빛 신성력이 그의 부족함을 채웠다.
여왕도 심상찮은 기운을 느꼈는지, 기이익- 하는 기계음과 함께 육성으로 소리쳤다.
[저 하등한 종족들을 전부 치워 버려라-!]
쿠르릉-!
정원의 가장 안쪽, 여왕의 침실이 울렸고, 병력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서리족들이 움직였다.
드레젠도 검을 들었다.
“오늘은 집중을 좀 해야 하니까, 멘트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들 방송 탈 준비 하세요.”
-브튜브 각 가즈아아아!
-브하~!
-브-하!
-브하!
-브하!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재능이 없던 용사여도, 겨우 이 정도 보스도 상대할 수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는 달려가기 전, 한마디를 더 던졌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강해지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진짜 상대해야 할 적들은 여왕보다 훨씬 강하니까요.”
지잉-!
붉은색 레이저가 쏘아졌다.
마나를 연료로 바꿔, 무엇이든 녹여 버리는 광선이었다.
직선으로 쏘아진 광선이 드레젠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
-뭐야!
-한 방 컷?!
-?? : 집중하겠습니다 ㅜㅜ
-아니 이걸 파조동이 또ㅜㅜ
분명 직격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내 드레젠의 신형이 황금빛으로 흩어졌다.
-어딜 보십니까, 그건 제 잔상입니다만;;
-ㅋㅋㅋㅋㅋㅋ아니 이걸 속여?
“빛의 신에게, 네까짓 게 닿을 수 있겠냐.”
드레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왕의 눈앞에 서 있었다.
콰드드득-!
전투가 시작되는 소리가 들렸다.
서리족은 강인한 육체를 이용해 굴을 틀어막고 있었다.
“기사들이 나온다! 집중적으로 공략해!”
쿠웅-!
기사들은 3미터가 넘는 거대 로봇이었다.
역시 얼음 갑주로 단단히 무장했다.
“먼저 관절을 노려라!”
쿠우쿠는 드레젠에게 전수받은 방법으로 착실하게 기사들을 상대했다.
그사이, 드레젠은 여왕의 공격을 모두 받아 내는 중이었다.
[건방진 쥐새끼가-!]
“거 히스테릭하시네.”
황금빛 잔상을 남기며 광선을 이리저리 피하는 드레젠.
여왕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상황.
작열하는 붉은색 안광이 푸르게 변질되기 시작했다.
전멸기.
재빠르게 피해야 하는 패턴이었다.
“피해라-!”
쩌렁쩌렁한 외침이 정원을 울렸다.
서리족들의 반응은 기민했다.
전멸기를 피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기사의 등 뒤로 숨거나, 굴 안으로 대피하는 것.
물론 그 안에 있는 녀석들은 해치워야 할 테지만.
[으아아아아아아-! 다 죽어라아아아아-!]
쩌어엉-!
푸른 파동이 주변을 휩쓸었다.
드레젠은 금빛 섬광으로 변해, 기사 하나의 등 뒤를 점했다.
치이이익-, 푸욱-!
황금빛 오러가 얼음을 순식간에 녹이고 기사의 코어를 찔렀다.
“전멸기는 이렇게 피하시면 됩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무사히 피한 것 같았다.
굴 안에서도 전투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얼떨결에 기사 하나를 처리했지만, 전멸기로 죽은 기사는 검을 남기지 않았다.
[감히, 내 사랑스러운 아가들을!]
-??
-아줌마가 태웠잖아요ㅜㅜ
-으아아아 기계가 미아내ㅜㅜ
드레젠이 해야 할 멘트를 시청자들이 대신 해 주고 있었다.
아직 마나는 많이 남아 있었다.
드레젠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싸우기 위해 공격은 최대한 자제했다.
운이 정말 좋았다.
‘칼루스의 힘은 효율이 좋지.’
빛의 성좌 칼루스.
그 힘은 정말 심플하고 강력했다.
말 그대로 ‘빛’이 될 수 있는 힘.
어디든 단숨에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파괴할 수 있는 물리력까지 갖추게 되는 상태였다.
[네놈의 마나는 무한하지 않다!]
그래, 드레젠의 마나는 무한하지 않았다.
드레젠은 답하지 않고 연신 쏘아지는 공격을 피해 냈다.
레이저 형태의 공격도 있었고, 탄막을 뿌려 대는 공격도 있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드레젠에게 닿지 않았다.
“기사 둘을 잡았다!”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지만 득의양양하게 외치는 서리족.
거대한 검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치이익-!
검 뒷면에는 뜨거운 액체가 들어 있는 병이 증기를 뿜어내는 중이었다.
“야! 그거 자랑할 시간에 빨리 우리나 도와줘!”
“그것도 못 잡냐?”
생각보다 꽤 여유로웠는지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로 분위기는 좋았다.
반대편에서도 기사를 잡았는지, 검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왕이 고개를 돌려, 난간 쪽에 있는 서리족들을 공격하려 했다.
“날 까먹으면 안 되지.”
투쾅-!
드레젠이 발치에 있는 돌을 가볍게 찼을 뿐인데, 혜성처럼 날아갔다.
돌팔매질을 당한 여왕이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질렀다.
[이 시건방진 것들이-!]
“지금부터는 네 목숨을 걱정해야 할 거야.”
텅-!
검 하나가 그의 앞에 박혔다.
나머지 하나는 쿠우쿠가 들었다.
이제부턴 신나는 딜 타임이었다.
-딜 타임 가즈아아아!
-빡딜 넣즈아아아아!
-여왕 개 쫄았누
-검 날아오는 거 포스 보소
날아오는 광선을 피하고, 검을 들어 순식간에 여왕의 왼쪽 옆구리를 점했다.
치이이익-!
병으로 인해 달아오른 검에 마나를 듬뿍 주입했다.
“으랏차!”
쿠우쿠가 옆구리를 냅다 찔렀다.
드레젠 역시 검을 얼음 갑옷의 틈새로 찔러 넣었다.
[꺄아아아악!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오냐, 그렇게 붙어서 얼어붙어라!]
여왕의 전신에서 소름 끼칠 정도의 냉기가 흘러나왔다.
갑옷을 깨부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한 까닭.
여왕이 시전하는 견제기를 막아 줄 이가 필요했다.
그 역할은 이미 정해 놨다.
[이제 들어와!]
드레젠이 메시지 마법으로 소리쳤다.
콰아앙-!
얼음으로 된 문짝이 부서지며 거대한 동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본래라면 방사되어야 할 냉기가 한곳으로 쭈욱 빨려 들어갔다.
[네, 네놈이!]
[맛있구만그래.]
드레이크 렉스, 만드록스는 냉기를 먹고 사는 생명체.
여왕이 발산하는 에너지는 만찬이나 다름없었다.
드레젠에 의해서 상처 입은 몸뚱이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그사이에 두 사람은 얼음 갑옷을 해체했다.
“속살 좀 보자-!”
쿠우쿠가 흥분하여 외쳤다.
시청자들이 그 발언을 놓칠 리가 없었다.
-ㅗㅜㅑ;;
-난 불가능이라고!!
-ㅋㅋㅋㅋㅋ아니;;;
-짤라! 매니저 없나?!
십만 명이 넘어가는 시청자 수가 있었지만, 매니저는 딱히 없었다.
그래도 시청자들이 선을 넘지 않는 이유는, 브락시아 본사와 연결되어 있는 방송이기 때문이었다.
“터져라아아-!”
쿠우쿠의 외침과 함께, 얼음 조각의 비가 내렸다.
수백 장의 유리창이 한꺼번에 깨지는 듯한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단단한 얼음 갑주로 둘러싸여 있던 여왕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흉측하고 보기 싫은 모습이었다.
“퍼부어!”
드레젠의 일갈과 함께, 그는 빛이 되었다.
여왕은 빠르게 갑주를 복구하려 했다.
이 갑주가 완전히 복구되기까지가 주어진 딜 타임이었다.
드레젠은 남아 있는 마나를 모조리 끌어다 쓰기로 결정했다.
“페베스 검술의 후반부를 보여 드리도록 하죠.”
풍부한 마나가 뒷받침되어야 쓸 수 있는 무예들.
스카이워커 가문을 든든히 받쳐 주었던 기술들의 정수.
하늘을 거닐듯, 폭격하는 페베스 검술은 가문 이름과 정말 잘 어울리는 검술이었다.
“페베스 검술의 7형, 레폰도.”
오러의 비를 퍼붓는 기술이자, 광범위한 공격과 위력을 동시에 잡아낸 검술.
황금색 오러가 유성우처럼 떨어져 내렸다.
노리는 것은 여왕의 드레스.
기다란 전선이 조각조각 잘려, 정제되지 않은 마나를 흩뿌렸다.
“8형, 수페르발레오.”
빛이 산개했다.
황금빛 줄이 여왕을 난자했다.
번쩍거릴 때마다 여왕의 육체에 자상이 늘어 갔다.
신속으로 이동하며 적을 베는 검술이었다.
“9형, 퐁고.”
풍고.
직선으로 돌진하며 적을 뚫어 버리는 형.
돌파력은 150mm의 금강석 판도 뚫어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콰아아아-!
빛의 힘까지 더해진 드레젠은, 그야말로 폭풍이 되었다.
[꺄아아아아아으아아아-!!]
여왕의 비명이 동굴을 가득 메웠다.
사지가 잘게잘게 잘리는 기분.
그간 자신이, 혹은 수하들이 했던 짓을 똑같이 당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그 순간, 그녀는 누군가를 찬양했다.
[아아, 굴라그시여…… 저는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중앙에서 빛나던 안광이 꺼져 갔다.
어마어마한 대미지에 속절없이 몸뚱이가 터져 나갔다.
레이드급 보스를 스킬 세 번에 깔끔하게 요리하는 모습은, 쿠우쿠를 비롯해 모든 이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4페이즈 클리어!]
[클리어 시간 : 0 : 10 : 55]
[클리어 시간이 서버에 기록됩니다.]
[보상을 획득하십시오!]
[최초로 ‘여왕의 던전’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끝났습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지렸다;;
-난 저런 거 언제 배우누
-와 지렸다;;
-브하!
-브각이다 브각!
“영상은 편집해서 바로 올리겠습니다.”
이제 한 단계가 끝났다.
적절한 빌드업이었다.
드레젠은 부서져 스파크가 흐르는 여왕의 머리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말캉한 것이 만져졌다.
뚝, 하고 떼어 내자 곧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제가 얻으려던 아이템입니다.”
[여왕의 뇌수]
[??] [??] [??]
[영원의 여왕의 뇌수. 막대한 양의 마나가 들어 있다. 정제하면 특수한 효과가 나올지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은인!”
쿠우쿠의 감사를 시작으로, 모든 서리족이 무릎을 꿇고 외쳤다.
서리족은 의리를 아는 종족이었다.
“감사드립니다! 은인!”
“오늘은 경사스러운 날! 돌아가서 성대한 축제를 열겠습니다!”
쿠우쿠의 외침에, 드레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정도 시간이 필요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