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3화
103화 - 만드록스
#1
만드록스는 흐릿한 정신을 유지하며 눈앞의 침입자를 바라봤다.
그의 머릿속엔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계속해서 말하는 목소리는 항상 똑같았다.
[대륙에 있는 모든 것들을 죽여라.]
그것이 본래 자신이 가져야 할 사명인지는 몰랐다.
그저 들리면 이행하는 것이 그가 태어난 이유였으니까.
대륙에 있던 모든 것들.
그중에는 눈앞에 있는 인간도 포함되겠지.
[크아아아아아아-!]
그렇다면 죽여야 한다.
만드록스는 움직였다.
눈앞에 있는 존재를 죽이기 위해서.
“만드록스는 어렵습니다.”
거대한 덩치는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위협이었다.
트럭이 그냥 강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쿠아앙-!
앞발을 들어 찍는 것으로 패턴이 시작되었다.
[쿠아아악!]
“저 포효가 나오면 왼발을 휘두릅니다.”
콰드드득-!
왼발이 만드록스의 앞쪽을 휩쓸었다.
드레젠은 피하지 않고, 오히려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사선으로 들어가서 한번 치고 빠지세요.”
빠르고 강한 초식이 만드록스의 흉부를 후려쳤다.
콰득!
만드록스는 기본적으로 두꺼운 얼음 갑옷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인 몬스터, 골렘보다도 훨씬 두꺼웠다.
“웬만한 오러에도 반응하지 않는 갑옷입니다. 같은 곳을 세 번 공격해야 갑옷이 깨질 겁니다.”
이건 오러의 강함과는 상관없는 기믹이었다.
여왕의 저주가 스며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드록스의 공격은 노도와 같이 이어졌다.
얼음 조각 때문에 시야가 극도로 제한되었다.
“얼음 조각도 대미지가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파 뵘
-매년 불곰국에선 고드름으로 많은 사람이 죽는다.
-체력이 생각보다 많이 다는데?
-위험하다;
도트 대미지 때문에 힐러가 필수적인 던전이었다.
드레젠은 짬짬이 기초적인 치유 마법을 운용하면서 상대했다.
기초적인 마법을 운용할 수 있는 점이 빛을 발했다.
“두 발을 찍으면 전방으로 브레스 공격이 날아옵니다.”
쿠아아아아-!
절대 영도에 가까운 냉기를 뿜어내는 브레스는 주변을 얼렸다.
드레젠은 스텝을 밟아, 높게 뛰어올랐다.
직선형의 브레스가 쫓아왔지만, 목을 등 뒤로 꺾진 못했다.
“이럴 땐 등 뒤로 넘어가서 공격해 주시면 됩니다.”
일단 가장 위협이 되는 꼬리부터 자르기로 했다.
오러를 잔뜩 담은 공격으로 꼬리를 가격했다.
만드록스가 반격했지만, 드레젠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자, 우리가 공략할 곳은 단 두 곳뿐입니다.”
꼬리, 그리고 흉부.
그곳만 약화시키면 만드록스의 전투력은 급격하게 저하된다.
중심을 잡는 꼬리와 정수를 축적하는 흉부의 기능이 파괴되기 때문이었다.
[캬오오오오-!]
분노한 만드록스가 본격적으로 날뛰었다.
그때부터는 완전히 개싸움이었다.
드레젠은 그야말로 폭격 같은 공격을 감내하는 중이었다.
“여긴 이렇게, 왼왼오왼오왼오.”
-?
-??
-뭐여 이거 리듬겜인가;;
-옛날부터 탄말겜이랑 리듬겜은 건들지 말라고 했는데
[크아아아아아아-!]
“이 포효가 들리면 광역 브레스.”
[크아아아-!]
“짧으면 부채꼴.”
[크오오!]
“끝이 오오, 하고 울면 방사형 브레스입니다.”
아주 미세한 차이였다.
하지만 나오는 공격은 모두 달랐다.
그걸 반응하고 완벽하게 파훼하거나, 아니면 무식한 방어력으로 막아 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만드록스를 공략해야만 했다.
-저걸 어케 구분해!
-?? : 다 울음소리입니다.
-어때요, 정말 쉽죠?
-ㅋㅋㅋㅋㅋ진짜 난이도ㅜㅜ
극악의 난이도.
시청자들이 느끼기엔 그랬다.
몇 번이고 도전할 가치가 있는 어려움이었다.
‘이걸 한 번에 죽인 나도 대단하다.’
수많은 목숨을 등에 얹고 싸웠다.
그들이 필사적으로 알아낸 정보들로 공략한 던전이었다.
결코 실수할 수 없었다.
그 장소가 비록 게임이라도 결코 용납할 수가 없었다.
“자, 그럼 얼른 끝내고 보스를 잡으러 가시죠. 불쌍하니까요.”
드레젠은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만드록스가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하면 지금의 드레젠은 감당하기 버거웠다.
진짜 기술로 싸워야 할 때가 왔다.
한 대도 맞지 않고, 적을 분쇄할 생각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흡-.”
만드록스의 필살기라고도 할 수 있는 패턴.
두 발을 들고 목을 꼿꼿이 세운 채 마구잡이로 브레스를 쏘아 내는 공격은, 천재지변과도 같았다.
드레젠은 근처에 있는 엄폐물로 몸을 이동했다.
이곳은 유일하게 브레스가 닿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여기에 있으면 안전할 겁니다. 그러니까- 으음?”
항상 예상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는 곳이 브락시아였다.
드레젠은 위를 보았다.
거대한 고드름이 그를 노리고 떨어지는 중이었다.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나를 듬뿍 담고 있는 고드름.
“이거, 일이 좀 꼬인 것 같네요.”
저 고드름에 맞으면 일이 잘못돼도 그냥 잘못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대로 깔려 죽겠지.
드레젠은 결국 몸을 날려 고드름을 피했다.
‘내가 아는 던전이랑 다른데?’
이런 패턴은 없었다.
이곳은 만드록스만 있어야 하는 곳이었을 텐데.
드레젠은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대응하기로 했다.
[죽……인다아아!]
만드록스가 포효가 섞인 음성을 내뱉었다.
고통스러운 그의 사념이 진득하게 전달되었다.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드레젠은 다시 위를 올려다보았다.
‘아직 완전히 먹힌 것이 아닌가?’
그가 예전에 왔을 때는 분명 모든 이지를 상실한 만드록스가 있었다.
압도적인 육체 능력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 만드록스의 특징이었다.
서포트 따위는 없었는데, 지금은 있었다.
“드레이크를 구할 수도 있겠네요. 잘하면.”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은 방대했다.
세뇌를 풀 수 있을 만한 지식들이 차곡차곡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잘 정돈된 서고에서 자료를 수집하듯,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저걸 다시 찾으면 ㄹㅇ이다!
-아니 나만 드레이크 없냐고ㅜㅜ
-엌ㅋㅋ테이머도 아니곸ㅋㅋㅋ
-본격 렉스 모으기 게임ㅋㅋㅋ
시청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떠들었다.
드레젠은 채팅을 무시하며 정보를 조합했다.
일단은 원인부터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작전을 조금 바꿔야겠군.”
[크어아아아아아-!]
일단 흔들리는 거체에 달라붙을 생각이었다.
계획에 없던 일이지만, 인생이 다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여왕의 저주가 강해집니다.]
[적병이 몰려옵니다.]
“하, 진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아 있던 잔존 병력까지 몰려오는 모양.
드레젠은 이를 악물고 땅을 박찼다.
엘프들이라도 끌어들일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ㅋㅋㅋㅋ이번에야말로 죽는다!
-드디어 뭐든지 아는 스트리머가 죽나욬ㅋㅋㅋ
-절대 죽어라!
[‘죽어라’ 님 10,000코인 후원!]
[안 죽고 깨면 10만 원^^7]
[‘안전 자산’ 님 1,000코인 후원!]
[저도 안전 자산 투자합니다. 3만 원!]
[‘흐흫’ 님 5,000코인 후원!]
[안전 자산 5만 원요~]
수도 없이 많은 후원이 쏟아졌다.
죽지 않고 클리어하면 어마어마한 돈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드레젠도 진짜 위기라는 것을 맞이했다.
‘죽으면 안 되지.’
조금 전, 속으로 다짐한 일을 무색하게 만들 순 없었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병사들이 속속 다가왔다.
드레이크의 공격에, 잡몹까지 신경 써야 하는 지옥이 시작되었다.
“어쩔 수 없죠. 본래는 여기서 중간 보스만 나오긴 합니다만,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야겠군요.”
-킹비응견!
-이런 곳에서 진짜 피지컬이 나오는 법이지
-ㅋㅋㅋㅋㅋ과연 그는 수많은 안전 자산을ㅋㅋㅋ
-다 먹자!
드레젠이 씨익 웃었다.
악마의 미소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감각의 문을 열고, 쓸데없는 것들은 모두 쳐 냈다.
초인만이 들어갈 수 있는 영역에 들어간 드레젠이 움직였다.
-오오오오
-안 보인닼ㅋㅋㅋ
-안 보이는 맛으로 보는 각인가
-(대충 기대된다는 내용)
[캬우우우우-!]
만드록스가 360도 회전을 하며 드레젠을 떨쳐 내려 했다.
하지만 이미 그는 공중제비를 돌아 그의 등에 안착한 상황.
그 상태에서 드레젠은 손을 곧게 펴고, 그대로 찔러 넣었다.
콰득-!
[키야아악-!]
“가만히 있어 봐.”
마나를 쭈욱 흘려 넣어, 몸속에 있는 이상을 확인했다.
핏-.
그사이에 원거리 공격수들이 드레젠을 노리고 작살을 쏘아 댔다.
드레젠은 그물처럼 몰려오는 작살 공격을 흘끔 쳐다보고 눈을 감았다.
-?!
-킹수라다!
-아니 아재요;;
-심안!
-뭐지 장님의 호흡인가;;
드레젠의 주변으로 푸른 파동이 번졌다.
파동은 모든 것을 감지했고, 드레젠은 그 자리에서 한쪽 팔을 고정시킨 채 모든 공격을 피했다.
고개를 젖히고, 발을 들어 올리고, 심지어는 비보잉에서 나올 법한 동작들까지 선보였다.
“……찾았다.”
드레젠이 눈을 떴다.
쿠르르릉-!
거대한 고드름이 다시 한 번 떨어졌다.
드레젠은 손을 쑥 빼고 검을 휘둘렀다.
번쩍-.
사방이 얼음으로 뒤덮여 있어서일까, 순간적으로 백광이 던전 전체를 비췄다.
[캬악-!]
콰르르르르-!
고드름이 부서지면서 주변에 있던 몬스터가 휘말렸다.
드레젠의 검에서는 찬란하게 빛나는 오러 블레이드가 빛을 발하는 중이었다.
“조금만 참아라.”
드레젠은 마나를 일으켰다.
찬란하게 빛나는 성스러운 기운이 그의 등 뒤로 피어났다.
신성력.
위대한 존재, 그중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있는 성좌들의 허락을 받아야만 쓸 수 있다던 그 기운.
[@($)@%_를 감지했습니다.]
[성좌가 당신을 지켜봅니다.]
[칼루스가 당신의 존재를 인지했습니다.]
‘그래 봤자 모두 마나의 파생일 뿐이야.’
성좌들이 쓰는 능력도 결국 모두 마나에서 비롯된 것.
같은 마나를 이용하는 것이라면, 인간도 못할 것이 없었다.
그 운용 방식이 무식하고 무모하기 때문에 시도하지 못했던 것일 뿐.
[감히-! 지금 무슨 일을 벌이는 거냐!]
뾰족한 목소리가 들렸다.
잔뜩 성이 나 있는 목소리.
드레젠은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 건 도로 내가 가져간다.”
[건방진 것! 하등한 것이 어디서 주둥이를 놀리느냐!]
-하등?
-하~~등
-불편하구만
-인간은 모두 평등한 거시에오
신성력에 반응한 만드록스가 몸을 움찔 떨었다.
세뇌된 이유는 정말 간단했다.
일종의 고독과 비슷한 수법이었다.
‘예전엔 너무 늦게 와서 돌이킬 수 없었지만.’
시기가 좋았다.
지금이라면 이지를 찾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성력이 한데 모였다.
신성력의 가장 큰 특징은 반대되는 속성을 정화한다는 것이다.
“주사 한 방 큰 거 놔 줄 테니까, 정신 차려라.”
-ㅗㅜㅑ;;
-[제재된 채팅입니다.]
-먹잇감이 던져졌다;;
-ㅋㅋㅋㅋㅋㅋ앜ㅋㅋ 주사요 주사!
검에 모인 신성력을 다시 주입해, 세뇌의 근원을 정화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걸리는데, 도와줄 사람이 조금은 필요했다.
홀로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광명이 찾아왔다.
“저기다! 저기!”
“만드록스가!”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드레젠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시청자들 혈압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