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7화
97화 - 프로 경기는 이렇게
#1
“자! 아마존 TV 연말 시상식도 이제 대상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쟁쟁한 후보들이 많이 보이네요.”
행사가 끝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대상만을 남겨 두고 있는 상황.
해설자의 말이 들리는 무대 뒤에선 분주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프로 선수들은 마지막 점검을 하고, 메이크업을 확인했다.
“자, 이제 시작합니다. 선수분들, 감독님들 준비해 주세요!”
무전기에 대고 상황을 전파하는 스태프들이 프로 팀의 입장 타이밍을 알려 주었다.
무대에선 한껏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대상 수상에 앞서, 오늘은 정말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앗, 풍월 씨. 요즘 가장 핫한 게임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세이브 더 브락시아겠죠? 허허.”
“옆에 계신 마저씨 님은요?”
“저도 동일하게 생각합니다.”
“저도요!”
“세이브 더 브락시아 짱이죠!”
BJ들 아니랄까 봐, 영화배우들의 시상식과는 달리 가벼운 분위기였다.
여기저기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수많은 스트리머들이 인정한 만큼, 세이브 더 브락시아는 갓겜 중의 갓겜이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해설자로 나선 ‘한손에칼들고’.
“에, 아무래도 그렇겠죠. 오늘은 그 특별한 게임의 프로 선수들이 공식 석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일 겁니다.”
와아아-.
나직한 탄성이 홀을 울렸다.
프로 선수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다.
평소 게임을 잘하는 BJ들이 대거 지원했지만, 거의 모두가 탈락했다고 들었으니까.
가상 현실은 마우스, 키보드로 하는 게임과는 재능의 성질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소개하겠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줄 한국 리그의 선수들입니다.”
웅장한 음악과 화려한 조명들이 빛나며,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아아아-!
쩌렁쩌렁한 환호성이 들렸다.
모두가 저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분위기는 좋았다.
“한국 프로 리그를 이끌어 갈 125명의 선수들과, 리그를 총괄하시는 (주)브락시아의 대표! 하이디엔 님을 소개합니다!”
8 대 8로 진행되는 게임이니만큼, 프로 선수들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중앙에 있는 거대한 스크린에서 화려한 로고들이 등장했다.
용성, 하이츠, ST, KK, 와이번, 웅산, 한성 등등.
총 열 개의 팀과 각자의 주전들이 주르르륵 지나갔다.
“와, 워낙 숫자가 많으니까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네요.”
“반갑습니다. 브락시아의 대표, 하이디엔입니다.”
와아아아-!
예뻐요!
날 가져요 누나!
꺄아아악! 언니 사랑해요!
그녀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특히 드레젠의 방송에 나왔을 땐 실검에까지 올랐던 그녀.
단정하게 꾸미고 온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여신 강림, 그 자체였다.
그녀는 입술을 달싹이며 내용을 전달했다.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정식 출범은 아니지만, 그 무한한 가능성을 알려 드리는 자리니까요.”
어느새 모든 이들이 그녀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역시 엘프 로드.
만인의 이목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정식 소개는 정식 방송을 통해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은 하이츠 전자, 그리고 용성의 게이머들이 벌이는 시범 경기를 준비했습니다.”
와아-!
모두가 환호했다.
그간 궁금해했던 프로들의 경기.
얼마나 수준이 높을지, 얼마나 치열하게 싸울지 궁금해졌다.
앞으로의 흥행을 결정하게 할 관문과도 같은 무대.
하이츠와 용성의 선수들이 굳은 표정인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경기 후엔, 대규모 업데이트 소식도 함께 가져왔습니다. 특별한 게스트까지 모셨으니, 모쪼록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꾸벅 인사를 하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주역을 제외한 선수들 역시 같은 수순을 밟고 무대 뒤로 퇴장했다.
이 짧은 순간을 위해 여태까지 남아 있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했지만, 어쩌겠는가.
그들이 인내할수록 돈은 더 많이 들어오는 법이었다.
“와, 진짜! 정말! 너무너무 기대되는 한판입니다. 그럼 간단하게 자기소개 정도는 듣고 갈까요? 먼저 이쪽, 하이츠 전자의 선수들부터 만나 보겠습니다.”
하이츠 전자. 그리고 용성의 선수들은 모두 운동선수 출신, 혹은 육체를 능숙하게 쓸 줄 알면서, 게임에도 재능이 있는 자들이었다.
선수들의 이력은 제법 화려했다.
“저는 태권도 국가 대표였지만, 이번에 프로 게이머가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들 이력이 대단합니다. 그만큼 또 기대를 안 해 볼 수가 없네요. 다들 준비되셨나요?”
세팅이 끝났다는 사인이 들어왔고,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게임을 준비했다.
해설자인 은겸은 미리 준비된 대본을 들고 있었다.
그 안에 있는 내용들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특히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채 끝나 버린 대본이 그러했다.
‘지금은 집중이나 하자.’
거대한 스크린에 대기 화면이 떠올랐다.
프로 리그의 방식으로 게임을 하는 첫 번째 무대.
지금 실수한다면 영원히 구설수에 오를 것이 뻔했다.
“자 그럼, 경기 시작~하기 전에! 이 대단한 경기에 또 해설이 빠지면 이상하겠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계도 게임을 보는 재미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은겸이 또 한 번 말했다.
“근데 제가 해설을 하려니 아는 게 없어요. 그래서! 이 게임에 통달하신 분을 특별하게 모셨습니다.”
“어, 설마?”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이브 더 브락시아를 통달한 BJ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딱 한 명.
요즘 모든 프로 팀의 코치라고 불리는 자.
방송 첫날부터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자.
“모시겠습니다! 요즘 대세남이죠! 드레젠 님입니다!”
우와아아아아아-!
엄청난 함성과 함께, 붉은색 가면을 쓴 강일이 무대 위에 등장했다.
프로 팀이 나왔을 때보다 훨씬 호응이 좋았다.
요즘 BJ들의 연예인이라고 불리는 드레젠이었다.
그 인기를 대번에 실감할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드레젠이라고 합니다.”
함성이 다시 몰아쳤다.
한마디를 할 때마다 함성이 울리니,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관만 보이는 강일이 대본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신 서남길 사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일일 해설 위원으로 특별 고용되었습니다.”
“와…… 아니, 실물이 훨씬 잘생긴 것 같은데요? 키도 엄청 크시네!”
인터넷 생중계로 보는 시청자들의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실물도 키가 훤칠하니 어디 가서 꿀리는 외모는 아니었으니까.
지금 그만큼 브락시아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도 없었다.
물론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이미 드레젠 님의 실력이야 입증되었으니 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양 팀 준비되었으면 게임 시작하겠습니다. 게임의 룰부터 설명해야겠네요.”
게임의 룰은 간단했다.
직업과 속성을 정하고, 팀에서 한 명은 직업이나 속성을 두 가지 고르는 것이 가능했다.
아이템과 스킬을 세팅할 수 있었고, 역량이 된다면 정해진 스킬 외에도 사용할 수 있었다.
드레젠처럼.
“선수들의 밴픽이 시작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속성과 캐릭터들을 고르면 되겠죠.”
제일 사기적인 어둠, 그리고 물 속성을 밴했다.
직업은 단일 직업으로 엄청난 효과를 낼 수 있는 용기사가 밴되었다.
각자의 직업을 고른 뒤, 아이템, 스킬 세팅을 마치면 전투 준비 끝.
시너지는 다음과 같았다.
[용성]
[전사 2 / 용병 4 / 수인 3]
[화염 2 / 대지 4 / 나무 2]
[하이츠]
[마법사 4 / 사제 3 / 기사 2]
[나무 4 / 태양 2 / 화염 2]
“리그에서는 빛 대신 태양으로 속성이 변경됩니다. 태양은 모든 아군 공격력, 방어력을 50퍼센트 증가해 주는 시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임을 시작합니다.]
[진형을 짜 주세요.]
각자의 무기, 그리고 스킬을 세팅한 선수들이 진형을 갖췄다.
드레젠은 간략하게 진형 설명을 해 주었다.
“용성은 전체적으로 기동성을 살린 조합이고, 하이츠는 탱커를 세우고 마법으로 광역 대미지를 입히는 조합입니다.”
“와, 게다가 나무 속성은 정령을 또 소환할 수 있죠?”
“그렇습니다. 용성은 얼마나 빠르게 소환수와 탱커 라인을 뚫고 마법사들을 자를 수 있을지가 관건이네요.”
“자, 그럼 본격적으로 경기 시작합니다!”
은겸은 드레젠과 궁합을 맞추며 경기를 진행케 했다.
프로들의 경기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박진감 넘치는 대결이었다.
화려한 몸짓으로 빈틈을 파고드는 장면.
스킬들이 전장을 폭파시키는 장면.
“와…… 쩐다.”
“저게 프로구나.”
일반 유저들은 감히 따라 하지 못할 움직임을 선보이는 선수들.
공중을 날고 마나를 휘두르고 검기를 날렸다.
육중한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들이 공격을 막아 내고, 그들을 뚫으려는 움직임이 일사불란했다.
“용병은 돌아가!”
“뒤에 있는 흑마도사부터 잘라야 해!”
“수인 마크해라!”
캡슐 안, 게이머들은 서로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오더를 내렸다.
급박한 전장 속에서 오더까지 내려야 하는 상황.
판단력과 피지컬, 두 분야에서 모두 뛰어난 사람들만 프로의 문턱을 두들길 수 있었다.
[플레임 드라이브!]
콰아아아아-!
거대한 화염이 순식간에 선수들을 집어삼켰다.
직접 캐스팅한 마법이 용성의 선수들 두 명의 목숨을 앗아 갔다.
흑마도사의 속박 마법이 다시 한 번 펼쳐졌고, 마법사의 마법이 콤보를 이뤄 용성의 선수들을 아웃시켰다.
실로 깔끔한 연계였다.
“플레임 드라이브는 4서클 마법으로, 캐스팅 시간은 기본적으로 1분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45초가 걸렸죠. 아마 연습을 많이 했을 거라고 추측됩니다.”
“오오, 연습하면 캐스팅 속도도 줄일 수 있나 보군요.”
드레젠, 강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예전에 몸소 가르쳐 준 사실을 잘 이용하고 있었다.
같은 기술, 같은 마법, 같은 검술도 누가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다르다는 것.
그것이 바로 PvP의 매력이자 스타플레이어가 생길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으아아악-!]
비명 소리와 함께 1라운드가 끝났다.
경기 시간은 7분.
지루하지 않게 즐기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다.
“이번엔 마법사들이 좋은 숙련도를 보여 줬네요. 다음은 어떤 조합이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크으, 역시 프로들의 경기라 그런지 눈을 떼기가 힘듭니다.”
그렇게 2경기, 3경기까지 진행되었고, 2 대 1로 승리를 가져간 것은 하이츠 전자였다.
프로들의 경기는 수준이 높았고, 인터넷 방송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강일은 마무리되어 가는 경기를 보며, 자신도 슬슬 다음 순서를 준비했다.
오늘 이곳에서, 엄청난 떡밥을 풀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오늘 준비한 행사는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 세이브 더 브락시아를 좋아하십니까?”
네에에에-!
역시 방송인들이라 그런지 호응이 대단했다.
드레젠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 성원에 힘입어, 오늘은 제가 직접 세이브 더 브락시아의 첫 대규모 업데이트 내용을 발표하겠습니다.”
그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곧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