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3화
93화 - 자식 교육 좀 잘 시키세요
#1
하늘이 노랗게 변한 듯, 착각이 일었다.
드레젠은 어마어마한 마나의 압박을 몸으로 견뎠다.
키에엑-!
옆에서 함께 비행하고 있던 와이번들이 휘청일 정도였다.
“후작이 직접 나섰나 보군요.”
하지만, 드레젠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아까보다 훨씬 강력하고, 섬세한 마나의 구조였다.
그래 봐야 인간의 기준이고, 그래 봤자 할레단 후작가 정도의 마나였지만.
“그대로 착지해.”
[알았다. 성벽 위에 있는 놈들은?]
“알 게 뭐야. 알아서 피하겠지.”
탐지 스킬을 가볍게 활성화하니, 미니 맵에 사람 모양의 아이콘이 우르르 떠올랐다.
어마어마한 수의 마법사들.
이 정도라면 다른 영지와 전쟁을 벌여도 될 만한 수준이었다.
단 한 명, 그리고 여섯 마리의 몬스터가 뛰어들기엔 다소 무모해 보였다.
-드센세니까 가능한 일
-사이다 가즈아!
-마법사들 쫄았눜ㅋㅋㅋㅋ
-벌써 도망가는 거 봐라
시청자들은 드레젠이기에 무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방송 중, 그를 믿지 못하는 자들은 수도 없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드레젠의 행보를 지켜본 자들은 그들을 비웃었다.
아직 드레젠을 제대로 모른다고.
지금도 똑같았다.
“건방진 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혼자 오는가!”
대체 왜 자신들을 향해 돌진하는지 모를 인간과, 백색의 와이번.
할레단 후작은 분노를 담아 공격 마법을 날렸다.
전투 마법사들이 즐겨 사용하는 ‘일렉트릭 쇼크’라는 마법이었다.
콰릉, 하는 소리와 함께 지상에서 하늘로 벼락이 쳤다.
보통 마법사들과 차원이 다른 위력.
인간 중에서도 정점에 이른 수준이었다.
“아니?!”
“튕겨 냈어?”
“대체…….”
그러나 벼락은 와이번의 근처도 가 보지 못하고 튕겨 나왔고, 마법사들은 경악했다.
마법을 쳐 낸다.
말은 쉽지만, 마스터에 근접한 이들이 아니라면 엄두도 못 낼 정도의 기술이었으니까.
후작의 마법을 튕겨 냈다는 것은, 그만한 실력자라는 뜻이었다.
‘늦었다.’
후작은 입술을 씹었다.
다른 마법들이 와이번에게 달려들었지만, 모두 허사였다.
이제 와이번은 성벽 바로 위까지 도달했다.
마법을 퍼부을 시기는 한참이나 지났다.
“피해라!”
“으아아아아!”
“피해! 도망쳐라!”
[크아아아아아아-!]
하늘 위에서도 가슴이 우렁우렁한 포효 소리인데, 가까운 거리에서 들으면 어떤 느낌일까.
볼륨을 최대로 키운 콘서트장.
그곳의 스피커 바로 앞에서 일렉 기타의 스트로크를 듣는 것처럼, 마법사들의 몸이 굳었다.
어떤 이는 경련을 일으키며 뒤로 쓰러지기도 했다.
“멍청한 것들.”
콰아앙!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모를 탄식과 함께, 성벽이 후드득 부서졌다.
거구의 와이번들이 착지하는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철저하게 지어진 성벽이 아니라면, 순식간에 부서져 내렸을 것이다.
“읏차.”
백색의 와이번에서 뛰어내린 드레젠.
경비병, 마법사 할 것 없이 그에게 적대감을 표했다.
당연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난데없이 쳐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후작이 인파를 가르고 등장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흉측한 것들을 끌고 왔는가!”
“당신이 할레단 후작인가?”
“무엄하다!”
옆에서 심복들이 소리쳤다.
할레단 후작이 누군가!
브레이시스 제국을 건국한 가문의 지배자였다.
제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마법사의 면전에서 반말이라니.
“무엄은 새끼야, 성주 대 성주로 대화하고 있는데 끼어드는 네가 무엄한 거고.”
“뭐라-!”
“닥쳐라.”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는 것을 증명하듯, 후작의 말엔 날이 서 있었다.
드레젠은 비틀린 미소와 함께 후작에게 향했다.
대화가 통할 정도의 거리가 되자, 후작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검사에겐 애매한 거리이지만, 마법사들에겐 최적의 거리였다.
“적당한 말을 찾는 것이 좋을 게야.”
“당신도, 적당한 변명거리를 찾아야 할 거야.”
드레젠은 녹음용 구슬을 꺼냈다.
마나를 불어 넣으면 다시 작동하게끔 만들어진 녀석이었다.
그는 철저함을 더하기 위해, 이 녹음본을 양산하기로 했다.
“지금 이 상황을 녹음하는 건 어때?”
“하! 건방진……. 좋다.”
이미 이성을 반쯤 상실한 후작은 그러겠노라고 선언했다.
“아버지, 참으십시오. 음해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후작의 말을 들은 모나르가 식겁하며 그를 말렸다.
저자의 얼굴을 기억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도 짜증 났지만, 그 아름다운 와이번을 타고 유유히 날아가는 모습은 질투를 넘어 살의를 일으켰으니까.
“저자가 드레젠입니다.”
“그래서. 넌 빠져 있어라.”
흥분한 후작은 아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모나르는 필사적으로 그를 말렸다.
“녀석의 수에 빠지면 안 됩니다! 후작 각하!”
“어이, 거기 비실이. 뭐 찔리는 게 있나 봐?”
드레젠은 기묘하게 파고들었다.
시청자들이 모나르를 비웃었다.
-당연히 찔리쥬?
-ㅋㅋㅋㅋ아빠한테 들키면 ㅈ대쥬?
-녹음기 틀면 할 말 없쥬?
-쫄리면 뒈져야짘ㅋㅋㅋㅋ
-참교육 가즈아ㅏㅏㅏㅏ!
“네 간악한 수에 넘어갈 정도로 후작가를 얕보지 마라. 뭣 하느냐! 저자를 당장 죽여라!”
“살인을 해서 입막음을 하겠다? 일단 이건 들어 보고 결정하는 게 어떨까? 나는 또라이지만 미친놈은 아니거든?”
후작은 궁금했다.
저 멀리, 남쪽에서부터 그를 찾아올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허락했다.
고개를 까딱하는 것으로.
“아버지!”
“빠져라. 넌 끼어들 자격이 없다.”
“저놈 말을 먼저 듣는 겁니까!”
드레젠은 답답한 마음에, 그냥 녹음 구슬을 작동시켰다.
이제는 세상에서 없어졌을 지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할레단 후작가의…… 장남.
-20골드를 받았다.
“헉.”
“고, 공자님이?”
“암살 시도를 하셨다고?!”
드레젠은 다크몬드 지부장의 증표를 꺼내 흔들었다.
명백한 증거까지 가지고 왔으니, 반박할 거리는 없었다.
라는 것은 그저 시청자들의 생각일 뿐이었다.
“그래서, 내 아들이 그대를 암살하려 했다는 건가?”
“그렇지. 그럼 내가 괜히 왔겠수?”
“하찮은 이유로군. 그래서 꼴에 복수하러 온 건가? 아니면, 사과라도 받으러 왔는가?”
“협박하러 온 건데?”
협박?
후작은 코웃음을 쳤다.
이제 좀 끗발을 날린다 싶은 놈이 건방지게 협박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놈이었다.
하지만 드레젠은 귀족들의 알량한 자존심과 별것 없는 체면치레를 알고 있었다.
“난 바로 황궁으로 갈 거야. 마침 황제가 날 보고 싶어 하더라고. 이게 진실이든 아니든, 정계에 소문을 쫙 퍼뜨릴 거고.”
“…….”
후작의 이마가 꿈틀거렸다.
그렇게 말한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귀족이란 이미지를 소모하는 계급이다.
막사는 평민들이나 용병들과는 다른 존재들이었다.
“어때? 여태까지 고상한 척하는 후작가와, 그 아들내미의 치졸한 짓을 좀 퍼뜨려 줄까?”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당연하지. 난 이런 것도 가지고 있거든.”
크리스와의 여행 도중 받았던 징표.
탑으로 가기 위한 그림자 기사단의 패가 손에 들렸다.
후작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안색이 딱딱하게 굳는 것도 당연했다.
“그림자…… 기사단?”
“이 정도면 충분한 협박은 된 것 같은데.”
“……아버지. 지금 공격하면 잡을 수 있습니다.”
제아무리 그림자 기사단이라고 한들, 후작가의 역량을 뛰어넘을 수 없다.
적어도 모나르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그림자 기사단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으니까.
아들과는 달리, 후작은 그림자 기사단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원하는 것이 뭐냐.”
“아버지!”
“닥쳐라! 저런 자를 왜 암살하려고 했느냐! 왜 혼자 망나니처럼 날뛰는 거야!”
짜악!
경쾌한 소리가 퍼졌다.
모나르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얼얼한 볼을 감싸 쥐었다.
한 번도 자신을 때린 적 없던 아버지였다.
한데 지금은 달랐다.
“쟤는 좀 쪽팔린 줄도 알아야 합니다.”
드레젠이 시청자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ㅋㅋㅋㅋㅋ개 쪽팔리겠넼ㅋㅋㅋ
-죽고 싶을 거임
-ㅋㅋㅋㅋ참교육 오졌다
-후작 얼굴 시뻘게진 거 보솤ㅋㅋㅋ
-아아, 그림자 기사단은 갓이다!
“……아버지?”
“가문의 수치 같은 놈! 감히 그림자 기사단을 건드려?! 너는…… 이따가 제대로 나 좀 보자.”
“자, 이제 협박을 받아들일 준비는 됐어?”
“……원하는 게 뭐냐.”
부들부들 떠는 자기 아들을 뒤로하고, 후작은 최대한 분노를 가라앉혔다.
저자가 진짜 그림자 기사단이라면,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은 쉬운 일일 테니까.
그림자 기사단은 가짜를 살려 두지 않았다.
몇 세기에 걸쳐 사칭하는 자들은 꼭 있었고, 그들의 최후는 항상 똑같았다.
십수 년 전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었지.
“팀 파이트. 원하는 걸 걸고.”
“영광의 전당을 열자는 건가?”
“그래. 그래야 재밌지. #참고로 단판이다.”
-사실 저러면 만천하에 공개하는 거임ㅋㅋㅋㅋ
-그러넼ㅋㅋㅋㅋ
-승낙하면 후작이 호군데 승낙을 안 할 수가 없짘ㅋㅋㅋㅋ
-엌ㅋㅋㅋㅋ쓰앵님 머리 좋은 거 보솤ㅋㅋㅋ
판은 모두 깔아 놨다.
후작이 수를 써서 입막음한대도 소용없었다.
이미 드레젠은 위도우 그레인과 만나고 왔으니까.
후작은 이를 갈았다.
그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덫에 걸렸군.’
이러나저러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녀석에게 반격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날짜를 정해라.”
“계약서를 좀 쓰자고.”
드레젠은 품에서 챙겨 온 황금빛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
후작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건 엄청난 망신이었으니까.
당장에라도 건방진 자식을 때려죽이고 싶었다.
“무슨 계약이냐.”
“공정한 결투, 그리고 철저한 보상에 대한 계약이지.”
드레젠은 마나를 이용해, 계약서를 발동했다.
황금색 계약서가 둥둥 떠서, 둘 사이에 위치했다.
후작은 마법병단을 물렸다.
“경계 태세는 끝났다. 다들 일상으로 복귀하도록.”
“……알겠습니다.”
누군가가 답했고, 지휘는 빠르게 이뤄졌다.
수많은 인파가 다시 빠져나가자, 그 넓은 성의 모습이 온전하게 드러났다.
드레젠, 할레단 후작, 그 외의 심복들만 남아서 계약을 지켜봤다.
“내가 원하는 조건은 간단해. 내가 이기면 원하는 것을 뭐든지 다섯 번 들어주는 거.”
“내가 이기면 그림자 기사단을 노예로 부릴 수 있겠군.”
할레단 후작가는 거대한 가문이었지만,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다.
거대한 정보망과, 어둠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킬 수 있는 힘.
혹은 암약해서 활약할 그림자들이었다.
-헛된 망상이쥬?
-드레젠을 노예로 부린다고?
-ㅋㅋㅋㅋ어림도 없쥬?
[‘뉴비환영해!’ 님 10,000코인 후원!]
[미션 걸어도 됩니까?]
드레젠은 채팅 창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뉴비환영해.
그와 첫 방송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애청자였다.
그가 처음으로 미션을 걸었다.
[‘뉴비환영해!’ 님 10,000코인 후원!]
[팀 파이트 혼자 이기면 천만 원!]
드레젠이 희게 웃었다.
이건 거절하면 극심한 손해였다.
혹여 미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이 정도는 해 줘야 사람들이 다시는 자신을 건들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