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90화 (91/279)

제 90화

90화 - 내 앞에 데려다 놔!

#1

“끄으으으악!”

기묘한 비명이 흘렀다.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그대로 올려 찬 드레젠.

이름 모를 간부는 자신의 소중이를 잃었다는 것에, 흰자위를 드러냈다.

드레젠은 피식 웃고 풀썩 쓰러지는 간부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이, 이런 건방진 자식이!”

“죽여!”

분노한 이들이 드레젠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순순히 잡혀 줄 그가 아니었다.

뒤로 몸을 빼며, 장막을 뒤집어쓴 드레젠은 아래쪽으로 향했다.

이렇게 대놓고 기척을 드러냈다면, 그 기척을 따라가면 그만이었으니까.

-진짜 사탄의 교수님ㅋㅋㅋ

-선빵 필승 ㅇㅈ

-저 정도 선빵이면 ㅇㅈ이지

한 명을 불구로 만들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모습.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드레젠은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위쪽에서는 우왕좌왕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르르,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단원들을 뒤로하고, 드레젠은 아래쪽으로 향했다.

“대놓고 지부가 여기 있다고 홍보하네요. 할레단 후작가와 연이 있어서 그럴까요?”

-ㅋㅋㅋ정보상치고는 너무 바보 같은데;;

-교수님이 대처를 잘해서 그렇지, 우리들이었으면 바로 푹찍이었음ㅋㅋ

-고건 ㅇㅈ하지

-우리들이었으면 벌써 읍읍이 됐닼ㅋㅋ

그림자 장막이라는 사기적인 기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뿐, 일반 유저라면 이미 잡혀가고도 남았다.

물량이 우르르 쏟아지는 지하 문을 찾아냈다.

모두가 나가고, 드레젠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저 멍청이들은 위에서 놀게 놔두고, 우리는 지부장을 만나러 가죠.”

할레단 후작가는 굉장히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 면적이 경기도의 두 배 정도였으니.

할레단 후작가 안에 지부가 하나만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여기서 진짜 정보를 알아내야지.

“이딴 곳의 지부장이 위도우라고 생각되진 않으니까…….”

주머니에 잠들어 있는 포션이 활약할 때가 되었다.

비인도적이라고 하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는 더 잔인하고 비도덕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끼익-.

낡은 문을 열고 가자, 턱을 괴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밖의 애들이 그렇게 빨리 당했나?”

“그럴 리가. 적당히 따돌리고 왔지.”

“……대단하군. 그래서, 루시퍼의 눈물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고?”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퍼.

마왕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엄연한 성좌 중 하나.

철혈 같던 그의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방울을 담은 펜던트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졌다.

“그렇지. 하지만…… 꽤 무례하더군. 거래를 할 마음이 사라질 정도로.”

“우린 약자에게 관대하지 않으니까.”

약자에게 관대하지 않다.

그것은 모든 몬스터들에게도 통용되는 말이었으며, 헬라의 뜻이기도 했다.

헬라는 절대 약자에게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오히려 종처럼 부려 먹는 스타일이었지.

“그럼, 나도 그렇게 해도 괜찮겠군.”

“할 수 있겠나?”

지부장이라는 자리가 아무나 올라갈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실력에 자신 있어 하는 것도, 눈앞에 있는 애송이를 얕보는 것도, 모두 납득이 갔다.

그런데도 드레젠은 눈앞에 있는 지부장에게 실망했다.

“넌 지부장의 자격이 없는 것 같군.”

눈앞의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

실력을 숨긴 것인지, 진짜 실력인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지.

다양한 가능성을 짐작하고, 예측해서 대응하는 것 또한 지부장이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였다.

드레젠은 강자였다.

강자의 신경을 건드는 것은, 브락시아에선 목숨을 내놓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누가 누구에게 실망을…….”

“내가 한다는데, 불만 있나?”

서늘한 감촉이 지부장의 목 뒤쪽에 닿았다.

어떠한 기척도, 어떠한 움직임도 느끼지 못했는데, 마치 중간 과정도 없이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지부장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존재를 떠올렸다.

-뭐야 방금 봄?

-어떻게 이동했눜ㅋㅋㅋ

-엌ㅋㅋ 뭐야 새로운 기술인가!

-어딜 보십니까, 그건 제 잔상입니다만 후후

시청자들은 갑자기 이동한 드레젠의 모습에 놀란 반응을 보였다.

이 역시 기술 중 하나였다.

그림자 장막과 연계해서 펼칠 수 있는 이동기.

지부장은 소문으로만 듣던 기술을 겪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설마…….”

세상의 뒤에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세력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암살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라면, 단연코 한 단체였다.

그림자 기사단.

암살자마저 암살할 수 있는 암살자들의 암살자.

“내가 누구인지는 묻지 말고, 궁금해하지도 마. 아니…… 어차피 죽을 테니 상관없나.”

드레젠은 새로운 기술을 선보일 생각이었다.

암살자들을 상대할 때 아주 좋은 기술 중 하나.

그림자 기사단 중에서도 인정받은 이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스슥-.

단검으로 목을 살짝 긋자, 희뿌연 상처가 남았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꿀 생각은 없습니까?”

“있을 리가 있나. 너희들이 그렇게 외치던 논리대로 나도 움직여 주겠다는 건데.”

희뿌연 상처에선 스멀스멀, 하얀 연기가 새어 나왔다.

이 상태는 오직 같은 기술을 가진 사람만이 상쇄시킬 수 있었다.

이 힘은 마나의 변종이라고 불리는, 혼돈의 힘이었으니까.

단검에 담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마나가 증발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네 목숨은 앞으로 10분이면 끝날 거야.”

드레젠은 주머니 속에 감춰져 있던 에트몬의 입술을 꺼냈다.

이 기술의 이름은 ‘그림자 찢기’.

다양한 효능이 있었지만, 그중 드레젠이 애용하는 효과는 바로 직접 입으로 먹이지 않아도 포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

피도 나지 않으며, 통증도 없으니 알아차리기도 힘들었다.

“……젠장.”

지부장은 눈을 감았다.

한 번의 판단 미스가 목숨을 앗아 가는 상황까지 몰고 올 줄이야.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이 바닥의 생리였으니까.

뽕, 하는 소리와 함께 에트몬의 눈물이 상처를 통해 흘러 들어갔다.

“이 기술은 여러분이 탑에 가셔서, 그림자 기사단에 눌러앉은 지 한 5년 정도 되면 배울 수 있는 기술입니다. 아니면 특별한 임무를 거치거나.”

“으…….”

그림자 찢기로 만들어 낸 상처로 들어간 포션.

그 효능은 입으로 섭취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나타났다.

벌써 지부장의 눈의 초점이 흐릿해졌다.

저 멀리서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좀 막아 놔야겠군요.”

대충 물건들을 쌓아, 시간을 벌었다.

이제는 완전히 초점을 잃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드레젠은 또 다른 물건을 꺼냈다.

마법 도구 상점에서 사 온 작은 구슬이었다.

“이걸로 목소리를 담을 수 있습니다. 비싸긴 한데, 이런 일을 대비해서 쓸 만하죠.”

-녹음기네

-역시 이런 거 하나 들이밀어 줘야지ㅋㅋㅋ

-치밀함 ㅇㅈ

-원래 자존심 센 놈들은 말로 하면 안 듣짘ㅋㅋㅋ

“드레젠 암살 의뢰는 누가 사주했지?”

“……할레단 후작가의 장남.”

“이름은?”

“모나르 할레단.”

드레젠은 비릿하게 웃었다.

쿵쿵!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드레젠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얼마를 받았지?”

“20골드입니다.”

-많이도 줬네

-20골듴ㅋㅋㅋㅋㅋ

-와앀ㅋㅋ 고블린으로 뺑이 쳐도 1골드 벌기가 힘든데;;

“지부장님! 들리십니까?! 지부장님!”

“그냥 열어!”

“아, 안 열립니다.”

밖에서 슬슬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 같았다.

자, 그러면 슬슬 몸을 숨겨 볼까?

드레젠은 씨익 웃으며 그림자 장막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마지막으로 얻을 정보도 있었지만, 일단은 쓸데없는 분쟁을 피하는 게 우선이었다.

“지부장님!”

콰앙!

자욱한 먼지와 함께 단원들이 들어왔다.

예상한 대로, 이곳은 다크몬드의 수많은 지부 중 하나였다.

단원들이 지부장을 살폈지만, 이미 그는 이지를 잃어 가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젠장! 지부장님이 당했다! 당장 주변을 수색해!”

들이닥친 단원은 지부장실을 샅샅이 훑었지만, 장막 안에 숨어 있는 드레젠은 절대 찾아낼 수 없었다.

부서진 문으로 나간 단원을 뒤로하고, 드레젠은 장막을 살짝 들춘 다음 마지막 질문을 했다.

“이제 할레단 후작가에 있는 지부가 어디인지 말해.”

“…….”

달싹이는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듣고, 드레젠은 다시 장막 안으로 숨었다.

오래 지속할 수는 없지만, 빠져나가기엔 충분한 마나를 가지고 있었다.

그 밖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유유히 여관을 빠져나온 그는, 녹음용 구슬을 꺼내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이번엔 그의 옛 친우이자, 그림자의 왕이라고 불렸던 ‘위도우 그레인’을 만나러 갈 차례였다.

“오늘도 동료 공략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오오

-이번엔 암살자인가

-와 다크몬드! 와 암살자!

-심심해서 다크몬드에 관한 거 찾아보니까 엄청 큰 조직이던데;;

“맞습니다. 다크몬드는, 대륙 전체에 뻗어 있는 조직이에요. 며칠 걸릴 겁니다. 무너뜨리는 데.”

-고작 며칠?

-ㅋㅋㅋㅋㅋ패기 보소

-하지만 드센세라면 가능하지!

-뭐든지 하는 남자 아입니까

드레젠은 다크몬드의 심장부를 찌를 수 있는 무기를 알고 있었다.

위도우 그레인.

암약하고 있는 그의 간단한 도움이 있다면, 다크몬드를 전복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위도우 그레인은 반드시 그를 돕게 될 것이다.

그는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2

할레단 후작령 중에서도 가장 번성한 마을 중 하나인 그라메인.

마법의 힘으로 겨울철에도 얼어붙지 않는 거대한 강을 끼고 있기에, 무역의 중심지가 되는 곳이었다.

그곳의 하늘에, 거대한 생명체가 모습을 드리웠다.

정확히는 근처 숲에 안착한 것이지만.

[또 대기하는 거냐?]

“어, 맞아. 이제 조금 있으면 엘프들이 올 거야.”

[엘프라…… 그리운 이름이군.]

“적당히 놀아 주고 있어. 애들 조심하고.”

따분한지,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는 와이번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와이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에 즐거운 여흥이 기다리고 있다니, 기꺼이 기다려 줄 수 있었다.

엘프들과 와이번, 그것도 와이렉스는 적잖은 추억이 있었으니까.

“실버 문이 올 거다. 수장은 죽이지 마.”

[그대의 부탁이라면.]

드레젠은 와이렉스의 콧잔등을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길을 떠났다.

할레단 후작가의 숨통을 제대로 조이기 위해, 위도우 그레인을 만나야만 했다.

#3

“후작 각하. 와이번 무리가 그라메인 쪽으로 향했다는 보고입니다.”

“음…… 딱히 무슨 뜻이 있는 건 아닌가?”

“그렇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리고 무리 중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개체는 백은색의 비늘을 가지고 있다 합니다.”

후작은 보고를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드물게 그런 개체가 나타난다는 보고는 들었다.

알비노라고 하는, 돌연변이성 개체.

“그건 조금 탐이 나는군.”

“어떻게 할까요?”

“내가 직접 움직이지. 와이번은 어지간한 마법으론 꿈쩍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마 전, 마탑에서 와이번을 테이밍했다던 사내의 이야기가 잠깐 떠올랐다.

하지만 그곳과 이곳은 너무나 먼 거리였다.

‘설마 남쪽에서 이곳까지 오겠는가.’

자신의 안일한 생각이 점점 재앙을 불러들이고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할레단 후작은 눈앞에 있는 작은 이득을 쫓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