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4화
84화 - 다크몬드
#1
이졸데를 찾아가기 위해 지하 연구실로 향했다.
수많은 사람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말을 걸기가 영…….
대부분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인 모양.
이졸데는 어떻게 이런 인력들을 구했을까?
“아, 성주님!”
“엉?”
“성주님?!”
그중 나를 아는 사람이 날 발견하고, 큰 소리로 알은체했다.
그 덕분에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던 분위기가 한순간 경직되었다.
별로 좋지 못한 타이밍에 온 것 같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내가 아니지.
뚜벅뚜벅 걸어, 저 안에서 뭔가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이졸데에게 향했다.
“이졸데는 뭐 하고 있지?”
“아, 지금 핵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이제 첫 골렘이 나올 겁니다.”
“그렇군.”
거대한 지하실엔 골렘의 부품들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부품이라고 말해 봐야 팔, 다리, 몸통이지만.
옛날 만화, ‘건X’‘에 나오는 로봇 파츠들을 돌로 만들어, 따로 떼어 놓은 것 같았다.
주인공들의 기체가 아니라 적군 기체 디자인과 더 가깝지만.
-와 골렘
-근데 여기서 어떻게 나감?
-엌ㅋㅋㅋ 맞누
-지하실에서 나가면 성 다 부서질 듯ㅋㅋㅋ
“뭐, 여기는 연구실의 개념이 더 큽니다. 실제 격납고는 밖에다 만들어아죠.”
-맞네
-그래서 다 분해해 놨구나
-나름 똑똑하누
-적어도 여기서 떠들고 있는 인생 레게노들보단 낫다ㅋㅋㅋㅋ
맞아, 일반인들과 비교하면 안 될 정도로 똑똑한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지.
마법적 지식은 상당히 복잡한 술식으로 엮여 있었다.
재밌는 건, 이런 지식들의 기초가 우리가 공부하는 수학이나 과학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거.
대체 누가 이런 지식들을 발견했을까?
‘그 마스터라는 존재가 궁금하긴 한데……. 아냐아냐.’
호기심은 언제나 한 사람의 인생을 말아먹는다.
그 욕망 때문에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고, 수많은 ‘슬래시 무비’에서 난도질당해 죽는 결말을 맞이했다.
요즘 자꾸만 결심이 흔들리는 것 같은데, 나는 놀고먹고 내 집 마련해서 잘 사는 게 목표다.
무의 추종자니, 세계의 멸망이니 하는 것은 다른 놈들이 해결해 줄 거다.
“이졸데. 한창 열심이네.”
“아, 오셨어요? 데스 나이트의 핵을 연구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슬슬 격납고를 증축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 격납고가 따로 있었나?”
내 성이지만, 아직 자세히 둘러본 건 아니니까.
마법을 싫어하는 족속인 베스티안 가문에서 격납고를 만들어 뒀을 리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이건 조금 의외였다.
그래도 공성 병기는 필요하다 이건가?
“네. 찾아보니까, 병기고 뒤쪽에 창고로 쓰고 있는 격납고가 있었어요. 골렘은 없었지만.”
“그럼 그곳을 쓰면 되겠네. 이제 슬슬 회의도 시작해야겠지?”
“그게 좋겠어요.”
성주가 되면 신경 쓸 것이 한둘이 아니거든.
거대한 성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한눈에 알기 위해서는 역시 회의만 한 것이 없지.
옛날엔 내가 보고하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듣는 입장이 되었군.
그래도 보여 주는 것엔 문제가 없을 거다.
영주, 혹은 성주가 된다면 얼마나 귀찮은 일들이 따라오는지.
“이거 받아라. 그리고 쿨레드에게 내일 회의하겠다고 전해.”
“앗, 이건? 허어어억?!”
“그것도 잘 연구해 봐.”
크리스털 골렘의 파편과 핵을 주고 집무실로 향했다.
지침만 내리고 다시 움직여야 하니까.
쿨레드가 갈려 나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 정도로 퍼질 인재는 아니라고 믿는다.
“아! 네! 아 참, 그리고 오라버니에게 서신이 도착했어요.”
“아, 출발했었지? 이건 내가 가면서 확인할게.”
-까먹었네
-ㅋㅋㅋㅋㅋ
-존재감 무엇
-보급의 신 : 아무에게도 안 들킨다
-존재감 없어서 보급의 신 됐눜ㅋㅋㅋ
까먹은 건 아니지만…… 잠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알아서 잘할 테니까.
내가 개입하지 않았어도 대륙에서 끗발을 날리던 이들이었다.
그 말은, 재능이 그만큼 커다란 이들이라는 얘기겠지.
“굳이 제가 개입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알아서 잘하고 있는 사람을 건드릴 필욘 없죠.”
걸음을 옮기며 서신을 살펴봤다.
-거래처는 마탑 지부, 군노이스 자작가입니다. 조만간 마탑주와 만나기로 했습니다. 영지에도 찾아갈 겁니다.-
“마음에 드는군요.”
활약상은 직접 보지 못했지만, 충분히 잘하고 있었다.
마탑주라는 거물이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것은, 충분히 대륙 전체에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거든.
이건 나중에 논하도록 하고, 일단은 할 거부터 하자.
#2
수많은 사람들이 부품이 되어 움직이는 것.
사람들은 그것을 흔히 조직이라고 불렀다.
작게는 가족, 넓게는 한 나라까지.
적재적소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자들이 하시스 성의 대전으로 모였다.
처음 있는 회의였다.
“다들 모였군.”
“인력 좀 늘려 주십쇼.”
대뜸 쿨레드가 손을 들어 말했다.
어지간히 갈렸는지, 눈이 퀭했다.
드레젠은 피식 웃었다.
솔직히 지금 있는 인원들도 본래 하시스 성을 운용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알아서 뽑아. 자, 오늘 모이라고 한 이유는, 본격적으로 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범람에 대비하는 겁니까?”
“아니, 이제 슬슬 마족이 나올 것 같거든.”
백방으로 알아볼 생각이었지만, 아직 부족한 정보들이 많았다.
여타 회귀자가 나오는 소설에선 주인공들이 모든 사건을 알고 있었지만, 드레젠은 공백이 존재했다.
수많은 경험과 여태까지 습득한 지혜와 지식으로 그 공백을 알아내야 하는 입장이었다.
“마족요?”
“마족? 그 전설에만 나오는 종족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번에 성좌가 찾아왔다. 대비하라고 하더군.”
좌중이 술렁였다.
성좌!
그 이름은 함부로 올릴 것이 아니었다.
성좌가 말했다면,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상식이 깔려 있었다.
“성좌…… 설마 그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자, 그런고로 우리는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일단 골렘을 만들어야 하니까, 병기고 옆에 있는 격납고를 확장하도록.”
“예.”
“지금 레인저는 몇 명 있지?”
아이젠하트가 답했다.
“현재 가용 가능한 레인저는 60명입니다.”
“추가적으로 계속 육성하고 있겠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시스 성은 베스티안 백작령의 기술을 대부분 보유하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레인저를 육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습니다. 주기적으로 육성하고 있습니다.”
“계속해 주고, 하시스 성 주변 감시를 철저히 해. 마지막으로…….”
-와 회의하는 것도 오래 걸리누
-그래도 막힘없이 되게 잘하시는 듯
-학급 회의랑은 질이 다르넼ㅋㅋㅋ
-보고도 철저하고, 우리 회사도 이렇게만 했으며누ㅠㅜ
회사를 다니고 있는 시청자들은 드레젠의 회의를 보며 느끼는 것이 많았다.
자신이 다니고 있는 곳도 저렇게 체계적으로 돌아가면 좋으련만.
한동안 푸념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회의까지 마친 후,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그럼 또 다른 비약 레시피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거 좋다
-일단 석상만 클리어하면 되는 거지?
-용병들 구해서 한번 도전해 봅니다.
-이번에도 값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크리드’ 님 100,000코인 후원!]
[선입금합니다.]
-엌ㅋㅋㅋㅋ
-역시 큰손
-다른 사람들은 안 오나 보네
-요즘 큰손 많이 올 텐데
이에 질세라 코인들이 우수수 쏟아지기 시작했다.
숫자가 많으면 그만큼 큰손의 비율들도 높았다.
그중에 꽤 놀라운 아이디도 보였다.
[‘용성’ 님 500,0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TG전자’ 님 1,000,000코인 후원!]
[잘 쓰겠습니다.]
[‘ST텔레콤’ 님 1,000,0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구단주’ 님 500,000코인 후원!]
[써도 되겠습니까?]
드레젠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나 아는 단체의 이름들이 줄줄이 나왔다.
시청자들은 물론이고 드레젠 본인도 저들이 누군지 알아챘다.
-와 프로 구단ㅋㅋㅋㅋ
-미쳤;;
-도랏눜ㅋㅋㅋㅋ
-모든 이들의 코치넼ㅋㅋㅋㅋ
프로 구단!
이제 막 첫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
저들은 프로 팀 선수들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슨 수든 쓸 수 있는 이들이었다.
구단주가 허락했고, 코치들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레젠의 방송으로 모인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그때의 일 때문인가?’
사실 그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몇 있겠냐마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자신의 얼굴을 알아도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있겠는가.
무엇보다 하이디엔의 비호를 받고 있는 드레젠, 강일이었다.
현대의 그 누구도 건들 수 없으리라.
“후원은 감사합니다. 저는 누구나 볼 수 있는 방송을 지향하고 있으니, 활용은 마음대로 해도 됩니다.”
-크으
-여윽시 혜자;;
-그는 갓;;
-드센세는 진짜 천사인가ㅜㅜ
드레젠은 씩 웃으며 연구실로 향했다.
그의 뒤로 샤페론이 붙었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정말 빠르게 재료들을 공수해 왔다.
레시피는 아주 간단했다.
“이제 완성할 때까지 방해하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명해 놓겠습니다.”
샤페론은 다시 업무를 위해 사라졌다.
연구실엔 드레젠 혼자.
이곳에서 비약과 포션을 만들 수 있었다.
치익-.
마법의 힘으로 인해 자동으로 돌아가는 물건들이 보였다.
[번개의 돌]
[??] [??] [??]
“번개의 돌은 마나 각성, 번개 속성 강화, 번개 저항력 강화라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법사한테도 좋을 듯
-고무고무닝겐 되는 건가?
-여러모로 좋은 아이템이누
시청자들의 평가는 비슷했다.
좋은 물건이라는 것.
직업군을 가리지 않고 번개에 대한 저항력과 속성 강화를 해 주는 것.
상당히 잠재력이 높은 물건이었다.
“여기서 끝나면 단순히 좋은 물건이겠지만, 이게 있으면 히든 옵션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준비해 오라고 한 것 중 하나.
단순한 철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꽤 귀한 물건이었다.
아주 작은, 시계에 들어가 있는 부품만큼 작은 금속 하나.
드레젠이 핀셋으로 들어 올린 그것이, 번개의 돌에 잠들어 있는 진짜 힘을 이끌 수 있는 ‘키’였다.
[오리하르콘]
[마나 전도율 상승] [??] [??] [??]
“오리하르콘은 마나 전도율 상승이라는, 여러분도 흔히 아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소량만 섞어서 무기를 만들어도, 마나의 위력이 뻥튀기가 되는 기적을 낳죠.”
-저거 나 아는 거임
-전설의 금속이지
-ㅋㅋㅋ저거 모르는 사람 없지 ㅇㅇ
-진짜 코딱지만 하누
“놀랍게도 이만큼의 가격이 5골드입니다. 엄청 비싸죠?”
-ㅈㄹ;;
-개 비싸눜ㅋㅋㅋㅋ
-다이아보다 비싼 것 같은데;;
-도랏;;
드레젠은 비커 안에 모든 재료들을 때려 넣었다.
그리고 불을 켜고, 잠시 밖을 구경했다.
평화로운 일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몬스터의 위협이 엊그제 발생했는데, 주민들은 밝은 얼굴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안전 불감증인 건지, 아니면 익숙해져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건지.’
부글부글 소리가 났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난 소리였다.
드레젠은 흘끔, 뒤를 돌아봤다.
비커 안에서 넘쳐흐를 것같이 부풀어 오르는 비약이 보였다.
-않이 그래서 다른 효능은 뭐임;;
-이 아재 또 말 끊누
-앜ㅋㅋㅋㅋ진짜 빨리 말해!
-ㅁㅎ
-ㅁㅎ!
-ㅁㅎ!
채팅이 수도 없이 올라왔다.
파직-.
드레젠은 듣기 좋은 스파크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아, 잠시 멍 때리느라 얘기를 못 해 줬군요. 숨겨진 효능은, 바로 섭취 시 해당 속성 마나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겁니다.”
[‘크리드’ 님 100,0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용성’ 님 500,000코인 후원!]
[잘 쓰겠습니다.]
…….
어마어마한 후원 세례가 다시 한 번 줄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