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3화
83화 - 성좌
#1
“……당신.”
드레젠은 반사적으로 주변을 훑었다.
주변은 온통 넝마가 되어 있었고, 골렘으로 보이는 무더기 위에, 거구의 남성이 앉아 있었다.
지구인이라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특징들.
그의 허리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망치에서, 약한 전기가 튀었다.
“너로구나. 마스터가 말한 놈이.”
“왜…….”
-??
-저거 누구임?
-드센세 당황했는데?
-엉?
-뭐든지 아는 남자 어디 갔냨ㅋㅋ
-?? 저거 토르 아님?
치렁한 금발.
남자답게 생긴 얼굴에, 근육질 몸매.
허리에서 연신 빛을 뿜어내고 있는 망치까지.
모든 특징이 신화에 나오는 한 인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켜보러 왔다. 안쪽에는 제 주인도 몰라보는 녀석들만 있어서 말이지, 내가 정리해 뒀으니 안심해라.”
그가 내뱉은 말에도, 번개가 묻어 나오는 것 같았다.
가만히 기세를 죽이고 있음에도 공기가 팽창하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추적술을 켠다면, 아마 눈이 멀어 버리고 말 것이다.
압도적인 마나의 색채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왜 성좌가 이곳에 있는 겁니까?”
“이곳은 우리가 꽤 아끼는 차원이자, 세계다. 그런데 무의 추종자, 그놈들이 노리고 있기도 하지.”
“그렇다면 성좌들이 강림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평소 드레젠은, 성좌들에게 불만이 많았다.
그들의 힘은 홀로 세상을 파멸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대했다.
단 한 번.
스텔라를 제외하면 이곳에 강림한 적은 없었다.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와서 해결하면 될 것을, 왜 자신 따위를 이곳에 보냈단 말인가.
“우리도 그러고 싶지만, 꽤 역량이 부족하거든. 다른 곳을 막고 있기에도 벅차.”
아리송한 말이었다.
성좌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남자는 눈을 한 곳으로 흘겼다.
-지금 캠 본 거 같은데
-오 진짠가?
-ㄹㅇ 잘생겼누
-와! 성좌!
그 후, 드레젠에게 시선을 돌린 그가 말했다.
“자세한 얘기는 보는 눈이 많아서 할 수 없을 것 같군. 이걸 줄 테니까 나중에 관문 군주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라.”
남자는 자신의 허리띠를 풀어, 드레젠에게 넘겨주었다.
다 낡아 빠진 벨트처럼 보였지만, 이건 성스러운 물건으로 취급될 정도의 기보였다.
남자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시간이 벌써 다 됐군. 꼬맹아, 잘해라.”
“토르! 전투에 나가신다면서, 이걸 줘도 되는 겁니까?”
“그 정도야, 마스터가 또 하나 그려 주겠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토르는 사라졌다.
드레젠은 멍하니 자신의 손에 들린 가죽 허리띠를 바라봤다.
이런 엄청난 걸 얻게 될 줄이야.
‘이건 팔아도 되겠는데?’
“어…… 이건 저도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네요. 저게 성좌입니다.”
-포스 지리더라
-ㅋㅋㅋㅋㅋ드센세 당황한 거 커엽자너
-처음 봤쥬? 당황했쥬?
-오늘부터 또르 정주행한다
정말 당황했다.
그가 사라지자, 공기 청정기 수백 대를 틀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턱 막히던 압박감이 없어졌다.
던전 역시 자동으로 클리어가 되어 있었고.
드레젠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건…… 나중에 부계정으로 공략을 따로 진행하도록 할게요.”
이미 클리어가 되어 버린 던전을 복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토벌전같이, 특정 던전을 반복해서 돌 수 있는 기능이 있다곤 하지만 그것도 재사용 대기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건 뭐임?
-토르 벨트면 그거 아닌가
-메긴교르드!
-그거 맞지 지렸닼ㅋㅋㅋ
-저걸 그냥 준다고?
드레젠은 아이템을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헛웃음을 지었다.
[메긴교르드]
[방어력 +250]
[스킬 : ‘하이 부스터 스트렝스’ 사용 가능]
[하이 부스터 스트렝스]
[2분 동안 물리 공격력 +150%]
[모든 신체 능력 대폭 상승]
[속성 - 빛 발동]
“이건 뭐…… 사기템이네요.”
방어력 250이면 어지간한 풀 플레이트 갑옷보다 높은 수치였다.
그냥 플레이트가 아닌, 마법을 덕지덕지 바른 수준의 갑옷이 기준이었다.
안쪽에 맬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으니, 방어력 중첩이 가능했다.
“이건…… 팔고 싶은데 못 팔겠네요.”
-10억 예상합니다
-ㅋㅋㅋㅋ이거 하나 있으면 맨몸으로도 딴딴해지겠누
-무슨 방어력이 250이옄ㅋㅋㅋ
-사기네;;
진짜 사기적인 방어구였다.
아쉬운 점은 현금으로 만들 수 없다는 점.
이걸 가지고 토르를 다시 만나러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이건 장착하도록 하고……계속 진행할게요.”
숭숭 뚫려 있는 벽.
처참하게 부서진 골렘들.
지금 드레젠도 꽤 버거울 정도의 수호자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돌덩이일 뿐이었다.
“이놈이 보스입니다만…….”
거대한 푸른색 골렘.
10미터가 넘어가는 엄청난 크기.
단단해 보이는 몸체의 중앙엔, 붉은색 핵이 존재감을 발휘했다.
드레젠은 보석을 향해 다가가며, 설명을 이어 갔다.
“크리스털 골렘이죠. 다양한 보석들을 융합해서 더욱 단단한 경도를 만들었습니다. 다이아몬드 정도로 단단하다고 하는데…… 그거까진 아니더라도 제법 단단합니다.”
검을 주 무기로 쓰는 이들이라면 어지간히 고생해야 하는 보스였다.
둔기나 화염 마법으로 표면을 물렁하게 한 다음 잡아야 하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처참하게 부서져 있을 줄이야.
“본래는 여기서 플레이 타임 다 갉아먹을 줄 알았는데…… 잘됐네요.”
제한 시간이 있는 게임이라 이런 제약이 있었다.
나중엔 긴 던전 안에서는 페널티를 완화해 준다고 하던데, 아직까진 아니었다.
크리스털 골렘의 핵은 엄청난 효능을 지닌 아이템이었다.
[크리스털 골렘의 핵]
[??] [??] [??]
[??] [??] [??]
무려 여섯 가지의 효능이 있는 아이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아이템 중 하나였다.
이걸 이졸데에게 가져다주면 엄청난 녀석을 만들어 주겠지.
“이것도 좀 가져가야 합니다.”
크리스털 골렘의 파편도 가져갔다.
참고용 샘플로 적절한 파편이었다.
자, 이제 진짜 볼일은 끝났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2
성좌라니.
나는 던전을 나가면서 고민에 잠겼다.
갑자기 성좌가 나타나?
역사에는 절대 없었던 일이었으니까.
단순히 게임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음?”
던전을 나오자마자, 기척이 느껴졌다.
다크몬드의 떨거진가?
생각을 더 하고 싶은데……. 이런 곳에서 덤벼 올 줄은 몰랐는걸.
여기까지 고민해야겠다.
“일단 암살자부터 처리하겠습니다.”
작게 말하고 장막을 뒤집어썼다.
녀석이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까지 왔는데 보고도 제대로 못 받았을 테니, 당연하겠지.
꽤 실력 있는 암살자인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이런 보고는 없었잖아!”
작게 내뱉는 푸념이 들릴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다.
느껴지는 마나는 마스터보단 아래.
그렇다고 뜨내기는 또 아니었다.
암살자 특성상, 드러난 마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거다.
일격에 처리해야지.
“일단 피해야겠……. 크억!”
롱 소드를 꺼내, 녀석의 하체를 노렸다.
황금색 폴리곤이 정확하게 타격이 들어갔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비명을 지르고 있는 녀석에게, 장막을 들추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대놓고 있으면 어떡하냐.”
“크으윽…… 네 녀석…….”
“짜잔, 이게 뭐게?”
녀석에게 품에 있는 인장을 보여 주었다.
아마 이 정도 실력을 갖추고 있는 자라면, 그림자 기사단의 증표를 알아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눈이 크게 변했다.
고통을 잊은 듯한 모습이었다.
“너…… 그림자 기사단……. 크윽, 그렇군.”
“잘못 건든 거지. 넌 뭐지? 반월급인가?”
“흐…… 알려 줄 수 없다. 죽여라.”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알아낼 생각도 없었다.
다크몬드 녀석들을 한바탕 뒤집어 놓으면 알겠지.
-깰끔
-그림자 장막 꼭 얻고 싶습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ㅜㅜ
“그림자 장막이라……. 그럼 이다음 콘텐츠는 다크몬드를 때려 부수고 그림자 기사단을 보러 가는 방법으로 하죠.”
[‘뉴비환영해!’ 님 10,000코인 후원!]
[쓰앵님 과외비 충전해 놓겠습니다.]
[‘그림자조아’ 님 10,000코인 후원!]
[하악! 사, 사, 사탕해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림자 장막을 얻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이제 슬슬 루트를 밝혀도 되겠지.
초반 성장은 거의 다 끝났을 테니까.
그나저나…… 왜 성좌가 나타난 걸까.
아니면 그저 이벤트?
부계정으로도 한번 와 봐야겠군.
“자, 볼일은 다 봤으니 자동 진행을 돌려놓겠습니다. 잠깐 쉬는 시간을 갖죠.”
이제 영지로 돌아갈 일만 남았으니까.
잠깐 쉬어 볼까?
#3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하이디엔에게 말을 해야 할까?
‘고민이네.’
일단은 물어봐야 할 것이 생겼다.
과연 저들은 성좌를 구현했을까?
그 거대한 힘을 정말로 게임에 실어 놨을까?
애초에 마법으로 구현될 상대가 아닐 텐데.
“복잡하네.”
아직 여유가 조금 있으니 물어봐야겠다.
톡으로 하이디엔에게 연락을 넣었다.
지금 방송을 안 보는 것 같단 말이지.
바쁜가.
-하이디엔, 성좌도 구현해 놨어? 오늘 던전에서 토르가 나오더군.
그렇게 얘기해 두고, 다시 게임으로 들어갔다.
정말 당황했다.
설마 진짜 그곳에서 토르가 나올 줄이야.
그리고 마스터…… 대체 뭘까?
설마 날 이세계로 보낸 이라면…….
“아아, 귀찮다. 이제 이런 거에 엮이긴 싫다고.”
나는 이제 정말 하기 싫다.
누군가의 욕망과 이득을 위해서 움직이는 꼭두각시는, 절대 하기 싫다.
자, 이제 신경 끄고 다시 게임에 집중하자.
나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거라고.
“자, 도착했으니 시작하겠습니다. 이제 영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던져 줍시다.”
-노예들!
-노예 공장 on!
-허허 좋습니다.
-골렘 보겠누
“으으,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했다. 그래도 잘 쫓아오고 있어.”
“다녀오셨습니까.”
크리스 녀석, 꽤 잘 따라오고 있었다.
영지, 성에 도착하자 샤페론이 반겨 주었다.
크리스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짐을 정리하러 떠났다.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여기, 내가 준비해 오라는 재료들을 준비해.”
“알겠습니다.”
샤페론의 눈에는 총기가 가득했다.
기대가 안 되는 것이 이상한 거겠지.
잃어버린 마나를 되찾는 것.
다시 말해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였다.
“정말, 정말 제 마나가 다시 돌아오는 겁니까?”
“이걸 구하려고 꽤 고생했거든.”
샤페론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뭔가를 잔뜩 참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다 큰 어른이 이러고 있으니 좀 보기 그렇단 말이지.
녀석의 어깨를 툭 쳐 주고는 말했다.
“얼른 재료나 구해 와.”
“……평생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건 당연한 거고.”
앞으로 크리스와 함께 내 집을 지킬 충실한 가드가 되어야 하니까.
페베스 검술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그냥 놔둘 생각은 없었다.
앞으로 신명 나게 굴려야지.
그 전에, 먼저 처리할 것들을 처리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