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화
78화 -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1
훈수.
혹은 꼰대.
뭇 사람들이 심하게 참견하는 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오죽하면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유행을 탈까.
그만큼 누군가에게 참견하는 일은 사회적으로 곱지 못한 시선을 받는 중이었다.
‘그래서 안 하려고 했는데.’
브락시아에서도 과한 참견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행위였다.
하지만 그 참견하는 이가 마스터라면?
혹은 은거하고 있던 고수라면?
기연을 날려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럼 제가 시범을 보여 드리죠. 거기 용성 선수분? 잠시 저 좀 도와주실래요?”
“네? 어…….”
“그쪽이 누군 줄 알고 도와 드려야 합니까?”
브락시아에서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었다.
자신의 실력 일부를 먼저 보여 주고, 가르침을 청하게 만드는 것.
참견은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강일은 똑같이 해 주려고 했다.
“저 음…… 일단 그쪽 구단주에게 코치 영입 제안을 받은 사람입니다만.”
“네?”
하이츠 전자 선수가 물었고, 강일이 답했다.
그제야 사람들의 시선이 탐색 모드로 들어갔다.
강일은 키가 크고, 골격이 좋았다.
마나가 회복됨에 따라 살과 근육이 붙었다.
얼핏 보면 운동하는 사람으로 보일 정도였다.
‘진짜?’
“어머, 여기 계셨네요. 선생님.”
구원 투수가 나타난 것도 그때였다.
강일은 모르는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보자마자 메시지 마법을 날렸다.
[반갑습니다. 용사님. 곤란해 보여서 주제넘게…….]
강일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무언의 승낙으로 판단한 여성 직원이 능청스럽게 연기를 이어 나갔다.
“이분은 대표님의 부탁으로 참관하고 계셨습니다. 미처 전해 드리지 못해 지금 막 왔습니다만…….”
“아, 그, 그래요?”
매니저의 처지가 난처하게 되었다.
선수들의 눈빛도 반짝반짝 빛났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코치직을 제안받았을 정도라면 그 실력이 뛰어나다는 얘기였다.
강일은 캡슐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래도 몇 명은 가르쳐 놓으면 제법 좋은 퍼포먼스가 나올 것 같아서 그러는데, 저랑 한번 해 보실래요?”
“제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
용성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선수 한 명이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인상이 날카롭게 생긴 선수였는데, 자존심이 강해 보였다.
강일은 그들의 기를 확 죽여 놓을 생각이었다.
프로?
프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투기장에서도 그랬지.’
지하 투기장.
그곳에서도 프로로 활동하는 녀석들이 끗발 좀 날리곤 했었다.
어지간한 퍼포먼스로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었다.
압도적이고 시원하게.
대리 만족을 넘어, 경외심이 일도록 해내야 하는 것이 프로였다.
“다 들어오세요.”
“네?”
“8 대 1로 붙어도 안 지니까, 다 들어오세요.”
“허…….”
선수들의 눈빛에 적대감이 어렸다.
분명 무례한 도발이었다.
강일은 멈추지 않았다.
“제가 지면 그쪽 팀에 들어가서 1년 동안 봉사하죠. 녹음해 둬도 좋습니다.”
“그거 정말입니까?”
“뭐, 가정부 하나 고용하는 셈 치면 되겠죠.”
선수들이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매니저가 나섰다.
나쁠 것 없는 조건이었다.
“그거, 다 녹음하겠습니다. 나중에 계약서도 정식으로 작성할 겁니다. 얘들아, 한 판만 해 주자.”
“……알겠어요.”
떨떠름한 표정으로, 선수들이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강일 역시 캡슐 안으로 들어가, 캐릭터를 살펴봤다.
특수 커스텀이 되어 있는 캡슐이라 그런지, 캐릭터가 정해져 있었다.
‘일단 전사로 할까.’
저쪽은 시너지까지 있는 상황.
하지만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캐릭터 레벨은 99.
마나와 체력은 클래스마다 달랐다.
[무기와 방어구를 선택해 주세요.]
적당한 무기와 적당한 방어구를 골랐다.
저들의 합격술이 얼마나 대단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1,000이 넘어가는 마나를 쉽게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픽 웃으며, 그는 투기장으로 향했다.
“진짜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저거 기본 세트 아니야?”
“진짜, 기분 개 같네.”
프로 선수들은 저마다 불평불만을 내놓았다.
생생하게 화면으로 전달되는 와중, 매니저가 새로 나타난 직원에게 물었다.
이소영이라고 하는, 웬만한 아이돌 뺨치는 미모의 여직원이었다.
매니저가 넌지시 물었다.
“저 사람, 대체 누굽니까?”
“저희에게 도움을 많이 주시고 계신 분입니다. 그 이상은 말씀드릴 수 없네요.”
“저 사람이 프로들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소영은 그를 한번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그녀의 입꼬리가 옅게 올라갔다.
가렸던 귀가 씰룩이는 느낌이었다.
“두 팀이 모두 덤벼도 안 될 겁니다. 저분에겐.”
“…….”
매니저는 할 말을 잃었다.
그사이 경기가 시작되었다.
매니저는 이소영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무슨 영화도 아니고, 1 대 8을 어떻게 이겨?
하지만, 화면에서 나타나는 장면은 그의 고정 관념을 송두리째 부숴 버리는 중이었다.
#2
당황스러웠다.
아니, 공포심이 일었다.
현실이었다면 이미 동료들은 모두 죽은 목숨이었을 테니까.
“왜, 이게 끝입니까?”
“으아아아아-!”
좋은 템으로 무장했고, 최상의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공격해도 눈앞의 남자에겐 공격을 맞힐 수가 없었다.
압도적으로 밀어붙일 줄 알았다.
“으악!”
하지만 나가떨어지는 것은 용성의 선수들.
동료들이었다.
기묘한 자세로 검을 흘려 내고, 이상한 장막 같은 것으로 마법을 방어했다.
분명 스킬은 보정이 되어, 정해진 것만 쓸 수 있다고 했는데…….
“파이어볼-!”
투콰아앙-!
뒤에서 필사적으로 캐스팅을 한 마법사가 파이어볼을 날렸다.
거대한 화염 구체가 대각선 아래로 떨어졌다.
마치 혜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열기가 화악 느껴졌다.
“아직 멀었네.”
강일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탓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프로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은 게임 내의 NPC밖에 없었다.
환경 자체가 열악한 상황.
마나를 몸에 두르고, 기본적인 기술을 사용해서 화염구의 본질을 보고 갈랐다.
“뭐야…….”
“X발! 이게 말이 돼?!”
콰아아아아-!
두 개의 폭발이 강일의 뒤에서 일어났다.
파이어볼을 가를 수 있다고?
전사 클래스가?
마법도 안 통하고, 검술은 그야말로 차원이 달랐다.
‘절대 이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같은 마나를 써도 누가 쓰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정해진 대로 스킬만 쓰면 나간다……. 이건 평범한 RPG가 아니에요.”
싸늘하지만 정감 가는 말투였다.
꿀꺽.
이젠 둘밖에 남지 않은 선수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대로 계속할 겁니까?”
기본 세트를 입고, 가장 기본적인 검을 들었다.
그런데 홀로 여덟 명의 프로들을 때려눕혔다.
선수들을 비롯해 그 공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숙소의 허드렛일을 책임질 사람을 구했다고 좋아했던 사람들은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졌습니다.”
프로의 입에서 힘들게 나오는 말.
게임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압도적인 피지컬.
이름 모를 사내가 보여 준 퍼포먼스는 정점, 그 자체였다.
캡슐에서 나온 강일이 평가를 내렸다.
“그래도 일반인들보단 훨씬 낫네요. 어디서 수련하고 있죠?”
“선수마다 다릅니다.”
각자의 장기를 살려 NPC들에게 수련을 받고 있다고 했다.
아직 제대로 된 틀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훈련 방식이 묘했다.
하지만 재능 있는 자들을 선발했으니 그 상승 폭은 확실하리라.
“실례지만 프로 선수 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네. 재미없어서요.”
“아…….”
예비라곤 하지만 프로 선수 여덟 명을 홀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지금 프로판에 데뷔한다면 지각 변동을 넘어서 황제로 군림할 수 있는 재목이었다.
하지만 당사자가 재미없다고 하니,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농담입니다. 다른 이유가 있지만, 굳이 프로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아하하, 그, 그렇습니까?”
“마법사 선수들은 콘스텔라에 있는 마탑에서 배우는 게 빠를 겁니다. 재능 있는 자들은 바로 가르쳐 주거든요.”
“아, 감사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강일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다.
암묵적으로 참견이 허용된 것이다.
몇 가지 조언을 해 주고, 강일은 스크림을 더 지켜봤다.
그사이 회의가 끝났는지 하이디엔이 17층으로 내려왔다.
“다들 진행은 잘하고 계십니까?”
“아! 대표님! 예, 진행은 순조롭게 되고 있습니다.”
“강일 님이 보시기엔 어땠어요?”
그녀의 시선이 바로 강일에게 향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강일을 바라봤다.
하이디엔.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차가운 대표의 온상.
걸 크러시가 어떤 건지 보여 주는 전형적인 사람이었다.
“빡시게 노력하면 흥행은 할 것 같은데.”
“다행이네요. 저 회의도 끝났는데 모셔다드릴게요.”
“마음대로 해라.”
하이디엔은 프로 리그 관계자들에게 인사했다.
기품이 넘치는 행동이었다.
강일과 하이디엔, 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나란히 걸어 사라졌다.
그들이 떠나간 후,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바, 방금 봤냐?”
“난 대표님이 저렇게 웃으시는 거 처음 본다.”
“진짜 뭔가 있는 거 아니야?”
“대단한 사람인 건 확실해.”
“설마…… 그 드레젠 아닐까?”
현재 세이브 더 브락시아라는 게임을 언급하면 반드시 연상되는 사람.
프로 선수들의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드레젠.
불쑥 나타나 압도적인 힘을 보여 준 강일을 드레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왔다.
“어,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
“맞네! 드레젠이 회사가 공인한 방송인이라면서.”
“오…… 그래서 구경 왔는데 한 수 보여 준 건가?”
소문은 점점 살을 더해 갔다.
하이츠 전자뿐만 아니라 용성까지.
드레젠의 압도적인 능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그…… 신상 좀 알아볼까요?”
“그러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이소영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일은 회사 차원에서 철저하게 관리해 줘야 할 대상이었다.
뜨내기 같은 인간들이 감히 그분의 사생활에 침입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녀가 생긋 웃으며 살벌한 말을 내뱉었다.
“회사 안에서 당당하게 불법을 저지르겠다고 말씀하시다니, 제정신입니까?”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강일 님은 회사에 깊게 관여되어 있으신 분입니다. 회사 차원에서 보호하고 있는 분이죠.”
“아…….”
브락시아가 보호하고 있다면 그 누구도 건들 수 없었다.
결국 모인 자들은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한 명.
하이츠 전자의 감독을 제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