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화
76화 - 깜짝 브이로그
#1
통장에 들어온 돈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고작 2주가 조금 넘게 방송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엄청난 돈을 벌 줄이야.
자그마치 6천만 원이었다.
이제 세금 혜택을 받는 사람에서 세금을 내야 하는 사람으로 신분이 변한 것.
‘이렇게 돈을 많이 번다면…… 다양한 준비를 해야겠는걸.’
꿈만 같았다.
방송하고 첫 수입이 자그마치 6천만 원이라니.
1년 동안 그렇게 많은 알바를 해도 벌 수 있을까 말까 한 금액이었는데.
브락시아는 확실히 그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지옥 같은 곳이기도 했지만, 마냥 욕할 수만은 없었다.
세상 자체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기도 했으니까.
“하이디엔, 바쁘나?”
“아니요. 강일 님 방송 보고 있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내일 잠깐 본사에 가고 싶은데, 괜찮을까?”
“아…… 그 브이로그 말씀하시는 거죠?”
하이디엔이 맥을 바로 짚었다.
라이징 스타.
혜성처럼 등장한 방송 스타기 때문에 방송계의 생태계를 완벽하게 교란하는 중이었다.
이런 자들을 가만 놔둘 사람이 있을까?
기득권층은 자신의 이익을 나누기 꺼려 한다.
고금을 막론하고 발생하는 일이었다.
“응, 트집 잡힐 만한 일은 안 하는 게 좋지.”
“같은 생각이에요. 그럼 오늘 준비를 해 놓을 테니까, 내일 점심시간에 오시는 건 어떠십니까?”
“12시까지 갈게.”
준비해 두겠다는 말을 끝으로, 강일은 통화를 마쳤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야방’, 야외 방송을 하기 위해서라면 그에 맞는 장비가 필요했다.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고, 핸드폰을 고정할 수 있는 거치대와 보조 배터리 정도였다.
“그 흔한 보조 배터리도 없었구나.”
어지간히 빈곤한 삶을 살았던 것을 새삼 상기했다.
오늘은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지 않아 보였다.
#2
다음 날.
화창한 날씨에 힘입어, 강일은 낡은 패딩을 걸치고 밖으로 향했다.
로켓 배송이라는 것을 처음 이용해 본 그는, 이른 아침 도착해 있는 물품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배달의 민족, 대한민국.
“강일 님!”
“응? 네가 여길 왜 왔어?”
고급 세단.
그리고 저번에 보았던 코트를 입고 있는 하이디엔이 그의 집 앞에 서 있었다.
날씨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는지, 새하얀 입김을 내뱉는 얼굴에 홍조가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그를 보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모시러 왔죠. 여기서 본사까지 한참 걸립니다.”
“그 한참 걸리는 곳을 아침부터 왔다 갔다 할 생각을 한 거네?”
“저는 계약을 잘 이행하고 있을 뿐이랍니다.”
그녀는 조수석의 문을 열어 주며 말했다.
강일은 피식 웃으며 차 안으로 들어갔다.
하이디엔은 운전 역시 능숙하게 했다.
그녀가 강일을 데리고 간 곳은 거대한 건물 앞이었다.
“여긴 또 왜 온 거야?”
“강일 님, 설마 이런 옷을 입고 방송하실 건 아니죠?”
강일 역시 외모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배운 것이 아닌, 브락시아에서 배운 덕목 중 하나였다.
덕목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었지만, 위치에 맞는 무언가를 항상 보여 줘야 했다.
용사는 직접 싸우는 직업이기도 했지만, 보여 주는 역할도 해야만 했다.
‘맨날 옷 입는 데만 30분씩 걸렸지.’
그의 전용 시녀들이 이것저것 맞춰 보는 바람에 행사에 갈 때마다 고역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이 왜 필요하냐고 할지도 몰랐다.
명품은 쓸데없는 허세라는 둥의 말들.
능력 없는 사람들이 그러면 몰라도, 할 땐 해야지.
“그래서 여길 데려온 거야?”
“네! 미리 직원들에게 말해 뒀어요.”
그녀는 선글라스를 쓰고 우월한 키를 이용하여 주변의 분위기를 사로잡았다.
평소에는 존재감을 가리는 간단한 마법을 썼지만 이곳에선 아니었다.
국내 사치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백화점, 갤러리아에 그녀가 강림했다.
“어서 오십시오, VIP관을 준비해 뒀습니다.”
갤러리아는 대한민국 사치의 끝판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상품이 준비되어 있었다.
작게는 몇십만 원짜리 셔츠부터, 많게는 수억짜리 주얼리, 혹은 액세서리까지.
몇천만 원은 우습게 쓰는 자들이 모인 이곳의 VIP.
하이디엔의 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해 주는 대목이었다.
“고맙습니다.”
두 사람은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직원을 따라 갤러리아의 지하로 향했다.
갤러리아는 얼마 전, 비밀리에 증축 공사를 진행했다.
본래 두 개의 건물이 있고, 압구정 로데오라는 지하철역에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다.
그 중간에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을 뚫어서 확장 공사를 한 것.
귀빈 중의 귀빈만 올 수 있는 곳이었다.
“들어가시죠.”
비밀 문이 열리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직원들이 나타났다.
여성이 대부분, 그리고 남성이 두어 명 정도 있었다.
머리가 허벅지에 닿을 정도로 인사를 하며 그녀를 반겨 주었다.
“일단 로고가 별로 튀지 않는 옷들로 준비했습니다.”
“강일 님? 골라 보세요.”
“음…… 그럼 소소하게 한 벌만 사 볼까?”
직원들은 강일을 보고 속으로 의문을 가졌다.
아무리 좋게 봐 줘도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절대 명품이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말해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손님이었다.
‘얼굴은 좀 생겼긴 한데…….’
‘옷이 너무 낡았네.’
‘회장님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인가? 회장님이 너무 아까운데?’
직원들이 그런 생각을 하든 말든, 강일은 옷을 골랐다.
최대한 티가 나지 않으면서도 원단이 좋고, 수준이 높은 옷.
대문짝만 하게 로고가 박힌 옷보단, 부담스럽지 않게 입을 수 있는 옷을 선호했다.
“그거밖에 안 살 거예요?”
“엉? 이거면 됐지 뭘 그래.”
“그러면 제가 뭐가 돼요? 오랜만에 돈 좀 쓰려고 그랬는데.”
또각-.
그녀의 하이힐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강일의 옆으로 다가온 하이디엔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재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이것도 잘 어울리겠고…… 이거랑, 이것도…….”
“…….”
강일은 멍하니 그녀가 고르는 옷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명품이 주렁주렁 걸려 있던 행거가 텅텅 비어 갔다.
참고로 강일의 키는 187cm.
어지간한 모델 뺨칠 정도로 비율이 좋았다.
물론 ‘만들어진’ 몸이긴 하지만.
“일단 이것만 입고 가시고, 나머지는 택배로 부쳐 드릴게요.”
“이거 다 얼마냐?”
“몰라요. 관심도 없고.”
그녀는 생긋 웃으며 직원들에게 택배를 부탁했다.
이제 곧 연말 시상식이 다가온다.
드레젠, 강일은 당연히 초대 순위 1순위였다.
행사마다 똑같은 옷을 입는다면 뒷말이 나올 확률도 있었다.
하이디엔은 그런 일들을 철저하게 방지하기 위해서 강일에게 소소한 선물을 했다.
“총 138,500,000원입니다.”
반올림해서 일억 사천만.
하이디엔은 검정색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일시불로.”
“……결제되셨습니다. 영수증 드릴까요?”
“아니요. 자, 이거 입고 나오세요.”
싸늘한 말투와 다정한 말투를 오가는 하이디엔.
직원들의 눈이 빛났다.
역시 두 사람 사이에 뭔가가 있다!
추측을 넘어 확신으로 변해 가는 중이었다.
강일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명품은 아무렇게나 걸쳐도 명품 태가 난다던데, 그 말을 증명하듯 분위기가 달라 보였다.
“선물이에요. 소소하게.”
“두 번 소소했다간 현타 올 것 같으니까 앞으론 자제 좀 해.”
“이제 강일 님도 스타잖아요. 이 정도는 우습게 버실 건데요 뭐.”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는데, 거절할 이유도 불쾌할 이유도 없었다.
기분 좋은 웃음과 함께 쇼핑이 마무리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방송을 할 차례였다.
두 사람은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본사로 향했다.
#3
(주)브락시아.
강남, 신사역에 있는 거대한 건물을 인수해 만든 회사.
옛날엔 닭을 파는 회사의 것이었는데, 지금은 하이디엔의 건물로 바뀌었다.
강일은 주섬주섬 방송 준비를 했다.
핸드폰을 셀카 봉에 끼우고 앱을 조작했다.
“핸드폰도 하나 바꾸셔야겠네요.”
“조용히 해. 알아서 할 테니까. 카메라에 얼굴 나와도 되나?”
“영광이죠. 발언은 주의하겠습니다.”
강일은 선 넘는 발언을 좋아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기세에 하이디엔은 조용히 꼬리를 말았다.
버튼을 누르자, 송출이 시작됐다.
보통 이 시간엔 방송을 켜지 않았던 강일, 드레젠이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ㄷㅎ!
-ㄷㅎ!
-드하!
-이 시간에?
-오! 야방인가!
시청자들이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야외 방송!
언제고 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렇게 빨리 진행할 줄은 몰랐는지, 반응이 색달랐다.
강일은 자신의 마나를 일으켜 목소리를 살짝 변조했다.
“안녕하십니까. 드레젠입니다. 오늘은 브락시아의 본사에 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브락시아의 대표, 하이디엔입니다.”
-?
-??
-?!
-아니 대표님?!
-엌ㅋㅋㅋㅋ
하이디엔은 천사 같은 얼굴로 카메라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순식간에 채팅 창이 불타올랐다.
[‘뉴비환영해!’ 님 10,000코인 후원!]
[여기 천국인가요? 천사님이 인사하시네]
“드레젠 님의 방송은 매일 챙겨 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도와 드리기 위해서 같이 방송을 하게 됐습니다.”
또박또박하고 정확한 발음.
금발 청안의 외국인이 한국말을 이토록 잘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하이디엔은 아나운서가 말하듯, 정확하고 명료한 발음을 하고 있었다.
-한국어 짱 잘하심
-외국인이신가?
-미친 날 가져요!
-!($)# 이런 천사가 대표님이라닠ㅋㅋㅋ
채팅은 다 읽을 수도 없을 만큼 빠르게 올라갔다.
강일은 회사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시청자들을 위해 카메라 앵글은 하이디엔을 향해 있었다.
그녀는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회사의 곳곳을 소개했다.
“자, 이곳 로비는 다들 지나다니면서 보셨을 겁니다. 이쪽엔 작은 카페가 있고…….”
1층은 로비.
2층부터 10층까진 서버 관리부.
11층부터 15층까지는 부서별 사무실.
16층, 17층은 휴게실 및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
18층은 GM들의 공간.
그 위로는 기밀 공간이었고, 꼭대기엔 하이디엔의 사무실이 있었다.
“저와 대표님은 16층으로 갈 겁니다. 지하에는 수영장과 헬스장이 있다고 하네요.”
-진짜 꿈의 직장;;
-거기 연봉 얼맙니까ㅜㅜ
-대표님 밑에서 노예처럼 일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엌ㅋㅋㅋ
-여기가 요즘 3사 다 씹어 먹는다는 브락시아인가
그 어느 때보다 채팅 창이 활발해 보였다.
강일은 피식 웃으며 하이디엔과 함께 위로 올라갔다.
언뜻언뜻 보이는 그의 옷은 상당히 때깔이 고왔다.
다행히 옷을 가지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서 드레젠 님의 계정을 살펴볼 겁니다. 업무 외의 일이니까, 제가 직접 할 거라서 오늘 이렇게 자리하게 됐습니다.”
-친분이 있으신 건가?
-아는 사이 같은데
-부럽;;
-다영좌 어떡함ㅋㅋㅋㅋㅋ
-쓰읍 과몰입 금지;;
첫 야외 방송은 꽤 반응이 좋았다.
하이디엔도 기꺼이 응해 주고 있으니 그 열기가 더해졌다.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외부에서 ‘세이브 더 브락시아’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