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72화 (73/279)

제 72화

72화 - 범람!

#1

강일은 귀가하자마자 간단하게 씻고 방송을 시작했다.

“오늘은 바쁘게 움직이겠습니다.”

시작하자마자 마구간으로 향하는 드레젠.

하늘을 올려다보니, 일정한 간격으로 신호탄이 쏘아졌다.

하시스 성의 부하들이 쏘아 낸 표시였다.

-뭔데?

-갑자기 왜 급한 거야!

-그 범람 때문인가?!

시청자들 중에서는 범람에 대한 내용을 기억하는 자들이 있었다.

오크의 번식력은 무척이나 강했다.

그들은 몇 년 주기로 한 번씩, 인간의 영토를 점령하고 자신의 땅을 확보하기 위해 사방으로 뻗쳐 나갔다.

늙은 오크부터 선봉을 서며, 그 기세는 녹색 해일이 몰려오는 것 같다고 했다.

“맞습니다. 지금 하시스 성은 난리가 났을 수도 있으니, 얼른 가 봐야 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신원을…….”

“미안하지만, 말 한 필만 가져가겠습니다.”

그는 금화 몇 개를 던져 주고 뒤쪽으로 돌아갔다.

올 때는 정체를 숨겼으나, 지금은 정체와 행적이 모두 드러났다.

달리는 것도 빠르지만, 말처럼 효율적인 수단은 아니었다.

최악의 사태를 대비해, 체력은 반드시 남겨 둬야 했으니까.

“저, 저기!”

마구간 주인은 식겁해서 그를 쳐다봤지만, 그가 던진 돈을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돈이 꽤, 아니 상당히 많은 돈이었으니까.

족히 전마 한 필을 살 정도의 금화였다.

“……거스름돈 가지고 가셔야죠.”

허망하게 말했지만 들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멀어져 가는 말발굽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오크들은 인간의 주적이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서로의 영토를 끊임없이 탐하고 있기 때문이죠.”

-역시 오크는 오크네

-어디 안 가는구만

-ㅋㅋㅋㅋ호드를 위하여!

‘워크X프트’라는 세계관에서는 오크가 대단히 매력적인 종족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곳, 브락시아에서는 그저 인간의 주적일 뿐이었다.

공통점이라고는 이족 보행이라는 점밖에 없는 괴물.

드레젠이 보고, 겪은 오크는 그런 종족이었다.

“오크들의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겠습니다. 여태까지 제일 많이 잡은 게 오크네요.”

-그거 맞지

-토벌전도 했었고

-오크 불쌍 ㅜㅜ

-오크는 전투력 측정기였던 거임!

퀴퀴한 냄새가 후욱 퍼져 나왔다.

하시스 성에 가까워질수록 냄새는 더욱 역했다.

바람에 실려 온 오크들의 살의가 공기를 팽팽하게 만들었다.

정말 머지않았다.

‘후방으로 침투할 수 있을까?’

그 역시 범람을 막은 적이 있었다.

실제로 죽을 뻔했던 상황도 많았다.

그때마다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사람들이 생각났다.

고통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혹은 괴성을 지르며 자신의 목숨을 구해 주었던 생명들.

‘나도 감정이 무뎌지긴 했나 보군.’

생명을 담보로 뛰어다니는 모든 이들이 겪고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

몬스터가 판을 치는 이곳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감정을 최대한 죽이는 일뿐이었다.

고통스러운 과거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떠올릴 수 있던 것도 브락시아에 적응했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만약 그들이 이곳, 가상의 브락시아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면.

다시는 그 소중한 목숨을 잃지 않게 하리라 다짐했다.

허무하게 쓰러져, 한 줌 잿더미가 되어 버린 그날이 떠올랐다.

-당신은,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거예요.

-용사와 영웅은 무릇, 피와 시체로 명성을 올리는 법이다.

무척이나 싫어했던 두 사람의 말이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니 맞는 말이었다.

“얼른 가죠. 이랴!”

말발굽 소리가 거칠어졌다.

#2

파베론 산맥.

가장 낮은 봉우리 밑에 살고 있던 오크들이 움직였다.

안전하고, 거대한 부락을 이끌고 있는 오크들의 로드.

그 앞에서, 고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출발하시죠.”

“크륵-. 그래. 이번에야말로 그곳을 점령할 때다.”

[우와아아아아아-!]

오크들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모두가 무장을 마쳤고, 우락부락한 근육에서 투기가 뿜어져 나왔다.

오크 로드, 자울렉은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크어어어어어어-!]

오크 로드가 사용할 수 있는 워크라이.

전투를 알리는 울음소리가 산맥을 뒤흔들었다.

목소리에 화답하듯, 산맥 곳곳에서 푸드득, 새들이 날아올랐다.

이제 오크들이 진격할 것이다.

“가자! 이번에야말로 나약한 인간 놈들의 영토를 지배할 시간이다! 모두 노예로 부려, 이 대륙을 지배하는 거다!”

엄청난 숫자의 오크들이 녹색 해일을 일으켰다.

범람이 시작되었다.

진격하는 오크들을 보며, 웃음을 짓고 있는 남자.

오크들과 계약을 맺어, 그들에게 힘이 되어 줄 전력이었다.

‘녀석은 아무래도…… 실패하겠지.’

군노이스 자작령은 포기해야 할지도 몰랐다.

현재 드레젠이라는 존재는 상당히 까다로운 녀석이었으니까.

하지만 하시스 성이 비었을 때, 오크들이 들이친다면?

그의 입가에 메마른 미소가 담겼다.

“그리고 하나 더 작업해야겠군.”

수인을 맺고, 주문을 외웠다.

어두운 마나가 산맥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깨웠다.

전쟁, 그것도 공성전에 있어 가장 효율적인 방식 중 하나.

압도적인 병력으로 포위하고, 모든 보급로를 차단한 뒤 말려 죽이는 것이었다.

‘드레젠. 너를 믿고 기다리는 이들에게 실망감을 주거라. 후후.’

땅속에서 줄줄이 일어난 무언가가 산맥을 넘어 진격했다.

어둡고 탁한 마나로 둘러싸인 무언가였다.

그는 감히 자신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이젠 그 대가를 치러야 할 때였다.

#3

드레젠이 탄 말은 군노이스 자작령에서 하시스 성의 딱 중간 지점에서 멈췄다.

지금 다가오고 있는 것들은 상당히 빠르고, 수가 많았다.

추적술을 켜, 기척이 다가오는 쪽을 바라보니 검은 선들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

-또?!

-습격이다!

-와;; 살벌하누

-작정하고 죽이려고 왔는뎈ㅋㅋㅋ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었지만, 이만큼 몬스터를 많이 잡진 못했다.

기껏해야 고블린 다섯, 오크 둘.

언데드는 구경도 못 해 본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내로라하는 BJ들 역시 이제 막 게임에 적응하는 단계였다.

“여러분, 옛날에 성기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기억하시나요?”

-네!

-그 건방진 여자!

-푹찍했짘ㅋㅋ

-살아 있을까?

시청자들 역시 제법 강렬한 인상을 남긴 성기사를 기억했다.

훗날 마족의 하수인들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스텔라 신성 왕국.

찬란한 은빛의 신성력을 뿌리는 성기사들은 절대 다수의 언데드와 기계 병사들를 상대로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우웅-.

드레젠의 몸에서 은빛의 광채가 일렁였다.

“수고했다.”

아깝긴 했지만 말의 목숨을 함부로 버릴 수도 없었다.

여기까지 태워 준 말의 엉덩이를 찰싹 때려, 반대편으로 보낸 그가 검을 꺼냈다.

“여러분이 가질 수 있는 선택지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은빛의 광채는 점진적으로 진해졌다.

후광처럼 번뜩이는 광채의 정체는 성좌가 그에게 직접 사용을 허락해 준 힘이었다.

그것이 성좌구나.

‘별’에 앉아 세상을 굽어보는 자들이구나.

그녀를 처음 봤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오

-성기사!

-크으 드좌 못하는 게 뭐임ㅋㅋㅋㅋ

-여윽시 뭐든지 다 아는 남잨ㅋㅋㅋ

-이 정도면 치트캐 아님?ㅋㅋㅋㅋ

[‘나는짱이다’ 님 1,000코인 후원!]

[치트캐 ㅇㅈ?]

“치트캐라뇨. 제가 열심히 노오오오오력한 결과물입니다.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치트캐로 보일 수도 있겠네요.”

[‘뉴비환영해!’ 님 10,000코인 후원!]

[인증 가능하십니까!]

“못할 것도 없죠. 궁금증은 잠시 넣어 두시고, 지금은 즐겨 주시면 됩니다.”

-쿨 가이

-편-안

-이제 프로 방송인 다 됐눜ㅋㅋㅋ

-진행 보솤ㅋㅋㅋ

지금 해야 할 일은 눈앞에서 몰려오는 구울들을 처리하는 것.

성기사의 방식대로, 그녀의 가르침대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성좌의 진짜 힘을 선명하게 그려냈다.

-나? 내가 싸우는 방식? 푸하하핫! 우리 그이가 알면 놀리겠어.

-귀염둥이. 내가 싸우는 방식을 가르쳐 달라고 했지? 간단해.

[크아아아아아아-!]

딱 한 번.

무의 추종자의 간부가 마족이 섬기는 ‘아우터’라는 것을 소환했을 때 강림했던 스텔라와의 대화.

도저히 인간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존재를 인지했을 때.

그녀는 단 한 번의 브레스로 모든 것을 날려 버렸다.

‘다시 볼 날은 없을 거다.’

이제는 그런 괴물 같은 것들이 브락시아에 강림하게 놔두질 않을 테니까.

후웅-.

검을 가볍게 쥐고 돌렸다.

오크와 각종 몬스터들의 사체로 만들어진 구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놈들은 구울입니다. 시체를 일으켜 마나로 강화를 한 녀석들을 모두 지칭하는 말이죠. 좀비는 사람만 지칭합니다.”

-왔구연

-얘네들 피는 검은색이네

-시체라 그런 듯

-저 비주얼에 금가루면 좀;;

브락시아에서 피는 모두 황금색으로 처리되었으나, 언데드는 예외였다.

군데군데 거멓게 처리가 되어 있을 뿐, 황금색은 아니었다.

덕분에 나름대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드레젠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지금부터 성기사들의 전투 방법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별건 없습니다만.”

-왜 그런 말이 있지?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아니, 원래 몸이 비실한 놈들이나 머리를 쓰는 거란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자잘한 수 싸움은 의미가 없어지거든.

가녀린 체구에서 나왔던 살벌한 말.

스텔라라는 성좌는 말 그대로 무식했다.

압도적이었고, 거침이 없었다.

성기사들은 그녀의 전투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무식하게 박살 내면 됩니다. 취향에 맞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 같네요.”

쿠웅-!

발을 디디며 달려 나갔다.

구울들 역시 괴성을 지르며 인간을 갈가리 찢어 놓기 위해 돌진했다.

드레젠은 검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꽉 주고, 그대로 내질렀다.

맨 처음 달려오던 놈의 미간에 정확히 검날이 닿았다.

퍼어어어어엉-!

-?

-??

-?!

-??

-엉?

“단순하고 무식하게! 그게 바로 성기사들의 전술이자, 강력함의 원천입니다.”

검날이 닿기 전, 신성력이 폭발했다.

새하얀 폭발과 함께, 구울의 머리통이 그대로 없어졌다.

파편조차 남기지 않았고, 깔끔하게 폭발한 것.

“여러분, 예술은 뭐다?”

콰아아앙-!

언데드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끈질긴 생명력과 재생력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방법.

일반 마나와는 다른 신성력만의 특징이었다.

[‘뉴비환영해!’ 님 10,000코인 후원!]

[예술은 폭발입니다 행님]

‘저게 뭐야?!’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흑마술사.

오크의 범람을 일으켰던 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성기사였다니!

그는 직감했다.

“언데드로는 안 된다 이거지……. 그렇다면.”

헤시라둔, 카이렌을 이긴 것이 모두 감춰 둔 성력 때문이었다면?

그의 입가가 조금 올라갔다.

예상보다 일이 쉬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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