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71화 (72/279)

제 71화

71화 - 프로 제안

#1

하이디엔이라.

자주 톡을 보내곤 했지만 전화는 삼가는 녀석인데.

중요한 일일 테니 받아 보았다.

“응, 무슨 일이야?”

“갑작스럽게 죄송해요. 통화 가능하신가요?”

“죄송할 게 뭐가 있다고.”

한층 밝아진 음성이 귓가에 들려왔다.

“다행이네요. 지금 제가 찾아가도 될까요? 강일 님을 만나 뵙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서요.”

“나를? 내가 드레젠인 걸 알았나 봐?”

“그게…… 예.”

가급적이면 정체는 밝혀지지 않길 바랐는데.

출처가 엘프들이라면 꽤나 실망스러운 일인데?

“출처는?”

“저희는 아니에요. 제가 함구시켰으니까요. 아마 뒷조사를 한 것 같습니다.”

“흠…… 그쪽은 뭐 하는 사람인데?”

“구단주예요.”

구단주.

어떤 방식으로 뒷조사를 했는지, 경로가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사실 주민 번호는 공공재라고 말하는 현대인 만큼, 추적은 쉬웠을 거다.

안일하게 대처한 내 잘못도 있지 뭐.

“프로는 안 할 거야.”

“그거 말고 다른 건으로 뵙고 싶다고 하는데, 거절하시겠어요?”

다른 거라면 만나 줄 용의가 있었다.

앞에서 한마디 할 구실도 만들고.

약속 장소를 듣고, 걸음을 옮겼다.

가면서 방송국에 공지를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늘은 업무로 인해 방송 시간이 늦어집니다. 여유롭게 쉬다 구경 오세요.]

밤을 꼴딱 새워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평화로운 삶이 코앞인데 그런 게 대수냐.

궁금증을 품에 안고 걸음을 옮겼다.

구단주씨, 어떤 제안을 하실 거지?

#2

청담의 어느 카페.

조용한 분위기가 일품인 곳에 강일이 발을 들였다.

그는 슬쩍 주변을 훑어보곤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 선을 기점으로, 주변의 시선이 확 분산되는 것이 느껴졌다.

‘하이디엔, 이런 마나는 대체 어디서 끌어오는 거야?’

당연하지만, 이런 결계를 치는 데도 꽤 많은 마나가 필요했다.

지금의 강일에겐 꿈도 못 꿀 만큼.

“아, 어서 오세요.”

“안녕하십니까. 드레젠 님.”

그녀의 앞에 앉아 있는 젊은 남성.

이제 막 중년으로 접어 들어가고 있는 외모였다.

액면가로는 30대 초중반 정도일까?

“절 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자리에 앉으며, 그가 물었다.

구단주인 남자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에는 순서라는 법이 있는데, 그걸 전부 무시하고 툭 던졌기 때문이었다.

침착하게, 구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혹 실례라면…….”

“당연히 실례죠. 전 전화번호와 개인 정보를 남긴 적이 없습니다만, 콕 집어서 이렇게 접촉을 할 수 있었네요?”

“본사를 통해…….”

“정보의 출처는 이쪽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만.”

구단주는 헛기침을 했다.

명백한 잘못임은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를 뜨내기로 본 그의 회사의 실수였다.

드레젠, 강일은 방송에서 보이는 것 이상으로 만만찮은 상대였다.

“……죄송합니다. 정식적인 절차를 밟았어야 하는데, 마음이 급했나 봅니다.”

“사과는 됐고, 정당한 대가로 받도록 하죠. 입으로만 하는 사과는 이제 질려서.”

“…….”

기선 제압이 확실했다.

구단주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명함을 건넸다.

아주 정중한 태도였다.

“그래도 자리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이츠 전자의 이현성이라고 합니다.”

[하이츠 전자 회장님의 손자예요.]

명함을 받고 있자니, 하이디엔의 메시지 마법이 들렸다.

강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명함을 받으며 의외라는 듯 말했다.

“제가 아는 재벌 3세와 이미지가 다르네요. 반갑습니다. 드레젠입니다.”

“휴…… 방송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커 보이시네요.”

이현성은 하하 웃었다.

하이츠 전자.

굴지의 대기업이면서, 새롭게 떠오르는 전자업계의 일인자였다.

하이츠의 주요 품목은 전자 기기, 그것도 고품질의 게이밍 기어였다.

“저희 할아버지부터 저까지, 게임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구단주를 하고 있네요.”

“하이츠 전자는 프로 게이머 구단에서도 알아주는 구단이죠.”

아직까지 성행하고 있는 ‘리그의 전설’ 프로 리그.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팀이 결성되고, 해체가 되었다.

하이츠는 양대 통신사와 어깨를 견주는 팀으로 성장했다.

구단주, 코치, 단장의 뛰어난 안목 때문이라고 평가받는 팀이었다.

“세이브 더 브락시아의 매력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최초이자 최후의 가상 현실 게임이겠죠. 그 정점에 서 있는 드레젠 님을 영입하고 싶었습니다만.”

“전 프로 게이머는 할 생각이 없습니다.”

옆에서 하이디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프로 게이머를 한다면, 생태계 교란종을 넘어서 영원한 폭군으로 군림할 것이다.

강일 자신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하이디엔은 알고 있었다.

드레젠, 강일의 왕좌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제안을 하러 왔습니다만, 일단 들어 보시죠.”

“그럼, 자리 옮길까요?”

하이디엔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슬슬 시장해질 시간이었다.

세 사람은 고급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 강일 빼고는 전부 재벌이었다.

#3

“애피타이저 나왔습니다. 캐비어를 얹은…….”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음식들이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캐비어라니.

하지만 강일은 평소처럼 식사를 했다.

그의 식사법을 보고, 이현성은 눈을 빛냈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데.’

그가 오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브락시아의 귀족들이 먹는 식사는 지금 먹는 것보다 훨씬 길고, 수많은 요리들이 나오는 코스가 대부분이었으니까.

“본격적으로 얘기를 할 수 있겠군요. 실은, 드레젠 님을 저희 구단 명예 코치로 영입하고 싶습니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군요.”

“본래 그러고 싶습니다만, 이래 봬도 사람 보는 눈은 있다고 자부합니다. 드레젠 님께서는 한번 아니라면 아닌 사람이겠죠.”

강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일을 그르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평소엔 유해도 밀어붙일 땐 밀어붙여야 한다.

사이다패스까진 아니었지만, 한다면 하는 성격이 필요했다.

“그걸 아는 사람이 뒷조사도 하고……. 뭐, 그건 넘어가도록 하죠. 이게 있으니까.”

강일은 휴대폰을 꺼내 흔들었다.

지금까지의 대화를 모두 녹음하고 있었던 것.

구단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제 잘못은 모두 인정하고, 정당한 보상을 해 드리겠습니다. 욕심이 과한 팬의 입장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알겠습니다. 저도 보험 정도로만 가지고 있죠. 저는 편안하게 사는 걸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코치직은 사양하겠습니다.”

이현성은 거듭된 거절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것이 있었다.

재벌의 자식들은 모두 양아치고, 사건과 사고를 일으키는 천둥벌거숭이들이라고.

몇몇 정신 나간 놈들은 그렇게 살았다.

-저도 짊어지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겠습니다.

언제고 그가 한 말이었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수많은 협상의 자리에서 소수이지만, 거절은 있어 왔던 일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게임에서 많은 정보를 풀어 주실 수 있습니까? 아직 이것저것 궁금한 점이 많습니다만.”

“그건 문제가 안 됩니다. 공공재라고 생각하세요.”

뒤이어 나온 요리를 한 점 집어 먹으며, 강일이 말했다.

구단주는 편안한 표정으로 물을 마셨다.

그리고 가방에서, A4용지를 몇 장 꺼냈다.

“일단 읽어 보시고, 혹시 마음 바뀌시면 연락 주십시오. 또, 이건 무례에 대한 보상입니다.”

그가 수표를 하나 내밀었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완벽하게 깨끗한 백지 수표였다.

일반 수표보다 조금 더 컸는데, 자세한 설명은 이현성의 입에서 나왔다.

“백지 계약서입니다. 하이츠 전자는 고객, 그리고 파트너 간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무례를 저질렀으면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교육받았죠.”

“터무니없는 계약은 안 되겠죠?”

“하하, 물론입니다. 어디까지나 구단주인 저, 이현성의 이름으로 처리 가능한 부분에서만 계약이 가능합니다.”

어쩌면 백지 수표보다 좋은 보상이었다.

강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까지 성의를 보이는데, 계속 물고 늘어지는 것도 예의는 아니었다.

이곳은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브락시아가 아니었다.

“좋습니다. 이 계약서는 읽어 보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식사가 무사히 끝났다.

중간에 세 사람은 다시금 약속을 잡았다.

이번에는 다른 이유였는데, 프로 리그 진행 상황을 전달받기 위해서 모이는 자리였다.

강일은 그때까지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잘 먹었어.”

“입맛에 맞으셨다니 다행이네요.”

“몇 년 동안 라면이랑 삼각 김밥만 먹었더니 저쪽에서 먹었던 음식은 기억도 안 난다.”

하이디엔이 쓰게 웃었다.

그녀는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아까 자리는 그녀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었으니까.

“후계자를 육성하시는 거라면, 코치직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자유를 보장하는 한에서.”

“나도 그렇게는 생각하고 있어.”

어딘가에 속하는 것이 싫었을 뿐.

참 모순된 말이었다.

그녀와 헤어지기 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방송은 조금 늦게 켜도 되니까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도산공원.

조용하고 한적한 거리를 나란히 걸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곳에서 편하게 살고 싶어요. 아무 걱정 하지 않으면서.”

지구에서 처음 만났던 날 이후, 그녀가 처음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하이디엔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그렇게 하면 될 텐데. 여기는 전쟁도, 멸망도 없는 곳이니까.”

“그럴 수 없다는 게 정말 한탄스럽네요. 계약을 했으니까…… 어쩔 수가 없어요.”

계약이라.

굳이 자세한 일은 묻지 않았다.

더 필요한 이야기라면 그녀가 해 올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방송하셔야 하죠? 부탁드릴게요. 아 그리고…… 어머님의 상태를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어요?”

“마음대로 해. 허튼짓만 안 하면 보는 거 정도야.”

그녀가 싱긋 웃으며 두 손으로 내 귀를 부드럽게 감쌌다.

어…… 이게 엘프식 인사였던가?

“아……죄송해요.”

“괜찮아. 그만큼 서로 믿고 있는 거라고 알고 있으면 되겠지?”

“네. 바래다 드릴게요.”

우리는 꽤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헤어졌다.

아, 귀를 감싸는 행동이 무슨 의미냐고?

‘나는 당신의 모든 아픔을 감싸줄 겁니다.’였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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