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화
68화 - 가치를 아는 사람들
#1
현대 사회에서 정보는 곧 돈이었다.
옛날에도 정보력을 위해 국력의 몇 할이나 되는 여력을 집중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대한민국만 하더라도 주변 국가의 동향, 날씨, 금융 상황 등, 수많은 정보를 얻고자 노력했으니까.
누군가는 드레젠을 호구라고 불렀다.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니까.”
“맞아. 진짜 저거 아무도 모르게 경매장에 올렸으면 완전 떼돈 벌었을 텐데.”
이런 반응은 심심찮게 나왔다.
실제로 드레젠, 강일이 레시피를 공개하지 않았다면 떼돈을 벌었을 것이다.
방송에서도 시청자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거 공개 안 하셨으면 떼돈 각인데;;
-이미 부자신가 봄
-조금 호구다 이 말이야
-쓰앵님, 자기 몫도 좀 챙기세요 ㅜㅜ
“이걸 공개하지 않았더라도, 나중엔 다 알게 됐을 겁니다. 세상엔 생각보다 유능한 또라이들이 많으니까.”
쿨레드, 그리고 이졸데 같은 이들.
이졸데의 오라비인 이바르데도 마찬가지였고.
엔딩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이 게임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시스의 눈물이 꼭 필요했다.
“이 레시피는, 반드시 양산되니까 푼 겁니다. 설명만 봐도 각이 나오지 않나요?”
-ㅇㅇ 마족이랑 싸울 때 필요할 듯
-그렇지
-엔딩을 보기 위한 그의 큰 그림 ㅜㅜ
-그나저나 이제 슬슬 경매장 활성화되던데
-ㅋㅋㅋㅋ큰손들이 나서기 시작했음
드레젠도 슬슬 움직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바르데가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면, 현금을 좀 팔아도 되겠지.
이왕이면 공방을 확장해, 무구를 파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연구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영주님! 아무리 영주님이라도-!”
“이보시오! 이 편지의 말이 진짜요?!”
마법사 하나가 영주, 포베튼을 막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타고난 거구인 영주가 사람 하나 매달고 거동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드레젠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월척이구만.”
-사악해;;
-진짴ㅋㅋㅋㅋ
-사탄이 보고 배워야 될 듯
??: 내가 스승님한테 배운 썰 푼다
그 말을 들은 시청자들은 포베튼의 안녕을 빌어 주었다.
저벅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드레젠은 병을 흔들어 보였다.
“시연은 다 같이 모여서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특히 마탑에서 아주 관심 있어 할 것 같은데.”
“지금 보여 주면 안 되겠소?”
드레젠은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 포션의 효능을 알아야 한다.
프리미엄이란,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수량은 없을 때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니까.
포베튼도 바보는 아니었는지, 침음을 삼킬 뿐이었다.
“어? 그, 그럼 지부장님을 불러올까요?”
“그래 주십쇼. 우리는…… 어디로 갈까요?”
“대전으로 가지, 꽤 널찍한 곳이니까. 어떻소?”
“좋군요.”
그렇게 해서, 이시스의 눈물의 시연식이 결정되었다.
#2
웅성거리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팔다리가 모두 없어진 시체 하나가 단상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핏줄이 검붉은 색으로 울룩불룩하게 올라와 있었고, 피부는 딱딱하게 경화가 되었다.
흑마법과 인체 공학을 동시에 받으면 진행되는 현상이었다.
“이걸 정말 정화할 수 있다고?”
“정확히는 ‘암흑 마법’ 계열을 정화할 수 있는 거다.”
드레젠은 영롱하게 빛나는 포션을 한 번씩 보여 줬다.
사람들의 눈이 장난감을 쫓는 고양이들과 같이 움직였다.
꽤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포션의 사용법은 간단했다.
“시체에 퍼진 마법을 막기 위해서는 이렇게 뿌리기만 하면 되고, 살아 있는 자들은 먹으면 됩니다.”
“확실히…… 요즘 상황을 보면 필요로 하겠군.”
“마탑 지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부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한다는 뜻인지, 보고를 올린다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흥미로운 눈으로 포션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
‘마탑 지부장. 당신은 어떤 사람이지?’
드레젠은 속으로 의문을 던졌다.
그사이, 헐레벌떡 다가오는 자들이 또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일을 처리하느라…….”
“꽤 늦었군. 그래도 다행이야. 아직 시연은 시작되지 않았으니.”
군노이스 자작령의 마법부까지 모두 모였다.
드레젠은 천천히 시체에 포션을 부었다.
그러자 흑마법의 잔재가 가득했던 시체가 점점 원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경직되어 있던 피까지 녹아, 황금빛 액체가 주르르 흘렀다.
“이건…….”
“확실히 좋군.”
“아직 애매하네. 살아 있는 이에게도 실험을 해 봐야 해.”
평가는 냉정했다.
이들은 포션의 효능을 텍스트로 읽지 못하는 NPC들이었다.
그래서 보여 주기로 했다.
“남은 거, 쭉 들이켜쇼.”
“내, 내가?”
포베튼 자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금 아까운 눈으로 포션을 바라보다, 꿀꺽꿀꺽 들이켰다.
어차피 레시피는 드레젠이 알고 있으니까.
“거기, 흑마법 알고 있는 거 있습니까?”
“기, 기초적인 것은 조금…….”
“한번 쏴 보십쇼.”
흑마법은 은근히 많은 마법사들이 사용 가능했다.
표면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뿐.
흑마법을 알고 있다고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흑마법으로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핍박을 받는 것이다.
“진짜 괜찮겠습니까?”
“뭣하면 제가 성직자를 불러 드리죠.”
“그럼…….”
흑마법의 특징인 검은 마나가 요동쳤다.
다크 애로우.
혹은 검은 화살이라고 불리는 마법이 순식간에 캐스팅되었다.
검은 화살이 무서운 이유는 살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흑마법은 헬라의 힘을 바탕으로 한다.
“저주 조심하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뼈까지 얼려 버릴 냉기의 저주가 동반된다.
흑마법의 기본은 타격이 아니라 저주였다.
검은 화살이 쇄도했고, 포베튼의 가슴팍에 적중했다.
순간 그의 가슴에 하얀색 막이 생겨났다.
“오?”
“아무런 효과도 없죠? 이런 포션입니다. 아직까지 시중에는 나오지 않았죠.”
그것은 혁명이었다.
드레젠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제가 이 포션의 재료가 되는 약초를 파는 상인을 좀 아는데…….”
“무조건 우리 영지부터 들르라고 해 주십쇼! 본 영주가 값은 후하게 쳐 드릴 테니까!”
포베튼 자작이 미끼를 덥석 물었다.
뿐만 아니라 마탑 지부장, 마법부, 그 외의 귀족들도 저마다 눈을 빛냈다.
드레젠은 태연하게 말했다.
“재정이 좀 많이 필요할 겁니다. 이번 기회에 한번 살펴보고 정리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포베튼 자작님.”
“그러지요.”
포베튼은 별생각 없이 말했지만, 드레젠의 말엔 뼈가 있었다.
그것을 알아채느냐, 못 알아채느냐는 순전히 영주의 역량에 달려 있었다.
드레젠은 하시스 성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조용하다는 건…….’
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가 왔다.
#3
“흠…… 이거 좀 이상하긴 한데.”
“무, 무엇이…….”
“여태까지 본인에게 보고도 안 하고, 일을 처리했단 말이지?”
포베튼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졌다.
신뢰.
그 말은 정말 달콤하지만, 깨졌을 때의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정 상황은 개판이었다.
“마법부에서 새로운 마법을 많이…….”
“마탑 지부에서 보내온 거랑 비교해 볼까?”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각종 서류가 펄럭였다.
마나의 여파였다.
그 옆에 서 있는 수행원, 영주의 개인 시종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포베튼은 어이가 없었다.
“내가 여태까지 영지를 너무 허술하게 운영했군.”
“아, 아닙니다. 영주님은 훌륭한…….”
“그 입 다무는 것이 좋을 걸세.”
초대 영주와 달리, 포베튼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다.
그렇기에 이성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벌써 집사의 얼굴을 짓이겨 놓아도 시원치 않았다.
고작 1년 남짓이었다.
‘그사이에 이렇게 변하다니.’
“내 영지가 이렇게 되었다……. 한번 물갈이를 해야겠군.”
그는 굳은 결심을 했다.
자신의 가문이 지켜 온 영지였다.
이렇게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알았으니 고치면 된다.
“내가 말한 자들을 모두 불러 모으게. 지금 당장.”
“……알겠습니다.”
평온하게 말하는 것 같아도, 지금 영주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뻗쳐 있는 상태였다.
오랜 시간 옆에서 봐 온 그이기에 알 수 있었다.
‘드레젠…… 드레젠!’
모두 그가 문제였다.
그가 등장하고 난 뒤로, 단 며칠 만에 모든 것이 까발려졌다.
지금 그들은 맨몸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죽고만 싶었다.
“모두를 모아서, 누가 이 일의 주동자인지 물어야겠다.”
피바람이 불 것이다.
포베튼의 표정과 행동, 그리고 살벌한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그러한 미래를 암시하고 있었다.
#4
마법부.
그곳에 의문의 인물이 들어섰다.
연락을 받고, 가까운 지부에 텔레포트한 인물이었다.
그는 장내를 훑어봤다.
‘쓸모없는 것들.’
자신을 보자 고개를 조아리는 이들이 보였다.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가 없었다.
분위기가 영 아니었다.
마법부가 이렇게까지 처진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오, 오셨습니까.”
“그놈이 아직 영지에 있나?”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를 맞이한 마법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격적인 사실을 보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뭔가 할 말이 있군. 뭘 봤지?”
“그게…… 드레젠, 그자가…… 이상한 포션을 개발했습니다.”
“포션?”
포션 정도로는 무언가를 이룰 수 없다.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온 말이 상당히 거슬렸다.
“암흑 계열 마법을 방어해 주는 포션입니다.”
“……그건 한번 봐야겠군.”
아직 드레젠이 이곳에 있다면, 본래 움직이려던 의도대로…….
그 드레젠이라는 놈이 어떠한 지식을 알고 있든 상관없었다.
이제 그는 이 세상에서 지워질 테니까.
마스터를 이기기가 쉽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위치를 대라.”
그는 살벌하게 말했다.
마법사는 쭈뼛쭈뼛, 심부름을 보냈다.
드레젠의 위치를 알려 주기 위해, 막내 마법사가 나섰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보고 있던 그 마법사였다.
#5
드레젠은 한가롭게 나무 위에 앉아, 시청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일부러 넓게 퍼뜨리고 있던 기감에, 기척 하나가 잡혔다.
마법사.
그는 자신을 향해 똑바로 눈을 마주쳤다.
마법사가 입술을 달싹이는 것을 보았다.
“자, 이제 중간 보스가 오겠군요.”
-갑자기?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됐지!
-이렇게 작업을 쳐 놨는데ㅋㅋㅋㅋ
마법사가 말했던 것은, 이제 곧 누군가가 이쪽으로 온다는 것.
드레젠은 그래서 영지 외곽에 있는 숲까지 나왔다.
상대방은 십중팔구 흑마법사일 것.
“흑마법사를 상대할 때의 팁을 알려 드릴게요.”
흑마법사는 저주와 강령술, 사령술 따위를 사용한다.
그들과 상대할 때는 인적이 없는 곳을 전장으로 택해야 했다.
안 그러면 귀찮아지니까.
좋은 지형에서 싸우는 것도 엄청 중요했다.
“아까 미리 준비해 온 포션을 바탕으로 공략하겠습니다.”
그가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