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화
67화 - 약은 이렇게 파는 것이다
#1
신입 마법사.
통칭 막내는 평온한 표정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천천히, 티 나지 않게 드레젠이 암시해 놓은 것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드레젠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제 저건 잠시 놔두죠.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슨?
-저거 보는 거 꿀잼 각인데 ㅜㅜ
-앗, 아아;; 내 팝코누ㅜ
-저희는 팝콘을 원합니다!
본래 분탕질을 쳐 놓고 멀찍이서 지켜보는 것이 재밌지만, 밑 작업을 해야 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쿨레드가 들어올 것이다.
그를 위해서 영주에게 약을 팔 시간이었다.
텅-!
조금 기다리니 정화되지 않은 실패작의 시체가 아지트 근처에서 뒹굴었다.
“우린 이걸 가져가서, 약을 파는 겁니다. 얼마 전에 보여 줬던 약초 있죠?”
통칭 ‘이시스의 눈물’.
훗날 불리게 될 이름이었다.
효과?
직접 보면 알 것이다.
드레젠은 이졸데와 함께 약초밭에 다녀왔을 때 챙겨 왔던 것을 꺼냈다.
“이제 이걸 사용할 때가 왔습니다.”
천으로 둘러싸인 시체를 질질 끌며, 그가 향한 곳은 연금술 재료를 파는 가게였다.
지금은 군노이스 자작령에서만 알고 있을 테지.
마탑의 지부가 있는 이상 소문은 절대 한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이권을 두고 싸워서 이기는 것도 자신의 몫이었다.
“그럼, 여러분께 특별한 레시피 하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낌없이 베푸는 그는 대체;;
-그는 빛이다.
-모니터 밝기 최대한 낮추는 중ㅋㅋㅋㅋ
-으악 눈부셔!
-빛빛 빛빛빛!
접두어 ‘국민’이라는 단어가 있다.
게임에서는 흔히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성능이 뛰어난 것들을 얘기했다.
훗날 브락시아에서 국민 포션으로 자리하는 레시피.
그럼에도 값이 꽤 비싸, 평범한 사람들은 쉽사리 사지 못했던 꿈의 포션.
“여러분, 돈을 벌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이 포션을 만드세요.”
영웅도 돈이 있어야 만들어진다.
좋은 무구, 좋은 장비는 뛰어난 대장장이가 만들어 주고, 가공할 재료들을 구해 와야 했다.
수련할 시간도 없어 죽겠는데 누가 그걸 일일이 구해 오는가.
다 옛날 말이었다.
대장장이가 ‘이 재료는?!’ 하면서 공짜로 만들어 주는 클리셰는 거의 없었다.
자존심과 프라이드가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다 돈입니다. 돈.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것은 하나도 틀린 말이 없습니다.”
팩트가 팍팍 꽂혔다.
골목을 이리저리 둘러 둘러서 잡화점에 들어섰다.
여기서 말하는 잡화점은 각종 마법 재료를 살 수 있는 가게를 말했다.
잘만 사용하면 새로운 결과물이 탄생하지만, 하나하나만 본다면 그저 잡다한 무언가일 뿐인 것들이 모여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지금부터, 제가 말한 것을 사면 됩니다.”
“찾으시는 것이 있습니까?”
“고블린 체액 100mL. 정화된 흙 20g, 마법으로 뭉친 눈덩이 100g, 토파즈 15g, 아무 몬스터의 뼈 200g만 주십시오.”
“연금술사이신가 보군요! 알겠습니다.”
별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었다.
주인은 재빠르게 계량을 해서 작은 유리병에 담았고, 플라스틱 팔레트에 차곡차곡 담아서 깔끔하게 포장했다.
“모두 해서 15실버입니다. 본래 30브론즈를 더 받아야 하지만, 깎아 드리겠습니다.”
대금을 지불하고 밖으로 나섰다.
시청자들이 궁금해함과 동시에 때아닌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레시피 공개 불-편;;
-저러면 주인장이 가져갈 텐데;;
-특허 가로채면 어떡함ㅋㅋㅋ
-재료만 아는데 연금술을 어떻게 함 바보들인가
-기술이 다르게 들어가겠짘ㅋㅋㅋ생각 없누
채팅 창은 금세 불이 붙었다.
이렇게 싸우게 놔두는 것도 좋지 않으니, 드레젠이 깔끔하게 교통정리에 나섰다.
연금술.
인체 공학과 더불어 각광받는 학문 중에 하나였다.
기본적으로 마나를 다룰 수 있어야 하며, 재료의 효능을 전부 꿰고 있어야 했다.
“연금술은 같은 재료를 넣어도 젓는 방법, 끓이는 시간, 마나를 얼마나 넣는지 등등, 기술적인 부분에 따라서 결과물이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거봐거봐
-겜알못 쉑들ㅋㅋㅋ
-연금술이 그렇게 허술한 학문일 리가 없지
-극한의 리얼뤼티;;
“절 잘 보고 따라 하셔야 합니다.”
사실 드레젠 본인도 어떤 방식으로 시스템이 도움을 주는지 몰랐다.
기본적인 지식이 있기에 본래 방식대로 할 생각이었다.
예로부터 연금술사들은 모든 것을 수치화하는 것을 업으로 여겼다.
“연금술은 모든 것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완성이 됩니다. 그러니까 절대! 레시피를 변경하면 안 됩니다.”
같은 레시피는 항상 동일하게 만들어야 한다.
연금술사가 엄청난 몸값을 자랑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정확한 레시피를 머릿속에 기억하는 것이 곧 자산이었다.
-그렇구만
-어렵다;;
-난 그냥 사냥 열심히 해서 살래;
-현질이 답이다.
[‘크리드’ 님 100,000코인 후원!]
[다른 레시피도 하나 보여 주시면 안 될까요?]
“다른 레시피라…… 재료가 남으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직 게임이 출시된 지 한 달도 안 됐다.
그렇기에 모든 정보는 드레젠에게서 나왔다.
크리드라는 자는 드레젠에게서 많은 정보를 얻어 낼 의도가 다분했다.
드레젠은 나름대로 후계자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기 때문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업료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크리드’ 님 1,000,000코인 후원!]
[선급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윽시 큰손;;
-지렸다
-대박ㅋㅋㅋㅋ
-이제 자잘한 후원은 간에 기별도 안 오겠네
이런 큰 후원이 터지면 채팅 창은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흐뭇한 모습으로 감사 인사를 전한 그가 걸음을 옮겼다.
이젠 적당한 작업장을 찾아야 했다.
“작업장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바로 저기에.”
한 손에 시체와 연금술 도구를 든 드레젠은 다른 손으로 가리킨 마탑 지부로 향했다.
드레젠!
그 이름을 거부할 마탑 지부는 아마 없을 것이다.
#2
“작업실을 이용하실 겁니까?”
“가능합니까?”
“물론이죠. 드레젠 님에겐 지원을 아끼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마탑주의 지시가 떨어진 이후였다.
마탑주가 드레젠과 말한 뒤로 취한 조치였다.
마탑 지부의 사람들은 친절했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그만큼 드레젠의 이름값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아, 영주께 이 서신을 전할 수 있습니까?”
“인편을 보내서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역시 우호적인 집단은 심부름도 잘해 줬다.
어느 정도 판은 깔아 두었으니 결과물을 만들 차례였다.
드레젠은 심부름을 해 주는 마법사에게 미소를 짓고, 작업실로 향했다.
“연금술에 대해 간단히 공략해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도 메모해 두세요.”
브락시아는 만만한 게임이 아니었으니까, 공략을 꼼꼼하게 적어 두는 것은 필수였다.
시청자들이 순식간에 10만 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오늘도 방송은 순풍을 받아 쭉쭉 나아갔다.
#3
“이게 정말인가?”
“저는 전달만 하는 역할이라…… 편지의 내용은 잘 모릅니다.”
영주는 안면을 부들부들 떨었다.
편지의 내용은 대충 ‘재미있는 것을 보여 줄 테니 마탑 지부로 오라’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별 볼 일 없는 내용이지만, ‘실험자’들을 정화할 수 있다는 문구가 그를 사로잡았다.
벌떡 일어서, 밖으로 향할 채비를 했다.
“집사. 업무를 부탁하지.”
“……평소처럼 말이군요. 알겠습니다.”
“크흠! 어, 어쨌든 금방 다녀오겠네.”
‘평소처럼’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집사를 뒤로하고, 포베튼은 빨리 마탑 지부로 향했다.
그사이, 드레젠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연금술을 준비했다.
연금술에 필요한 것은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마법 처리를 한 가열로.
재료를 넣고, 가열할 수 있는 비커.
“마지막으로 재료와, 이 머들러입니다.”
머들러.
카페 알바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쉽게 접할 수 있는 막대.
가루 따위를 잘 섞이게 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도구였다.
그것까지 있으면 준비는 끝.
“이제 레시피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까 전에 사 온 재료들과 이시스의 눈물을 비커에 잘 넣었다.
마나를 머들러에 주입했는데, 육안으로는 머들러의 동그란 끝 부분만 잠식되어 있었다.
정확히 마나의 수치는 5.
본래 브락시아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 수치를 숫자로 파악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만 했다.
“머들러에 주입해야 하는 마나는 5입니다. 그리고, 이 머들러를 이용해 재료를 빻으면…….”
바삭-.
제법 단단한 보석인 토파즈가 잘게 부서졌다.
가볍게 누르는 것 같은데, 아주 고운 입자가 될 때까지 부서졌다.
캠이 그 신기한 광경을 가까이서 잡아 주었다.
-오오
-잘 뽀사지네
-근데 왜 비커는 안 부서짐ㅋㅋㅋ
-대박;;
-ASMR 지린다
바삭바삭 부서지는 소리가 감미롭기까지 했다.
마나가 토파즈 안에 스며들었다.
동시에 이시스의 눈물이 빻아지며, 즙이 나왔다.
그것이 섞이며, 신비로운 향이 솔솔 피어올랐다.
[새로운 레시피를 발견했습니다.]
[이시스의 눈물 + 토파즈]
[암흑 마법 정화]
[토파즈 + 고블린의 체액]
[마비 해제]
[몬스터의 뼈 + 이시스의 눈물 + 마나 5P]
[체력 영구 10 증가]
[1회용]
-오오
-체력 10포인트 개꿀
-새로운 레시피 굿!
“이건 훗날 마족의 하수인들을 상대할 때 필수적으로 필요한 포션입니다.”
정화된 흙, 고블린의 체액, 마법으로 정화된 눈덩이의 조합은 건강을 챙겨 주는 포션 조합으로도 많이 채용되는 레시피였다.
거기다 이시스의 눈물, 토파즈의 조합이 더해지면 최종적으로 새로운 포션을 만들 수 있었다.
“시계 방향으로 다섯 번. 반시계 방향으로 세 번. 이걸 10분 동안 반복해 주세요. 열기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모든 재료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자 포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용액이 드러났다.
10분.
처음 연금술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이 시간을 지옥 같은 10분이라고 불렀다.
집중력을 유지하며 일정한 속도로 젓는 것은 상당한 고역이었으니까.
드레젠은 여유롭게 10분을 보냈다.
그러자 알림이 떴다.
[새로운 포션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시스의 눈물]
[10분간 매초 10씩 체력 회복]
[10분간 암흑 계열 마법 저항력 +80%]
[저주와 뒤틀림을 정화합니다.]
[영구적으로 체력이 10P 증가합니다.] - 1회 한정
푸른색 토파즈 결정을 이용하여 포션을 만들었기 때문에 영롱한 푸른빛을 띠는 포션.
통칭 이시스의 눈물이라고 불리는 이 포션은, 한때 혁명을 일으켰던 물건이었다.
드레젠은 포션을 두 개의 병에 나눠 담으며 말했다.
하나는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한 예비용이었다.
이 포션이 처음 개발되었을 당시, 하시스 성 근처는 피가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결국 황제가 나서서 정리했죠.”
-지렸다;
-저런 레시피를 풀어도 되는 거임?
-와;; 지렸다;;
-너무 혜자십니다ㅜㅜ
[‘크리드’ 님 5,000,0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선생님.]
또 한 번의 대박이 터졌다.
오늘 수업료는 정말 짭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