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6화
66화 - 잡았다 요놈!
#1
“다, 당신 뭐요!”
“뭐긴. 영주에게 권한을 받은 사람이지.”
-ㅋㅋㅋㅋ표정 보솤ㅋㅋㅋㅋ
-나 같았으면 벌써 지렸음ㅋㅋㅋ
-개 웃기넼ㅋㅋㅋ
-ㅋㅋㅋㅋㅋ 진짜 귀신 본 표정이넼ㅋㅋㅋ
주변 마법사들이 순식간에 메모라이즈된 마법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드레젠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체 앞에 섰다.
팔짱을 떡하니 끼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하고 있어? 빨리 검사하지 않고.”
“……이곳은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당장 나가 주십시오.”
“내가 왜? 그쪽 권한이 영주보다 위쪽인가?”
드레젠의 말에 마법사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역시 영주가 공인한 것을 똑똑히 보았으니까.
그렇다고 살인멸구를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상대는 마스터급으로 추정되는 인물.
게다가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법을 썼다간 공간 자체가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곳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입니다.”
“지금은 공적인 일을 처리하는 중이지. 공적인 일을 처리하는데 왜 사적인 공간에서 하는 거지?”
-말 잘하누
-ㅋㅋㅋㅋ사이다 오진닼ㅋㅋㅋㅋ
-어디 가서 굶어 죽진 않겠네요.
드레젠은 원론적인 얘기만 했다.
지극히 당연한 것들.
본래 이런 말들이 꼼수를 쓰는 이들에게 심각한 압박이 되는 법이다.
‘법대로 하자.’나 ‘원칙대로 하자.’라는 말이 괜히 압박감을 주는 단어가 아니니까.
서슬 퍼런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드레젠 앞에서, 마법사들은 반항할 생각을 잊어버렸다.
그의 기세는 웬만한 몬스터보다 무서웠으니까.
“뭐 해? 검사 안 하고?”
“……후우, 알겠습니다.”
외통수였다.
씩 웃고 있는 그의 표정이 얄미워 죽을 것 같았지만, 별수 없었다.
그들은 힘없는 자들일 뿐이니까.
당장 눈앞의 주먹이 훨씬 무서운 법이었다.
“시작하겠습니다.”
이젠 돌이킬 수 없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마법사는 깨끗하고 투명하게 검사를 시작했다.
함께 있던 마법사들도 식은땀을 흘렸다.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그들의 심정을 대변해 주었다.
“흑마법, 그리고 인체 공학자의 흔적이 남아 있군요. 게다가…… 이건…….”
“데스 나이트를 만들려다 실패한 것. 맞지?”
“그렇습니다.”
드레젠은 씩 웃으며 품 안에서 필요한 물품을 꺼냈다.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구슬이었다.
명백하게 쐐기를 박아 넣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법사들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왜,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나? 아니면 뭐…… 무서워서?”
“걱정이 앞서서 그렇습니다.”
드레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그림자 조종을 쓰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일단 공론화를 하고 뒷공작을 할 예정이었으니.
‘시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이목은 나에게 끌어오면 좋다.’
그래야 다른 부하들이 원활히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슬슬 ‘그 약초’에 대한 약도 팔아야 하지 않겠는가.
적절했다.
모든 것이.
“자, 이제 이 끔찍한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슬쩍 제시해 주는 겁니다. 필요하니까, 사야 한다. 뭐 이런 식으로요.”
-강매 아닌가?
-ㅋㅋㅋ미국이 우리나라한테 많이 했던 짓이네
-엌ㅋㅋㅋㅋ 이건 뭨ㅋㅋㅋㅋ
-상대방에게 물건을 판매하는 일은 아주 간단합니다.
-‘필요함’을 인식시키면 되죠.
-거기다 적절한 ‘희소성’까지 더해지면, 아마 없어서 못 팔 겁니다.
이건 다름 아닌, 이바르데가 했던 말이었다.
자신에게는 아니었지만 지나가다가 들은 경험이 있었다.
회의 때도 자주 모습을 드러냈었지.
드레젠은 그때의 풍경을 회상하며 영주의 궁으로 향했다.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너희들의 캐스팅보단, 이게 더 빠를 테니까.”
그는 겨드랑이에 껴 있는 단검을 보여 주며 히죽 웃었다.
그야말로 악마가 따로 없었다.
별수 있겠는가.
마법사들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걸음을 옮겨야 했다.
#2
“……진짜로군.”
“이젠 어떻게 할 거지?”
“크흠. 수치로고. 하지만 좌시할 수는 없소이다.”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의 궁에서 치러진 검증은 모든 것을 확실하게 밝혔다.
이제 영주의 결정만이 남아 있었다.
이미 반쯤 마음이 기운 것 같았지만, 그래도 끝까지 방심할 수는 없었다.
“협력해 줄 수 있겠소?”
“물론.”
포베튼 자작은 실리를 생각해 보았다.
그저 맡기기만 한다면 깔끔하게 처리해 줄 것이다.
하지만 뭔가 찝찝했다.
이렇게 순순히 진행되는 것이 신기했다.
“마법부는 들으라.”
“예.”
“지금부터 영지를 샅샅이 뒤져서 증거들을 모으고, 그들의 실험장을 박살 내라. 이것은 영지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마법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힘찬, 그리고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드레젠은 마법사들을 유심히 쳐다봤다.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것이, 대놓고 불안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꼴이었다.
“나는 잠깐 가 볼 곳이 있어서…….”
드레젠은 마법사들을 흘끔 보고, 궁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마법사의 뒤를 바로 밟기로 했다.
“자아, 이제 마법사들의 뒤를 밟아 봅시다. 대놓고 의심이 드네요.”
-이거지
-ㅋㅋㅋㅋ
-개 웃기넼ㅋㅋㅋ
-그림자 망토 쓰면 아무도 모르지 ㅇㅇ
[‘뉴비환영해!’ 님 10,000코인 후원!]
[분탕질을 해 보죠. 마법사끼리 싸우게 만드는 거임]
좋은 생각이었다.
드레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인간들의 불화는 말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그는 말을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림자 기사단은 이런 식으로 분쟁을 조정하고, 균형을 유지해 왔다고 하니까.
“그럼 미행을 시작하겠습니다.”
‘메탈 기어 X리드’처럼,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것이다.
그가 투명 망토를 뒤집어썼다.
장막 너머에서, 드레젠은 마법사가 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같이 걸었다.
뒤에서 은밀하게.
“이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일단 보고는 해야겠지. 위에서 알아서 할 거다. 실험체는 어떻게 됐지?”
마법사 한 명이 주변을 휘휘 둘러봤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 더 투입 중이긴 합니다. 실전은 계속 치르고 있습니다만.”
“일단 실패한 것들을 넘겨주자고. 그리고 우리는 발을 빼는 거야.”
“알겠습니다.”
-ㅁㅇㅁㅇ?
-진짜 알아 버렸자너
-ㅋㅋㅋㅋㅋ그림자 장막 짱이네
-와;; 뒤가 구린 놈들이었누
마법사들은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많았다.
과거, 드레젠이 브락시아에 있을 때부터 거의 모든 원흉은 마법사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뭔가에 열중해서 연구하다 보면 호기심이라는 것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것 때문에 나라가 여럿 멸망했지.’
스텔라 신성 제국 역시 엄청난 숫자의 이교도 때문에 멸망해 버렸다.
거대한 제국을 둘러싸고 있는 중소 국가 역시.
그것 때문에 브레이시스 제국은 철저하게 검증된 마법사들만 데리고 갔다.
“마법사들은 정말 믿을 만한 사람들이라도 한 걸음 떨어져서 관계를 유지하셔야 합니다. 눈 돌아가면 연구를 위해서 가족까지 버릴 수 있거든요.”
비유하자면 SF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미치광이 과학자였다.
시청자들은 쫄깃한 상황을 즐기며 마법사들을 바라봤다.
그가 하는 플레이는 언제나 주도적이어서 볼만했다.
이리저리 끌려다니거나 사건을 수습하기에 바쁜 플레이가 아니었으니까.
“그럼, 분탕질을 좀 쳐 볼까요?”
이번 테마는 확실했다.
악역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지만 뭐 어떤가.
마족들을 상대할 땐 이것보다 훨씬 악랄한 방법으로 적들을 분열시켰다.
간단한 이간질이었지만 효과는 아주 지대했다.
‘무슨 내용으로 할까?’
그는 남은 마나를 확인했다.
슬슬 마법사 하나를 납치하기로 했다.
납치해서 뭘 하느냐?
이번 테마대로, 세뇌시키고 이간질을 시작하는 거지.
자신은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조금 더 깊게 파 볼 필요는 있겠는데…… 그것도 귀찮다.’
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주변 정리였지, 세계의 악을 뿌리 뽑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나중에 가서 생각할 일이었고, 일단 눈앞에 있는 것부터 빠르게 처리하기로 했다.
결론을 내린 드레젠의 행동은 빨랐다.
수상쩍은 이야기를 하는 마법사들을 졸졸 따라갔고, 그들의 시야가 분산되는 틈을 이용하기로 했다.
“누군가를 납치할 때 가장 좋은 타이밍은 바로 시선이 분산되었을 때입니다. 바로, 지금처럼.”
“저는 재료 좀 사 오겠습니다.”
“조심해라. 그놈은 철저히 경계하고.”
가장 말단으로 보이는 마법사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드레젠.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사람이었다.
강한데 논리적이고, 추진력도 뛰어났다.
관찰력이야 두말할 것도 없겠지.
그런 사람들에게 꼬투리를 잡히는 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는 법이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녀석이다.’
드레젠.
영악했고, 과감했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말을 실현시키는 무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마법사인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천적이나 다름없는 인간이었다.
심부름꾼으로 보낸 후배 마법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가 뒤따라가 봐.”
“예. 메모라이즈는 준비되었습니다,”
“수상한 놈이 보이면 지체 없이 쏴 버려. 변명은 대충 실험체 같았다고 하고.”
그것으로 대화는 없었다.
조금의 간격을 두고, 후발대가 출발했다.
물론 즉각 대응 가능한 마법을 덕지덕지 모은 상태였다.
드레젠은 모든 것을 바라봤다.
지금이 바로 그가 움직일 타이밍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인식 체계에 딜레이가 있습니다. 흔히 만화에서 많이 나오는 설정이죠. 뇌를 거쳐 어쩌고저쩌고.”
-무의식의 킹의?
-엌ㅋㅋㅋ
-키르X 귀여워요!
이상한 채팅들이 올라왔다.
드레젠은 작은 웃음을 매달며 설명을 이었다.
“실제로 그런 것도 가능하긴 하지만…… 특수한 버프가 필요합니다. 나중에 설명하도록 하고, 저는 지형을 이용한 딜레이를 응용할 겁니다.”
모퉁이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람.
위에 있다가 갑자기 눈앞으로 뛰어내리는 사람.
혹은 물체.
이렇게, 보통 사람이라면 미처 반응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그러면, 이렇게…….”
군노라의 시장은 매우 복잡했다.
특히 마법사들이 애용하는 상점들은 골목 안쪽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귀한 재료들을 잃지 않으려는 것도 있었지만, 마법사들의 취향을 고려해서 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마법사들의 동선은 상당히 복잡해졌다.
“다 사서 나왔나 보군.”
“그래도 감시는 늦추지 말자고.”
마법사들은 나름대로 철저했다.
사각을 줄이고, 탐지 마법을 수시로 사용했다.
그 결과, 물샐틈없는 천라지망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드레젠은 이미 휘파람을 불면서 그들의 옆으로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음을.
“자, 이제 팝콘을 준비해 보죠.”
-진짜 너어어어ㅓㅓ는ㅋㅋㅋㅋ
-사탄의 형님이닼ㅋㅋㅋ
-진짜 너무 브락시아 마렵게 겜하시넼ㅋㅋㅋㅋ
-이렇게 오늘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는 쓰앵님ㅋㅋㅋㅋ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닥쳐올지, 마법사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홀로 가게에 들어갔던 마법사가 들었던 단어는, 섬뜩하고 소름이 끼쳤다.
“잡았다, 요놈.”
그의 웃음은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보다 섬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