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화
58화 - 토벌전
#1
토벌전!
최초로 진행되는 대규모 PVE 콘텐츠였다.
당연히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외국 사람들까지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드레젠이 방송을 켜자마자 엄청난 기세로 시청자들이 유입되었다.
-ㄷㅎ!
-ㄷㅎ!
-드하!
-ㄷㅎ!
드레젠은 잔잔한 음악을 틀어 놓고 방송 빌드업을 시작했다.
엄청난 숫자의 시청자들이 방송에 참여했다.
자신들이 궁금한 점들을 쏟아붓고, 답변을 기다리기도 했다.
하지만 드레젠은 조용히 오늘 있을 전투를 생각해 봤다.
“흠, 재밌겠네.”
마이크를 켜고,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그가 밝은 목소리로 시청자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어휴, 많이들 오셨네.”
-빨리 시작해요!
-하악 오늘 기대된닼ㅋㅋ
-쓰앵님! 저도 오늘 참여합니다!
-얼른 이벤트 가즈아아아!
“다들 많이 기다리시는 것 같으니 게임을 바로 시작할까요? 저도 몸 좀 움직이고 싶네요.”
다른 건 몰라도 전투 본능은 아직 살아 있었다.
토벌전은 미친 듯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전장이었다.
당연히 드레젠이 좋아하는 콘텐츠였다.
[세이브 더 브락시아에 접속합니다.]
[방송이 송출됩니다.]
회백빛 세상은 크리스의 앞에서 시작되었다.
어젯밤, 크리스를 보러 가는 것으로 마무리했었다.
아쉬운 말이었지만, 피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성장하기란 요원한 법.
그렇게 훈련을 많이 겪은 군인들도 실전 상황에서 공포에 질리고, 각종 후유증이 나타나는 이유였다.
브락시아는 항상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었다.
“크리스, 출전 준비를 해라.”
“……알겠습니다.”
“그간 훈련은 잘했겠지?”
크리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특한 마음에 머리를 쓰다듬었다.
크리스의 팬들이 미친 듯이 채팅을 올렸다.
-꺄! 엄청 귀여워!
-크으 형이 이뻐해 줄게!
-진짜 크리스 애정한닼ㅋㅋㅋ
-똑 부러지게 생깃넼ㅋㅋ
크리스를 보러 오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드레젠은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에드윈을 바라봤다.
자신에게 깨진 이후,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열심히 훈련을 하는 중이었다.
“글라디 백작이 자식 교육은 잘 시켰네.”
-ㅇㅈ
-보통 저런 캐릭터는 악역인데
-ㅋㅋㅋㅋㅁㅈㅁㅈ
-그나저나 이제 슬슬 출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창문을 열고 연무장이 있는 곳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중간에 있는 시녀들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멋진 슈퍼히어로 랜딩 포즈를 한 드레젠.
-슈퍼히어로 랜딩!
-크 멋지다!
-게임에서는 저게 되짘ㅋㅋㅋ
에드윈은 한참 검을 휘두르고 있다 인기척에 뒤를 돌아봤다.
사람 하나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는 귀족이었기에 저렇게 경우 없이 뛰어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처, 천박하게 그게 무슨 짓입니까?”
“계단을 언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냐. 그냥 대충 뛰어다니는 거지.”
“……이제 출발하는 겁니까?”
에드윈이 땀을 훔치며 물었다.
“가자. 준비해.”
“알겠습니다. 보급은 어떻게 하실 예정이죠?”
“하루 만에 끝나는 일이라, 보급은 따로 필요 없다. 창고에 있는 비상식량이나 좀 챙겨 가야지.”
과연 자신만만한 근거가 있을까?
에드윈은 검을 거두고 바로 준비를 서둘렀다.
드레젠은 본격적으로 이벤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이제 시청자들을 불러들일 생각이었다.
“이벤트는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합니다. 전장 바로 앞에서 이벤트 시작합니다.”
-우리는 전투만 하면 되겠지!
-크으 좋아유!
-레벨 업 찬스다 ㄹㅇ
-지금 바로 머기 중임ㅋㅋㅋ
시청자들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대기 중이었다.
언제든지 든든한 전력이 되어 줄 것이다.
드레젠은 병기고로 가서, 창 몇 자루와 방패 몇 개, 그리고 비상식량을 챙겼다.
때마침 크리스와 에드윈이 병영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럼 가자.”
“병사들은 더 없습니까?”
“이따가 올 거야. 용병을 고용했거든.”
에드윈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도 언제 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미리 해 놨다면 사전에 계획하고 있었던 움직임이었을 텐데.
일개 용병 출신이라고 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용병은 아니야.’
이제는 성주라고 해야겠지.
어쨌든 그의 객이 된 이상, 성주의 명령을 따를 수밖엔 없었다.
그것이 브레이시스 제국에서의 룰이었으니까.
중간중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좀 이상했지만, 무식하게 강한 인간은 맞았다.
“……그런데 진짜 병력이 오긴 하는 겁니까?”
“조금 더 가서 만난다.”
오크 마법사가 살고 있는 부락은 멀었다.
당연히 오크 무리의 영역이었고, 우르르 몰려다니면 들킬 위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드레젠은 한 가지 조치를 취했다.
“아, 잠깐 캠을 좀 끄겠습니다. 택배가 와서…….”
-?
-??
-갑자기?
-뭐여
드레젠의 방송 화면이 ‘일시 정지’라고 떴다.
택배가 왔다는 말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있었으나, 드레젠은 순식간에 다시 방송을 이어 나갔다.
“택배 좀 시켜서, 받고 왔습니다. 다시 가죠.”
-가즈아!
세 사람은 숲길로 들어섰다.
여기서부터는 완벽한 오크의 영역이었다.
추적 스킬을 발동시키고, 길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여기서 드레젠의 공략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오크 마법사는 로브를 입고, 거대한 지팡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붉은 마나의 잔재를 흩날리죠.”
오크 마법사의 활동 범위는 매우 넓었다.
마법사는 보통 부락에 틀어박혀 있었지만, 이 녀석은 아니었다.
그들은 마나의 잔재를 따라 이동했다.
그렇다면 왜 활동 범위가 넓을까?
“네자렉의 목걸이에는 특수한 옵션이 붙어 있습니다. 몬스터가 착용할 경우, 헬라의 축복이 부여되는데, 밤에 엄청난 힘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일정 시간마다 동족을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ㅗㅜㅑ
-그래서 낮에 토벌을 가는 건가?
-애초에 밤엔 몬스터 더럽게 셈ㅜㅜ
-진짜 저번에 밤에 산책 나갔다가 오크 한 마리 만나서 끔살당함ㅋㅋㅋㅋ
-거기서 산책을 왜 가눜ㅋㅋ
사람들은 저마다 밤에 몬스터를 만났던 이야기들을 풀었다.
밤에는 헬라의 축복이, 낮에는 스텔라의 축복이 강해진다.
그렇기에 인류와 몬스터는, 미묘하게 균형을 맞추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네자렉의 목걸이는 낮에도 꽤 대단한 효과가 있습니다. 각 요일마다 성좌의 권능을 조금 빌려 쓸 수 있거든요. 오늘은 마침 수요일이니까…… 현무의 힘을 빌릴 수 있겠네요.”
물을 관장하는 성좌, 현무의 힘을 빌릴 수 있다.
판타지 세상인데 왜 현무냐고?
그건 드레젠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엌ㅋㅋ서양에 웬 현무옄ㅋㅋㅋㅋ
-그러겤ㅋㅋㅋ세계관 짬뽕인가 봄
-동서양 혼합물은 예전에도 많았짘ㅋㅋㅋ
-작가 쉑 방대하게 세계관 짤라다가 짬뽐시켰누
-마! 이게 바로 동서양 쓰까 비빔밥이다!
드레젠도 처음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 역시 성좌의 아버지들이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그렇기에 네자렉의 목걸이는 매우! 아주! 중요한 물건이었다.
“자, 이제 거의 도착했군요. 저기, 밑에 보이는 것이 바로 부락입니다.”
머지않아 드디어 발견한 부락.
한눈에 봐도 오크들이 꽤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에드윈은 부락을 내려다보며, 드레젠에게 물었다.
“그래서, 병력은 어디 있는 겁니까?”
에드윈은 아직도 병력이 나타나지 않자,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제아무리 드레젠이라고 한들, 저 많은 오크를 홀로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자신들을 보호하면서 싸우는 것이 무리였다.
특히 옆에 있는 꼬맹이는…….
“조금 있으면 올 거다.”
드레젠은 드디어 그들을 부를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그는 잠깐 기다리라고 한 다음, 적당한 공터를 찾았다.
나무들 사이에 적당한 잔디가 깔려 있는 곳이 있었다.
왜 이런 지형이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차치하더라도, 적당한 공간을 찾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드레젠은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 주었다.
“자, 오실 때 소리를 내면 안 되고, 필드에 입장하실 때까지는 제 말을 따라 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브리핑은 철저하고, 명확하고,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뇌리에 각인되어 무의식적으로 따라 움직인다.
드레젠은 부대를 이끌어 본 경력이 많았다.
이런 브리핑을 해도 작정하고 분탕을 치려면 얼마든지 칠 수 있었다.
당연히 드레젠은 이에 대한 압박도 잊지 않았다.
“당연히 그런 사람들은 버려두고 갈 겁니다. 저는 명시했어요.”
-ㅇㅈㅇㅈ
-우리가 다 봤스
-그짓부렁 하는 놈들은 참교육해야제
-자 얼른 시작합시다!
시작하라는 성원에 힘입어, 드디어 드레젠은 세션을 공개로 바꾸었다.
정원은 20명.
세션 내용은 토벌전이었다.
순식간에 공간이 열리고, 무장한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전투에 자신 있는 이들부터, 드레젠을 보고 싶어서 온 이들, 혹은 각각의 목적을 가지고 온 이들이 등장했다.
“와…….”
사람들은 드레젠의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그중에서 씩 웃으며 꾸벅 인사하는 이가 있었다.
“다영 님도 들어오셨군요.”
“당연하죠. 제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게요?”
-와 다영 님이네!
-역시 성덕ㅋㅋㅋㅋ
-와앀ㅋㅋ 부럽눜ㅋㅋㅋ
그녀는 제법 괜찮은 기세를 풍겼다.
마나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지, 눈에서는 푸른 빛이 맴돌고 있었다.
스무 명의 인원이 꽉 차는 덴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중에 한 사람은 정말 눈살이 찌푸릴 정도의 행동을 했다.
“와! 드레젠 님! 성공했다! 우와! 대박!”
“쉿. 지금은 조용히 해 주세요.”
“와아!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떠들었네요! 하하!”
-;;
-저 쉑 뭐임
-분탕러 등장
-개 빡치누
-분위기 파악 못 하네
드레젠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런 놈이 없을 리가 없지.
그래서 그는 마나를 움직였다.
“저는 분명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목소리 조절이 힘드시다면, 제가 도와 드리죠.”
[사일런스.]
드레젠은 마법의 재능이 없을 뿐이었지, 기본적인 마법은 모두 다룰 줄 알았다.
위력이 강한 공격 마법이나 술식이 복잡한 마법을 다루지 못할 뿐.
마나가 남자에게 다가갔고, 그는 입을 뻐끔거리기만 했다.
“조용히 시켜 드렸습니다. 그러면 이동하죠. 모두 저를 따라와 주세요.”
“네.”
자연스럽게 다영이 선두에 섰고, 나머지가 졸졸 따라왔다.
시청자들은 벌써부터 녹화를 시작했고, 여기저기 수출을 하며 열기를 올렸다.
첫 대규모 콘텐츠였다.
당연히 기대감이 증폭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 드레젠이 실패할 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덤이었고.
“…….”
일부러 큰 소리로 떠들었던 자는 아직도 소리를 못 내는 것에 대해 인상을 찌푸렸다.
허나 속으로는 미소를 지었다.
그의 성격을 알았으니, 비인도적인 행동을 끌어내기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두고 보자.’
드디어 토벌전이 시작되었다.
드레젠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멀리서 친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에드윈, 크리스. 병력을 이끌고 왔다.”
“오셨군요. 그런데 수가…….”
“가 보면 알아.”
하이디엔에게서 미리 언질을 받은 것이 있었다.
게임으로서의 기능을 최대한 수행하기 위해, 처음에는 정해진 규모의 몬스터만 상대하면 될 것이라고.
오크 부락으로 다가가자, 이런 메시지가 떴다.
[토벌전 필드에 접근하셨습니다.]
[오크 마법사 : 존툴 토벌전]
[인원 1인~20인(NPC 포함)]
[제한 시간 : 2시간]
[보상 : 5골드, 오크제 아이템]
[세션 리더에겐 퀘스트 아이템이 주어집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드레젠은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가 검을 뽑자, 굳은 표정의 플레이어들이 똑같이 검을 뽑았다.
저 멀리 오크들이 보였다.
전쟁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