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56화 (57/279)

제 56화

56화 - 베스티안 백작

#1

베스티안 백작은 언젠가 아들이 근무했던 곳을 바라봤다.

지금은 전혀 다른 자가 사용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아들의 온기가 아직도 남은 것만 같았다.

“자네가 새로운 집사로군.”

“그렇습니다. 곧 드레젠 님이 오실 겁니다.”

마침 인기척이 다가왔다.

문이 열리고 드레젠이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찌르는 듯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다시 순식간에 없어지긴 했지만, 베스티안 백작은 살기의 출처를 알아냈다.

‘아직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군.’

“어서 오십시오. 베스티안 백작님.”

“새로운 성주를 뵙는군. 반갑네.”

드레젠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글라디 백작, 그리고 옆에 있는 에드윈을 바라봤다.

드레젠의 눈이 조금 빛났다.

‘이 녀석도 있군.’

낯이 익었다.

방랑 기사, 에드윈.

기본에 충실한 검술과 정의로운 마음을 바탕으로, 약자들을 돕고 살았던 인물이었다.

꽤 장엄한 최후를 맞았었지.

백작가가 멸망하고 나서 등장했기에 출신을 알지 못했었는데, 이런 곳에서 알게 되었다.

“아드님의 일은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아닐세. 데스 나이트는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여기, 조사 자료입니다. 혹 오해를 살까 봐 준비했습니다.”

드레젠은 철저했다.

글라디 백작은 덤덤히 자료를 읽었다.

흘끔, 에드윈은 계속해서 자료를 훔쳐보곤 했다.

그의 눈이 점점 떨렸다.

‘진짜 형님이…….’

믿을 수가 없었다.

수많은 추측, 가설들이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조작은 아니었을까?

혹시 세뇌를 당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진짜 죽은 것이 아니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습니다만, 제가 말한 것들은 사실입니다. 저도 그 실험의 희생양이 될 뻔했죠.”

“흠…… 심각한 수준이군. 그래서 이들의 배후는 알지 못했는가?”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을 한 번 본 것이 다였으니, 진짜 정체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저 기운만 어렴풋이 기억했을 뿐.

“잡으려고 했습니다만, 실패했죠. 그래서 군노이스 자작령을 조사할까 생각 중입니다.”

글라디 베스티안은 거침없이 답하는 드레젠을 묘한 눈으로 바라봤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 조금씩 웃음기가 감돌았다.

맑은 눈동자, 충분히 만들어져 있는 체격, 풍기는 기세 역시 또래 수준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먼발치에서 봤던 영웅들과도 비슷하군.’

“그대의 말을 믿어 주겠네. 허나 곤란하군. 영지가 갈라져 버린 것이나 다름없으니.”

“그렇다면 동맹을 맺어야겠죠.”

영지가 아닌, 성을 가지고 있는 자는 더러 있었다.

해적, 산적, 오지 등등.

브락시아 대륙은 매우 넓었고, 아직 개척되지 않은 곳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드레젠이 점령해 버린 하시스 성은 달랐다.

“이곳은 전장이네. 증명되지 않은 아군을 뒤에 둘 수는 없지.”

“그럴까요? 오크의 습격이 하시스 성을 피해 가는 것은 아니겠죠.”

드레젠의 기억에, 하시스 성은 오크의 범람을 네 번이나 막아 낸 곳이었다.

물론 마족의 출현 이후, 한 번에 몰락하긴 했지만.

절대적인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흑마술사, 그리고 마족들이 가장 이용하기 좋은 녀석들이 바로 오크입니다. 녀석들은 수가 많고, 집요하죠.”

“맞는 말이네. 그렇다면 성주께서는 불필요한 무력 충돌을 원하지 않겠군.”

“그렇습니다.”

베스티안 백작가는 강하다.

하지만 뒤쪽에 잠재적인 적을 두고 몬스터와 싸우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여기서 베스티안 백작은 두 가지 선택을 해야 했다.

하시스 성을 다시 점령하거나, 서로 상호 보완을 하거나.

‘고민이 되는군. 그럼, 이놈을 이용해 볼까.’

“내기를 하나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마침, 참지 못하고 에드윈이 나섰다.

예의가 아님은 알았지만 백작은 가만히 놔뒀다.

차남의 가능성을 보기 위함이기도 했고, 상대방의 반응을 살펴보려는 의도도 품었다.

드레젠은 모든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그저 지켜만 봤다.

‘또 미끼를 무는구만.’

객기와 용기는 정말 다르다.

가능성에 목숨을 거는 것과 기적을 바라고 뛰어드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무슨 내기를 원하나, 차남?”

“저와도 겨뤄 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얻는 것은 뭐지?”

베스티안 백작령은 명예를 중시하지만, 드레젠은 아니었다.

그는 이번에도 베스티안 백작가에서 뭔가를 뜯어내기로 했다.

이번에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딱 세 가지였다.

“원하는 바가 있습니까?”

“기사. 그리고 군대. 혈맹. 이것이 제 조건입니다.”

드레젠의 시선은 글라디 백작에게 향해 있었다.

그의 시선 처리는 명백하게 에드윈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뿌득-.

어디서 이를 가는 소리가 났지만 드레젠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럼 지금 당장 시작해도 되겠군.”

“승낙한 것으로 알겠습니다.”

“성주가 패배한다면, 이 성을 다시 넘기는 거로 하지.”

-콜!

-내기의 연속이구나

-엌ㅋㅋㅋㅋ

-공짜로 군사력 얻깈ㅋㅋㅋㅋ

-카이렌보다 강하다고 볼 수가 없는딬ㅋㅋㅋ

아무리 생각해도 드레젠이 질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가장 부족한 것들을 채우기 위해 재대결을 받아들였다.

“아버지, 반드시 이겨 보이겠습니다.”

“무리하지 말거라.”

글라디 백작은 그렇게 말했지만, 이미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다.

그는 드레젠을 카이렌과 에드윈을 보는 것과 비슷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마치 죽은 장남이 살아 돌아온 것 같았다.

누가 본다면 미쳤다고 했을 것이다.

‘하시스 성을 맡을 인재로는 충분하다.’

백작은 영지가 살아야 백작 가문이 살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수많은 전투를 겪으며 몸소 깨달은 사실이었다.

전대 백작, 그의 아버지가 가르쳐 준 마음가짐이기도 했다.

“그럼, 이동하지.”

드레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공방에서 소식이 도착했다.

#2

-와, 갑옷 보솤ㅋㅋ

-멋지누

-실제 게임에서 이런 거 얻으려면 얼마나 걸리려나

-우리는 아직 스킬 배울 때지ㅜㅜ

-지금 잠깐 쉬는 중인데 병사로 들어가는 게 제일 빠름ㅋㅋㅋㅋ

공방.

철컥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은색 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드레젠은, 완벽하게 다른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공방에서 무기 하나를 그에게 지급했다.

“이건 제 역작입니다. 본래 전 성주님께 드리려고 했습니다만.”

“고맙군. 잘 쓸게.”

두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대검이었다.

그가 가장 애용하는 무기이기도 했다.

곧게 뻗은 검신과 넓은 힐트.

기다란 검병까지.

[공방의 의지]

[공격력 +70]

[오러 속성 - 화염으로 변경]

[절삭력 강화]

“괜찮은 검이군요.”

-키야;;

-성주쯤 되면 저 정도 검을 그냥 받을 수 있구나

-부럽누ㅜㅜ

“갑옷은 또 어떻게요?”

[변화한 성력]

[방어력 +50]

[어둠 속성 방어력 +10%]

[10% 확률로 미끄러짐 발동]

-미끄러짐은 뭥미?

-설마 내가 미끄러지나?

-ㅋㅋㅋㅋㅋ상대편이 미끄러지는 거일 듯

“미끄러짐은, 적이 타격하거나 검격을 맞을 때 갑옷 표면을 긁기만 하고 지나가는 것을 뜻합니다.”

-오 좋다

-나중에 저런 거 엄청 많이 나올 거 같은데

-확률 ㅈ망겜;;

-설마 밸런스 똥망으로 맞춰 놨으려곸ㅋㅋㅋ

미안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밸런스는 애초에 없었다.

브락시아에 존재하는 몇몇 아티팩트는, 상상을 초월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네자렉의 목걸이 역시 그중 하나였고.

“자, 그럼 가 보자.”

“이길 수 있겠습니까?”

부름을 받고 대기하고 있던 아이젠하트가 물었다.

자신을 부르더니 갑자기 백작을 만나질 않나, 또 갑자기 일대일 결투를 한다고 하질 않나.

심지어는 공방까지 자신을 끌고 왔다.

“카이렌보다 강하진 않을 것 같은데. 널 왜 불렀냐면…… 명단 좀 가져와.”

“무슨 명단입니까?”

“백작가에서 쓸 만한 병사들, 그리고 기사들의 명단.”

“그건 왜……?”

-왜긴 왜얔ㅋㅋㅋㅋ

-강.탈.하려고 하지!

-너어어어는 진짜!

-어디까지 뜯어먹을라곸ㅋㅋㅋ

거의 5만 5천 명의 시청자가 앞으로의 일을 기대했다.

제일 재밌는 구경은 싸움 구경이었고, 승리가 확정된, 전리품까지 두둑한 상황이라면?

기대감이 상승되는 것은 당연했다.

드레젠은 길을 걸으며 시청자들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이제 백작가의 기사들로 네자렉의 목걸이를 구하러 갈 겁니다. 이번 콘텐츠는…… 그래, 첫 토벌전이 되겠네요.”

-오!

-토벌전!

몬스터들의 부락을 소탕해야 하는 것이 바로 토벌전이었다.

몬스터와 전쟁을 하는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딱 맞는 플레이트 갑옷을 입고, 그는 투기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미리 대기하고 있는 에드윈이 있었다.

그 역시 대검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기사였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

화악-, 하고 흙먼지가 일었다.

마나 발현의 여파였다.

승부는 단 일초에 갈릴 가능성이 매우 컸다.

인간과 인간의 대결, 기사와 기사의 대결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심리전, 그것을 꿰뚫는 한 번의 수로 승패가 갈렸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보라고.”

“절대 질 생각은 없다. 형이 질 이유는 아직 찾지 못했으니까.”

드레젠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혼돈의 힘을 일깨웠다.

회색빛의 기운이 검을 타고 흐름과 동시에, 그림자 장막을 운용했다.

아직 이것은 시청자들에게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

‘아직 너희들은 마나와 오러를 수련할 때니까.’

그 위로, 다시 마나를 덧씌웠다.

영롱한 푸른 빛이 검신 위로 내달렸다.

이내, 그 푸른 빛은 주변 공기를 이글이글 태우기 시작했다.

“자, 간다.”

퐈륵, 공기를 가르는 불길의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찰나의 시간에, 잠깐 주변을 훑었다.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일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보여 줘야지.

“흐읍-!”

사라미스 검술에, 페베스 검술의 묘리를 조금 더한다.

스텝은 가장 빠르다고 하는 피스트 마스터들이 사용하는 묘리를 섞는다.

그렇게 완성된 일격은, 마스터급이라도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검을 만들어 냈다.

단순한 횡베기였다.

하지만 그 묘리는 능히 산을 가를 수 있을 정도였다.

“흐아아아압!”

에드윈 역시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주변의 시야가 쫘악 좁아지며 오직 드레젠의 일격만이 보였다.

그가 휘두르는 검은 여태까지 휘두른 일격 중에 최고였다.

하지만.

“너무 느리잖아.”

그의 한마디가 또렷하게 들렸다.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상대방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자신의 형도 하지 못한 기행이었다.

콰창!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에드윈은 엄청난 격통을 느꼈다.

그의 시야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아직 수련 좀 더 해야겠다. 애송이.”

그의 한마디는, 에드윈뿐만 아니라 글라디 백작까지 전율케 했다.

설마 저 정도일 줄은 몰랐으니까.

저자는 절대로 적으로 돌리면 안 되는 자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일어나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저자는 반드시 베스티안 백작가로 끌어들여야 한다.’

적으로 돌린다면 오우거, 아니 드래곤을 뒤에 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마스터의 무력은 일개 요새와 맞먹는다.

그런 전략적 병기를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범람의 시기가 머지않았다.

그를 선봉에 세울 수만 있다면.

‘백작가의 영향력을 드높일 수 있다.’

그의 미소가 짙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