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화
51화 - 수도로
#1
드레젠은 눈앞의 광경을 멍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예전에 김우현이 말했듯, 격투술을 배운 자들이라도 무기를 든 전문가들이랑 맞붙으면 고전한다.
브락시아에서 검을 휘두르는 자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실전 감각을 기르기 때문에, 일반인인 플레이어들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잘 피하네.”
-뭐옄ㅋㅋㅋ한 대도 안 맞아?
-와씨;; 뭐야 이거
-킹능인가ㅋㅋㅋㅋ
-뭐야 이거 무서워;;
다영은 검을, 그것도 기사의 검을 요리조리 잘 피했다.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면서도 눈은 검끝을 바로바로 좇았다.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이리저리 피했다.
‘반사 신경도 뛰어나고 눈도 좋아.’
신체 조건이 불리하다는 단점도 사라진다.
이곳은 브락시아였으니까.
남성 캐릭터든, 여성 캐릭터든 기본적인 신체 스펙은 만들어져 있었다.
드레젠은 턱을 쓰다듬으며 본격적인 관찰을 시작했다.
“쓸 만하네요.”
-오
-오
-오오
-칭찬받았눜ㅋㅋㅋ
-정신없어서 그런 거 못 봄 지금ㅋㅋㅋ
“나중에 탱커 필요할 때 데리고 다니면 좋겠어요.”
-엌ㅋㅋㅋㅋㅋ
-전투 노옠ㅋㅋㅋ
-그래도 다영 님은 좋아할걸?
-ㅋㅋㅋㅋ 드좌랑 같이 사냥 다니면 나 같아도 노예로 부려 달라고 할 거임
다영은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상당히 고평가를 받았다.
기사 역시 피스트 마스터가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라 다른가?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한참을 도망 다니던 다영이 숨을 몰아쉬었다.
“이, 이 정도면 된 건가요?”
“예. 아주 훌륭합니다.”
드레젠이 해 줄 것은 없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자신의 세션으로 돌아가서 방송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그가 다영에게 다가갔다.
“이제 전 가 보겠습니다. 열심히 배우세요.”
“알겠어요. 나, 나중에도 같이 합방해요!”
“어느 정도 실력이 붙으면 던전도 데려가 줄게요.”
다영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엄청난 기회를 놓쳐 버릴 수는 없었기에,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페트라에게 다가가 마지막 말을 전했다.
“저 여자, 책임지고 강하게 만들어라. 성주 자리는 봐주마.”
“……알겠습니다.”
“어차피 너희들이 뿌린 씨앗이지? 군노이스 자작에게도 잘 전해. 만약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페트라는 고개를 푹 숙였다.
감히 마스터에게 대들 생각이 없다는 의미의 몸짓이었다.
드레젠은 그의 어깨를 한번 두들겨 주고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정말 고맙습니다!”
다영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손을 흔들었다.
곧이어 페트라가 그녀를 데리고 훈련을 재개했다.
드레젠은 차원 문을 열고 자신의 세션으로 돌아갔다.
“오늘 합방은 이걸로 끝입니다. 다음 당첨자들은 내일 진행하도록 할게요.”
-이제 다시 스토리 진행 가즈아아!
-크으 그래도 재밌었닼ㅋㅋㅋ
-부럽다 ㅜㅜ 나도 버스 타고 시퍼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제법 괜찮았다.
자칫 잘못해서 드레젠이 호구 노릇을 하면 어쩌지? 라는 우려는 없어졌다.
그는 훌륭하게 시청자들이 원하는 장면을 만들어 냈고, 이벤트 참여자들도 보상을 두둑이 받았다.
“자, 이젠 제 이야기를 이어 나가도록 하죠.”
완벽한 힐링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려야 하니까.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스폰과 프로 제의들이 도착할 때가 되었다.
개인 방송국, 혹은 브튜브 채널의 댓글 등으로 접근했을 것이다.
‘그래도 뭐, 받아들일 생각은 없지만.’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좋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엮이게 되면, 원치 않은 움직임이나 액션을 취해야 한다.
그럴 필요까진 느끼지 못했다.
드레젠은 2부 방송 전에, 잠깐의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2
“아따, 많이도 달렸네.”
엄청난 양의 비밀 댓글, 혹은 쪽지들.
모두 자신을 양지로 끌어 올리려는 것들이었다.
강일은 하나씩 확인을 해 본 뒤에 다시 캡슐로 들어갔다.
지금 그에겐 쓸모없는 것이었지만, 혹시 필요해질지도 몰랐으니.
“자, 그럼 2부 시작하겠습니다.”
자신은 회색빛 세상에 있었다.
샤페론이 집사복을 입고 있는 장면은 정말 우스꽝스러웠다.
이제부턴 수도로 향해야 했다.
그곳에서 두 명의 인재들을 데려올 생각이었다.
“영지에 필요한 인재는, 저 말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 줄 행정관, 그리고 영지 내부를 강화시켜 줄 능력자들입니다.”
그중에서도 드레젠이 눈여겨보는 직업은 제작자, 그리고 행정가였다.
마침 수도에 훗날 대성하는 두 명의 인사가 있었다.
아직 빛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마족들이 들끓고 난 뒤에 엄청난 활약을 하는 이들.
일곱 영웅들이 그들을 조금만 더 일찍 기용했다면, 이 게임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샤페론, 크리스를 잘 돌봐 줘라. 쓸 만한 대련 상대도 구해 뒀으니까.”
“알겠습니다. 언제쯤 돌아오실 겁니까?”
“모르겠다. 일주일 내로는 돌아와야지.”
“백작가에서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샤페론은 우려를 표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피식 웃었다.
지금 아쉬운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백작가가 만약 뭔가 얻고자 한다면, 꽤 큰 인내심을 필요로 할 것이다.
“기다리라고 해. 손님맞이 잘하고.”
“……알겠습니다.”
샤페론은 무언가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다.
씰룩거리는 입술, 떨리는 눈가가 그것을 방증했다.
불안에 차 있는 눈동자는 그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중이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말했을 텐데. 네 판단과 편견을 버리라고.”
“후…… 알겠습니다. 명대로 하죠.”
“올 때 선물도 가지고 올 테니까 크리스나 잘 가르치고 있어.”
물론 그의 노고를 덜어 줄 선물 정도였지만.
샤페론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캬;; 멋있고
-오지고~ 렛잇고~ 미쳤고~
-아직 수도 간 사람 없지 않나?
-금수저들도 아직 골드 풀린 게 없어서 못 가고 있음ㅋㅋㅋ엌ㅋㅋㅋ
“그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할 때는 골드가 충분히 풀리고 나서일 겁니다. 아마 상인들도 나오겠죠.”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서 이 게임을 시작했다면, 모험보다는 상인 쪽으로 나가는 것이 현명했다.
하이디엔은 60억이 넘는 가능성을 봤고, 이 게임의 가치를 점점 올려 나갈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게임이 현실을 잠식하는 것. 곧 하나의 문화이자 생활이 되는 것.’
브락시아에선 마법과 마나가 그러했다.
지구에선 이제 세이브 더 브락시아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걸음을 옮기며, 성벽 위에서 편안하게 누워 있는 와이렉스를 바라봤다.
“렉스, 오랜만에 비행 좀 하자.”
[어딜 가는 거지?]
“제국 수도에.”
[호오, 오랜만에 그곳에 가 보는군.]
와이렉스가 거구를 일으켰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성벽의 돌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렸다.
드레젠은 가볍게 도약해, 와이렉스의 등에 안착했다.
아직 안장은 만들어지지 않았으나 이곳에서 제작하는 것보다 수도에서 제작하는 것이 훨씬 좋았다.
“가자. 다녀오면 무구들도 완성되어 있겠지.”
[아이들도 부를까?]
“전쟁 치를 일 있어? 보호 수단도 필요하니까 내버려 둬.”
[알았다.]
-와이번ㅋㅋㅋㅋㅋ
-와앀ㅋㅋㅋ기겁할 듯ㅋㅋㅋ
-보고 싶닼ㅋㅋ엌ㅋㅋ
채팅에는 한번 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줄을 이었으나,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거대한 와이번이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백색 와이번이 비행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저 멀리, 아직 둥지에 있는 와이번들이 호응하듯, 일제히 비행을 시작했다.
-와씨 와이번들 진짜 쩌네
-나도 수련해서 와이번 타러 간다!
-ㄹㅇ 부럽다ㅜㅜㅜ
-응 그없ㅋㅋㅋㅋ
작금 와이번은 모든 유저들의 로망이었다.
그들도 언젠가는 고인물이 된다면, 와이번뿐만 아니라 와이렉스도 얻을 수 있으리라.
세이브 더 브락시아는 게임의 역할도 충분히 수행하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
와이번들이 배웅하기 위해 포효를 내질렀다.
거대한 울음소리가 하나둘씩 늘어 갔고, 하늘을 가득 채우는 합창이 되었다.
드레젠은 기분 좋은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랜만의 장거리 비행이었다.
드레젠뿐만 아니라 와이렉스의 가슴도 세차게 뛰었다.
#3
제국의 수도, 콘스텔라.
자신의 이름을 유난히 좋아했던 브레이시스 초대 황제는, 제국의 수도 역시 브레이시스라고 정하려 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영향으로 수도의 이름은 ‘성좌’라는 뜻을 포함한 콘스텔라로 명명했다.
“성좌의 축복을 받은 도시라고 해서, 콘스텔라입니다. 실제로 성좌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브레이시스 제국을 많이 도와줬다고 하는군요.”
-역사 시간은 언제나 최고야!
-시공의 폭풍은 읍읍!
-수도도 기대된다
-크으 날기 딱 좋은 날씨네!
와이번이 비행하기에 정말 좋은 날씨였다.
내리쬐는 햇볕이 따가웠고, 고지대의 세찬 바람이 괴롭힐 법했지만, 드레젠의 마나로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애초에 와이번은 성층권에서 날아다니는 존재가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 정수로 복잡한 기류들을 이끌며 비행하는, 진정한 하늘의 왕자였다.
“저기, 수도가 보이네요. 엄청 크죠?”
대지를 가로지르는 성벽은 하시스 성의 것보다 두껍고 견고해 보였다.
거대한 평원에 자리를 잡은 이유.
브레이시스 제국의 위용을 과시함과 동시에 마법을 사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보통의 공성전에서 유리한 쪽은 수성 측, 그것도 험준한 산이나 험한 지형에 자리하고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곳 콘스텔라는 탁 트인 평원이라, 숨을 곳이 없죠. 따라서 광역 마법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엌ㅋㅋㅋ진짜 생지옥 만들어질 듯;;
“실제로 마족과의 전투에서도 이곳, 콘스텔라는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죠.”
그 이면에는 자신을 비롯한 영웅들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마법 공학의 정수를 자랑하는 브레이시스 제국은, 약점이었던 지형을 완벽하게 극복했다.
오랜만에 보는 수도는 변한 것이 없었다.
‘그리폰들도 여전하군.’
거대한 도시 위를 순찰하는 자들이 있었다.
지상이 아닌 하늘에서 인류의 보루를 감시하는 정예 기사들은, 친화력이 뛰어난 그리폰들을 타고 다녔다.
테이밍 가능한 비행 몬스터 중 대표적인 몬스터로, 강인한 체력과 선회 비행이 뛰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몬스터였다.
[삐이이익-!]
독수리처럼 우는 그리폰들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와이렉스는 드레젠에게 물었다.
[하등한 것들이 오는군. 날려 버릴까?]
“아니, 저들은 우리를 안내해 줄 거야.”
[재미가 없군.]
-엌ㅋㅋㅋ 와이렉스 뭘 좀 아네
-꿇어라,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이다!
-어디서 그리폰 따위가 와이번에게 비비려고!
“멈춰라! 신분을 밝혀라!”
그리폰 기사 편대가 드레젠을 포위했다.
가만히 활공하고 있던 와이렉스가 흉성을 흘렸다.
와이렉스의 나직한 울음소리는 ‘피어’가 되어 그리폰들을 뒤흔들었다.
“어어, 왜 이래?!”
“착하지, 얌전하게 있어라.”
빼액-! 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그리폰들이 난동을 부렸다.
기사들은 당황하며 그리폰들을 달래느라 애를 먹어야만 했다.
선두에 선, 가장 큰 그리폰만이 그나마 멀쩡해 보였다.
“다시 한 번 말하지! 그대는 누구인가!”
“손님.”
드레젠은 품속에 간직해 두었던 마탑주의 추천서를 날렸다.
그걸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진 그리폰 기사.
드레젠은 가만히 팔짱을 끼고 안내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