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화
48화 - 군노이스 자작령
#1
“군노이스 자작령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배경 지식을 알고 가는 게 좋겠죠?”
중저음.
나긋나긋하지만 또렷한 목소리.
완벽에 가까운 딕션.
많은 사람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췄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것이리라.
“군노이스 자작령은 실력으로 귀족 작위를 딴 가문입니다. 기사임에도 버클러와 한 손 검을 기가 막히게 쓰죠.”
-오오 딱이자너
-꿀팁 조쿠연
-버클러 없어 보이는데 짱 세지
몇몇 무기에 관심이 있는 시청자들이 열심히 설명충이 되었다.
드레젠은 길을 걸으며, 계속해서 썰을 풀어 줬다.
군노이스 자작령!
새로운 지역이니만큼, 흥미로운 설정들이 쭉쭉 등장했다.
“오크의 범람이라는 이벤트는 알고 있을 겁니다. 이쪽 지역도 오크의 범람을 피해 갈 수는 없었죠. 그 범람을 막은 가문 중 하나입니다. 눈동냥으로 배운 검술과 실전으로 다져진 검술로 수많은 활약을 남겼죠.”
그들은 자작일 뿐이었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가졌다.
동서남북에 위치해 있는 거대한 백작령을 제외하면, 가지고 있는 무력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그들은 계속해서 사병을 키웠다.
“이들의 검술은 균형의 묘리를 발전시켜 만든 검술입니다. 초보자가 배우기에 딱 좋은 검술입니다. 어떻게 배우냐.”
검술을 배우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 번째는 마법서, 즉 스킬 북을 얻는 방법.
흔히 무협의 비급과 비슷한 포지션이었다.
이곳에서는 마법서라고 하지.
“스킬 북을 얻거나, 열심히 배우면 됩니다.”
-열심히 배우는 거 가즈아아!!
-ㅋㅋㅋㅋ배워야 제맛이지
-스킬 북은 재미없다!
시청자들의 여론은 직접 몸으로 구르는 방향으로 향했다.
남자 시청자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생각한 것과 다른 방향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다영은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냈다.
그녀는 직접 배우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저는 좋아요. 이것도 하나의 콘텐츠가 될 수 있으니까!”
“천생 방송인이시네. 저쪽이 군노이스 자작령의 시작인 ‘레베린 요새’입니다.”
브락시아에서 요새는 관문 역할을 한다.
작은 요새부터 시작해서 거대한 관문까지.
군노이스 자작령의 레베린 요새는 중소 규모의 요새였다.
병력 2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요새.
“신분을 증명하는 패가 있으면 간단하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이들을 막진 않으니까요.”
요새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새로운 지역에 대한 기대감이 시청자들을 자극시켰다.
하시스 성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엠블럼이 보였다.
살벌하게 기세를 발하는 군인들이 세 사람을 발견했다.
멀티플레이어들은 각자 신분을 증명하는 패가 있었다.
“정지. 무슨 용무인가.”
“군노이스 자작령의 병사 훈련을 받으러 왔습니다.”
“호오…….”
“용병인가 본데? 마침 레베린 성에서 병력을 모집하고 있다. 지나가도록.”
병사들은 의외로 순순히 길을 내주었다.
시청자들이 의아해했다.
보통 관문이라 함은 제대로 된 수색을 펼치는 곳이었다.
하시스 성만 해도 구슬을 가지고 와서 판별하지 않았는가.
“군노이스 자작령은 별다른 의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철저한 교육 아래, 확실한 병사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 그러면 저희도 훈련받아야 합니까?”
“네. 간단하게.”
-오오
-구른다!
-엌ㅋㅋㅋㅋ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낰ㅋㅋㅋ
-진짜사나이 같눜ㅋㅋㅋ
드레젠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합방을 한다고 했지만 편하게 간다고 하진 않았다.
요새에는 각종 마법 도구와 전쟁 병기가 보였다.
백작령과 자작령, 그리고 저 밑의 후작령은 계속되는 전투로 인해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초반 시작 마을로는 더없이 좋습니다. 브락시아는 강함이 곧 생존이거든요.”
“스킬 레벨 업은 어떻게 하는 거죠?”
“그냥 익숙해지면 됩니다. 많이 사용하다 보면 되죠.”
더없이 간단한 해결 방법.
여전히 남성 시청자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드레젠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가 직접 스킬 전수를 하지 않는 것은, 그의 수준을 일반인들이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고난도의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초등학생한테 미적분이나 벡터를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저는 수많은 연습을 통해 이미 무술에 익숙해져 있지만, 여러분은 이제 초심잡니다. 그러니까 차근차근 배워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차피 종국엔 다 같은 지점에 도착할 테니까.”
-이거 온라인 게임 아니라 괜찮음
-ㅇㅇ 그냥 즐기면 된다
-그래도 부러워우우ㅜ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레베린 성입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수련을 받을 겁니다. 속성으로.”
“기대돼요!”
“…….”
상반된 두 사람의 반응을 등에 업고, 드레젠은 두 사람을 성으로 안내했다.
#2
레베린 성.
하시스 성보단 작지만, 훨씬 집약되어 있는 장소였다.
딱딱 필요한 곳만 있는, 군노이스 자작령의 핵심 기지.
정문을 통과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꽂혔다.
“신참인가?”
“워후, 드디어 신참이 왔다!”
“비리비리한 놈들이 훈련을 견딜 수나 있겠냐?! 크하하핫!”
-오우 분위기 보솤ㅋㅋㅋ
-살벌하네;;
-하시스 성이랑은 완전 다르다
드레젠은 작은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궁금해하는 시청자들을 위해서.
“군노이스 자작령은 거칩니다. 실력만이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죠.”
-그럼 드좌가 나서면 되겠네!
-진짜 버스 아닌 것 같은데 버스일 수도?
-아니 초반에 아무도 모르는 스킬을 알려 주는 게 어디임
의견은 반반으로 갈렸다.
‘고생만 잔뜩 하는 거다, 이건 사실 함정이다.’라고 생각하는 부류.
‘드레젠이 없다면 얻지 못할 스킬이었으니 완전 이득이다.’라고 생각하는 부류.
남성 시청자는 전자였고, 다영은 후자였다.
“그래, 병사로 입단하고 싶다고?”
“나는 아니고, 이들을 속성으로 가르쳐 줄 사람이 필요하다.”
“둘 다 근골은 좋아 보이는군. 하지만…….”
병사들이 슬금슬금 몰려왔다.
드레젠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싸늘한 웃음에, 시청자들이 다시 한 번 터졌다.
-나왔다!
-‘그’ 웃음!
-ㅋㅋㅋㅋ엌ㅋㅋ 개 무서웤ㅋㅋㅋㅋ
-저 표정 나올 때마다 오싹오싹한다잉
“레베린 성의 신고식은,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우리 레베린 성의 병사들은 신고식을 하지. 맨몸으로 겨뤄서, 많이 이기면 이길수록 보상이 커지는 방식이야.”
성의 기사 하나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레베린 성은 자작가의 기사들이 돌아가면서 성주직을 맡는다.
지금 등장한 기사는 이번 달의 성주였다.
“내 이름은 페트라라고 한다. 보아하니, 그냥 온 것 같진 않은데.”
“이들에게 검과 버클러를 다루는 방법을 전수할 건데, 내기할 텐가?”
“크흐, 좋아. 오랜만에 깡다구가 있는 놈이 들어왔군!”
군노이스 자작령은 소규모의 식구들로 출발했다.
원래는 용병 집단이었지만, 단기간에 양질의 병사들을 키워 냈다.
그들은 그들만의 룰을 만들어 강자들을 모집했고, 엄청난 숫자의 강자들이 몰려왔다.
그 전통이 아직까지 이어지는 것.
그들은 도전자들을 환영했고, 다양한 상품을 준비했다.
“마침 들어온 상품들이 있지! 버클러? 검? 좋아! 알려 주마! 우리들을 이긴다면! 크하핫!”
“좋아. 몇 명을 이겨야 하지?”
실력은 곧 힘과 지위다.
군노이스 자작령은 단순한 논리로 돌아가는 곳이었다.
드레젠이 가볍게 몸을 풀자, 기사가 호탕하게 말했다.
“열 명이면 질 좋은 무구를 지급한다. 스무 명이면 마법서를 주지. 우리를 모두 꺾으면 성주 자리를 준다.”
“흐음…….”
드레젠은 조용히 생각했다.
다른 세션에서 얻은 성주 자리를 자신의 세션으로 가져갈 수 있을까?
아니, 그건 불가능했다.
[‘크리드’ 님 100,000코인 후원!]
[다영 님 성주 따 주시면 5백만 원 쏩니다.]
-?
-??
-??!
-아니 이거 실화?!
-엌ㅋㅋㅋ 큰손님 오셨구나~~~~
갑자기 들어온 빅딜이었다.
드레젠이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은 여기 도와주러 온 건데…….
“저기…… 혹시 도전하실 거면, 제가 한 달간 수입 반 떼 드릴게요!”
-와
-쿨한 거 보소
-ㅋㅋㅋㅋ이미 다영 님 떡상 중임
-목소리 굿굿 성격 굿굿!
[‘뉴비환영해!’ 님 100,000코인 후원!]
[저도 약소하게 50만 겁니다.]
[‘나는엘프다’ 님 100,000코인 후원!]
[한번 보여 주세요. 전 백만 원 겁니다.]
‘이것들이…….’
즐거운 고민이었다.
남성 시청자를 한번 보니,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강 건너 불구경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졸지에 독무대가 되겠지만, 그것 나름대로 좋은 콘텐츠였다.
“그리고 기술서랑 무구는 저분 드릴게요.”
다영이 마지막 한마디를 했다.
드레젠은 그녀의 모습에서 하이디엔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왜인지 모르게 호구력이 화사하게 피어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이걸 흑우라고 하던가.
“그럼, 저도 즐기겠습니다?”
“좋아요! 파이팅!”
-아아 힐링된다!
-드영 커플 가즈아아아!
-과물입 금지닼ㅋㅋㅋ
=====과몰입 방지턱=====
-ㅋㅋㅋㅋㅋㅋㅋ개 웃기넼ㅋㅋㅋ
드레젠이 도전을 받아들였다.
한 명씩 상대하다간 시간이 부족할 것.
그래서 그는 호기롭게 말했다.
“시간 없으니까 전부 덤벼라. 맨몸 맞지?”
“허! 건방진 놈.”
“뒈지게 밟아 줍시다!”
“건방진 놈은 밟아 줘야지!”
병사들의 흥분이 극에 달했다.
드레젠은 눈을 감았다 떴다.
손에 아무것도 없을 때, 어떻게 적진을 돌파할 것이냐에 대한 교육이 떠올랐다.
그때의 수련은 정말이지, 손에 꼽을 정도로 혹독했다.
-집단전! 그것도 맨몸으로! 아주 중요한 소양이라오. 용사여.
-그대는 자세를 낮추고, 넘어지지 않게 하며, 끊임없이 움직이시오. 상대방을 일격에 죽인다는 생각으로 몸을 지배하시오!
-일격 필살! 그대의 몸은 유연하고 다양한 흉기라오.
몽크!
그들은 온몸을 흉기로 만들어 살아가는 인간들이었다.
성좌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육체의 단련만으로 경지에 오른 자들.
그들은 성좌, 그 위에 있는 무언가를 섬기고 있었다.
“이게 바로, 여러분이 배워야 할 호신술입니다.”
“쳐라-!”
마나가 전신을 맴돌았다.
손끝과 발끝, 그리고 모세 혈관이 있는 마디마디.
마나로 꽉꽉 들어찬 육체는 강철과도 맞설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괴성을 지르며 순식간에 달려든 레베린 성의 병사들.
쿠웅-!
드레젠은 진각을 밟으며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끄아아악-!”
단 한 번.
그가 내지른 정권에 병사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 병사들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췄다.
드레젠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하루 종일 멍청하게 서 있을 건가? 아니면 싸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