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화
45화 - 여파
#1
드레젠은 테이밍 마법을 사용했다.
미친 듯이 뒤따라오던 와이번들의 기세가 점차 누그러졌다.
수많은 와이번들이 자신의 리더에게 붙어 있는 이방인을 떼어 내려고 했다.
흉포한 야성을 억누르고 이지를 가지게 하는 것이 바로 테이밍 마법이었다.
와이렉스는 본래 인간에게서 탄생한 존재.
그렇기에 굳이 테이밍 마법은 필요 없었다.
“이거, 엄청 힘듭니다. 그래도 꼭 버텨 내시길 바랍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ㅋㅋㅋㅋㅋ진짜 저세상 공략이네
-이건 뭐;; 고이다 못해 썩어서 석탄이 됐음ㅋㅋㅋㅋ
[‘나는난다’ 님 1,000코인 후원!]
[그래도 하늘 나는 거 좋음!]
계속해서 후원이 터지고 있었지만 답할 시간도 없었다.
와이렉스의 비행은 거칠고 흉포했다.
이미 익숙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몇 번이고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드레젠은 와이렉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본능으로 느꼈다.
“기분 좋다-!”
[제법이군.]
와이렉스가 흘끔, 뒤를 돌아봤다.
와이번들은 새로운 가족이 제대로 날 수 있을 때마다 환영 비행을 한다.
이는 성인식의 일종이며, 와이번들이 행하는 통과 의례였다.
와이번은 비행할 때 난기류를 형성한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기류를 버티고 온전하게 비행을 해야만이 진정한 와이번들의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바람이 강합니다. 허벅지를 최대한 조이고, 마나를 이용해서 버티세요. 이 관례를 통과해야지 와이번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와 살벌하네;
-고소 공포증 있어서 저런 거 못함;
-나도 날고 싶다!
-부릅다ㅜㅜ 나도 고였으며누ㅜ
고인물들은 슬슬 등장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른다면 자연스럽게 재능을 개화하는 이들이 생겨나겠지.
벌써부터 프로들을 모집한다고 하니, 확실히 인재들이 모여들 것이다.
드레젠은 드넓은 창공을 바라보며 앞으로 있을 미래를 생각해 봤다.
‘역시 나는 뒷짐 지고 돈이나 벌자.’
지금 버는 돈만 해도 엄청났다.
아직 통장에 찍히지 않아서 그렇지, 하루 평균 수익이 500만 원 정도 되었다.
소위 말하는 큰손들이 후원을 해 준다면 천만 원은 우스웠다.
이런 생활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와이번들이 많이 온순해졌네요.”
밤하늘을 비행하는 것은 환상적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성들과 마을.
파베론 산맥을 넘어 펼쳐진 넓은 초원.
언뜻 보이는 비행 몬스터와 순찰하는 그리폰들까지.
드레젠은 과거의 향수를 느끼며 어느새 얌전히 비행하고 있는 와이렉스를 바라봤다.
“저쪽으로!”
쇠사슬로 된 고삐를 잡아, 서서히 방향을 틀었다.
드레젠이 일으킨 마나 파장은 와이번 전체를 제어하는 중이었다.
와이렉스가 길게 포효했다.
오묘한 울음소리는 하나의 신호가 되었고, 와이번들은 따라 울며 와이렉스의 뒤를 따라 비행했다.
-와;;
-개머싰;;
-크으 주모!
-여기서 갑자기 주모가 왜 나왘ㅋㅋㅋㅋ
-와 근데 이건 너무 고였는뎈ㅋㅋㅋ
카메라가 쭉 멀어지며 와이번 무리를 한꺼번에 잡았다.
밤하늘을 노니는 와이번들은 돈 주고도 못 볼 장면이었다.
특히 내려오는 와이번을 타고 등반하는 장면은 벌써부터 절찬리에 수출이 진행 중이었다.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방송 1위에 선정되었습니다!]
시청자 수는 5만 명.
사람들은 그림 같은 광경에 넋을 잃고 화면에 집중했다.
와이번의 비행은 거셌지만 묘한 쾌감이 있었다.
와이렉스는 오랜만에 하늘을 실컷 날아서인지, 들뜬 기분이었다.
“이제 만족했어?”
[좋다. 그대와 함께라면 하늘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겠구나.]
따스한 목소리였다.
오랜 기간 그리워했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
비스트 마스터.
그가 자신을 타고 다녔던 그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새로운 주인을 만난다면, 너는 다시 한 번 그를 가장 높은 곳에 올려 두거라.]
나를 잊고, 새로운 주인을 따라야 한다.
그 말이 와이렉스의 가슴에 파문을 만들었다.
와이렉스의 비늘이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드레젠은 밝게 웃으며 고삐를 놓고 와이렉스의 비늘에 직접 손을 댔다.
“진짜 주인으로 인정하면, 와이렉스는 여태까지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삽니다.”
쩌적-.
단단하고 억척스러운 비늘에 금이 갔다.
와이렉스가 다시 한 번 포효했다.
균열은 더욱 심해졌고 와이번들이 그를 감싸듯, 포지션을 바꿨다.
드레젠은 자신의 마나를 와이렉스에게 불어 넣었다.
“탈피할 때, 이렇게 자신의 마나를 불어 넣으면 새로운 색의 비늘이 생성됩니다. 주인을 상징하는 색으로 변하는 겁니다. 이 작업을 각인이라고 합니다.”
테이밍의 단계 중 하나였다.
몬스터의 광기를 없애는 복종.
주인으로 인정케 하고, 주인의 상징을 드러내는 각인.
와이렉스는 원래부터 광기가 존재하지 않았으니 복종의 단계는 생략.
[크아아아아아-!]
거대한 포효와 함께,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 와이렉스.
그는 순백색의 비늘을 가진 와이번으로 다시 태어났다.
녹슨 비늘을 벗고, 새롭게 태어난 와이렉스가 길게 울었다.
-와 진짜 이 장면 본 내 인생이 레전드다;
-으아아아아 진짜 나도 하고 싶다!
-테이밍이 이렇게 멋있는 건 또 처음이넼ㅋㅋㅋㅋ
-지렸다;; 드좌는 신이야!
순백색의 와이번 킹!
그를 따르는 수백 마리의 와이번들까지.
드레젠은 그렇게 새벽이 올 때까지 비행을 즐겼다.
“나 좀 데려다줄 수 있나?”
[물론.]
와이렉스는 짧게 답했다.
와이번들을 돌려보낸 후, 와이렉스는 하시스 성을 향해 날았다.
그 모습을 본 하시스 성에서 난리가 난 것은 덤이었다.
#2
다음 날.
본격적으로 인계 과정을 거쳐야 하는 날이 밝았다.
샤페론은 자신이 입고 있는 복장을 묘하게 쳐다봤다.
그는 늦은 나이에 기사가 되기 위해 검을 잡았다.
생각보다 재능이 있었고, 특유의 근력과 마나 재능 때문에 기사가 되기 직전까지 갔다.
“하아, 이게 무슨 복장인지.”
“왜? 잘 어울리는구만.”
드레젠이 그의 옆을 지나가며 낄낄거렸다.
그가 입고 있는 복장은 집사들이 입는 옷이었다.
그것도 수석 집사만이 입을 수 있는 고급 정장이었다.
“저는 기사입니다.”
“지금은 아니잖아. 어차피 크리스도 훈련시키려면 자네가 돌보는 것이 나을 텐데.”
“그건 그렇습니다만.”
“하루아침에 마나를 되찾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 결국 내가 구해 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집사는 필수지. 안 그래?”
맞는 말이기에 샤페론은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힘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는 성의 가장 높은 첨탑을 바라봤다.
설마 저런 괴물을 테이밍해 올 줄이야.
“와이번을 데려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 정도는 돼야 남들이 함부로 못 넘보지.”
-ㅇㅈㅇㅈ
-와이번 떼가 있는데 어딜 감힠ㅋㅋㅋ
-저기 쳐들어가려면 드래곤은 있어야지!
그의 말은 다른 시청자들이 호응해 줬다.
샤페론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말로 엄청난 업적이 아닌가.
드레젠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이젠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인계받고, 수도에 갈 생각이다.”
“수도라면…….”
브레이시스 제국의 수도.
모든 마법 공학이 집결되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또 무슨 기행을 저지를지…….
샤페론은 그가 출타하고 있는 동안 전반적인 행정을 처리해야 했다.
“데려올 사람이 있거든. 쓸 만한 동료가 될 거야. 어쨌든…… 잘 구르고 있어라.”
“이젠 격려도 안 해 주시는군요.”
“원래 어쭙잖은 격려보단 이런 게 좋은 법이지.”
드레젠이 소파에 앉자마자 오늘 방송의 끝을 알리는 알림이 떴다.
10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
“아아, 오늘은 이만 끝내야겠습니다. 알차게 했네요.”
-팀 파이트 하고, 레이드 하고, 와이번 잡고!
-알찬 방송 ㅇㅈ하구연ㅋㅋㅋ
-다음엔 합방 ㄱㄱ!
-영상 기대하고 있을게요!
드레젠은 저장하고 게임을 종료했다.
벌써 플레이 시간이 40시간에 육박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었다.
“오늘 세이브 더 브락시아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드레젠 / Lv. 70 / 38 : 53 : 28]
[하시스 성]
눈을 감는 것을 끝으로, 오늘 게임이 끝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갔지만, 그래도 약 3만 명가량이 남아서 마무리를 즐겼다.
강일은 능숙하게 배경 음악을 틀고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다.
방송의 제목도 적절하게 바꿔 놓았다.
“오늘은 뭔가 많이 한 느낌인데요?”
-ㅇㅈㅇㅈ
-정신없었닼ㅋㅋㅋ
-뭐가 그렇게 빵빵 터지는지 모르겠네
-지금 커뮤니티 난리 났음ㅋㅋㅋ 브락겔에 다 레이드 얘기밖에 없음ㅋㅋ
[‘뉴비환영해!’ 님 10,000코인 후원!]
[다른 사람들 반응 보삼]
영상 도네는 활발하게 이뤄졌다.
영상에 등장한 스트리머는 어느 여성 스트리머였다.
얼굴을 가리고 나왔기 때문에 얼굴을 모르겠지만, 그녀는 드레젠의 플레이를 보고 있었다.
“와아…….”
한동안 오디오에서는 드레젠의 플레이 소리만 들렸다.
스트리머인데 말을 안 하다니.
채팅 창에선 뭐라고 말 좀 해 보라는 이야기들이 나오는 중이었다.
“조용히 해 봐요! 집중 좀 하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채팅 창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고, 영상은 그렇게 끝났다.
그 밖에 다른 클립들이 수입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성격을 가진 BJ들이 하나같이 비슷한 반응을 보여 줬다.
그중에는 유명한 BJ들도 존재했다.
“과분한 관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 볼게요.”
-여기서 더 열심히 하면?
-그러면 우리가 못 따라감 ㅇㄷ
-ㅁㅈㅁㅈ 그럴 수 없짘ㅋㅋㅋ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공략도 올려 달라!
가만 생각해 보면 너무 허들이 높은 콘텐츠만 했었다.
구덩이, 팀 파이트, 페베스 검술이나 사라미스 검술 같은 것들은 초보들이 배울 수 없는 것들이었으니까.
강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은 쉬어 가는 의미에서 간단하게 랜덤 합방을 하겠습니다. 제 방송국 뜰에다가 신청 남겨 주시고요, 자세한 양식은 방송국 뜰에 남겨 둘게요.”
-와!
-미친 이런 이벤트가!
-엄마! 방송 탈 수 있겄서!
강일의 폭탄 발언!
그는 그저 옆에서 소소하게 알려 주는 콘텐츠를 진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한마디가 얼마나 큰 여파를 가지고 있는지, 아직 강일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럼 방송 종료하고 영상 만들러 가겠습니다. 다들 주말 마무리 잘하세요.”
-드바!
-드바아아!
-으악 내 주말!!
일요일, 많은 일이 있었던 방송이 종료되었다.
강일은 기지개를 켜며 캡슐에서 나왔다.
오늘도 엄청난 금액을 벌어들였다.
이런 페이스로 계속 간다면 1년 안에는 충분히 빚을 갚을 수 있으리라.
“좋아, 잘하고 있어.”
와이렉스도 순조롭게 포획했고, 팀 파이트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뜻하지 않은 레이드도 완벽하게 끝냈다.
이세계에서 귀환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직 할 일이 많으니까~.”
흔히 아재가 된다면 말에 리듬을 섞어 말한다고 했던가.
강일에겐 그런 행동이 지구를, 고향을 잊지 않기 위한 발버둥 중 하나였다.
습관처럼 중얼거린 그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늘 영상은 반응이 아주 좋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