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44화 (45/279)

제 44화

44화 - 넌 내 거야!

#1

파베론 산맥의 정중앙.

통곡의 봉우리라고 불리는 곳.

듬성듬성 굵은 나무들이 자라고, 대부분은 암석으로 되어 있는 험난한 산봉우리.

그 끝에는 거대한 생명체가 웅크려, 눈을 감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호흡을 하며 오르락내리락하는 몸뚱이를 지닌 생명체.

[아이야, 너는 장차 하늘의 왕이 될 거다.]

그를 창조한 자가 했던 말이 꿈속에서 맴돌았다.

언제나 이 목소리를 그리워하며 하루하루 잠을 청했다.

이제는 없어져 버린 목소리였기에, 조금이라도 더 듣기 위해서 일어나지 않았다.

녀석의 잠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언젠가 너를 필요로 하는 자가 올 거야. 나와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자를 따르렴.]

그는 이전 주인의 말을 똑똑히 기억했다.

와이번들을 이끄는 왕이었으니까.

사람들이 자신을 타고 창공을 활보했던 주인을 동경하고, 환호했던 기억이 꿈속에 등장했다.

소음을 내뱉는 자들.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려 했던 이들.

‘시끄러워.’

와이렉스는 그런 소음이 싫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비스트 마스터가 떠나갔다.

자신이 모시고 있는 자가 불렀다고 했다.

와이렉스는 마지막 말을 기억하곤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새로운 주인을 만나렴. 나의 사랑스러운 아가.]

사람들의 역겨운 소음을 피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올라섰다.

그렇게 택한 곳이 바로 이곳, 깎아지른 바위산이었다.

와이렉스는 주변에 있던 부하들을 통합하고, 이곳에 거대한 둥지를 틀었다.

#2

“비스트 마스터의 유언이 퍼지면서, 수많은 모험가들, 용병, 기사 할 것 없이 바위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나라도 도전할 만하지

-그나저나 목소리라니;;

-까다롭긴 하네 ㅇㅇ

“문제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비스트 마스터가 와이번을 부를 때 내던 목소리라는 점입니다.”

말을 타고 가며, 드레젠은 와이렉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름다운 황혼 아래로 비치는 정경.

드레젠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어울려 한 폭의 동화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주말의 끝에서, 일찍 잠에 빠지는 이들도 있었다.

누군가 브튜브는 좋은 불면증 치료제라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이제 다 왔습니다. 들어가죠.”

말을 묶어 두고,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거닐던 흔적이 보였다.

페베스 산맥은 테이밍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각자가 꿈꿔 왔던 몬스터, 혹은 야생 동물을 테이밍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말은 테이밍할 필요가 없나?

-말은 원래 인간들이랑 친해서ㅋㅋㅋ

-ㅋㅋㅋ 마나 없는 현대에서도 잘 길들이는데 뭐

“맞습니다. 말은 그냥 기르면 알아서 잘 지내죠. 하지만 몬스터의 본능은 저번에도 말했죠?”

인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파장은 좋은 먹잇감이었다.

당연히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길들일 수 없었다.

다양한 생물들이 지나다녔고, 이따금 몬스터들이 덤벼 오기도 했다.

하지만 드레젠의 검은 자비가 없었다.

“그나저나, 소소하게 힐링하려던 방송이 여기까지 왔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겤ㅋㅋㅋㅋ열받아서 성주 됨ㅋㅋㅋㅋ

-마! 그러니까 누가 우리 드좌 건드리래!

-그래도 덕분에 우리들이 힐링하고 있짘ㅋㅋㅋ

조금 뒤틀렸다는 것은 드레젠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본래 마을을 가꾸면서 살아가려던 것을, 하시스 성이라는 거대한 성을 지배해 버렸다.

권력과 연결되기 싫어했지만, 대륙 최고의 권력자 중 한 명인 마탑주와 연관이 되었다.

“요즘 저도 기분이 바뀌었거든요. 귀찮음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물론 진짜 귀찮은 일에서는 발을 빼겠지만.

드레젠은 게임을 진행하면서 조금씩 기분이 변하는 중이었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게임을 진행하고.

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할 때마다 시청자들의 찬사와 응원이 쏟아졌다.

‘나름 짜릿하거든.’

유명인들이 인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게다가 브락시아는 역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도 다시 깨달았고.

임무 하나가 불러온 나비 효과가 이렇게나 커져 버렸다.

그러니까,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 게임을 한 사람에게 너무한 거 아니냐고.

“어쨌든, 여러분이 만족하고 있다면 저도 굳이 옛날로 돌아가진 않을게요.”

-찬성!

-진행 시원시원한 게 더 조아요!

-어차피 마을 개간했어도 부딪쳤을 듯ㅋㅋㅋ

-ㅇㅇ 가만히 안 놔뒀을 거임

[‘아됴’ 님 10,000코인 후원!]

[드센세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요!]

그래, 이게 맞았다.

드레젠은 응원해 주는 시청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계속해서 산을 올랐다.

사람들은 드레젠 자체를 좋아해 주고 있었다.

방향성이 조금 틀어지면 어떤가.

“자, 그럼 산을 타 보죠.”

바위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곳부터는 본격적으로 와이번의 영역이었다.

“마나 적응력 20, 신체 관련 스킬이 20 이상 넘으셨다면 이곳에 오셔서 도전해 보세요.”

-아직 3이라는;;

-오늘 7 찍었는데 언제 20ㅋㅋㅋㅋㅋ

-그래도 꾸역꾸역 노가다해서 기술 포인트 모으면 찍을 수 있음

드레젠은 바위산을 오르기 위한 준비를 했다.

쇠사슬을 몸에 걸치고, 마나를 최대한으로 활성화했다.

고삐로 쓰려던 쇠사슬 끝을 동그랗게 말아, 올가미 형태로 만들었다.

“그럼 올라가겠습니다. 반드시 저와 같은 방법으로 올라가 주세요.”

꾸욱-, 드레젠은 발에 힘을 주어 마나를 모았다.

그리고 그대로 점프.

쿠웅-!

땅거죽이 뒤집혔고, 바람이 휘몰아쳤다.

얼마 남지 않은 나무가 광풍에 휩쓸려 우드득 부러졌다.

-?

-??

-산을 타는 게 아닌데?ㅋㅋㅋㅋㅋ

-저렇게 어떻게 갘ㅋㅋㅋㅋ

-도랏;;

[크아아아아아-!]

저 멀리서 굉음이 들렸다.

빽빽하게 날고 있었던 와이번이 드레젠의 존재를 눈치챘다.

거대한 날개를 펴고, 그대로 포착된 드레젠에게 하강했다.

그 무시무시한 자태에, 시청자들이 패닉에 빠졌다.

-온다온다온다!

-으아아아아

-저게 와이번 킹임?

-ㄴㄴㄴㄴ 아닌 거 같은데?

카메라의 앵글은 드레젠을 아래에서 위로 찍고 있었다.

저 멀리, 까마귀 떼처럼 득실거리는 와이번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거대하고 압도적인 인상을 가진 녀석들이었다.

드레젠은 몸에 걸고 있던 쇠사슬을 빼서 허리의 반동으로 몸을 돌렸다.

“읏차-!”

촤르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쇠사슬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올가미처럼 만들어 둔 쇠사슬의 끝이 와이번의 목에 쏙 들어갔다.

그대로 쇠사슬을 조정해 올가미를 죄는 드레젠.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채팅 창엔 수많은 갈고리들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목에 올가미를 찬 와이번이 미친 듯이 난동을 부렸다.

[크롸아악-!]

주파수가 조금 다른 포효가 울렸다.

드레젠은 쇠사슬을 잡은 손에 힘을 더하며 말했다.

말하기도 힘든 광풍이 불었지만, 어떻게든 입을 열었다.

“이게! 녀석들이! 동료를! 부르는 소립니다!”

-엌ㅋㅋㅋ

-으아아 이제 몰려온다;;

-어떻게 하려곸ㅋㅋㅋ

-미쳤누;; 이걸 어떻게 올라갘ㅋㅋㅋ

다른 와이번들이 수도 없이 내려왔다.

드레젠은 씨익 웃었다.

살벌한 웃음이었다.

올가미를 풀고, 본격적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이걸 등반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이제 다리는 놓였습니다. 내려오는 와이번을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됩니다.”

-롸?

-뭐라는 곀ㅋㅋㅋㅋ

-?

-??

-않잌ㅋㅋㅋㅋ 이걸 우리더러 하라고?

당연히 시청자들은 어이가 없어 했지만, 지금 하는 행동은 드레젠이 아는 한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방법 중 가장 확실했다.

그렇지 않다면 저 많은 와이번들을 일일이 상대하면서 올라가야 하는데, 훗날 막대한 손실이 일어났다.

저 많은 와이번들이 모두 그의 자산이었으니까!

“읏차-.”

[캬아아악!]

와이번들이 미친 듯이 내려왔지만, 드레젠을 잡진 못했다.

그에게는 무적의 은신 기술인 그림자 장막이 있었으니까.

장막 안에 들어간 드레젠은 와이번을 밟고 위로 쭉쭉 올라갔다.

스킬, 피지컬, 상황 판단.

삼박자가 완벽하게 맞아야 도전할 수 있는 콘텐츠였다.

“이렇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 상황이여 이겤ㅋㅋㅋㅋ

-포기포기

-꼭! 그렇게! 다 가져야지 후련했냐!!

방송을 보고 있는 다른 스트리머 역시 입을 쩍 벌렸다.

저게 인간이 할 수 있는 기행이란 말인가?

고여도 저렇게 고일 수가 없었다.

드레젠은 마지막 와이번을 밟고, 그림자 장막을 해제했다.

“존재감을 빵빵하게 드러낸 후에, 이렇게 소리를 내 주세요.”

삐요-!

한국 사람들이 조금만 연습하면 할 수 있는 휘파람.

조금만 방법을 바꿔서 휘파람을 불렀다.

마나까지 진득하게 불어 넣어서.

온 산맥에 울려 퍼질 정도로 시끄러운 휘파람 소리였다.

[크르르르…….]

산봉우리 끝에 볼록 솟아 있던 정상.

그것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다른 와이번은 노란색 눈동자를 가졌지만, 이 거대한 개체는 푸른색 눈을 가졌다.

푸른 비늘의 다른 와이번과 구분된 비늘 색.

붉은색으로 빛나는 비늘이 황혼을 받아 영롱하게 빛났다.

“안녕?”

-와씨;;

-개 무섭네;;

-저게 와이번임? 진짜 너무 큰데;;

-와 화면으로 보고 있는데 ㄹㅇ 지렸다;;

몸을 완전하게 일으킨다면 아파트 3층 높이까지 올라설 수 있는 크기.

날개를 편다면 향유고래를 덮을 수 있는 넓이였다.

와이번이 아니라 소형 드래곤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 정도 크기라면 전략 병기로 사용해도 되는 수준이었다.

[그대, 비스트 마스터의 후계자인가?]

“후계자는 아니야. 너와 와이번이 필요해서 이리로 온 거지.”

[나를 타고 싶다고 했나?]

“맞아.”

와이렉스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드레젠 앞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당장에라도 입을 쩌억 벌려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와이렉스는 숨을 들이마시며 드레젠의 체취를 맡았다.

정확히는 그의 마나를 감별하는 것이었다.

[내 비행 속도는 감당할 수 있겠는가?]

“물론이지.”

[그렇다면 시험해 보겠다.]

와이렉스가 기다란 목을 쭉 내밀었다.

드레젠은 가볍게 올라타, 절그럭거리는 쇠사슬을 와이렉스의 목에 걸었다.

삐죽삐죽 솟아오른 비늘이 아팠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허벅지를 꽉 조이고, 몸을 낮췄다.

치렁하게 늘어뜨린 쇠사슬을 자신의 몸에 칭칭 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기본은 되어 있군. 그렇다면 어디, 날아 보자.]

봉우리 끝에서, 거대한 와이번이 날갯짓을 시작했다.

그가 높이 울자, 와이번들이 따라 울며 그를 뒤따라왔다.

와이렉스는 오랜만에 들어 보는 소리에 기분 좋게 잠에서 깨어났다.

눈앞에 보이는 인간은 그리운 향기를 품고 있었으니까.

‘오랜만의 비행이군.’

그는 오우거를 발톱으로 잡아서 들어 올릴 정도로 힘이 강했다.

그만큼 비행 속도도 뛰어났다.

몇 번이고 사람들을 태웠지만, 그의 비행 속도를 견딜 수 있었던 이는 없었다.

그 후로, 이곳은 통곡의 봉우리라고 불렸다.

[시작한다.]

와이번들의 환영 비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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