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화
43화 - 와이번들의 왕
#1
둥지, 혹은 소규모 단위로 살아가는 몬스터들의 왕을 ‘렉스’라고 부르고, 부족 단위로 살아가는 몬스터들의 왕을 ‘로드’라고 부른다.
로드 역시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만, 렉스 역시 아무나 입에 올릴 수 없는 이름이다.
시청자들에게 설명해 주면서, 추억을 떠올렸다.
나 역시 테이밍을 했었다.
“와이번은 드래곤을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공중 몬스터입니다.”
-로~망
-마! 남자는 와이번이지!
-크으 와이번 지렸다
-와이번 킹이라닠ㅋㅋㅋ
시청자들의 반응은 썩 마음에 들었다.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오늘 하루 게임도 거의 끝났다.
준비를 하고 나면 내일 와이번 킹을 잡으러 가면 되겠군.
“와이렉스를 테이밍하기 위해서 필요한 물품은 딱히 없습니다. 테이밍 마법을 배워야 한다는 점이 있지만요.”
-그래서 테이밍 마법은 어디서 배워요?
-맞아! 테이밍 마법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물어봐야지!
-ㅋㅋㅋㅋ양심 어디?!
“테이밍 마법은 아주 기초적인 마법이라 아무 마탑 지부에 들어가서 배우면 됩니다. 아주 쉽죠?”
테이밍 마법은 기초 중의 기초다.
운전면허 같은 느낌이랄까?
마나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라면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마법 중 하나였다.
평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라도 익히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위로 올라가는 것은 재능의 영역이었다.
“배우는 것 자체는 쉽습니다만, 역량을 어느 정도까지 펼칠 수 있는지는 각자의 재능에 달렸습니다. 스킬 레벨을 꽤 올리면 고급 몬스터들도 테이밍할 수 있겠죠.”
-결국 노오오오가다네요
-진짜 스킬 렙 올리기 더럽게 힘들던데;;
스킬 레벨.
이건 순전히 내 추측이지만, 스킬 레벨 역시 재능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조금 빠르게 올라가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겠지.
숙련도를 구현해 놓은 스킬 레벨이니만큼, 각 플레이어마다 숙련도는 다르게 올라갈 거다.
‘뭐든 해명거리를 준비해 놓긴 했겠지. 엘프란 그런 족속이니까.’
깊게 생각하고 결과를 내놓는다.
그것이 엘프의 장점이자 단점이거든.
게다가 한번 관념이 박히면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 꼰대 기질도 조금 있다.
그때의 습격도 그런 습성에서 나온 결과였겠지.
“자, 그럼 오늘 시간도 별로 없으니까 준비 과정 보여 드리고 게임 마무리하겠습니다. 합방이랑 영지 콘텐츠는…… 일단 탈것부터 얻고 난 후에 진행하죠.”
-탈것이 짱이짘ㅋㅋㅋ
-와 기대된다
-그나저나 합방은 누구랑 할 거임?
-잘못하다간 인기에 편승한다고 논란거리 만들 수 있겠는데?
-? 누가? 드좌가? 아님 상대 스트리머가? ㅋㅋㅋㅋ
[‘뉴비환영해!’ 님 10,000코인 후원!]
[사다리 게임 가즈아!]
좋은 방법이었다.
뭐든지 일단 공평해 보이는 것이 좋으니까.
고민하고 있던 사이, 샤페론과 크리스가 제법 그럴싸한 옷을 차려입고 나타났다.
제법 빠른데?
“명령하신 것 이행했습니다. 다음은 뭘 할까요?”
“……나 잠깐 출타할 거거든. 여기 마탑 사람들 와 있지? 그들이랑 협력해서 성 좀 봐줘. 이거 가지고 있고.”
성주를 인정하는 패를 휙 던졌다.
샤페론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왜, 뭐.
내 애완동물 좀 가지러 가겠다는데.
“오래는 안 걸릴 거야. 음…… 내일 새벽에는 올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
“아, 알겠습니다. 저 혹시, 크리스 님과 훈련장을 써도 되겠습니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제 너희도 식군데 뭐. 눈치 보지 말고 써. 말해 둘 테니까.”
사용인들은 이미 카이렌에게 적잖이 실망한 듯 보였다.
아이젠하트의 눈초리도 심상치 않았는데.
어쨌든 이 두 사람을 해코지하려다간 목이 날아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마탑 사람들에게도 얘기를 좀 해 놔야겠네.
-열~ 개 머시쎀ㅋㅋㅋ
-이것이 바로 참된 복지!
-싸장님 머시써요!
시청자들도 덩달아 신나 있었다.
외투를 챙겨 입고, 절그럭거리는 성기사의 갑옷을 챙겼다.
나가면서 크리스에게 물었다.
“예전에 하던 훈련, 기억하고 있나?”
“예.”
“그럼 일단 그대로 해라. 스카이워커의 훈련 방식은 기초 체력에 좋으니까.”
“알겠어요!”
아주 조금이지만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유전자는 다르네.
아직 백작가에서도 일을 알지 못했을 테니, 시간은 조금 있을 거다.
그 후로는 뭐…… 내가 하기 나름인가.
어쨌든 하시스 성은 이제 내 거다.
‘남의 것을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 줘야지.’
안 되면 영광의 전당으로 부르든, 암살을 해 버리든, 조용하게 만들면 그만이었으니까.
#2
마탑의 마법사들, 그리고 하시스 성의 고용인들은 새롭게 성주가 된 드레젠에게 한 가지 전언을 들었다.
샤페론, 그리고 크리스라는 어린아이를 신경 쓰라는 것.
그들은 별생각 없이 승낙했다.
본래 성주와 친분이 있어 보이는 자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냐.”
“그러게. 일단은 다시 백작가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게 맞겠지. 근데 대장님이 지금 저러고 계시니.”
성의 병사들이야 그렇다 쳐도, 레인저 부대는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정예들이었다.
육성 기간만 5년, 베테랑이 되기 위해서는 10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레인저의 대장이자 하시스 성의 총경비를 책임지고 있던 자가 아이젠하트였다.
레인저는 그의 명령 없이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데 계약이 정확히 뭐였지?”
“이 성에 있는 전부를 가진다고 했는데.”
“……어?”
그렇다면?
레인저 중 한 명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정확히는 무언가 깨달을 때 내는 소리였다.
멍청한 계약이었다.
하지만 그 계약은 성립되었고, 드레젠이 승리했다.
“전부라는 말은…….”
“어?!”
레인저들은 감정이 없는 기계들이 아니었다.
희로애락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었다.
그들도 훈련에 임하거나 임무를 수행할 때를 제외하곤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갔다.
계약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놀라는 것도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미친, 진짜 카이렌 그자,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쉿, 목소리 좀 낮춰 멍청아.”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런 계약 조건을 받아들였다고?”
“……너무 자만하셨던 거겠지. 실제로 엄청나셨으니까.”
소드 마스터.
홀로 몬스터의 대군을 때려잡을 수 있는 괴인이었다.
실제로 카이렌은 오러 블레이드를 선보였다.
그래서 드레젠이라는 자가 훨씬 위험해 보이기도 했지만.
“뭣들 하고 있냐.”
한참 고민을 하고 있던 중 아이젠하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레인저 부대원들은 그를 보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 그냥 얘기를 좀 하고 있었습니다.”
“대장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뭔데.”
레인저 대원이 우물쭈물했다.
아이젠하트는 그들의 나눈 대화를 얼핏 들었다.
걱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성좌의 이름으로 건 계약은 절대 불이행되어서는 안 된다. 알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하시스 성에 있는 모든 병력들은 드레젠 님의 휘하가 된다.”
아이젠하트는 단호하게 말했다.
레인저들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그들은 백작가의 힘을 알고 있었다.
후계자가 죽은 것도 모자라 혐의까지 받게 생겼다.
하시스 성이라는, 전략적 요충지도 순식간에 빼앗겼다.
“백작가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건 새로운 성주님의 역량이겠지.”
다시 빼앗긴다면, 다시 백작가로 돌아가면 된다.
그들에겐 성좌의 계약이라는 방패가 있었으니까.
정당한 계약에 의한 소유권 이전.
제아무리 백작가가 동부의 왕이라고 하지만, 성좌의 이름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평소처럼, 훈련하고 대기해라. 내가 내릴 명령은 그거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군인이다. 각자의 자리를 지켜야 이곳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안전해.”
레인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이 바뀌어도, 변치 않는 사실이었다.
아이젠하트는 병영 곳곳을 돌아다니며 병사들을 다독였다.
정신 교육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였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군. 어떻게 할 거지?’
그는 저 멀리서 걸어가고 있는 드레젠을 발견했다.
하루 동안 출타한다고 하던데, 과연 어떤 행보를 보여 줄지 궁금했다.
“후우, 뭐가 뭔지…….”
“자네, 여기 있었군.”
“아, 얼터 경. 이제 떠나십니까?”
말을 타고 다가온 얼터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계약에 묶인 존재가 아니었으니, 이제 본연의 임무를 다하러 떠나려는 것.
아이젠하트는 궁금한 점을 물었다.
“백작가에서는 어떻게 나오리라 보십니까?”
“흠…… 가주님의 성격상 일단 만나 보시겠지. 새로운 성주가 마음에 든다면, 양아들로 맞이할지도 모르네. 허허허!”
“……그게 최상의 시나리오겠군요. 뒤에 그건…….”
“도련님의 유품이네. 장례 정도는 치러야지.”
실망했을지언정, 예의는 갖춘다.
그것이 얼터의 방식이었다.
아직 그는 백작가의 가신이었으니까.
글라디 백작이 얼마나 슬퍼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조심해서 가십시오.”
“조만간 소식 전하겠네.”
아이젠하트는 짧게 군례를 올렸다.
외부인 출신이라고 하나 얼터는 베스티안 가문의 성을 물려받았다.
가문의 사람에게 예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황혼이지는 저녁, 아이젠하트는 쓸쓸하게 걸음을 옮겼다.
#3
드레젠은 공방에 들러 갑옷을 주문 제작했고, 쓸 만한 검 하나를 집어 왔다.
그가 애용하는 양손 검이었다.
“이번에도 쇠사슬이 필요합니다.”
-또 사슬?
-말고삐 대신 와이번 고삐넼ㅋㅋㅋ
“맞습니다. 일단은 쇠사슬로 만들어진 고삐가 필요하고, 데려오고 난 다음엔 안장을 만들어야겠죠.”
절그럭거리는 대형 쇠사슬을 몸에 두른 드레젠이 말에 올랐다.
조금 버거워하는 기색이 느껴졌지만, 마나를 불어 넣어 주니 금방 팔팔해져, 거칠게 투레질을 했다.
말의 갈기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사냥을 떠났다.
“테이밍에 관련된 이야기를 좀 하자면…… 브락시아 대륙과는 다른 곳에서 비스트 마스터라는 존재가 나타났었습니다.”
-오오, 이런 꿀 같은 역사 시간!
-ㅋㅋㅋㅋㅋ난 이렇게 썰 풀 때가 제일 좋더랔ㅋㅋㅋ
-ㄹㅇ 동화 듣는 것 같아서 좋음
-진짜 공부 열심히 하셨나 봄;; 아무리 게임 세계관이라지만ㅋㅋㅋㅋ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지.’
그것도 정신과 시간의 방에 갇혀서.
비스트 마스터.
타 대륙에서 넘어온 기인은 브락시아 대륙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비스트 마스터는 성좌 중 가장 높은 사람에게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했습니다.”
성좌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저 최강의 성좌라고만 알려져 있을 뿐.
“그가 세상에 풀어놓은 괴수들 중 하나가 바로 와이렉스입니다.”
비스트 마스터의 능력을 물려받은 와이번 킹.
그들이 살고 있는 봉우리에서 종족을 지키기 위해 산맥을 굽어보는 자.
와이번 킹을 제압한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와이렉스를 제압한다는 것은 와이번 전체를 제압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드레젠의 말은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껏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