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화
42화 - 각자의 게임
#1
마탑의 참여 아래, 조사는 빠르게 이뤄졌다.
드디어 성을 접수했고, 잠시간의 평화가 도래했다.
내성, 본래 카이렌이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드레젠이 있었다.
그의 앞에는 샤페론과 크리스가 멀뚱멀뚱한 눈동자를 빛내며 함께하고 있었다.
“뭐든 하고 있어. 그렇게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보고 있지 말고.”
“뭘 하면 되나요?”
“일단 짐부터 좀 풀고, 돈 줄 테니까 옷이랑 생필품 같은 것도 좀 사고?”
한동안 또 말이 없었다.
아무리 봐도 두 사람은 귀족으로 보이진 않았다.
이곳 사용인들이 본다면 의문을 품을 것이다.
극단적이라면 트집을 잡아 쫓아내려고 할지도.
-ㅋㅋㅋㅋ크리둥절ㅋㅋㅋㅋ
-그나저나 드좌 포스 봨ㅋㅋㅋ
-크으 마! 힐링할 준비 댓나!
-이젠 뭐 하실 거임?
“남은 돈으로 생필품을 사서 오겠습니다.”
샤페론이 꾸벅, 인사를 하고 떠났다.
혼자 있게 된 드레젠은 창문을 바라보며 시청자들과 대화했다.
“흠, 기반을 마련했으니 본격적으로 내실을 다져야겠죠. 간간이 공략 영상도 좀 찍고.”
-조쿠연
-무기! 아티팩트! 동료!
-드좌님 저희에게 빛을 내려 주세염!
[‘뉴비환영해!’ 님 10,000코인 후원!]
[크리스 키잡 ㄱ]
드레젠은 피식 웃었다.
시청자들 역시 그의 귀여운 외모와 뛰어난 재능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채팅 창 도중에 ‘크리스 어쩌고저쩌고’, ‘크리스 귀엽다’라는 내용이 올라오기도 했다.
다음 콘텐츠를 고민하던 드레젠에겐 좋은 소식이었다.
“좋은 영지엔 좋은 신하들이 필요하죠. 다음 콘텐츠는 크리스를 훈련시키는 것과 동료를 모집하는 것을 해 볼까요?”
-찬서어어엉!
-난 던전이 더 좋은데
-던전 ㄲ
-칙칙한 거 말고 무기나 아티팩트 어떰?
-으아아아 그냥 드좌 하고 싶은 거 하게 냅둬라 휴먼!
드레젠은 갑자기 분란의 조짐이 보이자, 딱 잘라 말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지만, 떨어져 나갈 사람들은 떨어져 나간다.
똑같은 게임을 하는 수많은 스트리머 중에 자신 취향에 맞는 이들이 있겠지.
스트리머가 가고자 하는 길을 막는다면 진정한 팬이라고 할 수 없었다.
“싸우면 채팅 창 다 얼려 놓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건 좋지만 선은 넘으면 안 되죠.”
-올쏘
-ㅋㅋㅋ꼬우면 늬들이 방송해
-맞아 자기들이 게임하면 될 걸 꼭 일해라 절해라 ㅈㄹ임;;
-우리 드좌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요!
“리겜을 하지 않는 이상, 흐름대로는 가야 합니다. 지금 해야 할 것을 잘 생각해 본다면 다음 콘텐츠 각이 나오죠.”
-여윽시
-베테랑 조쿠연
-그나저나 다른 사람은 어떻게 게임하고 있을까?
내심 궁금해졌다.
많은 스트리머들이 자신의 방송을 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에게 뭘 보고 배웠는가.
“그것도 궁금하네요. 슬슬 온라인을 할 때도 되긴 했는데.”
다시 한 번 언급하자면, 세이브 더 브락시아는 세션 단위로 진행되는 게임이었다.
하나, 하나의 시뮬레이션을 돌려 성공 시나리오가 나올 때까지 무한히 생성되는 월드를 플레이하는 것이다.
하이디엔은 그곳에 몇 가지 마법을 더 추가해, 멀티플레이를 고안했다.
-우오!
-멀티플레이!
-어제 보니까 다른 세션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했음ㅋㅋㅋ
아바타를 복제하여 상대방 월드에 뛰어들 수 있는 마법.
복제 마법과 의식 전이 마법을 사용해 만들어 낸 멀티플레이 방법이었다.
대규모 레이드 같은 경우에는 별도의 독립된 세션을 만들고, 그곳에 플레이어들을 때려 넣는다.
게임과 같은 구조를 마법으로 구현하는 것뿐이었으니, 어려울 것은 없었다.
“혹시 지금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계시거나…….”
[‘옥냥’ 님 10,000코인 후원!]
[슨생님 저 좀 살려 주세요ㅜㅜ]
[‘강아지’ 님 10,000코인 후원!]
[리겜 각 좀 살려 주세오ㅜㅡㅜ]
[‘오케잉’ 님 10,000코인 후원!]
[벌써 다섯 번 죽었습니다…….]
갑자기 후원 퍼레이드가 터졌다.
드레젠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사람들을 보며 조금 당황했다.
아니, 게임 난도가 이렇게 어려웠었나?
대부분 게임을 수도 없이 접해 본 사람들이었는데, 이렇게 공략에 차질이 생길 줄이야.
“어…… 갑자기 분위기가 합방 각이 되었군요.”
-엌ㅋㅋㅋㅋ
-합방! 합방!
-이름하여 드레젠 구조대!
-엌ㅋㅋㅋ 해결사 드좌
분명 엄청난 게임임은 맞았지만, 지금도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좌절을 겪고 있었다.
나온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게임이 이렇게 불타오르기는 또 처음이었다.
공식 카페나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도 공략에 관한 글보다, 어렵다고 징징대는 글이 훨씬 많았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곤경에 처한 모양이네요. 원래 게임은 부딪히면서 하는 법이지만.”
-이건 너무 심함ㅋㅋㅋ
-나도 드좌처럼 하고 싶어서 똑같이 하고 있는데ㅜㅜ
-진짜 똑같이 하면 ㅈ댐
-ㅋㅋㅋㅋㅋㅋ혼자 레이드 깰 수 있으면 따라 해도 됨ㅋㅋㅋ
“음, 그것도 그러네요. 다들 구덩이는 다녀오셨나요?”
-ㄴㄴㄴ
-이 싸람잌ㅋㅋㅋㅋ
-그걸 혼자 어떻게 햌ㅋㅋㅋ
-나 친구랑 갔다가 세 시간 동안 소리만 지르다가 겜 오버됨ㅋㅋㅋ
-엌ㅋㅋㅋㅋㅋ돈도 없어서 용병들이 안 오무ㅜㅜ
총체적 난국이었다.
드레젠은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보다 재능 있는 플레이어들의 수가 너무 적어 보였다.
“내일 방송 땐 제가 여기저기 좀 도와 드리는 시간을 가져야겠네요.”
다시 한 번 후원 세례를 받은 드레젠.
수많은 방송인들, 그리고 돈 좀 있다고 하는 자들이 돈으로, 인맥으로 그를 사려 했다.
하지만 드레젠은 철저하게 다른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조회 수 좀 뽑을 수 있겠는데.’
브튜브는 스트리머들에게 꽤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드레젠 역시 그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뽑아 먹을 수 있을 때 뽑아 먹어야 하고, 상대방과는 철저하게 비즈니스로만 관계를 유지한다.
이것은 브락시아에서 철저하게 배운 진리였다.
‘너무 코 꿰이면 곤란하지.’
호의를 바탕으로, 또는 금전적인 이유를 바탕으로, 혹은 다양한 이유를 대서 그를 이용해 먹으려는 자들이 많았다.
지금의 브락시아도 그러겠지.
그런 놈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 줄 수는 없었다.
현실에서도 그런 자들이 존재할 테지.
“들어가도 되겠나?”
시청자들과의 대화가 잠시 중단되었다.
마탑주, 아시르가 찾아왔다.
드레젠은 그와 마주 앉아, 차를 마셨다.
그가 손수 타는 차였다.
“하시스 성은 꽤나 좋은 도구를 가지고 있네요.”
“허허, 요즘 그런 도구를 쓰는 가문은 없네. 베스티안이 유독 마법과 친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런 것치고는 전투 때 마법사를 잘도 데려왔더군요.”
영광의 전당에서 마법사들이 분명 존재했다.
하시스 성에 파견 나온 존재들인지, 아니면 다른 경로로 흘러 들어온 존재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보통은 ‘헤리 포터’에서 나오는 것처럼 저절로 움직이는 마도구들이 많았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드레젠은 이쪽이 더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것 역시 조사를 해 봐야 할 일이지. 저들이 어떤 마나를 숨기고 있을지 모르니. 그보다…… 샘플을 몇 개 구해 왔네.”
“어디인지 밝혀내신 겁니까?”
“흠, 베스티안 백작가 전체와는 연관이 없는 것 같고, 다른 조직이 끼어 있는 것 같으이. 하지만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네.”
이 양반, 신중한 사람이었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드레젠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베스티안 백작가에서 시비를 잔뜩 걸어오겠는데요.”
“오히려 자네를 영입할지도 모르지. 지금의 가주는 ‘무력’에 목매고 있으니.”
“흠…… 그것도 고려를 해 봐야겠군요.”
현 베스티안 백작가의 가주, ‘글라디 베스티안’.
그에 대한 정보를 떠올린 후, 가주가 취할 리액션을 예상해 봤다.
누구 말대로 싸움은 머리로 하라는 것처럼, 정치나 권력에 관한 문제도 똑같았다.
아니, 이쪽은 오로지 머리로 하는 싸움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마탑에 좀 들러도 됩니까?”
“흠, 필요한 것이 있는가?”
“그것도 있고, 만나야 할 사람도 있거든요.”
드레젠이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니, 마탑주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눈꺼풀 한쪽이 파르르 떨리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오래된 습관이었지만, 이것 때문에 수 싸움에서 한두 번 밀린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드레젠은 그 미세한 변화를 모두 발견했다.
“뭐, 아는 사람은 아니고 필요한 사람입니다.”
“흠, 그렇군. 그럼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할 건가?”
“아뇨, 이참에 테이밍을 할 생각입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창공을 바라봤다.
테이밍.
브락시아에 사는 이들에겐 익숙한 단어였지만, 시청자들에겐 아니었다.
-오오?
-갑자기 분위기 테이밍이라닠ㅋㅋㅋ
-애완동물을 보자!
-가랏! 애완몬!
-나는 와이번으로 해야짘ㅋㅋ
“자네의 마나 정도면 어렵지 않다고 본다만…… 이미 성에 구비되어 있는 놈들이 있을 텐데?”
“제가 원하는 놈이 마침 근처에 있거든요.”
“혹시…….”
그의 눈가가 또 떨리려고 했다.
드레젠은 잘 우려낸 차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작가 전체를 감싸고 있는 산맥.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봉우리에 있는 괴수.
“와이렉스 정도는 타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허헛, 이거 굉장한 배포로군.”
-뭔데;;
-않이 그래서 뭔데ㅔ!
-뭔가 알 수 없는 대화다
-왜 왕따당하는 기분이 드냐;;
드레젠은 찻잔에 입을 가리고 작게 웃었다.
역시 시청자들과 노는 게 즐거웠다.
마탑주는 차를 모두 자리에서 비우고, 종이 몇 장을 넘겼다.
얼핏 보니, 마탑에서 조사한 보고서와 추천장이었다.
“자네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게. 이게 있으면 일이 조금 쉬워지겠지.”
“사양 않고 받겠습니다.”
“불필요한 겸양이 없어서 좋군. 그럼 본인은 가 보겠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네.”
그는 허허 웃으며 지팡이를 찍었다.
밝은 빛에 휩싸여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던 드레젠이 입을 열었다.
이젠 테이밍에 대해서 설명할 차례였다.
“테이밍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들이 좀 계신 것 같네요.”
-좀?
-조오오옴?
-여기 4만 명이 보고 있는데!
-쫌이라니!
“아, 그렇군요. 많이 계시네요. 설마 이렇게 발전한 마도 국가에 교통수단 하나 없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
-그것도 그러네
-헤리 포터에서도 빗자루 있지 ㅇㅇ
-그럼 여긴 빗자루 대신 테이밍이네
시청자들은 이해가 빨랐다.
다양한 장르 문학들을 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대조군이 많으면 연상하는 것이 편하기 마련이니까.
“몬스터 테이밍은 꽤 오래전부터 내려온 교통수단입니다. 편하고, 강력하고, 빠르죠.”
마법으로 이동하는 쇳덩어리도 좋겠지만, 브락시아 사람들은 아무래도 감성에 더욱 치우쳐져 있었나 보다.
드레젠은 창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봉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와이번 킹, 와이렉스를 잡으러 갑니다.”
그리고 드레젠은 과거와 똑같은 펫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