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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39화 (40/279)

제 39화

39화 - 솔로잉 레이드

#1

철컥-.

검게 물든 갑옷.

깊게 눌러쓴 투구에선 붉은 안광이 흘러나왔다.

데스 나이트의 상징들이 낱낱이 드러났다.

마탑주는 물론이고 베스티안 백작가에 충성하고 있던 자들 역시 경악했다.

“청렴함으로 물들어 있어야 할 베스티안 가문이 어찌……!”

정신을 차린 얼터는 방패를 굳게 쥐고 일어섰다.

그의 두 눈은 분노에 물들어 있었다.

언뜻 보이는 실망감이, 그의 입가를 통해 드러났다.

찌그러진 투구를 벗어 던지고, 성큼성큼 걸어가 드레젠 옆에 섰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더구려. 소개가 늦었소. 얼터 공이라 부르시오.”

“마법사들을 보호해 줘. 공격은 나 혼자 한다.”

얼터의 표정이 구겨졌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이자, 가문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온 것이다.

한때 주군으로 모셨던 이에게 칼을 들이미는 것.

배덕한 행위에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이자는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의 명예와 용기를 짓밟지 마시오.”

“……마음대로 해.”

드레젠은 자신의 검술을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다.

전성기가 아니라지만 헤시라둔은 분명 강력한 상대였으니까.

지금 자신의 감각이 살아 있는지 확인하는 좋은 기회였다.

‘솔직히 지금까진 약한 놈들만 상대했지.’

구덩이, 몬스터들, 그리고 팀 파이트.

용사였던 시절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한 적들이었다.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빌드업과 촌각을 다투는 전투가 필수였다.

그 기회가 바로 지금이었다.

“지금부터 레이드 공략, 시작합니다.”

-ㄹㅇ 솔딜ㅋㅋㅋㅋ

?? : 2페 각성해서 드레젠 뚜까 패는 상상 함!

?? : 하지만 어림도 없지! 쩨트킥ㅋㅋㅋㅋ

온갖 드립이 난무했다.

시청자들은 낄낄 웃으며 연신 키보드를 두들기는 중이었다.

드레젠은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마탑주의 버프가 감각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준 상태.

구덩이 때와는 또 다른 쾌감이 전신을 물들였다.

“그럼 서포트 잘해 달라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벌레 대검에 희미한 빛이 깃들었다.

마나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힘.

마탑주는 다시 한 번 유심히 드레젠의 힘을 지켜봤다.

‘역시…….’

곧바로 마나 운용으로 눈속임을 하고 있지만, 본질은 전혀 다른 힘이었다.

콰아앙-!

힘으로 밀리지 않았다.

드레젠은 살벌하게 웃으며 헤시라둔과의 힘 싸움을 이어 나갔다.

그의 머리가 팽글팽글 돌아갔다.

‘복기해 볼까.’

과거, 헤시라둔은 직선의 묘리를 살린 검술을 사용했다.

상체를 거의 회전하지 않았고, 마나와 압도적인 신체 능력으로 찍어 누르는 검술이었다.

드레젠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눈앞에 있는 헤시라둔은 아직 베스티안 백작령에 전해져 내려오는 검술을 쓸 것이다.

-우리 편 이겨라!

-여기서 이기면 레전드!

-으아아아 가즈아ㅏ!

인간과 데스 나이트의 싸움은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드레젠은 화려하진 않지만 실전성이 다분한 검술로 헤시라둔을 몰아붙였다.

그의 눈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모든 정보를 뇌로 받아들였고, 다음 수를 빠르게 생각했다.

[죽어라아아아아-!]

용사가 된 드레젠의 특기는 모든 검술들의 초식을 따로따로, 그리고 끊어서 쓴다는 것이었다.

관찰력이 나름 뛰어난 카이렌 역시 그 때문에 애를 먹었다.

데스 나이트가 된다면 인간이었던 시절보다 조금 더 저돌적으로 변한다.

수 싸움보다는 압도적인 피지컬로 찍어 누르는 것이 그들의 싸움 방식이었다.

“읏차-.”

드레젠은 날아오는 검을 비스듬하게 흘렸다.

마나 때문에 무척 심한 반탄력이 일어났지만, 하프소딩으로 훌륭하게 막아 냈다.

헤시라둔은 힘의 방향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회전해 이격을 먹였다.

드레젠 역시 가볍게 몸을 숙여서 피했다.

“레이드 보스를 상대할 때는 방어에 집중하세요. 상대방의 루틴을 관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쿠웅!

왼발을 디디며 다시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공격.

드레젠은 옆으로 가볍게 피하며 눈을 빛냈다.

“방금 왼발을 딛고 내려찍기를 했죠? 다음에도 하나 봅시다.”

후웅!

이어서 화려한 콤비네이션이 드레젠을 괴롭혔다.

그 유명한 다크 소울의 끝판왕들처럼, 온갖 더러운 패턴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드레젠이 한참 수련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백날 힘만 수련한다고 되는 줄 아냐?

-싸움은 힘과 마나도 중요하지만, 눈과 머리가 더 중요해 멍청한 놈아.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었다.

그 녀석은, 항상 자신의 자존심을 짓밟았으니까.

허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 당시 드레젠을 가르쳤던 인물은 다시없을 스승이었다.

‘몸에 밴 건 어쩔 수 없지.’

가볍게 움직여 힘 있게 때렸다.

튕겨 나오면 나비처럼 유연하게 움직였으며, 상대방의 타이밍을 빼앗으려 변초를 섞기도 했다.

보고 있는 자들이 넋을 놓을 정도로 아름다운 검술이었다.

-와! 공략 멋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공략인 건가?

-엌ㅋㅋ이 사람 공략한다고 하더니 찐텐으로 싸우고 있넼ㅋㅋ

드레젠은 헤시라둔을 몰아붙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의 패턴 하나하나를 분석하는 중이었다.

패턴 분석의 기본은 바로 다양한 공격을 넣어 보는 것.

생물은 닥쳐오는 위협에 반응한다.

그것을 하나하나 경험하면서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

“다시 왼발.”

후우웅-!

검푸른 오러 블레이드가 땅을 가를 기세로 내리꽂혔다.

콰드드드득-!

드레젠은 일부러 앞으로 나아가며 검을 흘렸다.

묵직한 충격이 그를 괴롭혔다.

체력이 죽죽 깎이는 것이 느껴졌다.

“어림도 없네!”

곧바로 따스한 빛이 드레젠의 발부터 올라왔다.

줄어들었던 체력이 곧바로 쭉쭉 차오르고 있었다.

어차피 데스 나이트는 검사다.

마나를 폭발시켜 광역기를 쓰지 않는 이상, 근접 보스일 뿐이었다.

“밑으로 검신이 내려가면 바로 회전해서 횡베기, 그 후 좌, 우로 한 번씩.”

-오오 보인다

-오오오 걍 싸우는 게 아니었다!

-어딜 보시는 겁니까, 그건 제 잔상입니다.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거나, 검을 이용해 튕겨 내고, 흘려 내는 등의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다.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NPC들도 서서히 몸이 달아올랐다.

도대체 어떤 검술을 익히고 어떤 훈련을 해 왔고, 어떤 적들과 싸워 왔기에 저런 움직임이 나오는 것일까.

“얼터 경.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게요.”

“……하시스 성이 저자 밑으로 몽땅 들어간다면.”

아이젠하트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얼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생각할 시간이 많이 필요했으니까.

베스타인 백작가에 충성을 맹세했다.

하지만 그들의 잘잘못까지 끌어안을 포용력은 부족했다.

[으어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앙-!

다시 한 번 힘 싸움이 이뤄졌다.

절묘하게 받아쳐, 투구를 타격하는 기다란 검신.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가는 헤시라둔.

대검을 빙글 돌리며 따라붙는 드레젠.

“백작가를 배신하겠다는 말이군.”

“그저 성좌들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흠…….”

성좌.

그들의 이름을 걸고 행하는 행사는, 그 책임도 무거웠다.

얼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도저히 자신이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았기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치고받고 싸우면 좋았을 것을.

“얼터 경도 궁금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저자가 보이는 행보. 앞으로 대륙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 같습니다.”

내심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멈칫했다.

얼터는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배스티안 백작가의 충신이요, 기사였다.

한번 충성을 맹세한 기사에게 이적이란 없었다.

#2

쿠웅-.

묵직한 압박을 하체를 굽혀 받아 냈다.

뜨거운 숨소리가 느껴졌다.

헤시라둔의 어깨, 허리, 발, 그리고 눈빛까지 읽어 냈다.

다음 공격을 예측하고 미리 위치에 가 있는다.

“흡-.”

이번에 내던질 수는 저 멀리, 그림자 기사단들이 쓰는 검술을 응용한 것이었다.

그들은 일격에 사람들을 죽였으며, 그 누구보다 은밀한 공격을 펼친다.

‘혼돈’이라는 힘을 쓰는 그들은 마나를 뛰어넘는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콰득-.

작은 균열이 생겼다.

“지금 타이밍에 한번 찌를 각이 나옵니다. 이 균열을 잘 이용해야 합니다.”

프로그램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카이렌이라는 자가 미숙해서 그러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흑마법의 영향일 수도 있겠는데.

흑마법 중에서는 대상을 일정한 패턴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마법도 있으니까.

다만 이렇게 수준 높은 사람에게까지 적용될 줄은 몰랐다.

‘아니,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한창 마족들이 준동하고 있을 때.

그들을 이끌어 낸 것은 다름 아닌 흑마법사들이었다.

소환 마법과 흑마법을 동시에 습득한 이들.

그들의 뒤에는 ‘무의 추종자’라고 불리는 집단이 있었다.

‘여기서부터 시작이었구나.’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고 있었다.

소소한 힐링을 위해서 정리해야 할 것들이 보였다.

그렇다면 지체할 필요는 없지.

“이제부터 파훼 들어갑니다.”

선포했다.

이제 헤시라둔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균열은 이미 만들어 놨으니까.

-가즈아!

-쩨트킥!!

-이제 반격이드아!

-느리군, 애송잌ㅋㅋㅋㅋㅋ

“제대로 놀아 보자고.”

버프도 빵빵하게 받고 있겠다, 제대로 날뛰어 볼까?

마침 무기도 손에 딱 맞는 대검이었다.

공방일체의 무기이자, 마나 운용만 잘된다면 댕겅댕겅 썰어 버릴 수도 있거든.

게다가, 검의 특성은 틈새를 공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나는 정말 신비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잘만 운용한다면, 두 가지의 스킬을 복합적으로 사용할 수 있죠.”

사라미스의 빠르기와 그림자 기사단의 현묘함을 담는다.

공격이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이미 눈치챘을 때는 닿아 있는 일격.

내 몸과 검, 그리고 상대방에게까지 최단거리로 닿는 경로를 탐색했다.

[으오오오오오-!]

쿵!

왼발을 디뎠다.

녀석의 머리 위로 검신이 쭈욱 뻗었다.

그래, 이때를 기다렸지.

“흐읍-!”

마나, 그리고 혼돈의 힘을 실었다.

최속의 빠르기로 놈의 균열을 찔렀다.

흔히 격투 게임을 프레임 싸움이라고 하지 않는가.

지금도 똑같았다.

“녀석의 프레임보다, 제 공격 속도가 빠르면 됩니다.”

슈르륵-.

기묘한 소리가 났다.

마치 뱀이 땅에 몸을 숨기는 듯한 소리.

나는 그래서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세르펜트.’

콰드득-!

느낌이 제대로 왔고, 나는 녀석의 오른쪽 옆구리 밑으로 빠져나왔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교차된 상황.

[으어어어어아아아아아-!]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 들렸다.

절그렁거리는 갑옷 소리와 함께.

빙글, 황금빛이 묻어 있는 검신을 다시 겨눴다.

히죽 웃으며 말했다.

“저 팔은 이제 못 쓰겠군요.”

단 한 번의 실수에 공격 능력의 절반을 잃은 헤시라둔이 분노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거참, 이제야 진짜 데스 나이트다워졌네.

착한 데스 나이트는 죽은 기사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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