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화
38화 - 헤시라둔
#1
경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베스티안 백작령, 그것도 하시스 성에서 영광의 전당이 펼쳐진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과연 누가 영광의 전당에 도전했단 말인가.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끌린 행사였다.
“……내 눈이 이상한 것은 아니겠지요.”
“저도 느꼈습니다.”
마탑에 상주하는 마법사들은 여러 가지 연구를 진행하는 이들이었다.
연구를 수도 없이 반복하기 때문에, 많은 경우의 수에 노출되는 환경 속에 있었다.
수많은 경험들은 곧 지식으로 변했고, 그들의 보는 눈을 키워 주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은, 흑마법의 잔재가 가득 남아 있는 카이렌의 오러 블레이드였다.
“이거, 베스티안 백작가가 휘청하겠습니다.”
“당장 조사를 해야 합니다. 다행히 이젠 이곳 주인이 베스티안 가문 사람이 아니더군요.”
“허허…… 한번 협조를 구해 보게. 내가 보기엔 저자가 일부러 들춘 것 같으니.”
“알겠습니다.”
정말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었다.
마침 국경 순찰을 위해 마탑주가 주변에 있었고, 때마침 성좌들의 빛이 내려와 영광의 전당이 열리는 광경을 보았다.
그는 허허 웃었다.
성좌가 인도해 줬음일까, 이렇게 흑마법의 잔재를 잡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것보다, 내 안목이 틀리지 않는다면…….’
마탑주는 조용히 드레젠이라고 하는 청년을 바라봤다.
엄청난 검술 실력은 둘째 치더라도, 마지막에 보였던 그 힘.
오러 블레이드를 깨부술 수 있는 힘이라면…….
“한번 확인을 해야겠군.”
저런 인재는 얼굴 도장을 찍어 두는 것이 이득이었다.
훗날 어떤 형식으로 인연이 닿을지 몰랐기에,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마탑주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본 적 없는 검술을 사용하는군.”
“신비한 청년입니다. 그나저나…… 일에 차질이 생겼군요.”
“아직 끝난 건 아니지 않은가.”
관객석 구석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가운데, 침착하게 바라보고 있는 자들이었다.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다른 한 명은 주문을 외웠다.
“핵심적인 패였는데, 아쉽게 됐어.”
“어쩔 수 없죠. 저런 변수가 나타난 이상…….”
“폐기해야지.”
먼저 일어난 자가 차가운 말을 내뱉고 자리를 떠났다.
남아 있는 자는 여러 가지 주문을 겹겹이 외웠다.
웅얼거리는 소리가 겹쳐서 들릴 정도였다.
그가 막 주문을 완성하려는 찰나, 환호를 받고 있던 드레젠과 눈을 마주쳤다.
‘설마? 헉!’
자리에 앉아 있던 그는, 황급히 주문을 끝맺고 손을 휘둘렀다.
쩌엉-!
거대한 대검이 그가 있었던 자리에 박혔다.
정말 간발의 차였다.
거리가 조금만 가까웠다면 목이 그대로 꿰뚫렸을 것이다.
‘젠장, 역시 뭔가 있군. 하지만 반은 성공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주변 사람들이 혼비백산했다.
드레젠이 밟고 있는 카이렌에게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동시에 일어났다.
#2
-뭐야
-왜 급발진했;;
-아조시 왜 구래여ㅋㅋㅋㅋ
“이제부터 또 재밌어지겠네요.”
조용히 넘어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겁 없이 하시스 성을 먹겠다고 선포한 이유는 몇 가지가 더 있었다.
일단 거점을 마련해야 했고, 수상한 일의 뿌리를 뽑기 위함도 있었다.
영광의 전당, 팀 파이트는 생각 외로 큰 행사였다.
‘주목은 잘 끌었으니까, 이제 얽히고설키겠지.’
소소한 생활이라는 것은 정말 어렵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몰려드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소작농이나 평범한 서민으로 살기엔 부족한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크으으으…….”
슬며시 밟고 있던 카이렌의 등에서 내려왔다.
그가 손을 뻗자, 저 멀리 꽂혀 있던 벌레 대검이 스르륵 빨려 들어왔다.
수도 없이 많이 떴던 알림 창을 잠깐 동안 확인했다.
[영광의 전당 - 팀 파이트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숙련 포인트 30점 획득하셨습니다.]
[10골드 획득하셨습니다.]
[스킬 : 오르비스 검술이 활성화됩니다.]
[기술 포인트 2점 획득하셨습니다.]
[검술, 스텝, 마나 적응력 랭크 업!]
[숙련 포인트 15점 획득하셨습니다.]
“당분간 알람은 좀 꺼 두도록 하죠.”
이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나중에 숙련 포인트만 간간이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설정을 열어 바로 알림 창을 꺼 버렸다.
“크어아아아아-!”
그사이, 카이렌이 완전한 각성을 마쳤다.
드레젠은 검을 휘둘러 선공을 가져가려 했다.
사라미스식 검술의 묘리가 담긴 일격이었지만, 카이렌은 가볍게 팔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드레젠의 일격을 쳐 냈다.
-워매;;
-않이 여기서 2페가 나온다고?
-도랏;;
-아니 경기 끝나고 2페라닠ㅋㅋㅋㅋ
[‘크리드’ 님 100,000코인 후원!]
[시너지 없이 제압 가능?]
“버프 없인 힘들겠군요.”
이제 이곳은 자신의 성이었다.
위험 부담을 안고 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검푸른 마나가 하늘로 솟구쳤다.
이제 그는 카이렌이 아니라 헤시라둔이라고 불려야 했다.
[마장군 - 헤시라둔이 각성했습니다.]
[레이드 페이즈에 돌입합니다.]
[헤시라둔을 사냥하세요.]
-?!!
-?
-??
-레이드?!
-아니 레이드?!
게임은 강력한 자들을 보스로 취급했다.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잘 구현해 놓은 것 같아, 드레젠은 미소를 지었다.
하이디엔과 엘프들이 얼마나 많이 공부하고, 또 개발했을까.
그들의 노고가 피부로 생생히 느껴졌다.
-레이드 가즈아!
-와 진짜 갓겜ㅋㅋㅋㅋㅋ
-이런 식으로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거 보솤ㅋㅋㅋ
육체 강화 시술에 흑마법.
거기다 데스 나이트로써 실험까지 마친 헤시라둔이었다.
다만 아직 완성형은 아니기 때문에 드레젠이 상대했던 헤시라둔보단 훨씬 약했다.
“이런! 사람들을 대피시키게!”
드레젠의 곁에서 연륜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마나가 대기를 떨게 만들었다.
비명과 괴성, 사람들이 이동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드레젠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자네, 아직 여력이 남았는가.”
“그렇습니다만…… 마탑주님이시군요.”
드레젠은 기억에서 노인의 얼굴을 끄집어냈다.
마탑주가 자신 앞에 처음 나타났을 때의 모습이었다.
웬 거지가 말을 걸기에 가볍게 신세 한탄을 했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훗날까지 꽤 신뢰가 두터웠었던 인물이었다.
“내 정체를 알아볼 수 있다니, 역시 범상치 않구려.”
“시국이 시국인데, 당신의 본모습을 보여 주시죠.”
“허허! 그래야겠군. 그래야 주변 사람들이 도움을 주겠지.”
그가 지팡이를 땅에 찧었다.
콩, 하고 가벼운 소리가 들렸다.
그가 마나의 장막을 벗어던졌다.
마탑주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났다.
[전투 가용한 인원들은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화력을 집중하게.]
마탑주의 영향력은 지금 드레젠에 비할 비가 아니었다.
마나를 심어서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사람들의 기세가 달라졌다.
드레젠은 빠르게 움직여서 크리스와 샤페론에게 향했다.
“일단 대피해라. 주변에 수상한 자들이 있을지 모르니까 조심하고.”
“알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든든한 지원군들이 많이 있는데, 못 잡으면 사람이 아니지.”
크리스가 그의 소매를 잡았다.
총기를 잃지 않은 눈동자가 똑바로 그를 응시했다.
드레젠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꼭 이기고 오셔야 해요.”
“그래. 얼른 안전한 곳으로 가 있어.”
크리스와 샤페론이 무사히 나간 것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전투 준비를 서둘렀다.
경기장엔 제 한 몸 지킬 수 있는 자들만 남아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아이젠하트였다.
“……대체 이게 뭡니까.”
그는 검을 뽑아 들고 얼터 경에게 향했다.
의식을 차려, 멍하니 폭주하고 있는 카이렌을 본 얼터.
그 역시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찌그러진 방패에 손이 절로 가는 장면이었다.
“아아아아-! 미쳤어!”
그 순간, 머리가 산발이 되고, 아무런 마나도 느껴지지 않는 여인이 비명을 지르며 나타났다.
뭇 사람들의 이목이 순식간에 집중되었다.
며칠 전, 그녀는 데스 나이트의 핵을 발동시키려다 실패했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평생 쌓아 왔던 마나를 몽땅 잃은 것도 모자라, 심각한 저주에 걸려야만 했으니까.
“내가, 내가내가내가 그렇게 싸우지 말라고 그랬는데! 이 멍청한 새끼야아아아-!”
그녀는 오갈 데 없는 분노를 터뜨렸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분노로 타오르고 있는 데스 나이트, 헤시라둔의 어그로를 몽땅 집어 먹었으니까.
그녀 앞에 순식간에 나타난 헤시라둔이 탈리야의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꺄압!”
[멍청한 년.]
그녀가 마지막으로 들은 단어였다.
퍼석-!
황금빛 폴리곤이 휘날렸다.
하시스 성에서 모종의 일을 처리하고 있었던 탈리야는, 그렇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엌ㅋㅋ박력 보소
-진짜 레이드 보스긴 레이드 보슨갑다
-진짜 팝곤 머기 중ㅋㅋㅋㅋ
-와앀ㅋㅋㅋㅋ 두근두근!
드디어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마법사들이 마법을 퍼부었고, 기사들이 방어 진형을 짰다.
내로라하는 자들은 모두 튀어나와서 헤시라둔을 포위했다.
“자네, 홀로 저자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마탑주가 드레젠에게 물었다.
고개를 가볍게 돌려, 마탑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탑주가 허허 웃었다.
“당돌한 것인지, 오만한 것인지 시험해 볼 수 있겠군.”
“당신이라면 이미 눈치채셨을 텐데요.”
“허허허.”
마탑주는 그저 웃기만 했다.
드레젠은 벌레 대검을 한번 휘둘렀다.
근력이 조금 더 강해졌고, 마나 역시 훨씬 많이 늘었다.
전성기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많았다.
“부탁드립니다. 아시르.”
“마탑주의 이름을 걸고 자네에게 큰 도움을 주겠네. 대가는 자네의 시간일세.”
“좋습니다.”
마탑주는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드레젠이 겪은 바로는 그러했다.
그가 지구로 귀환하고 나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치열하게 저항하다가 전사했겠지.
[그대에게, 축복을 내리노라.]
-마탑주의 버프라닠ㅋㅋㅋㅋ
-최상급 버프 ㅇㅈㅇㅈ
-그이 뭐 랭커 버프 받는 꼴이넼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은 다가올 레이드를 기대했다.
드레젠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현재 그의 방송은 현재 아마존 TV에서 가장 핫한 방송으로 걸려 있었다.
-최초! 세이브 더 브락시아 레이드!-
메인 배너에 걸려 있는 이 제목을 클릭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리는 것도 모르고, 드레젠은 헤시라둔과 대치하는 중이었다.
[우오오오오오오-!]
그가 포효할 때마다 물리력을 가진 마나가 주변을 뒤흔들었다.
초인 대 초인.
환상의 대결이 시작되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