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화
33화 - 인체 공학자
#1
인체 공학자.
인체를 개조하거나 강화 병사를 만들 수 있는 자들.
인간의 육체는 기본적으로 나약했기에, 생존 경쟁에서 뒤떨어졌다.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방법을 고안했었고, 그 결과 탄생한 직업이 인체 공학자였다.
그들은 철저하게 순수한 육체의 강함에 집착했다.
“아니, 어떻게…….”
그 인체 공학자 중 한 명인 탈리야는 눈앞에 있는 드레젠을 보고 눈이 몽롱하게 풀렸다.
왜 그랬던 것일까.
눈앞에 있는 드레젠이 완벽한 이상향이었기 때문이었다.
인체 개조의 끝.
인체 공학자만이 알 수 있는 디테일이 탈리야에게는 보였다.
“아는 사인가?”
“아니아니아니! 그럴 리가!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이런 사람을 어떻게 데려왔지?”
탈리야는 눈을 반짝이며 드레젠을 바라봤다.
카이렌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다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계약이라는 족쇄가 그를 묶어 두고 있었다.
대체 이건 또 무슨 상황인 건지.
저 여자가 저렇게 흥분하는 모습은 또 처음 봤다.
“이자가 팀 파이트를 할 상대다. 그럼 나중에 보지.”
“어어-?”
드레젠은 아무런 말 없이 탈리야의 곁을 지나쳤다.
그녀는 멍하니 드레젠을 바라보며 졸졸 쫓아왔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옄ㅋㅋㅋㅋㅋ
-설마 막 첫눈에 반하고 그런 상황은 아니겠지?
-엌ㅋㅋㅋ 그런 만화 같은 일이 발생할 리가 없지!
“저, 저기. 혹시 진짜 팀 파이트 할 생각?”
그녀의 물음은 드레젠이 아닌, 카이렌을 향해 있었다.
나른한 얼굴을 하고 있던 성주는 귀찮다는 듯, 그녀를 밀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압도적인 힘으로 밀려나면서도, 그녀는 카이렌에게 필사적으로 말했다.
“그, 그만두는 게 좋을 거 같아! 아, 아니, 아니, 기한을 조금만 더 주면!”
“왜 이렇게 호들갑인지 모르겠군. 이미 계약은 끝났다.”
카이렌은 눈빛으로 ‘너는 준비한 것이나 잘해라.’라고 말하곤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탈리야는 멍하니 드레젠이 지나간 자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두 사람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탈리야는 털썩 주저앉았다.
“망했다. 저, 저런 괴물이 있었다고?”
그녀는 공학자였다.
비록 안 좋은 길로 빠져, 언데드와 인체 공학을 접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한때는 촉망받는 공학자로서 이름을 날렸었다.
지금 그녀는 자존심에 금이 간 것도 모자라, 따라가서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이 싸움은 절대로 붙여선 안 돼.’
애초에 ‘만들어진’ 몸과 범인의 몸은 다르다.
수 세기의 연구가 집약된 몸은, 마나를 이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범인과는 달랐다.
탈리야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기둥을 짚으며 일어섰다.
“얘기를, 얘기를 따로 해 봐야겠어.”
턱을 벅벅 긁은 그녀는 드레젠의 뒷모습과 앞모습을 상기했다.
완벽한 균형을 가지고 있는 몸과 안쪽에서 유기적으로 흐르고 있는 마나의 줄기.
본인은 잘 모를 테지만, 그의 육체는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는 육체였다.
탈리야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을 정도의.
“어떡하지? 어떡하지?”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던 그녀는, 붉게 충혈된 눈을 한 채 성주의 연구실로 달려갔다.
반드시 이 사태에 대해 해결을 해야 했다.
멍청한 성주가 무리한 계약을 해 버렸다.
애초에 저 용병은, 이길 수 있었기 때문에 무리한 일정을 승낙한 것이다.
“바보 같은!”
그녀는 거칠게 연구실의 문을 열고 완성되어 있는 실험체를 바라봤다.
본래 이걸 지금 꺼낼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정신적으로 타격을 입혀야 미래가 있을 것 같았다.
탈리야는 손톱을 계속 깨물며 고민했다.
‘이걸 지금 풀면 팀 파이트에는 못 보내겠지. 으아아- 그렇게 무식한 괴물을 어떻게 이기지?!’
사실 이건 개발사 마법에 따라 이뤄진 결과였다.
현실에서의 강일 역시 개조를 받은 몸이었지만, 인 게임보다 훨씬 정교하고 수준 높은 개조였다.
플레이어들은 일반인이었다.
사실 현대에 있는 육체가 브락시아에서 어떻게 버티겠는가.
플레이어 전용으로 개조된 육체를 설정해 놔서 이렇게 된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탈리야는 결심하고 마나를 일으켰다.
날이 아직 저물지 않았을 때, 드레젠의 일행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전해 준 패.
그것으로 일단 인질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행한 행동은, 결과적으로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을 낳았다.
#2
“이곳에서 지내면 된다.”
“이곳에서 실험이 이뤄지고 있나 보군.”
방에 도착해서, 드레젠은 카이렌에게 말했다.
젊은 성주는 피식 웃었다.
“이미 전부 알고 접근한 것 아니었나? 새삼스러운 질문은 사양하지.”
성주는 생각 이상으로 바쁜 몸이었다.
이런 곳에서 시간 낭비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약속은 꼭 지키길 바라지.”
드레젠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카이렌은 나른한 표정을 유지하며 문을 닫았다.
어째 일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은 착각일까?
이내 고개를 털어 버린 그가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년이 사고만 안 치면 좋겠군.”
카이렌은 그녀가 있을 법한 곳을 찾아갔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면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을 여자였다.
‘그나저나…… 이상하게 밖이 시끄러워.’
병영 쪽인 것 같았다.
또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 건지…….
그는 성 내부에 아무런 기척도 없다는 것도 잊은 채 걸음을 옮겼다.
#3
우웅-.
방에서 시청자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던 드레젠이 품에서 울리는 공명음을 들었다.
품에 잠들어 있던 패를 꺼내자, 탁한 마나가 꿈틀거리는 것이 육안으로 보였다.
꼭 촉수같이 생긴 것이, 퍽이나 징그러웠다.
-으;;
-저건 또 뭐여
-개 징그럽;;
-부숴 버려요!
콰직-.
드레젠은 손을 가볍게 쥐어서 패를 박살 냈다.
이건 일종의 핵을 만드는 장치였다.
“데스 나이트의 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누군가에게 건네준 후, 아티팩트를 만든 주인이 발동할 수 있습니다.”
-기생충 같은 건가?
-으;; 생각만 해도 끔찍함;;
-ㄹㅇ 저게 뭐여 으으;;
-옛날에 거 지하철역에서 음료수 주는 거하고 비슷한데ㅋㅋㅋㅋ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설명을 더 해 주었다.
의외로 이런 잡다한 지식을 풀어 주면, 시청자의 반응이 꽤 좋았다.
“성좌 헬라는 망자를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흑마술에 관련된 지식도 모두 그녀가 전달해 준 것이었죠.”
-역사 시간 조쿠연!
-그나저나 천만 원은?
-더 얘기해 주세요!
[‘그래서’ 님 1,000코인 후원!]
[그래서 천만 원은!]
“일단 하던 얘기부터 마저 하겠습니다. 흑마법사는 원래 하나의 학파로서 자리를 잡았습니다만, 인체 공학자의 등장으로 판이 달라졌습니다.”
-인체 공학자는 또 뭥미?
-막 개조하고 그런 건가?
-인체 공학자 하니까 연금술사 생각나누
드레젠은 인체 공학자에 대한 썰도 쭉 풀어 줬다.
앞서 말했듯, 생존에 유리한 몸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
그런 자들이 흑마술과 인체 공학을 접목해 버리니, 기괴한 병기들이 탄생했다.
“음…… 역사책으로 읽었을 때,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엄청난 전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몬스터와 인간의 전쟁이 아닌, 인간과 인간의 전쟁.
무분별하게 만들어 낸 병기는, 같은 인간들에게 위협이 되었다.
그 결과 브레이시스 제국은 흑마법사들의 집단인 ‘흑마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전쟁은 브레이시스 제국 남동쪽을 완벽한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그 후로 제국에선 흑마법사들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죠.”
이런저런 조약을 맺어 언데드, 그리고 인체 공학으로 만들어 낸 병기 생산을 막았다.
하지만 누구 말대로, ‘법 같은 뜨뜻미지근한 것’은 별 효용을 발휘하지 못했다.
음지에서 활약하고 있는 흑마법사들은 오늘도 다양한 실험을 하는 중이었으니까.
“아마 크리스를 노리고 만들었겠죠. 하지만 어림도 없게 되었군요.”
-엌ㅋㅋㅋ크리스 데스 나이트로 만드는 상상 함!
-하지만 어림도 없지!
-드센세가 없애 부렸다~ 이 말이야
-오늘도 세계 평화를 지킨다!
[‘크리드’ 님 10,000,000코인 후원!]
[프로 리그 때 뵙겠습니다.]
-엌ㅋㅋㅋㅋㅋ
-진짜 됐어!
-진짜였누!
-와 ㅊㅊㅊㅊㅊ
-멋있닼ㅋㅋㅋ
때마침 분위기를 환기시켜 주는 후원이 터졌다.
어마어마한 금액.
천만 원이라는 금액이라니!
정산 비율이 7 대 3인 것을 감안하면 무려 700만 원이라는 거금이었다.
남들 몇 달 월급을 한꺼번에 번 것!
“와…… 이런 후원은 처음 받아 보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크리드’ 님 10,000코인 후원!]
[앞으로도 좋은 방송 부탁해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가 나중에 스킬별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영상으로 찍어 드리겠습니다.”
-와!
-환영!
-지금 다른 스트리머들도 스킬 얻고 싶어서 난리임ㅋㅋㅋㅋㅋ
-엌ㅋㅋㅋ진짜 가지고 싶긴 하겠다
드레젠은 시간을 봤다.
이제 오늘 방송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꽤 많은 일들을 했다.
던전에 다녀왔고, 무기도 구했고, 지나가던 성기사로부터 각종 재료들도 얻었다.
공방이 열리면, 무기와 갑옷을 새로 만들 계획이었다.
“돈도 꽤 두둑하게 들고 다니더라고요. 2골드나 얻었습니다.”
-크으 지렸다
-그럼 갑옷은 뭘로 만들 겁니까?
-슬마 야금술도 할 줄 아는 거 아님?
-뭐든지 다 아는 방송이니까 킹능성 있다
“야금술이라…… 이 정도 금속이라면 저도 한번 두들겨 볼 만하겠네요.”
-키야!
-여윽싴ㅋㅋㅋㅋ
-뭐든 다 아는 거 조쿠연!
-솔까 이 정도 퍼포먼스면 미리 다 알려 주고 해도 ㅇㅈ임
-ㅇㅈㅇㅈ ㄹㅇ ㅇㅈ
시청자들 대부분은 드레젠의 편이었다.
그가 막 자리에 누웠을 때, 드레젠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들렸다.
“꺄아아아아악-!”
아까 잠깐 마주쳤던 여자의 비명 소리.
하긴, 핵이 부서졌는데 당연하지.
이 핵은 일반 마나로는 절대로 부술 수가 없었으니까.
아마 내일이면 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내분이라…….’
그는 기분 좋게 잠자리에 누웠다.
동시에 게임을 저장하고 오늘 방송을 마무리하기 위해 멘트를 날렸다.
“남은 시간도 얼마 안 되니까, 오늘 하루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내일도 일찍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으아 벌써 토요일 가 부렸누 ㅜㅜ
-하…… 방송 두 번 보면 하루가 끝나네;;
-진짜 브락시아에서 살고 싶닼ㅋㅋㅋ
-오늘도 라방 가시져!
“잠시 이야기 나누고 꺼야겠네요. 자, 그럼 잠깐 쉬는 시간 좀 가지시죠.”
[세이브 더 브락시아의 진행 상황을 저장합니다.]
[드레젠 / Lv.65 / 25 : 47 : 13]
[하시스 성, 내성]
게임을 종료하자, 모든 시간이 멈췄다.
오래 누워 있었더니 몸이 다 뻐근했다.
드레젠, 이제 강일로 돌아온 그가 몸을 풀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밀려 있던 연락을 확인하자, 하이디엔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대기업에서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아마 스킬이나 공략에 대한 정보를 빼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지 고민인데, 혹시 시간 되시나요?
“흠…… 워낙 시장이 크니까 접촉할 만하지.”
‘크리드’라는 닉네임을 가졌던 시청자가 떠올랐다.
본격적으로 움직임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드레젠은 빠르게 손을 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