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화
32화 - 목격자가 없으면……
#1
아직 내성까지는 거리가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 걸어서 약 20분 정도 걸렸다.
성은 요새와 달리 요충지 역할도 겸하고 있었기에 경제, 주거 시설을 모두 갖췄다.
덕분에 하시스 성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도시로 발전했다.
중앙에 위치한 내성과 외성의 정문과의 위치가 제법 된다는 뜻이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그림자 기사단은 그림자 장막 하나만으로 먹고사는 집단이 아니었다.
그림자 장막은 효율이 뛰어날 뿐, 기초적인 기술에 불과했다.
암살에는 수많은 테크닉이 존재했다.
흔히 알고 있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독살, 몬스터에게 유인하기, 함정에 빠뜨리기 등등.
-우리는 젤다르 님의 명에 따라, 명예롭고 당당하게 암살을 하고 있지.
-우리의 긍지는! 적들에게 들켜도 당당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기술에서 나오지!
뭔가 어처구니없는 의지였긴 했다.
하지만 그림자 기사단은 그런 신조로 세상의 균형을 지켰다.
방해하는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앤다.
주입식 교육이라는 것은 상당히 무서웠고, 드레젠의 머릿속에도 어느 정도 사상이 주입되어 있었다.
“다 죽이는 건 무리고…… 신기술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쓸데없이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특별한 목적이 아니고서야 하책이었다.
최상책은 적들이 모르게 볼일을 보고 오는 것.
한술 더 떠서,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알아내거나, 하려던 것을 저지한다면?
드레젠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이봐.”
“음?”
병사가 뒤를 돌아봤다.
순간, 드레젠의 검지와 중지가 병사의 이마로 푹 들어갔다.
안내하는 병사는 총 셋.
고작 셋으로 자신을 온전히 연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 첫 번째 실수였다.
“뭐 하는-!”
“어허.”
드레젠은 세 명의 병사에게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그림자 기사단의 주특기 중 하나인 ‘어둠 제어’였다.
[‘어둠 제어’ 스킬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기술 포인트 3점 획득하셨습니다.]
“어둠 제어 스킬은 꼭두각시를 만드는 겁니다. 탈출을 위해서, 혹은 알리바이를 위해서 꼭 필요한 기술이죠.”
단, 상대방보다 자신이 마나를 월등히 많이 가지고 있어야 했고, 상대방이 정신 방벽 마법을 갖추지 않은 상태여야 했다.
꽤 어려운 기술이었지만, 어둠 제어는 보통 일반인, 혹은 하수인들을 상대로 많이 쓰였다.
강력한 상대는 대부분 암살 대상이었으니까.
-엌ㅋㅋㅋ 않이 이렇게?
-여기만 빠져나가면 아무도 모르게 움직일 수 있잖아?
-이거 캡쳐 떴다 먹튀 ㄴㄴ함
-먹튀하면 ㄹㅇ 레전듴ㅋㅋㅋㅋ
방법이 제시되자, 크리드라는 시청자의 도주를 방지하기 위해서 채팅이 올라왔다.
실제로 수많은 스트리머들이 미션이라는 이름하에 억지로 방송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가를 주고 사람을 조종하는 만큼, 미션이라는 이름은 꽤 무거웠다.
크리드 - 먹튀 안함
-옼ㅋㅋㅋㅋ
-가즈아!
-천만 원 가즈아ㅏㅏㅏ!
판이 만들어졌다.
드레젠은 빠르게 움직였다.
성주가 자신을 꾀어내려 했으니, 오히려 한 방 먹여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서 난동을 피워라. 이유는…… 그래. 방산 비리가 좋겠네.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거야.”
드레젠의 목소리가 그들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품에 남아 있는 숏 소드를 병사 하나에게 쥐여 준 후, 비릿하게 웃었다.
눈동자에 힘이 빠진 병사들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드레젠은 조용히 몸을 숨겼고, 곧바로 남아 있는 병사들의 이지가 돌아왔다.
“너, 그 검 뭐냐?”
“뭐 인마.”
분쟁은 시작되었다.
의심의 씨앗은 성 전체에 분란을 낳을 것이다.
아주 작은 날갯짓이 거대한 폭풍이 되어 돌아오듯이.
“출발합니다.”
추적 스킬을 활성화하고, 그림자 장막을 펼쳤다.
병사 중 자신을 발견하면 내성으로 데려오라고 명령받은 것이 과연 이들뿐이었을까?
드레젠의 답은 ‘아니요’였다.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일 필요성이 있었다.
“크리스 있죠? 걔한테 무슨 수작을 벌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뭐든지 다 아는 방송 발동!
-드갓은 뭐든지 다 알지ㅋㅋㅋㅋ
-무슨 짓을 해 놨을까?
시청자들은 이제 그의 말이라면 뭐든지 믿고 보는 형태가 되었다.
그간 행보에서 보였던 신뢰감이 어디 가겠는가?
뭐든지 척척 진행하는 맛에 보는 방송이었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만약 카이렌이 정말로 헤시라둔이 된다면 흑마법사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흑마법사.
그중에서도 네크로맨서나 인체 공학을 전공으로 한 자라면, 크리스는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마나를 진하게 타고난 육체는 대충 만들기만 해도 엄청난 결과물이 튀어나왔다.
그렇기에 네크로맨서 및 인체 공학자들은 더 좋은 육체, 더 많은 마나를 찾아다녔다.
“아마 잡아서 뭔가를 하려고 했을 겁니다. 그 밑밥을 깔아 놨겠죠.”
-저런;;
-아니 그 애한테 뭐 뽑아먹을 게 있다고!
-잡아서 족쳐라!
-어린애 건들면 손모가지 날아가는 거여;;
시청자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자들이었다.
크리스는 미래의 동료가 될 것이라고 점찍어 놔서 그런지, 반응이 아주 격했다.
꼬마의 흔적을 추적하는 것은 아주 쉬웠다.
“이 푸른색 가루같이 보이는 것이 바로 마나의 잔재입니다. 이렇게 진하게 남는 것은 크리스밖에 없죠. 게다가…… 전 한번 느낀 마나의 흔적은 바로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키야~
-여윽시 드센세
-차원이 다른 기억력 ㅇㅈ합늬다
-여기서 다른 애가 나온다면 레전드가 되는 거임
그런 일은 절대 없었다.
미니맵이라는 특혜가 있었으니까.
드레젠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 위를 자유롭게 내달렸다.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습과 카메라의 환상적인 앵글이 더해져 정말 시원한 장면을 연출했다.
중세 시대의 지붕 위를 자유롭게 노니는 사람.
속도감과 웅웅 불어 대는 바람의 소리까지 들렸다.
‘좋네.’
역시 자유롭게 뛰어다닐 때가 정말 좋다.
드레젠은 자유로움을 느끼며 마나의 잔재를 추적했다.
첫날, 드레젠이 묵었던 여관을 향한 잔재.
그는 미소를 지으며 여관 안으로 몰래 들어갔다.
#2
숙소.
샤페론은 의자에 걸터앉아 낮에 받았던 패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마나를 잃은 그는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이 세계에는 아티팩트가 존재하는데, 마나로 이뤄진 물건이었기에 기본적으로 마나가 있어야만이 탐지하거나 조사할 수 있었다.
답답함에 한숨만 늘어 갈 때쯤, 창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의도적으로 큰 소리를 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경계하거나, 혹은 도우러 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수습 기사 시절, 혹독하게 훈련받은 결과물이기도 했다.
“조용히 해라. 그건 뭐지?”
“아, 오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창문을 열고 여관방에 들어온 드레젠이 조용히 손을 폈다.
샤페론이 들고 있던 패가 드레젠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의 눈에는 보였다.
검은색 마나가 패의 안쪽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재밌는 걸 들고 왔군.”
“그, 그게 뭡니까?”
드레젠은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크리스를 바라봤다.
가지고 있던 패를 품에 넣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데스 나이트의 근본이 되는 마나를 심어 두는 장치다.”
“……심각한 거 아닙니까?”
“맞아. 하시스 성이 얼마나 타락해 있는지 보여 주는 증거지. 이걸 줬던 자는 누구였지?”
샤페론은 기억나는 것을 그대로 말해 주었다.
기골이 장대했던 그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이곳의 갑옷을 입은 자였습니다. 성의 소속이었을 겁니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맞습니다.”
아이젠하트였다.
드레젠은 피식 웃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을 가지게 된다면, 저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졌다.
아마 한바탕 피바람이 불겠지.
“이건 내가 가져가마. 앞으로 나흘 후에 영광의 전당으로 크리스를 데려와라.”
“……알겠습니다.”
왜? 라고 물으려던 샤페론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드레젠은 역시 기사 출신은 기사 출신이라고 생각하며 문을 나섰다.
이젠 다시 내성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숙박비도 아낄 겸, 내성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엌ㅋㅋㅋㅋ
-숙박비를 아끼려곸ㅋㅋㅋ
-하긴, 돈 많이 쓰긴 했짘ㅋㅋㅋ
[‘크리드’ 님 10,000코인 후원!]
[내성 안에서도 안 들키고 ㄱㄴ?]
“성주 놀라게 해 주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죠.”
그림자 장막은 아주 특수한 은신술이었으므로, 지금의 카이렌은 절대 발견할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장막을 두르자,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그림자 장막’ 랭크 업!]
[숙련 포인트 3점 획득하셨습니다.]
“이제 레벨이 2네요. 그나저나 숙련 포인트는 아마도 만렙 이후에 쓰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 스텟 올리는 용도인갑다.
-그럼 최대한 다양한 스킬 쓰는 게 장땡이누
-와 진짜 노가다 ㅈ망겜인갘ㅋㅋㅋㅋ
내성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주 순조로웠다.
아슬아슬하게 도약해서 내성으로 쭉쭉 나간 후, 내성 성벽에 안착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술래잡기를 할 시간이었다.
드레젠은 몸을 풀고 성안으로 진입했다.
#3
카이렌은 보통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까지 집무실에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왜인지 모르게, 어서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이 다 된 시간, 이제 막 집무실을 나서기 위해서 걸음을 떼었다.
동시에 거센 위화감이 잠식했다.
“거기 누구 있는가.”
“네, 있습니다만.”
“……경비와 같이 올 줄 알았는데.”
그의 뒤에서 스르륵 나타나는 드레젠의 기척에, 하마터면 검을 뽑을 뻔했다.
그래서야 성주의 위엄이 살지 않는다.
감정을 드러내선 기세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었다.
“혼자 다니는 것이 편해서. 그나저나 여기 어디 내가 묵을 방은 없을까?”
“안내하지.”
자존심에 금이 갔지만, 카이렌은 내색하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카이렌은 부쩍 강해진 드레젠의 존재감을 느끼며 경직된 걸음걸이로 안내했다.
당장에라도 뒤에서 덮쳐질 것만 같은 위기감이 느껴졌다.
등골이 오싹오싹한 것이, 일부러 자신을 놀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늘은 일찍들 퇴근했나 보군.”
“……장난질은 그만하는 것이 좋을 거다.”
“장난질이라니.”
드레젠은 말 그대로 성주를 가지고 노는 중이었다.
성안에 있던 자들은 죽거나 기절해 있었으니까.
시녀는 잠이 들었고, 기사들은 경험치로 변했다.
카이렌은 이를 뿌득 갈았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어라?”
한참 걸어가던 도중, 눈앞에 낯선 실루엣이 보였다.
이제 막 지하에서 올라오고 있던 여인, 탈리야였다.
그녀는 두 사람과 딱 마주쳤다.
드레젠은 그녀를 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고, 탈리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어-?”
탈리야는 손가락을 들어 드레젠을 가리켰다.
엄청나게 놀란 표정으로, 그녀가 빽,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