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화
29화 - 지켜보는 시선들
#1
수많은 스트리머들이 공략 방송 탐방이라는 이름 아래 드레젠의 방송을 시청 중이었다.
이미 그의 공략을 보는 것이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촤아악-!
슬라이딩을 통해 개미굴 안쪽으로 들어가는 드레젠.
콰앙-!
그가 지나간 자리에 오우거의 일격이 내리꽂혔다.
“어우야, 나는 쫄깃해서 못 보겠다.”
-ㅇㅈ
-웬만한 공포 영화보다 쫄깃하네;;
-지려 버렸누!
BJ 풍월.
통통한 이미지에 준수한 게임 실력.
수많은 시청자들을 이끌고 즐거운 입담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베테랑 방송인.
요즘 스트리머 사이에서는 드레젠의 방송 시간엔 세이브 더 브락시아를 잘 하지 않는 것이 트렌드가 되었다.
왜?
그의 공략을 보고 싶으니까!
‘게다가 이렇게 되면 시청자들도 안 빼앗기거든. 히히.’
그는 팔짱을 끼고 시청자들과 함께 영화를 감상하듯 드레젠의 방송을 시청했다.
그림자 장막이라는 스킬.
아주 탐나는 스킬이었지만 아직 갈 길은 멀었다.
그의 레벨은 이제 12.
“여러분은 레벨이 몇입니까? 아우 난 너무 힘들더라고. 그래서 활로 뿅뿅 쏘고 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활 씀ㅋㅋㅋㅋㅋ
-난 방패! 킹패 은근 편함!
-남자는 도끼지!
-만병지왕은 검이라 하였노라.
풍월은 조용히 생각해 봤다.
저 사람들이 그 어떤 무기를 들더라도 오우거들을 잡을 수 있을까?
화면 너머로도 보이는 저 압도적인 질량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
과연 우리는 공포에 떨지 않을 수 있을까?
“난 진짜 저기는 못 가겠다. 허헛.”
-나도 만렙 찍고 갈래
-고기 방패 세우고 가즈아!
-어차피 용병 구하면 될 것 같은데
-인성들 보솤ㅋㅋㅋ
“흠, 그래. 나중에 용병들을 밀어 넣고 한번 해 볼까? 재밌겠는데?”
풍월은 둥글둥글한 턱을 쓰다듬으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다른 스트리머들은 어떨까?
“이놈을 잡으면 됩니다.”
벌레의 갑각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갑옷을 두른 몬스터.
두 발로 걷고 대검을 가지고 있는 파수꾼이었다.
녹색 눈빛을 빛내는 것이, 스산하고 위협적이었다.
“정수 전달자. 이들을 잡아야 하는데, 꽤 어려우니까 조심하세요.”
[키야아아아아악-!]
“오우야.”
해당 장면을 보고 있던 스트리머는 압도적인 검술을 펼치는 정수 전달자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소울류 게임처럼 난도가 꽤 높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괴물들이 잡졸들까지 대동하고 나온다는 것.
왜 기본적으로 파티 플레이를 권장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오아아 - 저걸 어떻게 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저길 들어가겄서ㅋㅋㅋㅋ
-저런 검술을 쓰는 괴물이나 저걸 다 피하고 도륙하는 사람이나;;
이번에는 이제 막 인지도를 올리고 있는 여성 스트리머였다.
달콤하고 청아한 목소리로 매력을 어필하는 신입이었다.
“근데 진짜 멋있다. 현실에서도 저렇게 운동 잘하겠죠?”
-아마 그럴 거임
-ㅇㅇ 운동선수이지 않을까?
-아니면 타고난 반사 신경이 좋든지?
-내 생각엔 베타테스트 전에 미친 듯이 굴려졌을 것 같은뎈ㅋㅋㅋ
“음…… 그럴 수도? 스킬 정보나 지역 정보도 다 알고 있으니까, 아마 비공개 테스트 때부터 해 왔던 사람일 가능성이 높겠네요.”
-ㅋㅋㅋㅋ그래서 하유 님은 왜 안 해요?
-저번에 비명 지른 거 이후로 드레젠 님 방송은 꼭 챙겨 보심ㅋㅋㅋㅋ
-엌ㅋㅋㅋ 그것은 업계 포상이다 하악!
-더 질러 줘요!
“시, 시끄러워요! 늬들도 다 비명 질렀잖아!”
-아 고건 맞지!
-나도 처음에 미친 듯이 도망 댕겼음ㅋㅋㅋ
-진짴ㅋㅋㅋ 너무 어려워우ㅜㅜ
진입 장벽이 높은 이유는 간단했다.
실제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시뮬레이션이었으니까.
그 어려운 환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뚫고 지나가는 드레젠이 대단해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자, 이제 정수를 다 모았으면 마지막 네임드로 향하는 길을 열 수가 있습니다.”
압도적인 검술을 뽐내며 세 번째 정수 전달자를 박살 낸 드레젠.
스트리머들은 홀린 듯이 그의 플레이를 바라봤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마력이 있는 방송이었으니까.
#2
세 번째 정수를 가두니, 저주가 약화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드레젠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제부터는 침입자가 반격할 시간이었다.
드레젠이 세 개의 정수로 저글링을 하며 밝게 말했다.
“자, 여기까지 오셨다면 던전은 클리어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제가 아까 말했죠? 무쌍을 찍을 수 있다고.”
-맞아!
-앗! 설마!
-이제 반격의 시간인가!
-왔다으아아아아!
[‘뉴비환영해!’ 님 10,000코인 후원!]
[내레 땅크를 가져와서 다 부숴 버리갔서!]
“탱크는 아니지만…… 비슷한 건 흉내 낼 수 있죠.”
드레젠은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대검을 주웠다.
정수 전달자가 썼던 거대한 대검.
브락시아의 장점 중 하나는, 한때 게임 시장에 한 획을 그었던 ‘스카이림’과 같은 파밍 방식을 지녔다는 것이다.
[벌레 대검]
[정수 전달자의 대검. 헤둔의 자식들이 만들어 낸 대검이다.]
[-나의 아이들아, 헬라의 명을 받들어 온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여라.-]
[공격력 +50]
[방어력 +15]
[특수 스킬 : ‘벌레 강타’ 사용 가능]
“꽤 준수한 옵션의 대검입니다. 양손 검은 생각 외로 강력한 무기입니다. 마지막 스테이지는 영혼 소멸인데…… 어떻게 소멸시킬까요?”
-먹어서?
-넣어서?
-밟아서!
-음…… 박아서!
“이 구슬을 오우거한테 던지면 됩니다. 누구 말대로 박아도 좋구요. 접근할 수만 있다면.”
-ㅋㅋㅋㅋㅋ박으러 가다가 우리가 벽에 박힐 듯
-어디에 박아야 되나요?
“아무 데나 던지면 됩니다. 뭐…… 능력이 된다면 급소에 아주 씨게 박아 넣으세요.”
-조아!
-메모한다!
-급소에 뙇!
실제로 그게 가능한 플레이어는 극소수이겠지만.
‘그래도 어딘가의 재능 있는 자들은 그렇게 플레이할 거다.’
재능은 어디에서나 발휘된다.
특히 싸움에 재능이 있는 자들은 자신보다 월등한 위치까지 올라갈 거다.
그 밖에도 마법, 공학자, 연금술사, 흑마법사 등등.
전투를 할 수 있는 분야는 다양하고, 숨겨진 재능을 꽃피우는 자들이 많겠지.
던전을 싹 다 돌면서 오우거들을 몰고 왔다.
“아까 쇠사슬이 있던 곳으로 가겠습니다.”
어둠을 헤치고, 꼬불꼬불한 미로를 헤쳐 나갔다.
한번 와 본 길은 잘 잃지 않는 기억력이 발휘되었다.
그래서 던전 공략 때마다 빛을 봤었지.
쿠웅-!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바로 뒤에서.
“자, 여기까지 몰고 왔으면 이제 시작해 볼까요?”
[우어어어어어-!]
-가즈아-!
-대검으로 쿠왁!
쿵쿵거리는 오우거는 맹목적으로 드레젠을 쫓았다.
살의와 식욕만 가득한 걸음걸이였다.
쇠사슬이 눈에 보였다.
드레젠은 쇠사슬을 밟고 그대로 튀어 올랐다.
“여러분이 말한 대로-!”
콰앙-!
한 손에 정수를 쥐고 오우거 세 마리에게 날아든 드레젠.
그는 한 번에 한 마리씩 머리에 친절히 정수를 때려 넣었다.
우어어어어-! 하는 비명이 가득 찼다.
[저주가 완전히 풀립니다.]
[알 수 없는 힘이 넘쳐흐릅니다.]
[10분 동안 체력, 마나가 대폭 증가합니다.]
드레젠의 몸에서 환한 빛이 일었다.
마나가 충만하게 느껴졌다.
세이브 더 브락시아를 시작하고 나서, 전성기에 제일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새하얀 빛은, 그의 모습을 신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오오오오오!
-지렸닼ㅋㅋㅋㅋ
-드는 신이야!
-신은 드야!
[‘나는엘프다’ 님 100,000코인 후원!]
[멋있어요!]
‘귀엽기는.’
하이디엔이 보낸 것으로 추정된 후원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가진 이 힘이라면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다.
이 정도 마나만 있어도 땅 위에서 기어 다니는 몬스터 중 무서워할 것은 없었으니까.
[마나 : 15,000 / 620]
‘1만 5천에 약 100분의 1.’
전성기까지 회복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소소한 것에 만족할 줄도 알아야지.
드레젠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대검을 들어 올렸다.
이젠 반격의 시간이었다.
“대검은 파괴적인 무기이며, 검으로 방패의 역할까지 할 수 있는 만능 무기입니다.”
흔히 다른 게임 콘텐츠에서 소비되는 대검은 방어를 포기한, 오로지 딜링을 위한 무기였다.
하지만 실제 대검은, 공방을 자유자재로 전환할 수 있는 유용한 무기라는 사실.
긴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 휘두르는 것만으로 다가오는 날붙이를 막으면서 공격이 가능한 무기였다.
“머리 위에서 내리꽂히는 대검은 파괴의 화신입니다. 거기에 마나까지 더해진다면?”
-파.개.한.다!
-머머리가 생각난다ㅋㅋㅋㅋ
-파! 개! 왕!
-ㅋㅋㅋㅋ머머리 우러욧!
사람들은 전설적인 웹툰 작가를 떠올리며 채팅 창을 달궜다.
그러거나 말거나, 드레젠은 마나를 잔뜩 끌어모아, 벌레 대검에 때려 박았다.
키이이이-!
벌레가 우는 듯한 소리가 대검에서 울려 퍼졌다.
“벌레 강타를 사용하려면 마나를 모아서 잠들어 있는 벌레를 깨워 주면 됩니다.”
오우거의 대가리를 향해 직선으로 떨어지는 푸른 유성.
검푸른 띠를 만든 드레젠의 대검이 그대로 거구의 머리를 쪼갰다.
키야아아악-!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와 함께 악성 독균이 푸확- 하고 터졌다.
“벌레 강타는 주입한 마나에 따라 도트 대미지를 주는 균을 소환하죠.”
-으 뭔가 몽글몽글해서 징그럽네
-슬라임 같아서 귀여운데?
-나도 귀엽네;;
‘조금 순화해서 표현했구나.’
드레젠은 이어서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옆에 있던 오우거가 그대로 반으로 쪼개졌다.
압도적인 마나를 가졌다면, 사라미스 검술만큼 효율적인 건 없었다.
마나로 폭격하는 것보다 단번에 갈라 버리는 것이 확실하게 끝낼 수 있었고, 마나를 덜 먹었으니까.
[꾸어어어-!]
애처로운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오우거들.
순식간에 세 마리를 처리한 드레젠이 후우- 하고 숨을 돌렸다.
동시에 후원이 빵빵 터지기 시작했다.
[‘뉴비환영해!’ 님 10,000코인 후원!]
[‘갓미션’ 님 100,000코인 후원!]
[‘나는엘프다’ 님 500,000코인 후원!]
…….
“후원 감사드립니다. 이걸로 던전 공략은 끝났습니다. 이제 중요한 아티팩트를 찾으러 가죠.”
레벨은 어느새 65로 껑충 뛰었다.
그렇게 많은 몬스터를 홀로 때려잡았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드레젠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헤둔의 의지가 당신을 부릅니다.]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가십시오.]
“이 문장이 나왔다면 클리어된 겁니다. 천천히 이동하시죠.”
-캬, 이번에도 깔끔하게 영화 한 편 찍었구연
-진짜 이건 두고두고 영상으로 소장해야지!
-근데 만렙 찍고나 와야 할 것 같은데
“레벨보다는 스킬 레벨에 집중하세요. 레벨보단 스킬에 따른 능력치 변화가 클 겁니다.”
시청자들과 잡담을 하며 마지막 방에 도착한 드레젠.
그는 영롱하게 빛나는 반지를 바라봤다.
헤둔의 반지.
이 던전의 보상이자, 크리스와 궁합이 아주 잘 맞는 아티팩트였다.
“이런 아티팩트는 아르게논 대륙에서 흘러 들어온 것이 대부분입니다. 왜 이런 던전에 있는진 잘 모르겠지만.”
-앗! 뭐든지 다 아는 남자가 모르는 게 있다?
-뿌슝빠슝!
-해명해!
-해.명.해!
-절대 해명해!
“사실 알고 있지만 나중의 즐거움으로 미뤄 두겠습니다.”
드레젠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반지를 집어 들었다.
주르륵 정보가 떴다.
[헤둔의 반지]
[마법 저항력 +50]
[시너지 : ‘어둠’ 획득]
“빛과 어둠의 시너지는 꽤 재밌습니다. 이거라면 팀 파이트를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이젠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어쩌면 크리스가 성의 어둠과 접촉했을 수도.
드레젠은 부디 그러길 바라며 웃음을 입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