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화
28화 - 진격의 오우거
#1
끔찍하게 비명을 지른 오크는 분노 때문에 오히려 날뛰기 시작했다.
방패에 박혀 있는 도끼를 빼낼 생각도 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드레젠에게 달려들었다.
“이때야말로 몬스터를 잡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구간입니다. 얘들은 인간들과는 달리 엄청 튼튼해요.”
-그게 자손 번식을 막은 사람이 할 얘기냐!
-우우우! 해명해!
-해.명.해!
시청자들의 장난스러운 채팅을 뒤로하고 오크 대전사의 영혼을 축출하기 위해 작업을 실시했다.
방패는 다루기가 굉장히 까다로운 무기였다.
“방패를 다룰 때는 절대 시야를 가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상단을 방어할 땐 하체를 굽히고, 머리 위로 확실하게 방패를 들어 주세요.”
터엉-!
오크의 주먹이 방패의 날에 막혔다.
그대로 방패를 휘둘러 녀석의 어깨를 찍어 버렸다.
“쿠아아악!”
오크 대전사는 상당히 맷집이 강력했다.
반쯤 너덜거리는 어깨를 무시하고 오직 드레젠을 처리하기 위해서 달려들었다.
“방패는 아주 훌륭한 공방일체의 무기입니다. 실드로 치면 타격감이 아주 끝내주거든요.”
-역시 실드는 둔기지.
-실드는 치기 위해서 만들어졌지
-그게 학계의 정설이지!
[‘성전사’ 님 10,000코인 후원!]
[방패는 킹이죠!]
오크 대전사는 드레젠의 화려한 방패술에 떡이 되듯 두들겨 맞았다.
갈색 피부가 아닌 황금색 오크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잔인;;
-인성ㅋㅋㅋㅋ
-시원하게 잘 패넼ㅋㅋㅋ
[방패술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기술 포인트 1점 획득하셨습니다.]
간헐적으로 숨을 쉬고 있는 오크의 가슴을 밟고, 거미 집게를 꺼냈다.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거미 집게는 대전사의 가슴팍 안으로 쑥 들어갔다.
다시 나올 때는 조그마한 구슬이 딸려 나왔다.
[오염된 오크 대전사의 정수]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지도?]
“이게 몬스터들의 정수입니다. 이걸 총 세 개 모아야 하는데…….”
이 던전의 끔찍함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집게와 정수를 품 안에 잘 넣자마자 구덩이 전체가 들썩였다.
크어어어어어-!
심연 저편에서 지옥문이 열린 것 같은 연출.
땅이 울리고 몬스터의 괴성이 메아리쳐 들렸다.
“자, 이제부턴 뛸 시간입니다.”
이 구덩이가 왜 구덩이라고 불릴까.
그것도 서리의 구덩이라는 이름이 왜 붙었을까.
“이제부턴 살아남아야 합니다.”
[헤둔의 저주가 활성화됩니다.]
[살아남으며 정수를 모으세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구덩이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으로 점철되었다.
드레젠은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뭐여 ;;
-아니 갑자기 분위기가;;
-도망쳐! 도망쳐!
-미친;; 개 무섭네;;
어둠, 소리, 그리고 기괴하게 생긴 몬스터.
공포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삼박자를 모두 갖춘 곳이 바로 이곳, 구덩이였으니까.
-어우, 난 여기 안 올래;;
-진짜 스릴 있넼ㅋㅋㅋ
-카메라 1인칭으로 바뀐 거 보소
카메라 역시 적절하게 1인칭 시점으로 바뀌었다.
미친 듯이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바라본 드레젠.
본래라면 ‘개미굴’이라는 곳으로 도망쳐야 했으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엘프다’ 님 100,000코인 후원!]
[실력 한번 보여 주세요.]
바로 이렇게 날아온 후원 때문이었다.
드레젠은 피식 웃었다.
그는 어깨를 한번 돌린 후에 마나를 끌어 올렸다.
제국 방패술의 진수를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 방패술은 정말 좋습니다. 취향에 맞으시면 제국병으로 입단하시면 됩니다.”
“크어아아아악!”
시끄럽게 비명을 지르는 오크들이 엄청나게 몰려왔다.
빽빽하게 들어찬 몬스터들에게 웃으며 돌격하는 드레젠.
그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차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며 방패를 세웠다.
마나를 원뿔형으로 만들어, 방패를 감쌌다.
제국 기사들의 가장 기본적인 돌격 기술.
기본이었지만 엄청난 위력이 담겨 있기도 해, 수많은 몬스터와 적국이 두려움에 떨었던 기술.
“크어어억-!”
콰아아앙-!
동굴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거대한 충격파와 굉음이 울렸다.
검술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몬스터가 날아갔다.
벽에 찰싹찰싹 붙는 찰흙처럼 박혀 버린 오크들이 인상적이었다.
그저 쭈욱 달릴 뿐이었지만, 그 위력은 대단했다.
“‘캡틴 X메리카’처럼 방패를 날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한술 더 떠서, 드레젠은 공중에 뜬 후에 방패를 내던졌다.
멍청한 짓이라고 비난받을 일일 수도 있었다.
자신의 생명을 지켜 주는 방패를 내다 버리다니!
하지만 제국에서는 방패를 투척해서 원거리에 있는 적들을 요격하는 것을 상당히 고급 기술로 여겼다.
-난다!
-이걸?
-캡띤 아X리카!
-이젠 장르를 넘나드넼ㅋㅋ
방패를 던져서 원하는 대로 튕기게 하는 방법은 이러했다.
방패 날에 회전하는 마나를 담아 그대로 날린다.
회전하는 마나는 적들을 가격할 때마다 작게 폭발하며 반대편으로 튀어 나간다.
마나를 세밀하게 조절한다면 다시 돌아오게 만들 수도 있었다.
“크어아아악!”
“비명 좀 그만 질러라.”
화려하게 공중제비를 돌며 방패를 받아 든 드레젠이 방패로 몸을 가리며 수직 낙하했다.
콰아아아앙-!
다시 한 번 충격파가 터졌다.
마나의 잔재가 전류처럼 흘렀다.
순식간에 벌어진 전투!
한 무더기의 오크가 덤벼들었지만 살아 있는 것은 오직 드레젠뿐이었다.
“계속 몰려올 겁니다. 저주는 꽤 강력하거든요.”
-이래서 웨이브였구나;;
-파티 급구합니다!
-와 진짜 재밌겠닼ㅋㅋㅋ
-저러면 게임할 맛 나지 ㅇㅇ
시청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뜨거웠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연출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으니까.
적들을 전멸시킨 것도 잠시, 다시 한 무리의 오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드레젠은 계속해서 터뜨리고, 날려 버리며 전진했다.
‘스킬 레벨이 꽤 올랐나 본데.’
스킬 노가다를 하기에도 딱 좋은 장소이지 않은가.
방패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사용하던 그가, 방패를 버리고 돌연 검을 꺼내 들었다.
“스킬 숙련도도 올리면서 가겠습니다.”
그의 주특기인 페베스 검술이 다시 한 번 뿜어져 나왔다.
검을 휘두르며, 드레젠은 옛날에 배웠던 것들을 상기했다.
대성한 크리스가 그에게 차근차근 알려 줬던 지식들.
오랜 기간 수련하면서 잊고 있었던 그때의 마음가짐을 일깨웠다.
-스카이워커는 직접 검을 부딪치지 않는다.
-마나는 곧 거대한 육체와 같다. 그 육체를 얼마나 세밀하게 다루느냐의 싸움이지.
-몬스터에게 자비를 베풀지 마라. 그들은 인류의 적일 뿐, 검을 뽑았으면 무엇이든지 파괴해야 한다.
그래, 페베스 검술은 그런 힘이었다.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분쇄하는 거대한 해일이었다.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마나의 물결이 적들을 덮쳤다.
마나의 방출, 그리고 제어.
페베스 검술의 진수가 올올이 풀려났다.
그 검술 앞에 놓인 오크들은 살아 있는 재앙을 만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크어아아악!”
“저기 있군요.”
-ㅎㄷㄷ;;
-아니 이걸 공략이라고 지금ㅋㅋㅋㅋ
-?? : 다 죽이고 나가면 됩니다. 어때요, 정말 쉽죠?
-미쳤다 진짴ㅋㅋㅋ 공식 공략 채널 아니었어도 봤을 듯
시청자들은 화끈한 것을 좋아했다.
하도 답답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은 항상 사이다를 원한다.
영화도, 소설도, 만화도 게임도 그런 사람들에게 대리 만족을 시켜 주는 콘텐츠들을 짰다.
“두 번째 영혼까지 모았습니다.”
-빠르다 빨라!
-이거 일반적인 유저가 하려면 몇인 정도가 좋을까요?
-진짜 신의 피지컬이자노!
“보통 4인에서 6인 정도를 추천드립니다. 많은 수의 몬스터를 상대해야 하니까, 마법사 한 명 정도는 데려오십시오.”
콰아앙-!
어느새 세 번째 대전사까지 완벽하게 제압했다.
세 개의 정수를 모두 모으자, 다시 한 번 안내 창이 떴다.
[구덩이가 정수를 끌어들입니다.]
[영혼이 날뛰기 시작합니다.]
“큭, 이건…… 조금 아픕니다. 이제 다음 네임드로 이동하겠습니다.”
두근-.
시야가 파란색으로 물들면서 드레젠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정수가 날뛰기 시작하면서 지속적인 대미지를 입히는 것.
본래는 파티원들끼리 회복과 전달을 하면서 가야 하는 스테이지였다.
“이곳에서는 이 정수들을 나눠서 가져가야 합니다. 지속해서 체력을 갉아먹기 때문이죠. 아니면 힐링 마법을 익힌 마법사를 데려 오세요.”
-뭔 던전이 이러냨ㅋㅋㅋ
-개 어렵네
-나중에 레이드 나오면 진짜 헬이겠는데;
던전이 이렇게 복잡한 기믹을 가지고 있는데, 레이드는 오죽할까.
드레젠은 빠르게 줄어드는 체력을 흘끔 쳐다봤다.
“시간이 없네요. 마법을 좀 써야겠어요.”
-?
-??
-마법?
-갑자기?
-이 시국에?
아무리 마법에 재능이 없다고 하지만 기본적인 것들은 사용할 수 있었다.
복잡함과 방법의 차이이지, 마나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는 다르지 않았으니까.
드레젠이 가볍게 주문을 외웠다.
“치유하라.”
은은한 빛이 돌면서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던 체력을 붙들었다.
저릿저릿한 몸을 이끌고 다음 스테이지까지 미친 듯이 뛰었다.
“여기부터가 시작입니다.”
쿠웅-!
스테이지에 도착하자마자 거대한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정수가 잠잠해졌다.
[정수가 잠잠해집니다.]
[제한 시간 안에 정수를 가두세요.]
[20 : 00]
-던전 난이도 뭐얔ㅋㅋㅋ진짴ㅋㅋㅋ
-진짜 미쳤다;;
-극악인데?
-아니 브락시아 놈들 변태들만 모아 놨나;;
‘재밌는 짓을 해 놨군.’
진짜 브락시아에서는 제한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진짜 단련을 위한 장치인지, 아니면 마법적 한계인지는 몰랐으나 난이도가 훨씬 높아졌다.
드레젠은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우어어어어어-!]
고막을 지잉 울리는 소리가 구덩이를 울렸다.
오크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감.
쿠웅-!
한 번 발을 뗄 때마다 절대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번 적은 오우거입니다.”
[우어어어어-!]
오우거는 최강의 포식자였다.
기사들도 열은 달라붙어야 잡을 수 있는 극강의 피지컬.
뭐든지 먹어 치우는 식성과 멀리서부터 돌을 던질 수 있는 능력까지.
무엇보다 짜증 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본래라면 이 오우거들을 잡겠습니다만, 이곳은 특수한 저주가 걸려 있기 때문에 저 오우거들은 무적 상태입니다.”
-?
-??
-아니 이게 무슨 공포 게임이야;;
-진짜 판타지판 곰보겜이네;;
곳곳에 오우거가 진입할 수 없는 굴이 있었다.
그곳에서 ‘정수 전달자’들을 잡아서 정수를 가둬야 했다.
그리고 다음 장소로 가는 길을 여는 것이, 이번 네임드의 목표였다.
“빠르게 가겠습니다. 나중에 브튜브에 영상을 올릴 때 지도도 같이 첨부할 테니까, 길은 꼭 외우세요.”
-와;; 여기 지도를 알아요?
-여윽시 공식 공략 채널!
-뭐든지 다 아는 남자!
-ㅗㅜㅑ 조쿠연!
정수가 오우거를 이끌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드레젠은 그림자 장막을 활성화했다.
그리고 준비해 왔던 쇠사슬을 꺼내 들었다.
“오우거의 진격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서 쇠사슬을 가져왔습니다.”
촤르륵-.
몸에 칭칭 감겨 있었던 굵고 아름답고 커다란! 쇠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레젠은 미리 만들어 두었던 추를 이용해 쇠사슬을 박았다.
마나가 들어간 쇠사슬은 물속에 빠지는 것처럼 손쉽게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체액을 준비하면 됩니다.”
후우-.
숨을 불어 넣는 것으로 준비는 끝났다.
19분을 가리키고 있는 타이머가 덧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쿠웅-!
오우거와 드레젠이 눈을 마주치는 순간, 게임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