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25화 (26/279)

제 25화

25화 -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1

“하이디엔?”

“그, 그렇습니다.”

주눅이 잔뜩 들어 있는 목소리였다.

엘프들의 목소리는 본래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기로 유명한데, 내가 다 불안할 지경이었다.

당시 엘프들의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아주 이해를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음…… 레드릭의 아들이 나에게 죽었었지?

“뭐 하나만 물어보자.”

“……말씀하십시오.”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녀석들이 몇 있었거든.

그 자식들이 살아 있다면, 훗날 하이디엔을 고문해서라도 어디 있는지 알아내겠다는 다짐을 했다.

한 자 한 자 씹어서 뱉듯이 말했다.

“그 새끼들은 살아 있냐?”

“그분들은…… 그들은 이제 여기에 없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드리겠습니다. 너무 긴 얘기라서.”

“……알겠다. 일정은 알아서 보내 놔.”

“예. 감사드립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조금씩 떨림이 없어지고 맑고 청아한 톤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의 통화는 무의미했다.

나에게는 돈이 필요하거든.

통화를 막 끊으려고 할 때, 하이디엔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내가? 너희들에게? 너는 그 빌어먹을 연놈들이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나 보지?”

“……저희는 다릅니다.”

“됐어. 내 힘으로 해결할 테니까. 건들지 마.”

대답은 듣지 않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아직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내 몸을 멋대로 개조하고, 순진한 나를 말로 꼬드겨서 자신들의 잇속을 챙겼지.

제아무리 예쁜 꽃을 가지고 있는 나무라도, 그 속엔 뭐가 있는지 모른다.

이유 없는 호의는 없다.

그것은 브락시아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이었다.

“자, 그러면 영상 편집을 해 볼까?”

이전에 못 했던 편집을 하면서 밤을 보냈다.

영상을 편집할 때마다 추억인지 악몽인지 모를 감정이 자꾸만 솟아났다.

게다가 일곱 영웅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니…… 말 그대로 지나간 일로 치부할 생각이었다.

브락시아는 분명 내게 이점이 많은 무대였다.

트라우마 때문에 현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그나저나 오늘 후원이 얼마나 터졌지?”

문득 궁금해져서 정산 페이지를 클릭했다.

주르륵 나열되어 있는 숫자는 내게 큰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11.22]

[정산 금액 : 1,235,100원]

[11.23]

[정산 금액 : 5,786,000원]

“하. 이틀 만에 이거 실화야?”

이틀 만에 남들 연봉의 3분의 1 정도를 벌었다.

이것이 바로 콘텐츠와 미디어의 힘이었다.

정식 공략 방송이라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었더니 사람이 계속해서 몰리기 시작했다.

음…… 이미지를 위해서 이 문제는 빠르게 해결하는 것이 좋겠지.

“유명 BJ들도 전부 온다 이거지?”

그렇다면 확실히 공략 방송 위주로 나가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내 집도 마련하면서 공략 방송도 소소하게 진행해보자.

어디까지나 힐링이 목적이니까.

‘확실히, 사람들이랑 소통하는 게 힐링이 되긴 한다.’

트렌드에 몸을 싣고 인싸가 되어 가는 과정은 정말이지 좋은 경험이었다.

모두가 브락시아에 열광하고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앞날이 환하게 밝아진 것 같았다.

예전 생각에 잠겨, 편집을 마치고 영상을 올렸다.

[드레젠의 소소한 TV]

“소소한 게 좋지.”

갖은 고생을 해서 그럴까, 매번 소소한 것들이 주는 행복에 감사하는 버릇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얘기하고 같이 게임을 즐기고 아무런 걱정 없이 사는 것.

더 나아가서 편안한 집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이 지금 소원이었다.

아직도 서울, 경기권에 제대로 된 집을 사려면 억 단위가 필요했다.

백수인 내가 무슨 수로 억을 모아?

“지금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하자고.”

하이디엔과의 만남이 잘된다면 정기적인 후원도 기대할 수 있겠지.

동영상 업로드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를 보고 나서, 잠을 청했다.

내일 이 시간쯤이면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

[브락시아 정식 공략 브튜브 채널 오픈함]

「우리 드좌 님 드디어 브튜브에 진출하셨다. 얘들아. 구독 박으러 가자.」

-드좌가 누구임?

-드레젠 모름?

-그게 뭔데 씹덕아;;

-아니 드레젠을 모른다고? 아재요 컴퓨터 좀 보고 사세여;;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글.

브락시아 갤러리라고 하는 곳엔 이미 드레젠에 대한 이야기가 쫘악 퍼지는 중이었다.

-지금 모든 스트리머들이 전부 그분 공략 따라 하는 중임ㅋㅋㅋㅋ

-ㅇㅇ 제대로 하려면 드레젠한테 배워야제

-아니 그래서 어디라고?

-네이X 실검에도 떴는데 아직도 모르는 멍청이가 있다? 뿌슝빠슝!

늦은 시각이었지만 브튜브에 영상이 올라왔다는 소식이 퍼짐으로써 구독자가 미친 듯이 상승했다.

물론 그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는 드레젠, 강일은 단잠에 빠져 있었지만.

-아니;; 이게 진짜 사람임?

-ㅋㅋㅋㅋ진짜 뭐든 다 아는 방송 ㅇㅈ?

-않이;; 어케 하면 저래되누ㅜ 나는 스켈레톤한테 개 뚜까 맞았는디 ㅜㅜ

많은 사람들이 드레젠의 플레이를 보고 감탄했다.

순식간에 인기 동영상에 줄을 세우더니, 조회 수가 미친 듯이 상승했다.

구독자 수 역시 가파르게 상승세를 탔다.

#3

아침, 강일은 자신의 휴대폰을 들었다.

휴대폰에는 잠이 확 깨는 내용들이 있었다.

그는 알림이 999+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머리를 긁적였다.

“이게 뭐여.”

[드레젠의 소소한 브락시아 공략 Vol. 1]

[조회 수 : 1,339,293회 좋아요 : 5.5천]

[드레젠의 소소한 브락시아 공략 Vol. 2]

[조회 수 : 942,114회 좋아요 : 2.1천]

“음…… 좋은 거겠지?”

이건 흔히 말하는 대박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정말 유명한 사람인 ‘백종원’ 선생님의 전설이 있었다.

이틀 만에 구독자 100만.

-아 10만 구독자님 함께해 주셔서 50만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는 브튜버가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100만 구독자 감사합니다.-

베스트 댓글이 생각났다.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청난 댓글과 구독자 수가 강일의 마음을 풍족하게 해 주었다.

오늘은 주말.

“오랜만에 운동이나 해 볼까?”

현대에 와서 운동을 해 본 적이 얼마 만일까.

간단한 운동을 해 보기로 했다.

적당히 땀을 흘리는 스트레칭과 가벼운 근력 운동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마나 연공법도 슬슬 해 봐야지.”

이제는 몸을 만들 생각이었다.

아주 극소량이지만 마나가 있었고, 그렇다면 연공법도 충분히 가능했다.

“바람이나 좀 쐬자.”

강일은 외투를 챙겨서 밖으로 향했다.

얼굴이 밝혀진 것도 아니니, 마음껏 돌아다녀도 된다는 사실.

자유로운 시간과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공원이나 가 보자.”

이제 막 11월이 되어, 제법 쌀쌀해졌다.

코트부터 후드 집업까지, 다양한 옷차림이 거리에 보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입었던 지퍼형 후드와 운동화, 트레이닝복을 입고 가볍게 달려 봤다.

“후욱-.”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차올랐지만, 격렬한 통증은 없었다.

20분 정도를 달려 공원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나온 연인들, 운동하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주변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공원을 많이 찾았다.

“후…… 이제 어느 정도 고비는 넘긴 것 같은데.”

강일은 웃음을 지었다.

이제 버스를 놓칠 때 멍하니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

편의점 물건을 몇 시간이고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 기뻤다.

“읏차.”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철봉과 맨바닥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몇 년 동안 쓰지 않았던 근육들이 조금씩 깨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은 좀 무리인가.’

가볍게 조깅하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아직 근육을 격렬하게 사용하면 통증이 일었다.

그래도 장족의 발전이 아닌가!

“……이젠 편의점이랑 병원도 그만둘 수 있겠다.”

더 이상 강일은 노동자가 아니라 크리에이터였다.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본인의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위치였다.

시원한 바람이 강일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혀 주며 그간의 불행을 씻어 주었다.

“가자.”

방송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마구 솟았다.

다시 반지하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곳은 이제 희망이 가득 찬 곳이었다.

#4

반지하로 가는 길엔 인적이 드문 골목이 존재한다.

그곳은 가로등도 몇 없었고, 건물도 죄다 낡은 것밖에 없어서 사람들이 꺼리는 곳이지.

‘여기도 곧 떠야지.’

매일 이곳을 거닐 때마다 하는 생각이었다.

밝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살 생각을 하니, 벌써 몸이 들떴다.

브락시아에 살 때는 훨씬 좋은 집에서 살았지만…….

“흐음.”

감각에 기묘한 기척이 걸렸다.

인간은 아니었다.

흘끔 뒤를 돌아봤지만, 모습 역시 보이지 않았다.

설마…… 하이디엔이 꼼수를 부린 건 아닐 테고.

“설마 진짜 독단적으로 움직인 건가?”

라고 말을 하자마자 고개를 한쪽으로 확 틀었다.

살벌한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내 머리가 있던 곳에 날카로운 손톱이 푹 찔러 들어왔다.

“아니, 이걸-.”

어리석다.

내가 아무리 현실에서 거지 같은 몸뚱이를 가지고 있어도 기감과 기술은 그대로거든?

“병-신.”

저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한쪽 발을 부드럽게 회전시켜, 녀석의 몸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느껴지는 마나가 별로 높진 않았지만, 그래도 맛있겠는데?

“녀석은 마나도 없다!”

골목이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하, 이 새끼들 안 되겠네.

먼저 덤벼든 놈의 목덜미를 콱 틀어쥐었다.

그리고 쥐꼬리만큼 있는 마나를 일깨웠다.

내가 브락시아에서 드래곤도 이길 수 있었던 마나 운용법을 발휘한 것.

“으으으, 으아아아악-!”

목을 쥔 손으로부터 마나가 스며들어 왔다.

내가 브락시아에서 어마어마한 몬스터를 상대로 이길 수 있던 이유.

바로 상대방의 마나를 흡수할 수 있는 기술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이디엔이 나에게 덤비지 말라고 안 그러던?”

“저 녀석을 떼어 내!”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데도 주변 주택에서 반응이 없는 걸 보면 결계도 쳐 놨겠구나.

온몸에 차오르는 마나 덕분에 찌릿찌릿한 감각이 퍼졌다.

“후아-.”

야릇하다고 느껴지는 숨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은 후에 내뱉는 한숨처럼.

“하이디엔에게 더 뜯어낼 좋은 명분이 되겠어.”

“……로드의 이름을 함부로 담다니, 간덩이가 부었군.”

“접근전은 위험하겠습니다.”

녀석들은 충격적이게도 총을 꺼냈다.

진짜 막 나가기로 했구나.

상관없다.

이 정도 마나만 있어도 충분히 대응이 가능하니까.

“죽이지만 마.”

“하…… 내가 진짜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퇴물 주제에 말이 많군.”

맨 뒤에 있는 재수 없는 남자 엘프.

너는 내가 진짜 꼭 기억해 뒀다.

소소하게 사는 게 이렇게 어렵습니다. 예?

“그래, 오늘 마나 좀 포식해 보자.”

자세를 취하고, 그들에게 달려들려고 했을 때, 허공에서 창 하나가 꽂혔다.

나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늬들은 이제 다 뒈졌다.”

내 뒤로,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강력한 기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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