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화
16화 - 이벤트
#1
갑작스러운 화제성에, 강일은 멍하니 모니터를 쳐다봤다.
실시간 검색어에 왜 자신이 떠 있을까?
짐작 가는 일은 있었지만 고작 방송일 뿐인데, 이래도 되나 싶었다.
아마존 TV의 ‘드레젠의 소소한 방송국’은 때아닌 방문객들의 폭주 때문에 로딩이 느려질 정도였다.
“허허……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정말 놀랐다.
방송, 그리고 게임의 파급력이 이 정도였다니.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었다는 것이 허언은 아니었는지, 드레젠은 자신의 방송국을 들어가는 것도 힘들었다.
자신의 방송국에도 못 들어가는 스트리머라니.
“……그냥 때려치우자.”
고물 컴퓨터로는 아무리 기다려도 홈페이지에 들어가질 생각을 안 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들어온 것일까.
그냥 나중에 들어가 보도록 하고 편집을 시작하기로 했다.
영상은 10분에서 15분 정도.
각 테마별로 영상을 잘라서 올리기로 했다.
‘여태까지 쌓아 온 노하우가 있지.’
실제로 강일이 만든 동영상 중에는 인기 동영상에 올라간 것도 더러 있었다.
몸으로 할 게 없다 보니 그런 것에 심력을 쏟은 보람이 지금 찾아왔다.
영상을 천천히 확인하며 자를 곳은 자르고, 버릴 곳은 과감히 버렸다.
화면 전환이 빠르도록 신경 썼으며, 시청자들이 보기 쉽도록 편집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자막은 내일 달아야겠네.”
벌써 해가 뜰 시간이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무기력함의 연속이었는데, 온몸에 활력이 넘쳤다.
조금만 더 할까? 했지만 병원 일은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기로 했다.
체력이 곧 돈이었으니, 조금이나마 체력을 보충하고 출근해야 하지 않겠는가.
저장을 꼼꼼하게 하고, 강일은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눈을 뜨는 것이 기대되는 하루였다.
#2
“좋은 아침. 오늘은 컨디션이 좀 좋아 보이네?”
아침마다 올라오는 커피 향이 오늘따라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잠을 설치지 않고 푹 잤다.
조금 잤지만 그 어느 날보다 상쾌하게 일어났다.
머피를 받아 들고는 가볍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새 살쪘어? 얼굴이 왜 이렇게 보기 좋아졌지?”
“요즘 스트레스가 좀 풀려서 그런가 보네요.”
어제 정말 스트레스가 확 풀렸지.
마나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여태까지 죽어 가고 있었던 몸뚱이가 조금씩 깨어나는 중이다.
격렬한 운동을 하거나 싸우지 않는 이상 고통에 시달릴 일이 적어졌다는 사실에, 웃음이 계속 실실 나왔다.
커피도 오늘따라 조금 달달한 것 같네.
“오늘 커피 맛있네요. 어머니 좀 뵈고 올게요.”
“그래. 쉬엄쉬엄 다녀와. 아직 시간 많아.”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날 대해 주시는 간호사님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 마시는 커피 한잔 때문에 이 일이 할 만한 거 아닐까?
계단을 올라 볼까? 하고 생각했지만 아직 그 정도의 육체적 활동은 허락되지 않은 것 같다.
내 몸은 내가 잘 아니까.
“여, 오랜만이네?”
“오늘도 오셨습니까?”
“그래. 안색이 꽤 좋아졌구만.”
창식이 형님이 오셨다.
비록 저쪽 세계의 사람이었지만 나름 잘 챙겨 주시니까.
어쩔 때는 든든한 뒷배로 써먹을 수도 있고 말이야.
아니나 다를까, 형님이 꺼낸 얘기는 브락시아에 대한 얘기였다.
“게임은 할 만하냐?”
“네. 재밌더군요. 아르바이트하는 것보다 훨씬 돈이 많이 될 것 같네요.”
“그래? 그거 잘됐네. 큰형님도 좋아하실 거다.”
창식이 형의 눈빛이 잠깐 빛났던 것이 보였다.
그래, 혹시 내가 드레젠이 아닐까 의심스럽겠지?
하지만 굳이 내 입으로 밝힐 필요는 없지.
어머니는 오늘도 고른 숨을 쉬고 계셨다.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지만, 아직 먼 얘기였다.
“오늘도 똑같은 일상이군. 그나마 새로운 게임이 나와서 위안이 된다.”
“형님도 하세요?”
“당연하지 인마. 난 성격대로 하다가 두 번이나 죽었어.”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창식이 형은 브락시아에서 일어났던 일을 계속해서 설명했다.
검은 해골바가지와 싸웠다가 처참하게 맞아 죽고, 2시간 동안이나 게임을 못했던 이야기까지 해 줬다.
어…… 나도 어디서 이런 채팅을 본 것 같은데?
“그래서 드레젠이라는 스트리머 방송에 들어갔는데, 진짜 기똥차게 잘하더만.”
“아, 저도 봤어요. 얻을 게 많던데요?”
“게임사에서 머리를 잘 썼지.”
역시 보통 사람들의 인식은 이 정도인가?
사실 무리도 아니다.
출시 첫날.
그것도 패키지 게임의 공략을 미친 듯이 풀었는데 게임사와 연관이 안 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이상한 거지.
형님은 드레젠이 화제의 인물이라고 연신 떠들었다.
한창 이야기를 하던 도중, 둘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다.
“음?”
“우리 둘이 동시에 폰이 울릴 이유가 있나?”
“있다면 하나밖에 없겠죠.”
브락시아.
우리 둘의 공통점이라면 그것밖에 없겠지.
약속이나 한 듯, 우리는 액정을 들여다봤다.
[자동 추첨 이벤트 : 세이브 더 브락시아 런칭 기념!]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갑자기 이벤트라니.
이 녀석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갑자기 막 추측이 되었다.
게임사라는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녀석들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거다.
뭐, 언젠가 만날 생각은 있었으니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야, 너 그 표정 좀 짓지 마.”
“음? 아 죄송합니다. 버릇이라.”
“너 그 표정 지을 때마다 우리 애들 팔다리 하나씩 부러진 거 알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3
“로드. 이벤트 배포 완료했습니다.”
“잘했어. 오늘도 야근인가?”
(주)브락시아.
아마 용사였던 최강일도 자신들이 접촉하려고 하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수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이제는 그 보상을 받을 차례였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용사를 만나 설득할지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다.
“저…… 로드. 만약 그가 협조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협조는 할 거다. 조사를 해 보니까 현재 상황이 좋진 못하니까.”
“그가 우리에게 가진 감정이 좋진 않을 텐데요.”
로드라고 불린 자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내심 일곱 명의 영웅들이 원망스러웠지만, 그들이 살아 있는 이유 역시 그들이었기에 감정을 꾹꾹 눌렀다.
두 눈을 깜빡이며 정말 만약을 대비했다.
진짜 덤벼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린 그가 꼭 필요하다. 시간이 별로 없어.’
그녀는 최신 휴대폰에 재생되고 있는 그의 방송을 보았다.
명불허전이라고 해야 할까, 정말 깔끔하고 정확하게 메인 스트림에 접근했다.
이 게임을 개발하고 런칭하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쏟았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다시 보기를 벌써 세 번이나 돌려 봤다.
전혀 질리지 않았고,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오는 전투 실력이었다.
“신상을 조사해 보니, 병상에 누워 있는 친모가 있답니다. 여차하면……. 크억.”
“그렇게 만약을 운운하더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그의 성격을 아직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꾸욱-.
로드의 손이 순식간에 해당 발언을 한 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여인의 몸으로, 그것도 한 손으로 성인 남성의 육체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프로 빌더들도 힘겨워하는 일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경이로운 모습.
목이 잡힌 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크억……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그의 가족을 건드리면 남은 건 추악하게 진흙탕에서 구르는 일뿐이다. 명심하도록.”
“알겠습니다.”
같은 공간 안에 있는 모두가 답했다.
로드는 심각한 얼굴로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래, 그를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그들을 모두 끌고 가야 했으니까.
“너희들을 보내면 사달이 날 것 같으니 내가 직접 가겠다. 스케줄 비워 놔.”
“로드. 위험합니다.”
“너희가 가면 안 위험하고? 여기서 일대일로 그분을 이길 수 있는 자가 있나?”
침묵이 장내를 무겁게 짓눌렀다.
강일, 그자는 좋든 안 좋든 전설이었고, 한 시대의 최강자였다.
많이 약해졌지만 그 지식과 경험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위험 부담이 크지만, 로드는 도박 수를 던지기로 했다.
“우리가 구해야 하는 것은 협조다. 협박이 아니라.”
“알겠습니다. 그럼 일정을 빼 두겠습니다.”
“1등 상품을 하나 더 마련하도록 해.”
모두 동의했다.
빈손으로 간다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게임의 발전을 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꼭 그의 힘이 필요했다.
다시 분주해지는 공간을 뒤로하고, 그녀는 자신의 작업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4
퇴근을 하며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이벤트에, 100만 원가량의 후원.
거기다 엘프라고 콕 집어서 말하는 아이디까지.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아닐까?
“재밌긴 한데.”
정말 자신이 엘프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엄청 예쁜 사람이라든가, 연예인이라든가…….
하지만 왠지 감이 아니라고 말하는 중이었다.
떠오르는 엘프라고 하면 역시 엘프족의 로드인 ‘하이디엔’ 정도일까.
성좌 : 미카엘의 창술을 기가 막히게 사용하는 엘프였다.
그뿐만 아니라 마법도 수준급이었지.
“그래도 좀 호감이 가는 녀석이었는데.”
일단 엘프 하면 진짜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정도로 선이 곱다.
동시에 성격도 시원시원했던 것이, 나와 꽤 말이 통했었다.
한참 고통받고 있을 때 약소하게나마 도움도 줬었고.
몇몇 그런 자들이 있었기에 그래도 추억으로 미화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다음 콘텐츠는 동료 모집 정도로 할까.”
베스티안 백작령에는 꽤 쓸 만한 인재가 많았다.
가까운 지리에서 쓸 만한 동료를 영입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마련한다면, 공략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단 그 하시스 성주를 찾아가 봐야겠지.
왜 가만히 있는 사람들을 건드는 걸까?
“옛날부터 진짜 사람 속은 알 수가 없단 말이지.”
수상하다고 조사하고, 의심스럽다고 조사하고, 실력이 너무 뛰어나다고 조사하고…… 등등.
별의별 이유를 다 들어서 시비를 걸어오더라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집 앞까지 도착했다.
오늘도 돈 좀 벌어야지.
주변 정리를 하다 보면 레벨도 꽤 오를 테고, 마나도 조금씩 회복될 것이다.
“이벤트도 있었지.”
대체 어떤 의도로 이벤트를 기획했는지 알아보고도 싶다.
일단 홈페이지부터 살펴봐야지.
집에 들어가서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벤트부터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세이브 더 브락시아 런칭 기념 이벤트!]
[10월 22일 - 10월 25일]
[이벤트 기간 동안 캐릭터를 생성한 플레이어들은 자동으로 이벤트에 응모됩니다.]
[발표 : 10월 27일]
이벤트의 상품은 제법 좋았다.
시가 300만 원이 넘는 컴퓨터부터 시작해, 정말 다양한 사은품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게 필요한 것은 최신형의 컴퓨터.
300만 원이 넘는 거금을 지출할 여유가 아직 없었기에, 반드시 필요한 물품이었다.
“1등은 바라지도 않는다.”
1등 상품은 무려 프리미엄 게임용 캡슐.
게다가 앞으로의 DLC를 모두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쿠폰까지 있었다.
‘설마 1등 하겠냐.’
설마 1등에 당첨이 되겠냐는 생각을 철회한 것은 불과 100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