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화
15화 - 라이징 스타
#1
판타지 소설에서 어떻게 전투를 행해야 하는가.
그 누구도 정석을 알지 못했고, 단지 소설과 만화, 영화처럼 싸우려고만 했다.
결과는?
뻔하지 뭐.
고블린에게까지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경비대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 게임 오버가 되기도 했다.
“대체 어떻게 싸워야 되는 거야!”
분명 재미있었다.
그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게임임에는 확신했다.
하지만 진입 장벽이 너무도 높았다.
도처에 깔린 강자와 몬스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플레이어.
묘한 시너지가 맞물리면서 극악의 난이도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래도 너무 재밌어서 못 끊겠어 허엉-.”
어느 한 스트리머가 방송 도중 말했다.
온몸이 황금빛의 상처투성이였지만, 그래도 웃고 있었다.
왜냐고?
재미있으니까!
‘다크 소울’이라는 게임처럼, 극한의 난이도를 자랑했지만 재밌다!
진입 장벽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기에, 유례없이 많은 사람들이 ‘세이브 더 브락시아’를 찾았다.
-여기, 우리의 구세주가 왔습니다.
스트리머들이, 그리고 일반 유저들이 쩔쩔매고 있을 때 광명이 찾아왔다.
누군가의 클립이 여기저기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
그것은 게임이 오픈한 지 약 7시간 만에 수많은 스트리머들에게 수출이 됐다.
그 여파는 주인공의 시청자 수를 약 2배가량 올려다 놓았다.
“이게 뭐야?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싸워?”
“와…… 진짜 대단한데요?”
“어떡해! 목소리도 좋아!”
수많은 스트리머들이 그의 영상을 보고 환호했다.
덤덤하게 말하지만 자신감 있게 울리는 발음과 목소리.
기분 좋은 목소리 톤과 청량한 사이다를 한껏 들이켠 것 같은 진행.
특히 전투 부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깔끔했다.
“이분이 사용하는 스텝이나 기술은 진짜 현실적인 거예요. 이 정도면 현실에서도 진짜 운동 잘하시겠는데?”
한때 유명한 격투기 선수였지만 은퇴를 하고 브튜브로 전향한 김우현.
아이디는 매미로, 현역 시절 상대방에게 달라붙는 식의 운영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처음에는 그 별명을 싫어했으나, 이제는 하나의 아이콘으로서 자리를 잡았기에 꽤나 애정 있게 쓰곤 했다.
그 역시 발군의 격투기 센스로 초반을 무난하게 진행하는 중이었다.
“와, 저도 격투기 선수였지만 게임이 꽤 어렵거든요. 그런데 이분은…… 숨어 있는 고수셨네.”
-매미의 인정;;
-아름답다.
-움직임이 예술, 그 자체임ㅋㅋㅋ 눈동자 쉬지 않고 움직이는 거 보소.
-진짜 싸우는 게 멋있다는 생각은 지금 처음 했다.
“진짜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나중에 브튜브에 영상 올라가면 참고 좀 해야겠어요. 어우, 격투기로는 칼 든 놈들 상대하기가 너무 힘들어.”
대륙에는 체술로 먹고사는 자들도 있었지만 소수일 뿐이었다.
현실적으로 주먹과 발로 검을 이길 수 있는 자는 극히 드문 것이 당연했다.
오죽하면 무기를 든 사람을 상대로, 웬만해선 도망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겠는가.
가까이 접근하면 된다?
그렇다면 무기를 든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뒷날은 부러졌냐? 이 새끼야?’
검을 들었다고 해서 초근접에서 싸우지 못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 대 사람이 붙는다면 검을 맞댄 상태에서의 공방이 훨씬 자주 일어났기에, 검사들은 격투기 선수 못지않게 몸을 잘 썼다.
그렇기에 김우현은 격투기의 한계를 여실히 느끼고 있었던 참이었다.
“한번 배워 보고 싶네요. 검술.”
-운동하셨던 분들이면 진짜 잘 배우실 듯.
-나도 오늘부터 해동 검도 배우러 간다.
-ㅋㅋㅋㅋㅋ검도 열풍 불겠네.
김우현은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서 한번 현실에서도 스파링을 해 보고 싶다는 열망도 꿈틀꿈틀 일어났다.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 BJ가 방송판을 휩쓸고 있었다.
모두 드레젠이라는 아이디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2
[강제 종료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충분한 휴식 후에 다시 접속해 주세요.]
알림이 떴다.
제법 아쉬운 내용이었다.
아직 시체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이름을 알아낸 것 외에는 제대로 된 조사도 시작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다시 그 나약한 육체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아;;
-벌써 끝이냐고ㅜㅜㅜ
-이거 심의 때문에 그런 거라던데 진짜 너무한다으ㅜㅜㅜ
-토크 더 해 주시면 안 돼요? 넹?
“일단 게임은 여기까지 해야겠군요. 벌써 여덟 시간이나 했다니, 시간 빠르게 지나가네요.”
-그거 ㅇㅈ이구연.
-진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넼ㅋㅋㅋ
-어느새 12시가 넘어간다ㅜㅜ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조금 더 얘기를 하다가 방송 종료하겠습니다. 벌써 거의 1천 명 가까이 되는 분들이 모여 주셨네요. 방송 첫날인데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처음에는 브튜브로 성공할 줄 알았는데, 실시간 방송으로 이렇게까지 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 줄이야.
예상보다 5억이라는 빚을 갚는 데 얼마 안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이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그럼, 여기까지 하고 잠시 쉬었다가 이야기 좀 나누겠습니다.”
캡슐에는 방송을 도와주는 다양한 기능들이 탑재되어 있었다.
게임을 로그아웃하고 라디오처럼 방송을 진행할 수 있는 장치였다.
컴퓨터로 방송을 다시 켜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라고 하던데, 이번에 한번 써 보면 되겠네.
메뉴를 불러왔고, 세이브를 했다.
[저장하고 종료하시겠습니까?]
[Y] [N]
“예.”
[세이브 더 브락시아의 진행 상황을 저장합니다.]
[드레젠 / Lv. 20 / 07 : 55 ; 22]
[하시스 성 부근, 이름 없는 마을]
첫날의 게임이 종료되었다.
시청자들이 약간 빠져나갔지만 그래도 800명가량 남아 있었다.
유명 스트리머들이나 느꼈던, 채팅이 빠르게 올라가는 것이 이제야 체감되기 시작했다.
저들은 나와 함께 공감하고, 또 소통하며 이 시간을 즐겼다.
매일매일 여유가 없이 살았던 나에게는 더없이 크나큰 힐링이었다.
‘이런 기분에 방송들을 하는 건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맞아, 인생 2회 차임?
-ㅋㅋㅋㅋ진짜 인생 2차였다고 한다.
-게임사에서 머리 잘 쓴 듯. 공략집 주고 공략대로 방송하는 거 아님?
이런 말이 제법 나올 줄 알았다.
게임사 놈들과도 한 번은 만나고 싶었으니까, 이런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논란을 키워, 나를 표면으로 올려 주면 더욱 좋은 일이지.
하지만 이런 자들 사이에는 꼭 헛소리를 해 대는 놈들이 있다.
-이 정도는 나도 공략집 보면 다 하겠다.
-?? 진짜임?
-ㅈㄹ ㄴㄴ ㅋㅋㅋㅋ님이 오늘 본 그 장면들을 다 따라 한다고요?
-베타 테스트도 했는데 거기서 빡시게 연습하면 다 할 줄 아는 거 아님?
-나는 님이 오크 세 마리한테 3분 안에 털린다에 손모가지 걸 수 있음ㅋㅋㅋ
“연습하면 오크 정도는 다들 상대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위로는 잘 모르겠군요.”
세 치 혀로 선동하려는 자들은 수도 없이 겪었다.
오히려 지구에서 사는 이들이 욕구를 훌륭하게 제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런 놈들은 똑같이 대응해 주면 된다.
물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지’라는 것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 시청자들에게 까는 걸 맡기면 된다.
“제가 오늘 올린 영상을 보시고 열심히 연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공략을 보고 방송을 하든, 그냥 다 아는 방송이든 여러분들께 해가 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거 ㅇㅈ
-보여 주면 되지.
-알려 주려고 하는 방송인데 알려 줘도 ㅈㄹ인 건 좀 그래?
-ㅋㅋㅋㅋㅋㅋ 맞아, 공략 보고 인증하셈;;
-꼬우면 방송해서 더 잘하든갘ㅋㅋㅋ
떡밥은 너만 던질 수 있는 게 아니란다.
나도 말은 할 수 있었고, 시청자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호기롭게 외친 시청자를 뒤로하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다음 주제는 앞으로의 방향성이었다.
-아, 아침 드라마 끊긴 것처럼 브락시아 마렵자너 ㅜㅜ
-진짜 다음 스토리 ㄹㅇ 궁금함ㅋㅋㅋㅋ
-난 게임 진행이 이렇게 궁금한 건 줄 오늘 알았닼ㅋㅋ
“다음엔 저를 괴롭힌 자들에게 벌을 줄 겁니다. 좀 열심히 살아 보려니까 암살자나 보내고 있고 말이죠.”
아마도 아이젠하트, 아니면 성주가 지시했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크리스를 보호하고 있던 사냥꾼을 추궁해야지.
오늘 영상을 노트북으로 전송하면서, 동선을 가만히 생각해 봤다.
-진짜 잔인하게 죽여 주세요!
-사이다 듬뿍 기대합니다.
-감히 뭐든지 다 아는 사람을 건드리다니ㅋㅋㅋㅋ
-죽음조차 아는 그는 빛빛빛이었다.
“그에 관련한 배경지식들도 조금씩 풀어 드릴 생각입니다. 제 방송을 보시고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얻으셨으면 좋겠네요.”
-크으, 정말 좋구연.
-인성까지 훌륭하다!
시청자들에게 첫인상은 잘 심어 놓은 것 같다.
그럼, 예고편도 적당하게 날려 줬겠다, 이젠 슬슬 퇴장할 때인가.
자, 그럼 이제 방송을 종료하고 편집을 해 보자.
밤을 새워도 괜찮으니까, 지금까지의 노하우를 총동원해서 해 보는 거다.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내일 있을 방송도 기대해 주시고, 이제 브튜브 편집을 할까 생각 중이거든요.”
-안 돼에ㅔㅔㅔㅔ
-내일 봬요!
-브튜브 빨리 올려 주세요!
-드바!
-드바!
귀여운 채팅들이 우수수 올라왔다.
제법 아쉽구나.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방송 종료 버튼을 누르자, 송출이 종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잠금 설정을 하고, 캡슐에서 나왔다.
숨 막힐 정도로 고요한 정적이 방에 내려앉았다.
허무함과 고요함,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후-. 이것도 익숙해져야겠어.”
인터넷 화면 너머에서 나를 찬양해 주고, 열광했던 이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나의 말에 반응해 주던 이들이 한꺼번에 없어지니, 무대 뒤에서 트레이닝복을 입고, 화장을 지운 모델들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이게 바로 ‘현타 씨게 온다’는 느낌이구나.
더불어.
“쥐콩만큼 마나도 올라왔네.”
아주 조금이지만 마나가 증가했다.
전성기에 비하면 100분의 1, 아니 1,000분의 1도 안 되는 마나였지만 어쨌든 돌아왔다.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어째, 오늘 하루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 것 같은데.
“자, 그럼 이제 방송 편집을 해 볼까?”
몸이 활성화가 되니, 슬슬 배고파지기 시작했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삼각 김밥을 그 위에 얹어 놓은 다음 컴퓨터 앞에 앉았다.
컴퓨터 앞에서 호로록 먹는 라면이 그렇게 맛있거든.
낡은 컴퓨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팅을 시작했다.
“노트북도 세팅했고.”
영상 편집은 정말 큰맘 먹고 지른 노트북으로 대체하고 있거든.
그마저도 이젠 낡아서 퇴물 소리를 듣지만, 영상을 자르고 이어 붙이고, 간단한 효과나 자막을 달 수 있을 정도는 가능한 스펙이었다.
소스들이나 참고 자료 등을 컴퓨터로 확인하고,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패턴은 이미 익숙해졌다.
“어…… 근데 왜 이게 여기 있냐?”
전 국민 대표 포털 사이트인 ‘네X버’.
오른쪽 상단에는 오늘 하루 동안 이슈가 되고 있는 실시간 검색어가 주르륵 떠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참 동안 멍하니 쳐다봤지만 화면은 바뀌지 않았다.
1. 세이브 더 브락시아
2. 브락시아
3. 가상 현실 게임
4. (주)브락시아
5. 브락시아 공략
6. 드레젠
7. 드레젠 공략
8. …….
실시간 검색어에 내 게임 아이디가 떡하니 박혀 있었다.
이건 전 국민에게 박제당한 것과 다름없는데?
자연스럽게 키보드에 손이 갔고, 아마존 TV로 들어갔다.
내 방송국에 남아 있는 ‘다시 보기’.
해당 영상의 조회 수는 자그마치 ‘3,423,684회’.
“와우.”
순수하게 웃음이 나왔다.
내 인생이 조금씩, 아니 누가 ‘F-22 랩터’에 강제로 매달아서 날려 보내는 정도로 빠르게 바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