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화
14화 - 제왕의 가문
#1
활과 화살.
일반 보병에게는 꽤 강력한 무기였지만, 기사들에겐 무시해도 될 수준의 무기.
기사의 단단한 갑옷을 뚫기 위해서는 마나가 담긴 무기라든가 마법 처리로 절삭력을 높인 무기를 사용해야 했다.
화살은 오러를 담기도 꽤 까다로웠고, 소모품일 뿐인 화살에 마법 처리, 인첸트를 하지도 않았다.
가끔 인간을 초월한 자들이 쏘는 화살은 갑옷뿐만 아니라 사람 자체를 관통하는 힘을 지니긴 했다.
그럼에도 근접 무기를 쓰는 자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하지만 익히기만 한다면 엄청나지. 열 손가락 안에 꼽지만.’
드레젠이 희게 웃었다.
본인이, 그 소수 중 하나라는 사실에 표정이 절로 변한 것.
활은 그저 견제용이라는 상식을 완전히 부순 ‘라드리드’의 궁술이 떠올랐다.
마나를 이용한 궁술은 수 킬로미터 밖에 있는 적을 저격할 수 있었고, 하늘에서 화살의 비를 내리게 할 수도 있었다.
-성좌, ‘라파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활과 화살은 창을 길게 늘인 것과 같다고.
-신족의 눈은 독수리보다 몇 배는 정교해서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지.
꾸득-.
화살을 메긴 드레젠의 눈이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마나가 그렇게 반응했다.
수도 없이 개조된 그의 몸이 자연스럽게 최적의 상태로 이끌었다.
손끝의 감각이 적을 쫓았고, 두 눈이 보이는 정보를 전혀 다른 형태로 전달해 주었다.
‘감히 내가 있는 곳에 살기를 숨기지도 않고 와?’
비틀린 웃음이 드레젠의 감정을 대변했다.
시청자들은 허공을 노리는 드레젠을 보며 의문을 드러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있는 자세였으나, 카메라에는 비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딜 보고 있는 겐가.
-설마 이걸 맞히는 건 아니겠지?
-?? : 방금 안 보이는 적 맞히는 상상 함!
팡-!
경쾌한 울림이 공기를 울렸다.
본래는 곡선을 그려야 할 궤도가, 직선이 되었다.
수풀 사이로 날아간 화살은 종적이 묘연했다.
-어림도 없지;; 우린 로빈훗이 아니라고
-ㅋㅋㅋㅋ뭐든지 다 알았지만 각도는 몰랐쥬?
-바람은…… 극복하는 거야!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킬 : 궁술이 생성되었습니다.]
[기술 포인트 1점 획득하셨습니다.]
-?
-??
-아니 뭐야 방금 맞힌 거임?
-ㄹㅇ 극복했네…….
[‘바람은’ 님 10,000코인 후원!]
[으아니 쓰앵님, 이건 또 어떻게 하신 겁니까?]
드레젠은 다음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끼리릭-.
나무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저것 재료를 섞어 만든 합성궁이었지만 압도적인 완력을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싸구려 활은 일회용이군요. 제가 어디서 배울 수 있는지도 다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방송은최고야!’ 님 100,000코인 후원!]
[갓갓갓님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게임을 쉽게 진행하시게 하기 위해서 정보를 많이 풀겠습니다,”
투웅-.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힘으로 쏘아 낸 화살이 다시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활이 부서졌다.
장력을 견디지 못한 활의 최후는 처참했다.
또다시 레벨이 올랐다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레벨은 17입니다.”
-아니 어디 있는지 알고 그렇게 막 쏘는 겁니까?
-ㅋㅋㅋㅋ적도 어디 있는지 아는 남자
-화살도 직선으로 날아가는 거 같던데
“저는 뭐든지 다 아니까, 이제부턴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을 상대하는 법을 공략해 드리겠습니다.”
몬스터와 사람은 정말 다르다.
갑옷을 입고, 검술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떤 면에선 몬스터보다 훨씬 까다로웠다.
가장 무서운 적은 강력하고, 미쳐 버린 인간이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이니.
부러져 버린 브로드소드 대신 새로 장만한 검을 꺼내 들었다.
활을 살 때 같이 장만한 것이었다.
“이렇게 생긴 검을 ‘아밍 소드’라고 부릅니다. 브로드소드보단 길고, 롱 소드보단 짧은 한 손 검이죠. 본래 중세엔 무조건 한손으로만 잡을 수 있지만…….”
이곳은 브락시아.
몬스터와의 전투를 상정해, 보통 알고 있던 아밍소드에서 검의 손잡이 부분을 조금 더 늘린 디자인이었다.
-롱 소드 아님?
-아무리 봐도 롱 소든데
-ㄴㄴ 롱 소드는 양손용 직검임. 저거보다 훨씬 길어요
흔히 범하는 실수였다.
롱 소드는 한 손 검이 아니라 두 손으로 잡는, 말 그대로 긴 검이었다.
일반적인 한 손 검은 롱 소드가 아니라 ‘아밍 소드’라고, 따로 부르는 명칭이 있었다.
드레젠이 꺼낸 것은 두 손으로 검병을 잡을 수는 있었으나 검신의 길이가 롱 소드보단 짧았다.
[브레이시스식 아밍 소드]
[공격력 + 10]
보레아스와 경쟁이라도 하듯, 브레이시스 제국 본토에서 만들어 낸 아밍 소드.
뛰어난 장인들을 모집해서 만들어 낸 공방의 제품들은 제국이 본격적으로 영토를 넓힐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저기 보이네요.”
-왔다!
-무섭게 생겼네
-이겨 버리세요!
풀숲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
가죽 갑옷에 가벼운 투구를 쓴 자들.
수는 다섯.
온몸에 마나의 잔재가 푸르게 돌고 있었다.
그들은 양손에 검을 하나씩 들고 드레젠에게 다가왔다.
“살기를 그렇게 풀풀 풍기면 어떡하나.”
“죽어라.”
가타부타 말은 필요 없었다.
누군가의 명령을 들은 자와 자신의 생명을 걸고 맞붙는 자.
각자의 목적은 뚜렷했다.
드레젠은 마주 달려오는 검사들을 보며 자세를 취했다.
“마나가 좀 있는 이들을 상대할 땐, 인첸트된 갑옷이 아니라면 주의해야 합니다.”
-강의 시작한다.
-집중!
드레젠의 몸이 유연하게 움직였다.
단숨에 거리를 좁혀, 상대방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수를 택했다.
머리 위로 손이 올라갔던 습격자가 당황한 것이 피부로 와닿았다.
“가장 먼저 마나를 배분해야 할 곳은 다리입니다. 검이 아니라.”
푸욱-.
검은 그 자체만으로도 살인 무기다.
사람의 체중을 실어 찌르면 가죽 갑옷 정도는 충분히 뚫고 들어간다.
인간의 평균 힘이 강화되었기에 가죽 갑옷 역시 충분한 방어력을 가졌지만, 드레젠의 육체는 평범하지 않았다.
“크억-!”
심장을 뚫린 자는 그대로 즉사했다.
드레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검을 회수했다.
마나가 충만한 다리는 깃털처럼 가볍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다.
분명 수 킬로그램이 넘는 갑옷을 착용했지만 벌거벗은 것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했다.
그가 있던 자리를 날카로운 일격이 할퀴었다.
“어디서 이상하게 훈련한 검술 가지고.”
“포위해라.”
벌써 세 사람이 죽었다.
절대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습격자들은 신중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치 상태는 드레젠에게 확실히 좋았다.
그는 작게 중얼거리며 팁을 또 하나 알려 주었다.
“포위된 상태가 되면 섣불리 움직이지 마세요. 대치하면서 체력을 보충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주문을 외운다. 견제해라.”
무미건조한 목소리는 정확하게 상황을 짚어 냈다.
그들은 품에서 투척용 도끼를 꺼냈다.
수는 별로 안 되지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레인저답네.”
드레젠은 씩 웃고 앞으로 질주했다.
검은 곧게 세운 채, 자신의 몸에 중앙을 가렸다.
곧이어 마나를 담은 도끼들이 날아왔다.
-으아아 저걸 어떻게 피해?
-우리의 쓰앵님은 단순히 피하지 않을 거야 ㅇㅇ
[‘철이’ 님 50,000코인 후원!]
[노 히트로 잡으시면 5만 원 더!]
“그렇게 하죠.”
드레젠은 돈이 급하다.
그렇기에 이런 미션은 환영이었다.
검을 비스듬히 세워 날아오는 도끼들을 쳐 냈다.
달려가는 와중에도 그의 입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공략이었고, 아주 중요한 팁이었다.
“전부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가까이 오는 것만 슬쩍 움직여서 쳐 내 주세요. 물론 마나가 많이 실려 있으면 그만큼의 마나가 필요합니다.”
저들은 단순히 살상하기 위해 투척 무기를 던지는 것이 아니었다.
적의 접근이 조금이라도 느려질 때 자세를 고치고 위치를 다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네 명이 순식간에 드레젠을 감싸는 형태로 위치를 잡았다.
하지만 그들은 아주 중요한 실수를 저질렀다.
“멍청한 놈들.”
작게 중얼거린 드레젠이 다리에 힘을 집중했다.
저들은 한꺼번에 달려들어 어떻게든 손과 발을 묶었어야 한다.
마나를 운용할 시간을 준 것이 패착이었다.
“크억!”
강하게 스텝을 밟으며 한 줄기 선을 그었다.
명필이 붓을 들어 혼신을 담아 획을 그은 것만 같은 빛줄기.
황금빛 폴리곤 덩어리가 비처럼 흘렀고, 다시 한 번 드레젠의 레벨이 올랐다.
“적의 숨통을 끊을 때는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절삭력을 최대한 강화해야 합니다.”
빙글 돌아, 검날의 중간 부분을 잡고 내려치는 검을 막아 냈다.
카드득-, 마나가 담겨 있는 검은 날카로웠다.
그래 봐야 검은 검.
소드 마스터 수준이 아닌 이상, 검술의 기본적인 원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하프 소딩은 정말 뛰어난 방어술입니다. 날은 맨손으로 잡아도 전혀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고 잡으세요. 이것도 잘못된 상식 중 하나죠.”
본래 검날은 맨손으로 잡아도 손이 베이지 않게끔 만들어진다.
일본도인 카타나 같은 경우에는 극한의 날카로움을 추구하지만, 그렇게 만든다면 검의 내구도가 상당히 떨어지게 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대로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검을 쳐 올리니, 또 하나의 생명이 꺼졌다.
“이제 둘 남았네?”
“…….”
습격자들은 말이 없었다.
드레젠은 점점 늘어 가는 마나를 느끼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이 충족감!
현실에서는 전혀 맛볼 수 없는 충만한 감각이었다.
-미쳐 간다 미쳐 가;;
-무서워;;
-자, 이제 누가 보스지?
-개 웃기넼ㅋㅋㅋ 쟤네들 벌벌 떠는 거 보소
시청자들은 진한 카타르시스에 마구 손가락을 놀렸다.
그들이 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가 쏟아졌다.
뛰어난 전투, 오연하게 서 있는 자태.
마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비범함은 그들을 춤추게 만들기 충분했다.
[‘오빠달려’ 님 10,000코인 후원!]
[지렸습니다. 행님.]
검을 다시 쥐고, 습격자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고문? 정보?
지금은 괴롭히는 것보다, 짜릿한 전투를 맛보고 싶었다.
드레젠이 매료된 것은 자유롭게 움직이는 육체와 점점 충만해지는 마나에 매료되어 있었으니까.
그런 건 나중에 필요에 의해서 ‘명령’을 받은 자들이 하게 될 것이다.
“두 놈도 빠르게 끝내겠습니다.”
그의 검이 빠르게 춤추자, 남은 적들도 황금빛 폴리곤 덩어리를 흘리며 쓰러졌다.
동작이 많아 복잡해 보여도 순수 전투 시간은 5분 남짓.
시청자들이 보기엔 순식간에 전투가 끝나 버렸다.
[‘철이’ 님 50,000코인 후원!]
[클립 따도 되겠습니까?]
“후원 감사합니다. 물론이죠. 오늘 녹화본은 제가 따로 편집해서 올릴 겁니다.”
-크으 기대 중.
-머기업까지 가즈아ㅏ!!
“일단 이놈들의 정체부터 알아볼까요? 그리고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죠?”
-사람 빡치는 방법?
-아니 그건 우리가 얘기한 거곸ㅋㅋㅋ
-아 스카이워커 얘기 하다가 말았네요.
“그렇군요. 그러면 조사를 하면서 그 썰을 한번 풀어 보도록 하죠.”
쪼그려 앉아 시체를 뒤적거리는 드레젠.
그는 일단 입고 있는 갑옷과 투구,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조사를 진행하면 인물의 이름과 정보를 갱신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어디 어느 간 큰 놈이 절 노렸는지 알아봅시다. 제왕의 가문을 도우면 훗날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비릿한 웃음이 다시 펼쳐졌다.
여유로운 삶을 만끽하기 위해선 주변에 거슬리는 것들은 모두 없애 버리는 것이 현명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