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화
11화 - 의심하다
#1
망자의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로브를 촉매로 하는 소환수일 것이다.
뒤에서 쫓아오는 검은 해골을 보며, 드레젠은 확신했다.
“흑마법사가 개입했군요.”
참으로 뻔한 시나리오였지만, 무시할 수는 없었다.
브락시아의 첫 번째 재앙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도 흑마법이었다.
망자와 악마, 저주와 부정적인 에너지를 다루는 흑마법은 강력했다.
그리고 까다로웠다.
‘악마들을 소환한다고 했던가.’
그 악마들이 이 세상을 말아먹기 시작하면서, 브락시아 대륙은 개판이 된다.
본래는 그걸 막는 것이 제일 좋았지만, 그건 드레젠, 강일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후, 브락시아에 진정한 위기가 찾아오자 강제로 소환이 되었으니까.
[크아아아아-!]
“이 녀석은 다들 아시죠? 스켈레톤입니다. 되게 찌끄레기 같아 보이는데, 전투를 잘 모르시면 상당히 애먹을 수 있는 녀석입니다.”
뼈를 마나로 강화한 스켈레톤은 기본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스태미나 역시 무한이라는 것.
그 점 하나만으로 일반 보병을 아득히 넘어서는 위력을 보여 주었다.
“게다가 이놈들은 마나를 두르고 있는 해골이기 때문에 정말 단단합니다. 안 그래도 단단한 뼈가, 더욱 단단해진 것이죠.”
-내가 알던 스켈레톤이 아닌디?
-그나저나 진짜 단단해 보인다.
-근데 어떻게 싸우려고?
지금 드레젠은 맨몸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싸울 것인지 궁금했다.
지이익-!
가죽 갑옷 안에 받쳐 입는 이너아머를 부욱 찢은 후, 손에 둘둘 감았다.
“지금부터 맨손으로 상대하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
-??
-이걸?
-아아, 그는 빛. 이었다.
가드를 올리고, 발을 적당히 벌렸다.
스켈레톤 한 마리뿐이었지만, 결코 긴장해선 안 된다.
전투의 소리가 다른 전투를 불러올 수도 있었다.
이런 산속에서의 사냥은 그런 변수 하나까지도 고려해야 했다.
파티가 감당할 수 없는 전력이 들이닥치면 임무고 나발이고 모두 날아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제 손엔 오크의 이빨이 있습니다. 이건 결정타를 먹이기 위해 쓸 겁니다.”
스켈레톤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녀석은 뼈로 된 검을 가지고 있었는데, 상당히 길이가 길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검술을 사용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휘두른다는 점이랄까.
‘묘하게 난이도 조정이 된 것 같단 말이지.’
그가 상대해 봤던 스켈레톤은 이렇게 느리지 않았다.
난이도가 조정되어 있으면 그야 좋았다.
엄청난 숫자로 밀어붙이지도, 기괴한 조합을 짜서 온 산을 뒤덮지도 않았다.
“일단 이 스켈레톤은 모체가 없습니다. 명령을 받지 않은 놈이죠. 스켈레톤을 상대할 땐 관절부를 먼저 노려 주세요.”
모든 무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리’다.
상대방이 공격할 수 있는 거리.
그리고 내가 공격할 수 있는 거리.
거리 안에서 나누는 공방은 그다음이었다.
그래서 보법, 스텝, 위치 선정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한다.
“무술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특히 맨몸으로 부딪칠 때는, 절대 힘을 과하게 줘선 안 됩니다.”
-힘은 근돼나 쓰는 거지.
-메……모.
-힘은 무식한 거시다.
-암요암요.
제대로 된 검술을 바탕으로 싸우는 스켈레톤이었다면 거리를 잡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 스텔레톤은 그저 검의 가장 기본적인 동작만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래도 상당히 빨랐기에, 까딱 잘못하다간 어디 하나가 날아갈 수도 있었다.
“현대의 무술은 상당히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발달된 겁니다.”
고개를 숙여 검을 피하고, 가볍게 잽을 날렸다.
시야를 계속 방해하며 위치와 거리를 선점한다.
격투기에서의 잽은 견제의 의미도 있었지만, 자신의 위치를 잡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었다.
해골은 턱 부근을 계속 얻어맞아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어깨의 움직임을 보고 피하셔야 합니다. 날아오는 검을 보면 이미 늦어요.”
반사 신경이 좋은 편이 아닌 이상, 날아오는 날붙이를 보고 피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다.
미리 대비하고 있어야 좋은 자세로, 좋은 위치로 피할 수 있는 법.
드레젠은 오로지 잽만으로 해골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이분 복싱까지 잘하시네;;
-그저 빛이라니까욬ㅋㅋㅋㅋ
-클립! 클립을 딴다!
-해골 : 방금 드레젠 목 따는 상상 함!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해골은 머리, 그리고 어깨 부근을 얻어맞아서 계속 휘청일 뿐.
뇌가 없어 장기가 흔들리진 않았지만, 관절들이 달그락거려, 자세가 점점 무너졌다.
드레젠에게 그 어떠한 공격도 먹히지가 않았다.
[격투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기술 포인트 1점 획득하셨습니다.]
“흠, 딱히 몬스터를 죽이지 않아도 스킬 레벨은 오르는 것 같군요. 재밌네요.”
문득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눈앞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해골을 그대로 흠씬 두들겨 패기로 했다.
모든 패턴을 분석하고, 초심자에 맞게 공략을 진행해 주는 콘텐츠.
지루할지도 몰랐지만, 능력치를 올리는 방법으로는 제격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초반에 꿀 좀 빨아 봅시다. 이번에 스켈레톤을 상대하는 완벽한 공략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조금 지루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나중에 게임하실 때 충분히 도움이 될 겁니다.”
[‘아웃복서’ 님이 10,000코인 후원!]
[감사함미다. 쓰앵님.]
-과외비 입-금.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구만.
-크으 방송 볼 맛 난다.
잡몹은 아무리 날고뛰어 봐야 잡몹이었다.
모체의 조종도 못 받는 스켈레톤 따위, 패턴은 아주 단순했다.
“패턴은 간단하네요. 여러분도 한번 노가다를 해 보세요.”
현란한 무빙과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주먹.
오로지 주먹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완벽함.
해골은 덜렁거리는 뼈를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격투 스킬 랭크 업!]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주먹을 놀리는 드레젠.
마나가 있는 그의 몸은 물속에 들어간 거대한 물고기와 똑같았다.
‘의지대로 움직인다. 벌써 몇 분째야?’
본래 이렇게 움직인다면 벌써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을 것이다.
그는 점점 브락시아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격투 스킬 랭크 업!]
[기술 포인트 2점 획득하셨습니다.]
[스텝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기술 포인트 1점 획득하셨습니다.]
“이쯤이면 전부 홀로 잡을 수 있겠죠?”
[‘뉴비환영해!’ 님 50,000코인 후원!]
[명강의 감사합니다. 슨생님.]
“아주 좋습니다. 스켈레톤은 두개골 안에 핵이 있습니다. 그걸 이렇게-.”
콰직-!
주먹에 단단히 쥐고 있었던 오크의 이빨을 박아 넣자, 푸르게 빛나고 있었던 해골의 눈동자가 사라졌다.
와르르 허물어지는 검은색 뼈를 집어 들었다.
레벨도 올라 12가 되었다.
[검술 : 5 ] [사라미스식 검술 : 1] [도축 : 1] [추적술 : 2] [행군 : 1] [질주 : 1] [방어술 : 2] [마나 적응력 : 2] [격투 : 5] [스텝 : 3]
“스킬도 나쁘지 않군요. 아마 기술 포인트는 투자하면 레벨을 올릴 수 있을 겁니다. 아직은 주력으로 쓸 스킬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아 두겠습니다.”
-오 퀘스트 끝났음?
-이제 뼈 챙겨 가면 되겠네.
-진짜 너무 신명 나게 후려 패서 보는 내가 사이다였음ㅋㅋㅋㅋ
-아;; 방금 죽고 왔는데 죽으면 2시간 동안 겜 못함 ㅜㅜ 나도 스켈레톤한테 죽었는데
“저런…… 그러시면 제 방송 오셔서 힐링하고 가십쇼. 자, 그럼 이제 귀환하겠습니다.”
일반인들에겐 보이지 않는 시야에서 기척이 멀어졌다.
드레젠은 모른 척을 하고 걸음을 옮겼다.
이젠 꽤 두둑한 보상을 받고 발을 빼서 버려진 마을로 들어갈 것이다.
계획은 꽤 그럴듯했다.
#2
하시스 성.
햇볕이 제법 강해져, 완전히 안개가 걷힌 성은 활기가 넘쳤다.
몬스터의 수가 제법 적어졌다.
사람들은 기회를 잡아 각지로 뻗어 나가, 부족한 자원을 보충하고 식량을 구해 왔다.
활기가 넘쳤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치안 유지를 위해 병영에서 순찰병들을 뽑아야겠습니다.”
“그렇게 하라. 참, 그 건은 어떻게 됐지?”
경비대장, 아이젠하트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성의 경비대장이라면 꽤나 높은 신분이었다.
그의 위에서 명령을 할 수 있는 자는 나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백금발에 훤칠한 키를 가지고 있는 남자.
고급스러운 평상복 위로 드러난 근육은 더없이 부풀어 있는 상태였다.
“쓸 만한 용병에게 일을 맡겼습니다. 그, 엠블럼을 찾아온 자입니다.”
“그렇군. 바로 나에게 보고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성주님.”
백금발의 남자, 하시스 성주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성안으로 향했다.
나른하고 터덜터덜하게 보이지만 그는 차세대 소드 마스터로 촉망받고 있는 인재였다.
젊은 나이에 성주의 자리를 꿰찼고, 차기 백작령을 이끌어 나갈 후계자이기도 했다.
“대장님. 돌아왔습니다.”
그가 떠나간 후, 때마침 찾아온 두 명이 아이젠하트에게 다가왔다.
분명히 시야엔 존재했지만 유령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분명 숨을 쉬고 있을 텐데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고,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으며 무슨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도 없었다.
베스티안 백작령이 자랑하는 레인저 부대 중 두 명이었다.
“어떻던가.”
“무시무시한 실력자입니다. 검술과 무투에 능하고 오크 셋을 농락 하다가 일격에 베어 죽이기도 했습니다.”
“첩자이거나 적의 끄나풀일 가능성은?”
레인저는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다.
일단 ‘보이는 것’만으로는 위협적인 자가 아니었다.
아이젠하트는 손을 한번 휘저었다.
레인저들은 마치 자리에 원래부터 없던 것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경비대장은 손으로 까슬까슬한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흠……, 더 조사를 맡겨도 되겠군.”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3
성으로 돌아오자마자 경비대장을 만났다.
병영으로 가니 팔짱을 끼고 날 기다리는 경비대장이 보였다.
피식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작게 말했다.
“역시 미행이 있었군요.”
-미행?
-아니 어디서?
-왜 우린 몰랐지?
-몰랐으니까 미행이지ㅋㅋㅋㅋ
“저렇게 절 나와서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무슨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이런 정치 놀음엔 관심 없거든요.”
-흥미진진한데ㅜㅜ
-저런 데 발 잘못 들이면 괜히 고생함
-ㅇㅈㅇㅈ 희생양 되기 딱 좋음
내가 추구하는 방송은 편안하게 힐링하는 방송이지, 저런 놈들의 장단에 어울리는 방송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 연놈들이 원하는 방향도 짐작이 가기 시작했거든.
“저는 적당히 발을 빼겠습니다. 여러분도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누가 오라 가라 하면 기분 안 좋잖아요.”
-저한테 그러는 건 싫지만…….
-여기서 킹치만이 나온다고?
-ㅋㅋㅋㅋㅋ나는 귀찮은데 보는 건 재밌음ㅋㅋㅋ
-앗, 아아…… 안 돼요! 보는 내가 암 걸린다고ㅜㅜㅜ
본래 누군가가 고통받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지.
하지만 나도 저 녀석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생각은 없다.
본래라면 전부 뒤집어엎었겠지만…… 이젠 귀찮다고.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고, 뒤치다꺼리를 하고, 명예니 뭐니 하는 것들을 좇는 것은 이제 끝이다.
난 그냥 편하고 조용하게 살 거다.
“뜻 맞는 이들을 모아서 이것저것 알려 드리고 소소한 꿀팁을 방출하면 재밌겠네요.”
큰 줄기는 다른 수많은 유저들이 알아서 깨 줄 거다.
나는 그저 그들에게 정보나 떡밥 정도만 던져 주면 되는 거지.
아티팩트의 위치라든가, 동료의 정보라든가.
게임 하면 절대적인 실력을 발휘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있잖아?
그러니까 다 잘될 거다.
“기다리고 있었네.”
“이거 이상하군요. 제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기다리고 계셨다니.”
아리젠하트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어떻게 반응할 거지?
흥미를 담아 아이젠하트를 바라봤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