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화
10화 - 발을 걸치다
#1
-와 미쳤다.
-ㄹㅇ 전설의 레전드.
-미친 어케 했누;;
-레전드 각. 클립 바로 땀.
[‘뉴비환영해!’ 님 100,000코인 후원!]
[엄청납니다. 센세.]
드레젠이 희게 웃었다.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렸고, 온몸이 뜨겁게 타올랐다.
후우-.
심호흡으로 심신의 안정을 불러온 드레젠이 몸 상태를 살폈다.
근육이 꿈틀거렸고, 팔에 저릿저릿한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 그의 신체로는 펼치기가 어려운 검술이었기에.
‘아직 약하다.’
조금 더 강해지고 싶다는 욕구를 겨우 눌러 담았다.
마음 같아서는 돌아다니면서 몬스터를 싹 다 잡았을 텐데.
주먹을 두어 번 쥐었다 폈다 하며 긴장과 고양감을 덜어 냈다.
검을 보니 완전히 박살 난 검신이 보이지 않았다.
반토막 나 버린 검신이 세 마리째 오크의 몸에 깊숙하게 박혀 있음을 발견했다.
“마지막은 절반만 들어갔네요. 레벨을 더 올려야겠어요.”
-캬
-레벨 5가 할 퍼포먼슨가?
-빨리빨리 수출해야지
-안 됨; 우리만의 작은 드레젠으로 남아 있어야 됨;;
-절대 나만 볼 거야.
그렇게 말은 했지만 다들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오크 세 마리를 무참히 썰어 버린 클립은 여기저기에 수출되겠지.
그렇다면 다시 시청자들이 몰리겠고, 더욱 큰 방송인으로 성장.
그렇게 대기업이 되어 가는 거다.
“얼른 진행하죠. 이렇게 무참히 썰어 버렸으니까 재료는 못 가져가겠네요. 이빨만 뽑아 갑시다.”
오크의 이빨은 호신용품으로서의 가치가 있었다.
개당 10브론즈 정도에 팔리는 잡동사니 목록이기도 했다.
뿌득, 힘을 주어 오크의 이빨을 뽑아낸 드레젠은 걸음을 계속 옮겼다.
정찰 임무를 너무 질질 끌면 사람들이 또 싫어하기 마련이니까.
드레젠은 걸음을 빨리해서 해당 장소로 향했다.
“오크 역시 이곳을 찾으러 왔나 보군요. 오크들은 동료애가 꽤 강해서 전사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정찰대를 보냅니다. 고블린들이 복수를 위해서 동료를 끌고 온다면, 오크들은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 정찰대를 파견하죠.”
-오오 으리.
-마! 이게 으리 아니가!
-생각보다 오크 조아.
-오크 친구 하난 잘 뒀네ㅋㅋㅋㅋ
동료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점은 인간보다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는 다르게, 오크들은 못난 동료들이라고 해도 버리진 않는다.
또 안 좋은 생각으로 뻗어 나가려는 것을 고개를 저어 털어 냈다.
‘이곳은 게임이다.’
‘나는 돈을 벌고 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거다.’
이 세 가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도착했군요.”
한눈에 봐도 꽤 많은 인원이 움직인 흔적을 따라가 보니, 그가 처음 게임을 시작했던 자리로 돌아왔다.
하루 만에 돌아왔지만 꽤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사체가 없네?
-시간 지나면 사라지는 거 아님?
-ㄴㄴ 부패해서 없어짐 다른 BJ들 하는 거 봤음
-그렇다고 해도 이상한데;; 왜 없어졌지?
시청자들 역시 변화를 눈치챘다.
드레젠은 일단 나무 위로 올라가 주변을 살피기로 했다.
보통 이럴 때는 누군가의 개입이 있던 적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그의 단련된 감각이 작게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나무를 순식간에 타고 올라가, 두꺼운 가지에 자리를 잡았다.
-이분 원숭인가;; 나무도 잘 타넼ㅋㅋㅋ
-슥쇽샥 하니까 올라갔음
-등.신
-등신? 아! 등산의 신!
-나문데요;;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반응하는 시청자들이 귀엽게만 느껴졌다.
가만 생각해 보니 또래의 사람들과는 소통한 지가 꽤 됐다.
그가 접촉하는 사람이라고 해 봤자 칙칙한 어깨 형님들, 그리고 병원 생활에 찌들어 살고 있는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전부였다.
‘이렇게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구나.’
이들 역시 대리 만족을 느끼기 위해 이곳을 찾았겠지.
그렇다면 그에 부응해 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뭔가 이상한 점은 없는데, 내려가서 살펴보죠.”
주변을 샅샅이 훑었지만 특별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에게는 레벨과 능력치를 뛰어넘는 지식과 경험, 그리고 능력이 있었다.
마나를 사용한 추적술을 쓰진 못하지만 주변에 숨어 있는 자들까지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가는 것과 찾아내는 것은 다른 영역이었다.
“흠, 일단 몬스터의 사체가 전부 사라졌고…… 새로운 발자국이 있군요.”
부츠.
그리고 가볍다.
발자국이 살짝 쓸려 있는 것을 보아 치렁한 로브를 입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브락시아 대륙에서 로브를 입고 다니는 자들은 많지 않았다.
보통은 두꺼운 망토를 걸치고 다니기에 질질 끌릴 일이 없거든.
“로브를 걸치고 다니는 자들은 마법사, 공학자, 흑마법사, 그리고 소환술사입니다. 일단 마법 계열의 자들이 애용하곤 하죠.”
-왜?
-마법사의 상징이니까?
-마법사 하면 로브자나.
-상-식인 것이다.
상식은 상식이었다.
마법사들이 로브를 걸치고 다니는 이유에는 꽤 여러 가지 설이 존재했는데, 수인을 보이지 않기 위함이라든가, 마법 도구를 편리하게 넣고 다니는 것이 대부분의 이유였다.
마법사는 굉장히 귀했다.
한때는 마도 공학이 정점을 찍어서, 길가에 보이는 자들 대부분이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았지만 머나먼 옛 이야기였다.
마법사들은 귀했기에 귀찮게 하는 자들이 많았다.
“마법사들의 신분은 꽤 귀하거든요. 신분이 노출되면 귀찮은 일이 많이 발생하니까 로브를 뒤집어씁니다. 또 마법사 곁에는 항상 견습 마법사와 시종이 함께 다니죠. 누가 진짜 마법사인지 모르게 감추기 위해섭니다.”
-크으 역시 뭐든지 다 알구연.
-역사 공부가 이렇게 재밌었다면 100점을 맞았겠지ㅠㅠㅠ
-현실은…….
-(대충 공부 안 했다는 내용)
낄낄거리며 노닥거리는 분위기.
드레젠은 제법 심각한데 다들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지금 심각한 분위깁니다. 다 같이 몰입해 주세요.”
-ㅋㅋㅋㅋㅋ
-혼자만 심각햌ㅋㅋ
-역사 얘기 더 해 줘요.
-센세의 강의가 마렵습니다!
“이런 건 줄줄이 설명하면 재미가 없습니다. 궁금하면 500원.”
-아.
-노잼;;
-언제적 드립을;;
-아이 엠 그루트!
[‘라떼는말이야’ 님 500코인 후원!]
[아재요. 틀니는 무사하십니까?]
“여러분들도 알고 계시니 비슷하겠군요. 추억 팔이입니다. 추억 팔이.”
-이렇게 팩폭을;;
낄낄거리면서 잡담을 하는 와중에도 드레젠은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
증거가 될 만한 것은 딱히 남지 않았다.
적어도 이 공터에서는.
또 한 가지 문제는 병사들의 사체 역시 싹 사라져 있다는 점이었는데, 뭔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런 거에 깊게 발을 들이면 곤란해.’
어디까지나 초반 자본금과 공적치를 쌓으려고 했었는데, 심각한 문제에 코가 꿰이는 것은 좋지 않았다.
적당히 발을 빼야 한다.
이렇게 대놓고 수상한 일을 벌일 정도라면 꽤 거대한 집단이 움직였을 가능성이 컸다.
‘흠, 이대로 실패를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표면적으로 건질 것은 없다.
지금 발을 빼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5골드 정도야, 사냥으로도 충분히 벌 수 있었고 공적치도 자잘하게 임무를 수행하면 쌓을 수 있었다.
마음의 추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을 때, 그것을 붙잡는 후원 하나가 터졌다.
[‘엘프입니다’ 님 1,000,000코인 후원]
[퀘스트 계속해 주세요. 흥미롭네요.]
-?
-??
-??!
-와 큰손;;
-대박
-미친ㅋㅋㅋㅋ
채팅 창이 난리가 났다.
드레젠 역시 생각을 멈추고 후원을 멍하니 바라봤다.
100만 코인이면 현금으로 100만 원이었다.
아니 벌써 이런 후원이 터진다고?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흠. 본래는 큰일에 엮이는 걸 싫어해서 발 빼려고 했거든요.”
드레젠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땅을 한번 쳐다보기도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시청자들은 어서 빨리 퀘스트를 받으라고, 감히 먹튀를 할 생각이냐고 말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드레젠은 1분 정도를 고민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후원해 주신 대가는 치러야 하니까요.”
씨익 웃는 표정은 오크를 잡을 때의 그것과 똑같았다.
돈 받은 값은 해야지.
그가 작게 중얼거리고는 본격적으로 탐색을 시작했다.
#2
깜찍한데?
100만 원을 받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이었다.
이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하는 녀석들이 과연 평범할까?
이렇게 완벽한 세계, 몬스터의 습성과 오감까지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래, 지금은 장단에 어울려 줄 수 있다.
“여기, 반대편에서 올라온 흔적이 보이는군요. 마법의 흔적도.”
마나가 주변 환경을 침식한 흔적이 보였다.
마법을 사용해서 뭔가를 하고 그대로 떠났군.
변이된 것들을 챙겨 가면 좋겠지.
그리고 뒤따라오는 것들은…… 어떻게 할까?
“증거는 확보했습니다. 잘 챙겨서 돌아가면 되겠군요. 조금 더 둘러볼까요?”
-자고로 맵은 핥으라 했습니다.
-100만 원 값은 해야져.
-절.대.수.색.해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적당히 시간을 끌다 보면 미행하던 것들은 알아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성실하게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으니까.
본래 의심이 많으면 경계하게 되어 있고, 일정 범위 안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왜냐고?
상대방이 얼마나 넓은 공격 범위를 가지고 있을지 파악이 안 되거든.
“좋습니다. 조금 더 수색을 진행하고 꿀팁도 풀겠습니다.”
-과외비 입금하겠읍니다
-가즈아-!
-기대된다 하악하악
-오빠! 정말 멋있어요!
그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3
드레젠은 사뭇 진지한 표정이 되어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폈다.
마나로 인해 변질되어 버린 흔적을 찾았고, 다음에는 그들이 남긴 표식이나, 나뭇가지에 걸린 옷가지 등을 찾아봤다.
“여기 있군요.”
찢어진 로브 자락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마치 드레젠이 찾으라고 하는 것처럼.
그는 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보더니 작게 웃었다.
추적 스킬을 사용했지만, 그 주변엔 인위적으로 모든 흔적이 지워져 있었다.
“누가 일부러 지워 놨군요. 마나의 잔재가 남아 있네요. 이 정도로 흔적을 깔끔하게 지우기 위해서는 3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필요합니다.”
[추적 스킬 랭크 업!]
[기술 포인트 1점 획득하셨습니다.]
그가 정확한 추리를 내놓은 순간, 스킬의 랭크가 올랐다.
추적술 레벨 2.
소소한 수확과 더불어, 조금 더 선명하게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드레젠에게는 보잘것없는 스킬이기도 했다.
“이만 가죠. 정찰은 끝났습니다.”
그가 등을 돌린 순간, 한쪽 수풀이 부스럭거렸다.
하지만 드레젠은 계속해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걸음이 점점 빨라졌고, 수풀이 움직이는 소리도 점점 커졌다.
시청자들의 채팅이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님, 뒤에
-뒤에요 뒤뒤뒤
-뒤 좀 봐!
-시야 수준;;;
-뒤ㅈㅎㅁ 봐여!
‘쯧, 대놓고 알려 주니 재미도 없네.’
드레젠은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냄새가 났다.
지독하고 역한, 죽은 자의 냄새가.
왜 시체들을 가져갔는지도 당연히 알아냈다.
‘그럼 이때가 그 사건의 시작이었던 건가.’
더불어서 떠오르는 사건도 있었다.
그가 반토막이 난 브로드소드에 손을 가져갔다.
레벨은 10.
다른 한쪽 손엔 아까 쓰려다가 못 쓴 체액이 들려 있었다.
“여러분.”
[크아아아아아-!]
“제가 이상한 곳에 발을 걸친 것 같네요.”
드레젠이 쓰게 웃으며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