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화
9화 - 접근
#1
(주)브락시아.
신생 게임 회사임과 동시에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게 된 초거대 그룹이었다.
그들의 수뇌부를 만난 자는 여태까지 극소수에 불과했으며, 엄청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초의 가상 현실 게임을 만들어 냈다.
모든 자본과 기술력을 투자해 만들어 낸 게임, ‘세이브 더 브락시아.’
그들은 ‘현실’과 똑같은 세상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저 정도라면 성공률은 얼마라고 보는가?”
“지금 상태로 성장한다면 약 70%입니다.”
“……그렇군.”
긴 머리칼에 단정한 차림을 하고 있는 여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몇몇 방송인들 중에 눈여겨보는 자들이 있긴 했다.
프로 게이머를 했던 자들, 반사 신경과 운동 신경이 남다른 자들.
혹여는 현대의 스포츠, 그중에서도 격투기나 무술을 배워 게임에 뛰어든 자들.
그들의 전투력은 대단했으나, 브락시아는 단순한 전투력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었다.
“다른 이들은 어떤가?”
“모두 50%를 넘지 못했습니다. 아이디 : ‘매미’가 그나마 30%를 넘겼습니다.”
하아-.
여인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시선이 숲길을 걷고 있는 드레젠에게서 떨어지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장면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추하다 했지만, 그녀는 드레젠의 과거를 그 누구보다 숭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불쌍한 사람.’
다시 그 무거운 짐을 지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숱한 작업을 거쳤다.
완성한 게임은 그야말로 기회의 장이었다.
완벽한 세계를 구현했고, 그들이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일단 내가 찾아가겠다. 음, 간단한 명분이면 충분하겠지. 지금 자동 추첨 이벤트 하나만 기획하도록.”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로드.”
로드라고 불린 자는 조용히 화면을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녀는 자조가 섞인 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2
숲속.
추적 스킬을 활성화해서 걷던 드레젠은 거대한 흔적을 발견했다.
드디어 대군이 이동한 흔적을 발견한 것.
흔적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아직 족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묻히거나 흙이 덮인 흔적도 별로 없었다.
“벌레도 없고…… 근처에 몬스터가 있을 수도 있겠군요.”
고블린, 그리고 오크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었다.
드레젠은 땅에 거의 엎드리다시피 해서 냄새를 맡았다.
킁킁.
다소 비위생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으나, 이는 추적술의 가장 기본이 되는 수법이었다.
-갑자기 댕댕이 코스프레라니.
-사람은 개가 아닙니다. 센세.
[‘아수라발발타’ 님 10,000코인 후원!]
[이건 무슨 과목입니까?]
“후원 감사합니다. 오크의 냄새가 진하게 납니다. 오크는 체취를 흘리고 다니거든요. 냄새는 음…… 손을 겁나 비비면 나는 닭똥 냄새랑 비슷합니다.”
손을 열심히 비비면 나는 냄새가 전체적으로 퍼져 있었다.
그것도 꽤 진하게.
근처에 오크가 있다는 것.
얼마 가지 않아, 발자국을 발견했다.
‘이거, 전투는 피할 수 없겠는데.’
오크는 예상외로 후각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었다.
인간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알아채며, 우락부락한 근육을 바탕으로 한 체술로 적을 찍어 눌렀다.
그런 오크를 상대하기 위해서 챙겨온 것이 바로 아르딘의 체액이었다.
“오크들은 상대적으로 더 강한 후각에 이끌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르딘의 체액을 써서 교란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더 자극적인 걸 원하는데?
-뭐든지 다 아는 방송도 좋지만, 슬슬 피지컬도 봤으면!
-절.대.사.냥.해.
-고블린 말고 오크 잡는 영상도 따 보고 싶습니다. 센세.
[‘뉴비환영해!’ 님 100,000코인 후원!]
[오크 정면으로 잡으면 받고 10만 원 더.]
그런 드레젠을 가만히 놔둘 시청자들이 아니었다.
오크와의 정면 대결!
드레젠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었다.
그가 분명 말했었다.
“뭐…… 무장도 나쁘지 않으니 괜찮겠군요.”
이 정도 무장이라면 오크 정도는 그냥 잡을 수 있었다.
여기는 브락시아.
적어도 그가 최강의 용사로 있었던 장소였다.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 뭐임 ㅋㅋㅋ
-겁나 사악하네
-센세 무섭습니다;;
드레젠은 얼른 표정을 바꾸었다.
좋은 이미지를 위해서는 가급적 이런 표정을 짓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이 표정의 파급력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누군가가 열심히 클립을 따고 있는 것까지도.
#3
채팅 창을 바라보며 숨을 가다듬었다.
여태까지 배운 검술은 수도 없이 많았다.
초인들 틈바구니에서 몇 번인지도 모를 정도로 검을 휘둘러 왔다.
마법에도, 정령술에도, 그 밖에 공학에도 재능이 없었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검술이란 건 말이야, 너처럼 하등하고 쓸데없는 잡생각만 하는 애송이가 도달하기엔 너무 높아.
-생각 없이 휘둘러! 그리고 싸워라! 네 멍청한 머리보다 몸뚱이가 먼저 반응하도록!
-형편없이 구르더라도, 살아남아서 찔러! 그리고 베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그리고 검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단 말이다!
그들이 나에게 독기를 심어 주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감정을 실어서 가르친 것인지는 관심 없었다.
그 혹독하고 지옥 같았던 가르침은 나를 괴물로 만들었으니까.
독기, 악바리 같은 정신, 가로막는 것은 뭐든지 베어 버리는 흉포함.
검술 수련이 내게 남긴 것들은 그런 감정들이었다.
“취익-!”
수풀 뒤에서 오크들의 지독한 냄새가 확 풍겨 왔다.
그들이 내는 특유의 콧소리 역시.
아마 내 냄새를 바로 알아차리고 똑바로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자, 이제부턴 여태까지 배운 검술을 뽐내 볼까?
“취이익-!”
수풀을 가로지르며 드러난 오크들.
역시 내 예상대로, 우락부락한 근육에 단단하고 긴 어금니를 가진 녀석들이었다.
피부는 짙은 녹색이었으며 각자 투박한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다 낡아 빠진 도끼와 검.
하지만 저게 오히려 잘 제련된 검보다 훨씬 무서운 무기라면 믿겠는가?
‘너덜너덜해진 상처가 잘 회복되지도 않으니까.’
게임이니까 그 끔찍함이 완벽하게 구현되지 않겠지만, 저런 무기에 잘못 맞았다간 갈가리 찢긴 살점과 질질 새어 나가는 내장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저놈들을 단번에 죽일 수 있을까 생각했다.
떠오르는 기억들이 난잡하게 머리를 헤집었다.
-우리의 검술은 적들을 단번에 잡아채지, 우리에게 두 번은 없소이다.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은, 경장을 입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스스로를 ‘사막의 전사’들이라 칭한 자들은 일격 필살의 묘리를 펼치는 검술을 발전시켜 왔다.
“인간-!”
오크들이 나를 발견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만화에서, 혹은 소설에서 나오는 것처럼 뜸 들이는 일은 없었다.
2미터가 넘는 오크 셋은 그대로 무식하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쿵쿵 울리는 지면이 그들의 위력을 여실히 증명하는 중이었다.
“크라아아악-!”
머리칼 위로 묵직한 바람이 지나갔다.
그들은 일격에 끝낸다고 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작업이 필요했다.
먼저, 오크들이 날뛰지 못하게 만들어야겠지.
브로드소드는 날을 잘 갈아 놨다.
서걱-, 고개를 숙이면서 가볍게 휘두른 칼날이 녀석들의 허벅지 아래를 훑고 지나갔다.
좋은 느낌과 함께 계속해서 몸을 놀렸다.
‘기분 좋은데?’
묘하게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세차게 움직여 본 적이 대체 얼마 만이었지?
다시는 이렇게 격렬히 전투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크악! 인가아안!”
괴성을 지르는 녀석들을 무시하며, 검로를 읽는다.
브로드소드는 사정거리도 짧고 날도 그렇게 날카롭지 않았다.
하지만 보레아스식 브로드소드는 단 한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난전, 그것도 철저히 생존을 위해서 고안된 무기인 만큼, 무식한 내구도를 가지고 있지.
그 말은-.
“브로드소드는, 오크의 무식한 공격을 받아도 잘 부러지지 않습니다.”
콰지지직-.
불똥이 얼굴에 튀어서 저릿했다.
오크의 힘을 정면에서 받아 내는 것은 무식한 짓이었으니.
힘을 흘려 낸 것을 이용해, 오크의 도끼를 땅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휘두른다.
“크라아아아악!”
“아무리 거대한 녀석들이라도 힘을 전달해 주는 관절과 통로들이 있습니다. 제아무리 슈퍼카여도 엔진에서 전달되는 힘을 바퀴로 전달하지 못하면-.”
쿠웅-!
거대한 오크가 균형을 잃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한 놈을 행동 불능으로 만들었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아직 두 녀석이 나를 노리고 맹렬하게 달려왔으니까.
“죽어라아아악!”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대검을 내리쳤지만, 그런 건 나한테 안 통하지.
검의 종베기는 속도만 맞출 수 있다면 정말 파훼하기 쉬운 공격이거든.
반보, 그리고 몸 전체를 틀어서 공격을 피했다.
살벌한 바람이 눈을 따갑게 만들었지만, 괜찮다.
브로드소드는 아직 건재했고, 녀석은 큰 빈틈을 보였지.
“크라악!”
손목에 힘을 주어 가볍게 휘두른 것만으로도 오크 녀석의 비명을 토해 내게 만들었다.
흘끔, 옆을 보니 미친 듯이 채팅 창이 올라가고 있었다.
여유는 나중에 부리자고.
지금은 이 기분을 즐기고 싶거든.
“이제 끝내자.”
오크들은 용맹하다.
하지만 그만큼 저돌적이고 무식하다.
그들의 압도적인 체술은 분명 위협적이지만, 그것뿐이었으니까.
몸을 앞쪽으로 던지면서 마지막으로 달려드는 놈까지 발목을 절단했다.
그렇게, 내 앞에는 세 놈의 오크가 나란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우리의 일격은 단단한 갑각을 가진 놈들의 목숨을 끊기 위해 고안되었지.
-그 어떤 검을 들든, 우리에겐 절세의 보검으로 취급됩니다.
-우리가 왜 여러 자루의 검을 들고 있겠소이까? 허허!
사막의 전사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그 어떤 무기를 들더라도 극강의 위력을 펼쳐 낼 수 있도록 검술을 발달시켰다.
조각배를 띄울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마나가 꿈틀댔다.
입에서 황홀한 소리가 퍼져 나가려 했지만 꾹 눌러 참았다.
마나!
이것이 없어서 그토록 고통받았었지.
하지만 이곳, 브락시아에선 아니었다.
-우리의 검술은 직선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지.
그들은 스스로를 ‘사라미스’의 후예라고 불렀다.
극강의 일격을 위해 모든 기교를 포기한 그들의 검술은, 내가 아는 한 최고의 공격력을 지녔다.
온몸으로 뻗어 나가는 마나가 단단하게 몸을 지탱했다.
검의 한쪽에 막대한 마나를 때려 넣고, 두 손으로 검병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최대한 몸에 가깝게 붙여 힘을 더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크라아악-!”
우수수 떨어지는 황금빛 폴리곤 덩어리.
이 검격을 완성하기 위해 수천, 수만 번의 검을 휘둘렀었지.
그때를 생각하면 치가 떨리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밑거름이기도 했다.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내가 그은 가로선엔 세 마리의 오크가 잡혀 있었다.
선 안에 걸린 것은 모조리 잡아 뜯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검술.
그것이 사라미스식 검술이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킬 : 검술 랭크 업!]
[상위 스킬 : 사라미스식 검술이 해금되었습니다.]
[기술 포인트 10점 획득하셨습니다.]
[마나 적응력 랭크 업!]
[기술 포인트 3점 획득하셨습니다.]
수많은 알림들이 뜨며, 훌륭하게 전투를 마무리했다.
스킬 : 사라미스식 검술.
역시, 이곳은 내가 살아서 숨 쉬던 브락시아가 맞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