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화
8화 - 정찰 임무 맞아?
#1
두근거리는 마음을 담아서 캡슐에 접속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드디어 빌어먹을 육체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시간은 내 편이라는 말은 믿지 않았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꾸준히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어.’
정상적인 몸뚱이가 된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많아진다.
어머니를 깨어나게 할 수도 있겠지.
[방송을 송출합니다.]
-슨생님, 오래 기다렸습니다.
-가즈아ㅏㅏㅏㅏㅏ
-절.대.켠.왕.해!
-팝콘 콜라 준비 완료.
시청자들이 급증했고, 그사이에 여기저기에서 클립을 뿌렸나 보다.
아마존 TV의 핫 클립엔 내 영상들이 제법 있을 거다.
그나저나, 시청자 수가 이게 뭐야?
[시청자 수 : 550명]
“어…… 못 보던 사이에 수강생이 좀 늘었군요?”
[‘브락시아만세’ 님 1,000코인 후원!]
[여기가 그렇게 공략을 맛있게 잘한다면서요?]
웃음이 나왔다.
시청자들은 든든한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내 가치를 증명해 주는 사람들이 되겠지.
목을 한번 가다듬고, 말했다.
“그럼, 수강료도 두둑이 받았으니 한번 달려 볼까요?”
-와!
-드디어!
-먹을 거 차곡차곡 준비해 놨습니다!
-크으, 너모너모 기대되구연.
성원에 힘입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관에서 일어나, 서신을 확인했다.
서신에는 대략적인 동선이 적혀 있었다.
이것도 아주 똑같군.
[병영으로 와서 지원금을 지참, 토벌 지역으로 향해 그곳을 조사하라. 증거를 가지고 오도록.]
간단한 서신.
병영에 이것을 제출하면 지원금이 하달될 것이다.
“병영으로 먼저 가야겠군요. 기본적인 퀘스트 라인은 이렇습니다. 먼저 의뢰자가 써 준 서신을 받고 행동하세요.”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하시스 성주의 부탁]
-하시스 성주는 토벌 작전 실패에 대한 실마리를 얻고자 한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용병인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의뢰를 내렸다. 지원금을 받고 조사를 진행하자.-
[지원금 : 10골드]
[보상 : 5골드]
5골드라는 거금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이건 게임이니까.
나는 지금 브락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용사가 아닌,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스트리머다.
그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리고 콘텐츠를 생각하면서 행동하자.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지원금을 받으면 일단 갑옷부터 보죠.”
다른 스트리머들 역시 내가 가는 길을 따라 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면 그들만의 방법을 찾겠지.
나중에 한번 들러서 봐야겠는데.
일단 오늘은 퀘스트에 집중하자.
#2
안개가 자욱하게 낀 아침이었다.
숨을 들이마시면 촉촉하면서도 비린 향이 퍼지는, 그런 날씨.
가시거리가 제법 짧은 하루였기에, 해가 완전히 뜰 때까지 외출을 자제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있었다.
이런 날은 꼭 한두 명씩 몬스터의 습격을 받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일과도 없겠구만.”
“한산하겠어.”
병영의 정문을 지키고 있는 자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보통 이런 날씨라면 아주 중요한 일이 있거나 장사를 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거리에 나오는 자들이 드물었으니까.
병영으로 오는 자들도 뚝 끊기기 마련이었다.
병사 한 명이 앞을 바라보다 눈을 가늘게 떴다.
“저거 사람인가?”
“그러네. 이쪽으로 오는군.”
그들은 자세를 바로 하고, 가볍게 긴장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허름한 병사의 옷을 입고 있는 남자였다.
노련해 보이는 눈동자가, 베테랑임을 증명해 주었다.
허리에 찬 브로드소드 역시 제법 연식이 오래된 것이었다.
‘상급 병사? 아닌데.’
“정지. 무슨 용무입니까?”
병사가 창을 들어 제지했다.
남자, 드레젠은 품에서 서신을 꺼내 병사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는 ‘안개가 많이 껴서 정찰하기가 힘들겠는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병사 한 명이 서신을 받았다.
“성주님의…….”
“지원금을 받으러 왔습니다.”
잔잔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였다.
병사는 서신에 찍혀 있는 문장을 확인했다.
정확하게 성주가 찍어 놓은 서신이었다.
조심스레 펼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리십쇼.”
잠시 후, 드레젠은 작은 주머니를 받을 수 있었다.
안을 확인해 보니, 금화 10개가 들어 있었다.
금화는 전 대륙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공통 화폐였다.
미국의 달러와 비슷한 개념이었다.
“그럼 무운을 빌겠습니다.”
“고생하십쇼.”
간단하게 인사를 건네고, 발걸음을 돌렸다.
금화 10개.
현금으로 바꾼다면 무려 100만 원의 가치가 있는 금액이었다.
당장에라도 바꾸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지.
“자, 그러면 이제 장비를 좀 맞추러 가겠습니다.”
-?
-용병은요?
-꿀꺽할 건 아니겠죠?
“용병은 필요 없습니다. 이번 퀘스트는 혼자서도 가능할 겁니다.”
-이걸 뭐라고 부르던데.
[‘입만살아선’ 님 10,000코인 후원!]
[파멸을 부르는 조동아리 발동!]
-그랗췌!
-이거지!
-파조동 나왔구연.
-이제 그 입으로 인해서 불행이 닥쳐올 거임.
드레젠 역시 최근 유행하는 언어를 알고 있었다.
파멸을 부르는 조동아리라니.
피식 웃음을 흘리곤 가볍고 유쾌하게 말했다.
“파멸을 부르는 조동아리, 묻고 더블로 갑시다.”
-아니 이걸?
-이걸 이렇게?
-엌ㅋㅋ ‘Ask & go double’이라니!
드립엔 드립.
드레젠은 가벼운 텐션을 유지하며 공방 거리로 가, 준비를 했다.
지출은 약 3골드 정도.
그렇게 맞춘 무구들은 일반 병사들이 입는 갑옷과는 질이 달랐다.
‘역시 보레아스산이 믿고 쓰기에 좋아.’
가죽 갑옷 한 세트.
노숙을 할 수도 있으니 챙긴 망토와 식량들.
마지막으로 사냥과 도주를 위한 몇 개의 도구였다.
[‘보레아스’식 가죽 갑옷 세트]
[방어력 +30]
[‘화염 속성’ 부여]
-속성은 뭐지?
-이거 그거임. 팀 파이트에서 필요한 거.
-아, 그 PvP 콘텐츠죠?
팀 파이트.
지금은 알 필요가 없는 콘텐츠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직업과 속성을 맞춰 시너지를 발동, 그렇게 해서 싸우는 전장이었다.
영지에서 일하는 자들이나 용병들을 고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피지컬과 조합이 아주 중요한 게임이라고 한다.
“그건 나중에 살펴보도록 하죠. 지금은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그럼 출발합니다.”
-그나저나 사 온 것들도 알려 주셔야죵.
-맞아요. 혼자 이것저것 사시던데.
-궁금해 죽는 줄ㅋㅋㅋㅋ
채팅 창은 여전히 궁금한 것투성이였다.
드레젠은 하나씩 설명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가 산 물품은 다음과 같았다.
“몬스터들을 따돌려 주는 ‘유칼립 나뭇잎’과 저를 보호해 줄 ‘아르딘의 체액’입니다.”
[유칼립 나뭇잎]
[유칼립 나무의 잎.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고블린이 싫어하는 향을 풍긴다.]
[?]
[아르딘의 체액]
[갑각 생물 ‘아르딘’의 체액. 꽤 많은 양을 모아야 효과가 발휘된다.]
[체취 복사.]
[?] [?]
홀로 움직일 때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들이었다.
숲에는 몬스터뿐만 아니라 다양한 위협이 존재했다.
미지의 식물, 맹수와 독충들, 험한 지형까지.
게다가 사체의 일부에는 트롤과 오크도 있었다.
“어쩌면 오크나 트롤도 만날 수 있겠네요.”
-선생님 렙이 몇이쥬?
-5요.
-단 5!
-ㅋㅋㅋㅋ파조동 각인디;;
-레벨 업 좀 하고 가는 건 어떨까유?
“가면서 보이는 족족 잡을 거니까, 레벨 업은 좀 하겠죠? 사실 그것보단 공적치가 더 중요합니다.”
그는 브로드소드를 툭 치며 말했다.
성을 나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아무런 용병도 구하지 않고 홀로 가도를 가로지르는 드레젠.
그의 모습을 경비대장인 아이젠하트가 망루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허…… 설마 했는데 진짜 혼자 가다니.”
“혹시 연관되어 있는 건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저만한 임무를 성큼 받은 것을 보면.”
두 사람의 뇌리에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용병이라서 그럴 수 있다는 의견?
웃기지 말라지.
용병들이 끔찍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그들의 목숨이었다.
숱한 경험을 할수록, 그들은 위험을 직감적으로 감지한다.
“레인저 두 명을 붙이게.”
“알겠습니다.”
#3
안개가 낀 길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어제 걸었던 길임에도,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수천, 수만 번을 걸어갔던 길이어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브락시아의 세계였다.
생각보다 꽤 험한 곳이었고, 도처에 위협이 깔려 있는 곳.
“이쯤이었죠?”
하루가 지났지만 다행히 흔적은 남아 있었다.
고블린 50마리는 흔적이 안 남을 수가 없는 규모였다.
다급하게 뛰어온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일단 이곳을 따라가도록 하죠.”
숲에서는 거대한 병력이 이동한 흔적을 찾으면 된다.
그렇다면 시작 지점까지 가는 일은 쉬웠다.
별다른 접점이 없길 바라며, 드레젠은 계속해서 추적 스킬을 사용했다.
그렇게 한참 추적 스킬을 사용하다 보니, 새로운 알림이 떴다.
[추적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기술 포인트 1점 획득하셨습니다.]
[추적 스킬 활성화 시, 마나가 5초에 1씩 감소합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효율이 증가합니다.]
“마침 쓸 만한 것을 얻었네요.”
추적 스킬.
말할 것도 없이 유용했다.
추적할 때는 물론이고 생존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추적 기술이었다.
실제로 드레젠은 추적의 달인으로부터 추적 기술을 사사했다.
제아무리 숙련된 암살자라도 그의 추적술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옛날이야기지.’
고도의 추적술은 마나가 있어야만 사용이 가능했으니, 지금은 못 먹는 감일 뿐.
레벨을 올리는 것도 소홀히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추적 스킬을 활성화하자, 시야가 변했다.
-오오, 이건 꽤 많이 보던 클리셰자너?
-익숙한 게 조은 거다.
-저쪽에서부터 우르르 몰려왔네요.
산골짜기로 이어진 고블린들의 발자국들.
드레젠은 그것을 따라 산길을 타고 올라갔다.
본격적인 정찰 임무의 시작이었다.
산길로 들어서기 전, 그는 흘끔 뒤를 돌아봤다.
아무것도 없는, 한적한 관도였지만 괜히 한번 돌아본 것.
-아재요, 지금이라도 용병 구하세요.
-제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여기서까지 매운맛 보긴 싫은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음ㅋㅋ 얼른 가서 용병이나 구합시다.
“아뇨. 혼자가 더 편합니다.”
쓸데없는 용병은 오히려 진행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그것은 숱한 전투로 인해 경험한 드레젠의 판단이었고.
숲길로 내달린 고블린의 흔적을 밟으며, 그는 망설임 없이 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장면을 모두 지켜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로드, 이걸 보십시오.”
빽빽하게 놓인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는 수많은 인영.
누군가가 최강일, 게임 닉네임 드레젠의 화면을 보며 말했다.
모든 화면을 한꺼번에 바라보고 있던 자가 해당 화면 가까이 다가갔다.
“아이디가……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드레젠이라니. 저희가 찾던 분이 분명합니다.”
“신상 정보 알아내.”
“알겠습니다.”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고, 곧이어 빠르게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의 눈빛은 희열에 감싸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