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화
6화 - 공적치
#1
BJ들 사이에서, 한 클립이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거대하고 웅장한 성.
엠블럼을 보여 주니 지원 사격까지 해 주고는, 경험치까지 단번에 올려 버린 상황까지.
그 영상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전투’였다.
검도라도 배운 것일까?
아니면 따로 격투기를?
모든 BJ들이 영상 도네이션을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이렇게 어떻게 싸우는 거야?”
고블린들 세 마리와 무려 한 시간 가까이 사투를 벌인 어느 한 스트리머.
뻘뻘 흐르는 땀을 닦으며 드레젠이라고 하는 게이머의 영상을 멍하니 봤다.
-미쳤네.
-공략 방송이라던데요?
-진짜 잘 싸운닼ㅋㅋㅋ
-구경 좀 다녀와야겠네요.
본래는 2천여 명이었던 시청자들이 조금 빠져나가기도 했다.
BJ 옥냥.
잔잔하기로 유명한 게이머이자, 스트리머였다.
목소리가 좋고, 차분하게 게임을 하는 것이 매력인 그는, 목이 아플 정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며 고블린 세 마리와 난투전을 벌였다.
“하…… 이렇게 보니까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ㅋㅋㅋㅋㅋㅋ
-걱정하지 마세요. 저 사람이 이상한 거임.
[‘하카라마’ 님이 20,000코인 후원!]
[영상이 재생됩니다.]
[이런 게 정상입니다.]
“아 후원 감사합니다. 어떤 게 정상일까요? 제발 저보다 추했으면……. 큼큼.”
-너어는 진짜!
-ㅋㅋㅋㅋㅋ나만 죽을 수 업찌!
-어디 봅시다.
영상이 재생되었고, 곧 고블린들에게 쫓겨 다니는 플레이어가 나타났다.
강아지.
피지컬은 꽤 자신 있다고 말하는 BJ였는데, 고블린 한 마리한테 영락없이 쫓기는 신세였다.
옥냥은 풉, 하고 웃었다.
그래, 이게 정상이지.
“아무리 부상을 당했다지만 혼자 열 마리가 넘는 고블린을 도륙하는 건 좀…….”
-거기 제목이 뭐든지 다 아는 방송임.
-전투하는 법도 깔-끔.
과연.
옥냥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고생하고 있을 때, 홀로 날아오르듯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전투 영상을 다시 돌려 봤다.
압도적이었다.
낮은 높이를 가진 고블린은, 검으로 상대하려면 꽤 어려운 기술이 필요했다.
드레젠이라고 하는 이 BJ는 차원이 다른 기술로 고블린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음, 방송 쉴 때 한번 놀러 가 보고 싶네요.”
확실히, 어떻게 플레이하는지 궁금했다.
그 밖에도, 그가 어떻게 이런 지식들을 알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어쩌면.
-일부러 게임사에서 푼 사람 아닐까요?
-ㅇㅇ 킹능성 있다.
-이중 수익 구조 같은 건가?
옥냥의 생각도 비슷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꽤 기발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이 게임은 몇 개의 PvP 콘텐츠를 제외하면 경쟁이 없는, 솔로 플레이 게임이었다.
협력전의 성향이 더욱 강한 게임.
공략과 정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그럼, 이분은 지금부터 제 스승님입니다.”
-두 번째.
-저도 모르게 제자가 생겨 버린 드레젠 ㅋㅋㅋㅋㅋ
전투 영상을 한 번 더 돌려 본 옥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장 가까운 거점을 알았다.
하시스 성.
아마 태초 마을로 불리게 될 곳임을 직감하며, 수많은 BJ들이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2
“자네의 정확한 신원을 밝혀라.”
“드레젠이라고 합니다.”
하시스 성의 정문.
경비원들과 마주한 나는 오랜만에 향수를 느꼈다.
참 내.
이런 거에 그리운 감정을 느끼는 것이 이상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들과 살았던 기억은 아직 추억으로 남아 있나 보다.
“드레젠이라…… 가명인가? 어쨌든 잠시 기다려라. 신원 확인을 해야 하니까.”
베스티안 백작령에는 뛰어난 마법사들이 많이 상주하고 있다.
마법사들은 항상 신비를 창조하곤 한다.
다양한 술식과 기존의 법칙을 뒤틀어서.
그렇게 만들어진 도구 중 하나가 내 앞에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이곳은 전장이다. 신참. 적들의 첩자는 항상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걸 잊지 말도록.”
옆에 서 있는 병사가 신참이었던 모양.
단련이 덜 된 신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내 생각에도 신참 같았다.
거짓을 말한다면 붉게 빛나는 구슬.
단순했다.
-뭐야뭐야.
-마법의 구슬이자너?
-판타지판 거짓말 탐지기 등장.
-근데 뭘 어떻게 하는 거지?
“너도 알고 있겠지. 거짓을 말하면 붉어지는 구슬이다. 확인했으면 묻는 말에 대답하도록.”
간단하게 손을 올렸다.
그러자 작은 홀로그램 창이 눈앞에 생성되었다.
선택지라거나, 그런 건가?
“네 이름이 드레젠이 맞는가?”
[맞습니다 - 진실]
[아닙니다 - 거짓]
이런 식이었군.
고개를 끄덕이며 간단하게 ‘맞습니다.’라고 답했다.
구슬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참 친절하단 말이지.
전투 외에는 제법 손을 본 티가 났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진짜로 맞는다면.
‘멍청한 놈들.’
웃음을 숨기고,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꽤 고참으로 보이는 병사는, 다음 질문을 했다.
“그 옷은 훔쳐 입은 건가?”
[아닙니다 - 진실]
[맞습니다 - 거짓]
“아닙니다. 기억을 잃은 것인지…… 눈을 떠 보니 산 위에서 쓰러져 있더군요. 요 며칠간의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졌습니다.”
-자연스럽다.
-근데 사실 거짓말은 아님 ㅋㅋㅋ
-맞다!
흘끔, 채팅 창이 빠르게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어느새 100여 명 가까운 시청자가 몰려와 있는 상황.
방송 첫날인데?
역시 신작 게임에 클립까지 많이 따서 그런지, 꽤 반응이 좋은걸.
“허어, 거짓이 아니니 진짜로군. 마지막 질문이네. 자네는 베스티안 백작령의 병사인가?”
[용병이었습니다 - 진실]
[맞습니다 - 거짓]
자연스럽게 캐릭터의 과거도 설정해 주는군.
이런 건 생각보다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는 것 같다.
마을로 들어가기 위한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용병이었습니다.”
“흠…… 얼마 전에 산 위에 있는 몬스터 부락을 토벌한다고 했는데, 그곳 소속이었나 보군.”
“토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실패라고 들었는데, 누군가가 훼방을 놓은 모양이야. 쯧쯧, 딱하게 됐지.”
자연스럽게 길을 비켜 주며 내 어깨를 두드리는 고참 병사.
그러고 보니 기억 날 듯 말 듯 한 사건이 있었는데.
한창 수련을 받던 와중이라 기억이 없다는 것이 흠이었다.
걸음을 옮기자, 질문을 던졌던 병사가 말했다.
“내 이름은 아이젠하트라고 하네. 하시스 성의 경비대장을 맡고 있지. 자넨…… 흠. 내 권한으로 자유를 주겠네. 병사들의 유품을 가지고 온 대가라고 생각하게.”
“드레젠입니다.”
“엠블럼과 소맷자락들은 나에게 건네주겠나? 성주님께 보고를 올려야 하거든.”
주머니에서 물건들을 모두 꺼내 경비대장에게 건네줬다.
용병들도 있을 것이고, 백작령의 이름 모를 병영에서 훈련을 받고 차출된 병사들도 있겠지.
기사들의 시체는 단 한 구도 없었다.
그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아니야.
‘내가 이런 생각을 왜 하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목표는 돈을 벌어서 잘 먹고 잘사는 것.
대륙의 정세 따위, 알 바 아니다.
암, 그렇고말고.
이제 잡생각은 끊어야겠다.
“고맙군. 이리로 쭉 가면 여관이 하나 있는데, 묵기 좋을 거야. 역시 용병이라 그런지 수익엔 밝군. 부산물을 처리하는 공방은 여관 맞은편 골목에 있으니 그리로 가 보라고.”
“감사합니다. 그럼.”
복장은 이렇지만, 용병은 그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는다.
때문에 바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다.
본래라면 이런저런 검문이 있을 테지만, 시국이 꽤나 바삐 돌아가는 모양인데.
아이젠하트는 엠블럼과 소맷자락들을 들고 바쁜 걸음걸이로 사라졌다.
-와, 여기가 태초 마을.
-그나저나 아저씨 근육 장난 아님.
-여기가 진행이 제일 깔끔하고 빠르네.
[‘내꿈은검성’ 님이 100,000코인 후원!]
[수강료 냅니다. 팍팍 진행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수업료 받은 값 해야겠군요. 이번에는 호구 취급당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10만 원.
내가 하루 온종일 일해도 받을까 말까 한 금액이었다.
역시 개인 크리에이터가 훨씬 가능성 있긴 한데?
자, 본론으로 넘어와서 상인들에게 호구 취급당하지 않는 방법을 알아볼 거다.
성이라면 상가 지구는 따로 있을 테고, 그곳엔 제법 많은 상인이 상주하고 있었다.
“아마 거래 역시 흥정과 바가지로 직접 거래를 해야 할 테니까, 적어도 물가 정도는 알아 놓는 것이 좋겠죠.”
남는 돈으로는 간단한 무장 정도를 갖추는 것이 좋겠지.
현재 마을이나 도시, 성에서 거래되는 평균값을 알아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시장 조사입니다. 조금 귀찮더라도 세 곳 이상은 돌아다녀 보세요. 담합을 했으면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그럴 때는 또 다른 방법이 있으니 괜찮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꿀팁이 있긴 하지.
제일 먼저 보이는 공방으로 들어갔다.
아, 공방이라 함은 몬스터의 부산물을 사고, 팔고, 제작할 수 있는 곳을 말한다.
꾀죄죄한 검댕을 붙이고 나타난 공방장.
그가 위아래로 날 훑더니 물었다.
“맡긴 물건을 찾으러 왔나? 아직 출고 날짜가 안 됐는데.”
“용병입니다. 물건 가격을 좀 물으러 왔습니다.”
수제로 만든 가죽 주머니를 보여 주며 말했다.
공방장이 가늘게 눈을 뜨며 그것을 바라보더니, 손을 한번 까딱했다.
한번 보자는 의미일 것이다.
-과연!
-눈탱이를 맞을 것인가?
-보인다 보여.
채팅은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물건을 풀어 보여 주자,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나와 물건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어떻게 이 많은 물건을 구했냐는 뜻이겠지.
손으로 집으려 했지만, 어허.
“그거 트롤의 폐입니다. 손으로 만지면 어떻게 되시는지 알 텐데요.”
“……크흠. 미안하이.”
“가격이나 불러 보시죠.”
상인들을 상대할 때는 단호하게 나가야 한다.
공방장이 유심히 살피더니 말했다.
“부패가 조금 진행되었군. 다 합해서 88실버에 쳐주겠네.”
“흠. 일단 알겠습니다. 요 앞에 다른 가게들도 있던데…….”
“하! 지금 떠보는 건가?! 그놈들이 가격이나 제대로 쳐줄 것 같아? 이거 아주 어이가 없군! 날 열받게 하려거든 어서 썩 꺼지게!”
-아조시 급발진 무엇;;
-아니 싸가지 뭐얔ㅋㅋㅋ
-급발진 보솤ㅋㅋ
다시 주머니를 꾸렸다.
다행히 다른 가게와 사이가 좋지 않은 모양.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노인네를 무시하고 다음 가게로 향했다.
“이렇게 떠보는 것도 잊지 마세요. 너무 노골적으로는 하지 마시고. 어지간히 사이가 좋지 않은가 봅니다.”
-그거 맞는 듯.
-진짜 급발진했을 때 깜놀함ㅋㅋㅋㅋ
-서로 앙숙인 듯. 이 정도면.
맞는 말이다.
다른 가게에서도 비슷한 가격대를 부른다면 이 정도일 뿐이고, 아마 경쟁심을 느낀다면 조금 더 다른 무언가를 제안하겠지.
다음 공방의 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알림이 떴다.
[이벤트 – 대규모 장례식이 치러집니다.]
[장례식에 참여하시려면 성 중앙에 있는 광장으로 모여주세요.]
-이벤트?
-저런 것도 있구나.
-그 경비대장이 보고했나 본데?
이제 슬슬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것 같았다.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꾹 참자.
해야 할 일을 하자.
숙소를 잡고 나면, 그쪽으로 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