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화
5화 - 피지컬
#1
두근두근.
시청자들은 기대했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지식을 뽐냈던 사내.
전투는 과연 어떨지 궁금했다.
내로라하는 BJ들 역시 첫 전투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인카운터 자체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게 만들어 놨기 때문에, 전투를 피해 마을로 간 자들도 있었고, 몬스터를 마주친 이들도 있었다.
바로 BJ 강아지처럼.
-이것도 클립 가즈아!
-과연 뭐든지 아는 스트리머의 전투는?
-쫄린다 쫄려.
시청자들이 꽤 많이 늘어난 것을 확인한 드레젠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는 화려한 퍼포먼스보단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플레이를 따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원했다.
최대한 따라 하기 쉽고 패턴을 분석하는 방향으로 잡기 쉽게 상대할 예정이었다.
“여러분, 이건 진격의 방송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힐링 방송입니다.”
“케르륵-!”
고블린 한 마리가 덤벼들었다.
나타난 것은 총 세 마리.
드레젠이 빙글 웃으며 마주 달려 나갔다.
“고블린은 등을 보이는 상대를 집요하게 쫓아갑니다. 맹수에게 등을 보이지 말라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에요.”
-고블린 슬레이어!
-절.대.공.략.해.
고블린은 키가 작기 때문에 주로 하단 공격을 한다.
하반신은 방어하기도 까다로우면서 급소가 많은 부분이었다.
허벅지나 발목, 햄스트링 근육을 베이거나 찔리게 된다면 기동력에 큰 제약이 생긴다.
드레젠은 검을 비스듬히 내리며 말했다.
“고블린은 하단 공격을 주의해야 합니다. 멍청하기 때문에 패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보시면 돼요. 휘두르기, 그리고 내려치기.”
따악-!
비스듬히 막은 검과 고블린의 조악한 무기가 부딪쳤다.
성인의 힘이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근력 차.
문제는 그들의 합동 공격이었다.
“여러 마리의 고블린이 나타났을 땐 합동 공격이 귀찮습니다. 그럴 때는-.”
드레젠의 발이 움직였다.
퍼억-!
축구공을 차듯 힘껏 차 버린 고블린이 훨훨 날아가서 달려오던 고블린에게 날아가 부딪쳤다.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나뒹구는 고블린들.
드레젠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공략을 이어 나갔다.
“발로 차서 날려 버리면 됩니다. 고블린은 근력이 약해서, 공격이 막히면 빈틈이 크거든요.”
‘그건 그렇고, 이렇게까지 정교하게 구현할 수 있다니.’
그가 상대해 왔던 고블린과 완전히 똑같은 패턴, 똑같은 생김새를 보여 주었다.
겉모습이야 이미 말할 것도 없었고, 습성까지 완벽했다.
고블린 한 마리가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퇴물이 되었다지만, 드레젠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진짜였으니까.
-와, 깔끔한 거 보소.
-발……로…… 찬다. 메모메모.
-진짜 힐링 방송이다. 편-안.
드레젠은 히죽 웃고는 검을 휘둘렀다.
고블린이 도망간다면 곧 동료들을 이끌고 올 것이다.
어쩌면 상위 몬스터를 끌고 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이것도 알려 주면 좋겠지.’
“케르르륵-!”
한 마리가 꽁지가 빠지게 도망갔고, 나머지 두 명은 칼이 목에 틀어박힌 채 죽어 버렸다.
한 번을 막았고 발을 한 번 휘둘렀을 뿐, 고블린과의 전투는 무척이나 싱거웠다.
곧이어 전투 보상이 들어왔다.
[‘검술’ 스킬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기술 포인트 1점 획득하셨습니다.]
[방어술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기술 포인트 1점 획득하셨습니다.]
“쏠쏠하네요.”
드레젠이 씨익 웃자 후원이 터져 나갔다.
[‘kos0211’ 님이 1,000코인 후원!]
[깔-끔.]
[‘나는빡빡이다’ 님이 10,000코인 후원!]
[강의 더 부탁드립니다.]
“후원 감사합니다. 고블린은 이것만 명심하면 됩니다. 하단 방어. 후려치기와 내려치기. 아 참.”
-또 뭔가 꿀팁이 있다.
-하단 방어!
-또 무슨 정보를 뿌리시려고.
“고블린이 도망가면 더 큰 몬스터들을 불러들이니까 주의하세요. 고블린은 집요하고 야비한 놈들이라 추적술이 꽤 뛰어납니다.”
-?
-??
-아까 하나 도망갔는데?
-파국이다.
-엌ㅋㅋ망했쥬?
“그러니까, 그런 놈들이 올 때, 어떻게 대비를 해야 하는지 알려 드릴 겁니다.”
-아니 이걸 이렇게?
-자연스럽게 교육 방송 각을 잡는다고?
-지렸다. 큰 그림이었엌ㅋㅋㅋ
“일단 조금씩 이동하겠습니다.”
드레젠은 이미 다 예상했다는 듯이 싱긋 웃을 뿐이었다.
잡담을 나누며 길가를 내려갔다.
그는 조금 더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이곳, 베스티안 백작령은 항상 병사들이 부족합니다. 몬스터가 들끓고 있기 때문이죠. 지리적 특성 때문에 그렇긴 한데, 그건 나중에 게임을 하면서 차차 알아보시고, 그래서 버려진 마을이 꽤 많습니다.”
-흠 이건…….
-갑자기 분위기 역사 공부라니.
-그래서요?
-그거랑 몬스터랑 무슨 관련이?
드레젠은 피식 웃었다.
내 집 마련의 꿈.
여러분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단, 베스티안 백작령에서 일정 공적치 이상을 쌓아야겠지만.
“내 집 마련의 꿈, 쉽게 이뤄 드리겠습니다. 이 방송은 힐링 방송입니다.”
시청자들이 한바탕 뒤집어졌다.
내 집 마련의 꿈.
지금 청년들이 너도나도 목표로 삼고 있는 꿈이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쉽던가.
정부에서 지원을 한다, 직장을 늘린다, 고용을 어쩌고저쩌고.
그래 봤자 현실은 시궁창이다.
-현실을 깨닫게 하시다니.
-ㅠㅠㅠㅠ진짜 취업 @%#$!
-학점 관리도 빡세고…… 돈은 안 벌리고…….
-그저 웃지요. 허허.
채팅 창이 순식간에 초상집으로 변했다.
현실은 상당히 무거운 것이었으니까.
치열하고 냉혹한 것은 게임보단 현실이었다.
드레젠은 이곳, 브락시아가 고통에 연속인 현실보다 훨씬 나았다.
‘참, 아이러니해.’
멀쩡하게 움직이는 팔다리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걷고, 뛰고, 움직여 본 적이 얼마 만인지.
온몸에 차오르는 희열감을 애써 꾹꾹 누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더욱 높은 텐션으로 방송을 이어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자, 마을 근처에서 구원을 기다립시다. 베스티안 백작령의 병사들이 얼마나 잘 싸우는지 보고 싶죠?”
-찬성찬성.
-아니 여기서 몬스터들을?
-오오, 이런 콘텐츠는 최초 아닌감?
-근데 인성이 좀…….
드레젠은 터덜터덜 걸어가며 픽 웃었다.
인성이라…….
뭐 그래.
이제는 많이 희석되었지만 브락시아 대륙에선 지구의 상식대로 행동하면 뒤통수 맞기 딱 좋았다.
아직은 딱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만약 이곳이 진짜 브락시아라면 곧 드러날 것이다.
[키에엑-!]
고블린들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악취가 오솔오솔 몰려왔다.
이 정도 거리에서 퀴퀴하게 풍겨 올 정도라면 적어도 50마리 이상.
드레젠은 씩 웃었다.
‘초반부터 좋은 콘텐츠를 보여 줄 수 있겠어.’
피가 튀고 비명과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난무하는 전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피가 끓고,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장면일 것이다.
물론 이게 ‘게임’이고, 잔인한 것들은 모두 없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는 달그락거리는 엠블럼 하나를 바라봤다.
‘하시스 성.’
마지막 기억 속의 하시스 성은 폐허였다.
오크의 범람이라고 칭해지는 사건 이후, 베스티안 백작령은 그대로 멸망해 버렸다.
이곳의 배경이 언제인지는 몰랐지만, 큰 분기점이 되는 만큼 그 사건은 미연에 방지해 둘 필요가 있었다.
물론, 드레젠 그가 직접 하진 않겠지만.
“저기 보이는군요.”
케르륵-!
동시에 저기, 산등성이에서 고블린 무리가 줄지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가도의 끝에는 굳건하게 서 있는 성이 보였다.
넝쿨과 이끼가 끼어, 고성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거대한 성.
잘 재련된 석조로 지어진 성은 적의 공성 병기를 훌륭하게 버텨 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했다.
실제로 하시스 성은 무려 사 년 동안 십여 차례에 걸친 공성전에서 승리를 거둔, 철혈의 요새였다.
‘문제는 어째서 하시스 성의 병사들이 떼몰살을 당했냐는 건데. 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려나.’
그의 초반 목적은 버려진 마을 하나를 그럴싸하게 가꾸는 것이었으니까.
주변을 정리할 필요는 있지만, 브락시아 역사에 깊게 관여할 생각은 없었다.
그가 스트리밍과 게임을 하는 이유는 정말 단순했다.
“좀 뛰겠습니다.”
-오오, 온다온다!
-벌써 대규모 전투 콘텐츠라니!
-영상 클립 딸게요.
[‘어싸시노’ 님 10,000코인 후원!]
[뭐든지 다 아는 방송에서 대규모 공략도 모르는 건 아니겠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전성기였다면 고블린 따위, 50마리가 아니라 500,000마리도 털끝 하나 건들지 못했을 것이다.
제국, 그리고 온 대륙이 심혈을 기울여서 키워 낸 용사는 그런 무력을 지녀야만 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레벨 1 주제에 고블린 50마리에게 덤비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숲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이것도 공략 아닌 공략입니다.”
두 손가락을 입에 넣고 강하게 바람을 불었다.
삐이익-!
시원스런 휘파람 소리가 성벽 위로 내달렸다.
빼꼼 내민 상체가 보였다.
그의 소리가 제대로 도달했다는 증거였다.
드레젠은 능숙하게 수신호를 썼다.
삐이이익-!
망루에서 다시 한 번 호각 소리가 울렸다.
드레젠이 보낸 수신호는 소규모의 몬스터들이 다가온다는 신호였다.
성벽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군인들.
“신원을 밝혀라!”
성벽 위에서 날카로운 화살촉이 주르륵 모습을 드러냈다.
개중엔 희미한 마나를 머금고 있는 것도 있었다.
그런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드레젠은 자신의 복장을 한번 가리켰고, 자신의 품에 있었던 엠블럼들을 보여 주었다.
“이들의 장례를 치르러 왔습니다.”
“……쏴라-!”
-쏜다고?!
-아니 선생님, 쏘잖아요.
-ㅋㅋㅋㅋㅋ뭐든지 다 안다며!
-죽음조차 아는 사람인가.
드레젠은 피식 웃었다.
저 화살촉은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뒤를 돌아, 미친 듯이 뛰어오고 있는 고블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이번에 알려 드릴 공략은, 손 안 대고 코 푸는 공략입니다.”
피피피핑-!
수십 대의 화살이 고블린들을 향해 쏘아졌다.
새카만 바늘 같은 화살들이 고블린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중세 시대와 비슷한 시기를 걷고 있는 브락시아에선, 궁병의 역할이 그다지 크지 못했다.
오러, 그리고 마나로 떡칠되어 있는 초인들과 질기고 강력한 피부를 가진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세계였기에.
하지만 고블린쯤은 충분히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키에엑!”
“도망쳐라!”
콧소리를 뿜으며, 질겁한 얼굴을 하고 도망치는 고블린들.
그것을 놓칠 드레젠이 아니었다.
제법 날이 서 있는 브로드소드를 뽑아 들고, 본격적인 전투를 위해 달려 나갔다.
-오오, 이것이 막타충인가.
-ㄴㄴ 이건 전략이라고 하는 거임ㅋㅋㅋ
-ㅋㅋㅋㅋㅋ막타도 전략이지
채팅 창이 꽤 불타올랐다.
그래 봤자 얼마 없는 시청자들이기에 한눈에 들어왔지만.
드레젠은 화려한 검무를 올올이 펼쳐 냈다.
제국, 그리고 수많은 가문들의 검술.
그것을 모조리 습득하고 있는 육체가 깨어났다.
“놀아 봅시다.”
비릿한 미소가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