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화
4화 - 소소한 나무로 부자 되는 법
#1
[도축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기술 포인트 1점 획득하셨습니다.]
[도축 스킬 활성화 시, 몬스터의 내장과 그로테스크함이 노출됩니다.]
[노출도는 1부터 99까지 있습니다.]
[1은 블록 형태로, 99는 실제 내장과 동일하게 표현됩니다.]
꽤 잘 구현해 놨군.
실시간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하니, 어디 한번 시청자들이랑 조정해 보자.
일단 1로 맞췄다.
“도축 스킬 얻었네요. 기술 포인트까지 얻었으니까, 꽤 이득이죠?”
-ㄹㅇ.
-와, 하꼰데 알뜰한 거 보소.
[‘하렌’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노출도를 설정하며 시청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결과, 50 정도가 딱 적정선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새로 입장한 시청자도 아주 예의 바르게 채팅을 치곤 했다.
-? 님 뭔데 이렇게 도축 잘함?
-현실에서 막 칼 다루시나요?
-조폭들도 무서워한다던 그 동네?
“방제 다시 읽고 오세요.”
-여윽시.
-허언이 아니었어?!
-엄청 신기해요.
몬스터 삼대장들 중에 부패가 가장 빠른 것은 오크였다.
그리고 고블린, 트롤 순으로 부패가 진행된다.
먼저 상태가 멀쩡한 오크들의 부산물부터 챙겨야겠다.
“일단 가죽을 벗겨 내겠습니다.”
가죽을 벗겨 내는 것은 퍽 어려운 일로 손꼽혔지만, 수도 없이 해 봤다.
용사에게는 사소한 것 하나도 허투루 가르칠 수 없다는 미친 연놈들 때문이었지.
일단 밝혀진 몬스터의 해체는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걸 다시 써먹을 줄은 몰랐는데…….
“가죽을 다 벗겨 냈으면 어디 보자…….”
-뭐야.
-스윽 하니 사악 벗겨짐 ㅋㅋㅋㅋㅋㅋ
-진짜 그 동네 출신이신가요?!
“아닙니다. 오크의 장기들은 부패가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특수한 점액에 담가 둬야 합니다. 그리고 이 숲은 그 점액을 가진 식물이 꽤 많이 자라는 지형입니다.”
-갑자기 도축업자에서 식물 전문가로 바뀌심.
-아니 그런 걸 어떻게 아냐고요.
-진짜 빅 데이터라도 가지고 계신 거 아님?
“일단 보시죠.”
저들이 알아도 상관없었다.
게임사 놈들이 찾아와도 괜찮았다.
그 녀석들이 찾아온다면 오히려 땡큐지.
그건 나중에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거다.
시선을 돌리니, 소나무와 비슷한 나무가 보였다.
“이 나무는 ‘유트리스’ 나무입니다. 은행나무랑 비슷한 나뭇결을 가지고 있는데, 잎은 조금 더 넓은 것이 특징이죠. 그리고 이 주변엔…….”
작은 열매가 떨어져 있었다.
농익은 대추와 비슷하기도 하고, 매실의 색을 변형시킨 것만 같기도 했다.
이 열매를 짜면 바로 ‘부패를 막는 즙’이 나오지.
이미 널리 퍼진 정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토벌단이나 유적 발굴단, 용병과 영지에서 흔히 쓰이는 방법이다.
“이건 유트리스 열매입니다. 보세요.”
[유트리스 열매]
[??]
[??]
-오오. 그런데 설명은 물음표네요?
-아 그건가?
-그게 뭔데요?
세 명밖에 없는데, 꽤 재미나게 대화를 하는 중이었다.
심심하지도 않고, 옆에서 리액션도 충실히 해 주니 방송할 맛이 좀 나는데?
씩 웃으며 사전 작업을 했다.
제일 넓은 등가죽에 유트리스 열매의 즙을 펴 바를 것이다.
칼의 옆면으로 짓이긴 다음 그 즙을 그대로 펴 바르면 된다.
[유트리스 열매의 기능을 알아냈습니다.]
[부패 방지 : 동식물, 식재료, 몬스터의 부산물의 부패를 막아 줍니다.]
-?! 이걸?
-진짜였잖아?
-와, 초반에 엄청 꿀팁! 바로 메모하겠습니다!
“이렇게 가죽에 펴 바르면 마을에 갈 때까지는 가죽과 내장들을 모두 보호할 수 있게 됩니다. 얼른 작업할게요.”
알짜배기만 빼서 가야 한다.
일단 설명으로만 넘어가고, 부피가 작고 가치가 높은 놈들로만 쭉쭉 뽑아 가야지.
인벤토리가 있다면 좋겠지만, 이 게임은 극한의 현실을 추구하기 때문에 무려 배낭에 넣어 가야 한다.
맨몸인 초보 플레이어들은 당연히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었다.
“배낭을 구할 수 없다면, 유트리스 나무 옆에 자생하고 있는 ‘메이란 넝쿨’을 뜯어서 임시 배낭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녀석의 넝쿨 줄기를 자르면 접착제와 비슷한 효능을 내는 수액이 떨어지거든요.”
-아니 진짜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임?
-공략집 나왔어요?
-이거 클립 따서 수출하고 와도 됩니까?
“그렇게 하세요. 재밌겠네요.”
남들에게 정보를 주는 것은 아무것도 제약이 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싱글 게임이니까.
오히려 내 방송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 많아질 거다.
[‘뉴비환영해!’ 님이 1,000코인 후원!]
[다녀오겠습니다.]
시청자 한 명이 다녀온다고 말했다.
지금 열심히 클립을 따고 있을 것이다.
그럼 기대에 부응해 줘야지!
열심히 도축 작업을 하고 몇몇 재료들을 가죽 주머니 안에 담았다.
“무기는 많이 들고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녹슨 무구들은 값어치도 없고, 오히려 애물단지 취급만 받거든요. 차라리 이걸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베스티안 백작령은 전사자의 엠블럼을 모아, 합동 장례식을 치른다.
나도 한번 참여해 본 적이 있었지.
소매와 백작령을 상징하는 엠블럼은 필히 챙겨 가야 할 물품이었다.
“이 엠블럼과 병사들의 계급을 상징하는 무늬가 있는 소매, 그리고 군번줄을 챙겨 갑시다.”
하나하나 수거를 하자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트롤의 피와 눈알, 뇌수는 진귀한 재료다.
그리고 오크의 어금니와 두개골, 고블린의 마비 주머니와 가죽 정도가 챙겨 갈 물품 되시겠다.
수렵과 사냥을 했으면 갈무리는 기본이었다.
“자, 그럼 마을로 내려가 보겠습니다.”
다행히 이들이 지나온 거리를 따라가면 마을이 나올 것이다.
추적술이 없는 다른 플레이어라면…… 좀 힘들긴 하겠지만.
“빨리 내려가죠.”
덤덤하게 얘기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와 동시에 시청자 한 분이 퇴장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다녀오겠습니다.
이 한 마디를 남기고서.
#2
BJ 강아지.
찰진 욕과 폭넓은 인맥,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사랑받고 있는 여성 BJ였다.
평균 시청자 수는 5천여 명.
“꺄아아아악-!”
그녀는 지금, 살벌하게 생긴 고블린들에게서 도망치는 중이었다.
우락부락한 근육 캐릭터를 만든 그녀였지만, 어디 전투가 쉽던가.
운동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그녀는, 당연히 고블린 한 마리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
-달려라!
-절.대.달.려!
-뛰어라 뛰어라 강아지!
-ㅋㅋㅋㅋㅋ와 진짜 쫄린다. 뒤에 몇 마리야?
-캐릭터랑 매치가 안 돼요 안 돼.
“닥쳐 이-! 으아아아악!”
“잡아라! 케르륵!”
왜 이렇게 빠른 것인가.
그리고 강한 것인가!
고블린은 그야말로 잡몹 중의 잡몹이었다.
“으아아아-! 그만 쫓아와! 이 그지 새끼들아!”
-강하다 추지형.
-ㅋㅋㅋㅋ 이젠 누가 사냥감이지?
-졸지에 곰보겜 됐쥬?
채팅 창은 난리가 났다.
깔깔거리며 이 상황을 즐기기 바빴다.
그렇게 30분여.
겨우 추적전을 마치고 숨을 몰아쉬는 강아지.
“허억, 허억…… 너무한 거 아니야? 잡몹이라며!”
-ㅋㅋㅋ 이 게임 하드코어하다더니, 진짜였네.
-웬만한 사람들은 고블린은커녕 토끼도 제대로 못 잡겠는데요.
-님들, 초반 꿀팁 알려 드리러 옴.
그 순간, 영상 클립이 하나 들어왔다.
한쪽에 홀로그램 창이 떴고, 영상 하나가 재생되었다.
슥슥-.
초반, 궁병의 사체를 뒤져서 능숙하게 칼질을 하는 장면.
‘도축’이라는 스킬을 얻는 장면.
그리고 두 개나 새로운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뿌리는 장면과 엠블럼, 그리고 소매를 찢는 모습까지.
-?
-??
-저걸 뉴비가?
-진짜 뉴비 맞음?
-베타테스터 아님?
-맞네. 크큭, 저게 바로 비-터인가?
-ㅋㅋㅋㅋ난 베타테스터 따위하고는 다르다!
“와, 어떻게 저렇게 능숙하게 하시지? 이분 누구세요?”
[뉴비환영해! 님이 1,000코인 후원!]
[드레젠이라고, 뉴비예요. 모르는 게 없는 방송임.]
-진짜?
-강아지 형님, 저희 좀 염탐하고 와도 될까요?
-잠시 힐링 좀 하고 오겠슴다^^7
“야이씨…… 그래, 다녀와. 나도 구경 가고 싶다. 혹시 전투 장면 좀 따오실 수 있어요? 이놈의 고블린 스키들을 그냥……!”
-ㅋㅋㅋㅋㅋ복-수.
-오 강아지 형 스승님 가나요?
-스승 가즈아!!
[뉴비환영해! 님이 100코인 후원!]
[함 해 보겠슴다.]
강아지는 다시 한 번 클립을 재생시켰다.
휘릭- 손에 들린 단검을 자연스럽게 돌리며 도축을 하는 장면은, 명장면에 가까웠다.
그녀는 산 위를 올려다보았다.
왜인지 모르게 놓고 온 사체들이 아깝게 느껴졌다.
#3
아마존 TV.
스트리머들이 방송을 하는 온라인 방송국이었다.
세이브 더 브락시아가 오픈한 첫날.
무려 300명이 넘는 BJ가 최초이자 가장 완벽한 가상 현실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영상이 큰 화제가 되었다.
“마침 가까우니까 돌아갈까요?”
“아씨! 이게 뭐야! 이런 꿀팁을 왜 지금 알려 준 거예요?”
다양한 반응이 나온 것은 당연했다.
처음부터 단단한 자본을 마련하고 갈 수 있는 것은, 엄청난 이점이었다.
마치 초반 패키지를 지르는 느낌이랄까.
당연히 엄청난 수출이 이뤄졌고, 너도나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으아 야발-! 왜 이딴 식으로 잘리는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
-걸레짝 됐넼ㅋㅋㅋ
-가죽!(이었던 것)
-마! 갈무리가 그리 쉬운 줄 아나!
-드레젠 님은 그거 어케했눜ㅋㅋㅋ
대부분의 BJ들은 도축은커녕 칼도 제대로 잡아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시스템의 보정을 어느 정도 받고 있긴 하지만, ‘도축 1’은 드레젠처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스킬 레벨이 아니었다.
“그분은 어떻게 그렇게 잘하시지?”
“……나중에 방송 안 할 때 가서 구경해야겠네요.”
BJ들은 본능적으로 ‘세이브 더 브락시아’의 강점기가 오랜 기간 지속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가끔 기분 전환 삼아 다른 게임을 한다고 쳐도, 주류는 브락시아가 될 것이다.
독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모방한다면, 충분히 시청자들을 붙잡아 둘 수 있으리라.
다른 매력을 어필하는 것도 좋겠지만.
“케르르륵-!”
“어…… 고블린이군요.”
무성한 소문과 화제를 낳은 장본인은 마침 고블린을 마주했다.
드레젠은 흘끔 채팅 창을 바라봤다.
상단에 보이는 시청자 수는 15명.
-드디어!
-왔다아아아-!
-뭐든지 다 아는 방송이니까 고블린 정도는 우습겠죠?
-ㅋㅋㅋㅋ 강아지 형님 도망가는 거 보고 와서 그런지, 믿음이가 안 가네.
드레젠은 채팅 창을 바라보며 태연하게 말했다.
한 손에 들고 있던 주머니를 툭, 내려놓았다.
“마침 잘됐네요. 지금부터 고블린 사냥 공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스릉-.
뻑뻑한 느낌과 함께 뽑힌 브로드소드.
고블린.
꽤 많은 추억이 있는 녀석이었다.
[이거 하나도 못 잡아서 귀찮게 하기는.]
[어후, 쓰레기 자식. 고블린같은 놈 하나 못 잡아서야…….]
으득-.
괜스레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고작’ 고블린 하나 못 잡아서 쩔쩔매던 자신과, 얼이 나가 있는 드레젠을 매도하던 영웅과 교관들.
개돼지 보듯 우리 뒤에서 관찰했던 귀족 놈들까지.
강일, 드레젠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검으로 고블린을 겨눴다.
오랜만에 철저하게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을 만난 기분이었다.